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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일년 중 가장 해가 길다는 동지입니다. 동지는 해가 가장 길다는 것만 아니라, 작은 설이라고도 합니다. 동지하면 팥죽을 먹는데, 팥죽을 한 그릇 먹으면 나이를 한 살 더 먹는다는 풍습이 있기 때문에 작은 설이라고 하는 것 같습니다.

어릴 때는 동지 팥죽을 많이 먹었습니다. 온 동네가 팥죽을 쑤어 이 집 저 집 마실 다니면서 얻어 먹고, 나누어 먹었던 기억이 납니다. 하지만 요즘은 동지 팥죽을 쑤어 먹는 집도 없으니 마실 다니면서 나누어 먹는 모습은 찾아보기 힘듭니다. 다른 집과 나누어 먹지는 못해도, 아내에게 올해는 동지 팥죽을 한 번 쑤어 먹자고 했습니다.

"여보, 동지인데, 팥죽 한 번 쑤어 먹어요."
"쌀가루도 없고, 팥도 물이 불리지 않았는데, 팥죽을 쑤라니 못해요."

"팥은 물에 불리면 되고, 쌀가루가 없어면 밀가루로 새알을 만들면 되잖아요."
"팥은 물에 불릴 수 있지만 새알을 누가 밀가루로 만들어요. 쌀가루로 만들지. 쌀가루를 만들려면 물이 불리고, 방앗간에서 빻아야 해요."

"그럼 쌀도 물에 불리면 되잖아요."
"쌀을 누가 한 두 시간만에 불려요. 하룻밤은 새워야 해요."

"어떻게 하나. 오늘 따라 팥죽이 먹고 싶은데."
"팥은 있으니까, 물에 불리고 새알은 시장에서 사면 되겠네요."


 동지 팥죽을 쑤기 위해 팥을 물에 불리고 있다.
동지 팥죽을 쑤기 위해 팥을 물에 불리고 있다. ⓒ 김동수

팥죽 먹고 싶다는 남편의 어거지에 아내는 어쩔 수 없이 동지팥죽을 쑤기로 했습니다. 팥을 물에 불리고, 새알을 급하게 시장에서 사와 팥죽을 쑤기 시작하는데 준비 안 된 상태에서 팥죽을 쑤니 제대로 될리가 없습니다. 그래도 팥이 집에 있어 다행이었습니다.

"팥이 있어서 다행이에요. 팥도 없었다면 어떻게 할 수가 없었어요."
"그래도 당신 대단해요. 내가 먹고 싶다고 하니 팥죽을 쑤는 것 보니까."


"당신 잔소리 듣기가 싫어 팥죽을 쑨 것이지, 당신이 좋아서 쑨 것 아니니 감동하지 마세요."
"아니 무슨 말을 그렇게해요. 나를 좋아하지 않으면 당신이 팥죽을 쑤어줄리가 없어요."

"내년에는 쌀가루까지 직접 당신이 빻아서 진짜 동지 팥죽 먹어봅시다."
"그럼 이거는 가짜 동지팥죽이에요?"


"가짜 동지팥죽이라는 말이 아니라. 새알이 시장에서 산 것이라 그렇지요. 새알은 집에서 쌀가루를 불리고, 빻고, 만들어야 제맛이 나는 것 아니요."

"그렇게 먹고 싶으면 내년에는 당신이 팥죽 한 번 쑤어 보세요."

"아서라. 만약 내가 동지 팥죽을 쑤면, 진짜 죽 쑤는 거요."

 아내가 쑨 동지팥죽
아내가 쑨 동지팥죽 ⓒ 김동수

아무 준비 없는 아내에게 동지팥죽을 쑤게 한 것이 미안했지만 김이 모락모락 나는 팥죽을 보니 입안에 침이 돌았습니다. 맛있게 먹고 있는데 아이들은 먹을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학교에서 팥죽을 먹었다는 것입니다.

"너희들은 왜 팥죽 안 먹어?"
"점심 때 학교에서 먹었어요."


"학교에 밥 먹었다고, 저녁 때 밥 안 먹어?"

"팥 들어간 죽 먹기 싫어요."

"이 녀석들이 엄마가 얼마나 맛있게 팥죽을 쑤었는데. 엄마 정성을 생각해서라도 한 번 먹어봐."
"아빠 나는 먹을게요."

"그래 서헌이는 착하구나. 인헌이와 막둥이는 끝내 안 먹을 거니?"
"우리는 안 먹어요. 엄마가 만두국 끓여 준다고 했어요."


"뭐라고. 만두국. 그래 엄마 정성을 너희들이 모르는구나. 팥죽이 얼마나 맛있는데. 서헌아 맛있지?"
"예 맛있어요."


 아이들은 엄마가 쑨 동지팥죽을 거부하고, 만두국을 끓여 먹었습니다
아이들은 엄마가 쑨 동지팥죽을 거부하고, 만두국을 끓여 먹었습니다 ⓒ 김동수

조금은 섭섭했습니다. 아내가 그래도 정성을 다해 쑨 팥죽을 아들 두 녀석이 안 먹겠다니. 엄마 마음을 영 모르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엄마를 생각하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더 있는 것 같아 딸이 좀 낫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비록 새알은 아내 손길이 들어가지 않았지만 남편을 위해 동지팥죽을 쑨 아내 정성을 마음에 새기니 아내표 동지팥죽 정말 맛있었습니다.


#동지#동지팥죽#아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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