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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오후 2시께, 신촌 로터리에 노란 조끼가 떴다. '생활질서확립' 조끼를 입은 마포구청 용역원들은 몇몇 노점상을 에워쌌다. 손님들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떠났다.

노점상인들의 반발에 자리를 비킨 용역원들은 신촌 그랜드마트 앞에서 서부지역 노점상연합(서부노련, 마포구와 서대문구 노점상모임) 상인들과 대치했다. 각 30여 명 규모의 용역과 서부노련은 서너 시간 자리를 지키며 시민들에게 유인물을 배포했다.

 신촌 그랜드마트 앞의 마포구청 용역들과 노점상인들
 신촌 그랜드마트 앞의 마포구청 용역들과 노점상인들
ⓒ 김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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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월 1일부터 시작된 신촌․홍대 부근 노점상 단속은 18일 행정대집행으로 이어져 마차 5동이 철거되고 노점상 7명이 다쳤다. 홍대 근처 노점상인 이진택씨(52)는 "장사한 지 10년이 넘었는데 이런 단속은 처음 봤다"며 "계도 행정은 있었어도 올해처럼 뒤엎고 하진 않았다"고 말했다.

18일 이후에도 보관소에서 마차 꺼내는 걸 막고, 영업하는 마차를 에워싸는 등 단속은 계속되고 있다. 마포구청 관계자는 "(단속이) 내년 초까지 이어질 수도 있다"고 하는데 서부노련 측은 "단속 나와서 또 마차 부숴 버리면, 우리는 '부르스타'라도 들고 나와 장사하는 수밖에 없다"며 맞서고 있다. 마포구청의 단속과 서부노련의 반발 사이에 놓인 쟁점을 정리해봤다.

디자인거리 조성을 위한 노점상 이주

2008년에 마포구청은 디자인거리 조성을 계획하고, 노점상들은 특화거리를 만들어 제도권으로 수용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마포구청은 "노점상인들 생계대책으로 노점특화거리를 만들고 노점상 허가제를 도입하려고 한다"고 밝혔다. 구청 측은 "아직 별도로 정해진 특화거리 부지는 없지만, 우선 이면도로로 재배치하려는 것"이라며 "그런데 서부노련이 반대하고 나서 어쩔 수 없이 철거에 나섰다"는 입장이다.

이에 서부노련은 "디자인거리를 만드는 데 무조건 반대하는 게 아니다. 문제는 이주 장소"라고 했다. 구청은 알아서 하라고 할 뿐 "여기로 옮기겠다 저기로 옮기겠다 해도 안 된다고만 한다"며 "노점상을 쓰레기로 보고 후미진 데 치우려고 하고, 결국 장사하지 말라는 얘기"라는 것이다.

 '비상체제'에 들어간 홍대 부근 노점상들
 '비상체제'에 들어간 홍대 부근 노점상들
ⓒ 김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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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정보 들춰 非생계형 노점상인 솎아내기

노점특화거리가 조성돼도 문제다. 마포구청은 금융거래정보와 재산 조회를 통해 재산이 2억 원을 넘는 노점상인은 '퇴출'할 예정이다. 구청 관계자는 "생계형 장사인지 알아보지도 않고 모두 특화거리로 들일 순 없다"며 "어느 시점에 한 번씩 조회해서 생계형 아닌 노점상인은 걸러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서부노련 측은 재산공개의 찝찝함보다는 구청에서 신상정보를 가지고 "목줄을 죌까봐" 꺼려하고 있다.   

겨울철 단속과 철거

왜 하필 12월에 단속하나. 서부노련은 "연말에 보도블록 갈아엎는 것과 같다"면서 예산집행 문제를 제기한다. 마포구청 건설관리과가 용역비 1억 원을 상반기에 집행하고, 추경예산 2억 원을 하반기에 다 쓰기 위해 용역을 고용해서 무리하게 단속한다는 것이다.

마포구청 관계자는 "허위사실이다. 용역비 2억 원으론 부족하다. 그래서 아껴 쓰고 있다"고 반박했다. 이어 "올해 9월 30일까지 시간을 줬었다. (협의와 이주가) 미뤄지다 보니 이렇게 된 것"이라 해명하며 "언제까지 단속만 할 수는 없으니 올해 안엔 뿌리 뽑고 싶다"고 덧붙였다.

마포구청과 서부노련은 서로 공감하는 바도 있다. 대체로 노점상인들은 생계가 어렵다는 점, 디자인거리 조성 자체엔 찬성한다는 점이다. 공감대가 없지 않음에도, 엇갈리는 견해의 차를 넘지 못한 채 한겨울의 단속과 철거는 시작됐다. '2억 원'짜리 용역을 앞세운 구청과 "가진 건 몸뿐"인 노점상들 사이의 갈등은 올해가 저물 때까지 이어질 조짐이다.

"경기도 안 좋지 않나. 일단 두고 겨울이나 지나면 하든지... 단속 잠깐 멈추고 빨리 해결책을 찾았으면 좋겠다"는 택시기사 김 모씨(56)의 바람이 이뤄질지 지켜볼 일이다.     


#노점상#신촌홍대 노점상 단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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