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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세상에 와 줘서 고맙다.
 이 세상에 와 줘서 고맙다.
ⓒ 장용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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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를 낳았습니다. 집에서 낳았습니다. 어느 친구가 하는 말이 자기가 본 이상한 커플 중 최강이랍니다. 옛날에야 당연히 집에서 애를 낳았지만, 지금은 그게 이상한 일인가 봅니다. 그래서 이 얘기를 좀 하려고 합니다. 어떤 점에서 가정분만이 좋은지 말씀 드리려고 합니다.

12월 17일 저녁

며칠 전부터 조짐이 보이더니 이날 낮부터, 이번에는 진짜 나을 것 같았습니다. 오후쯤 되자 진통이 10분 간격으로 주기적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래서 조산원 산파 선생님께 연락을 드렸습니다.

저녁 식사는 맥주까지 곁들여 맛있게 먹었습니다. 방 청소를 부부가 같이 하고, 인터넷에서 찾아본 대로 쌀 한 그릇, 물 한 그릇, 미역 몇 줄기를 깨끗한 그릇에 담아 방 한쪽 상에 올려 삼신 할머니께 신고를 했습니다. 둘이 같이 드라마 <아이리스> 마지막회를 보고 나니 밤 11시쯤 산파 선생님이 도착했습니다.

12월 18일 새벽 0시

마산에 있는 평화열린조산원의 산파 선생님은 가톨릭 신자라, 오시기 전에 성모마리아님께 기도를 드리고 왔답니다. 검진을 해보니 자궁 문도 5cm로 다 열려 있어, 양수를 터뜨려 진행을 도왔습니다. 이때까지도 진통은 그럭저럭 참을 만해서, 옆에서 보고 있는 저는 도와줄 일이 없어 기타 치고 노래를 불러주었습니다. 방은 이미 따뜻하게 해둔 덕에 이불은 모두 걷고 맨바닥에서 낳자고 하십니다.

새벽 0시 30분쯤 본격적인 진통이 시작되자 노래는 집어치우랍니다. 너무 아파서 그런지 제 손을 잡는 아내의 손에 힘이 꽉 들어갔습니다. 저와 산파 선생님은 "잘 하고 있다", "괜찮다"는 얘기를 계속 해주고, 진통이 올 땐 호흡을 리듬에 맞춰 같이 했습니다.

나중엔 고통이 큰지 온 몸에 자동적으로 힘이 들어갔고, 산파 선생님은 오히려 다리에 힘을 빼라는 주문을 했습니다. 힘을 빼는 게 말처럼 쉬운 건 아닌 모양입니다. 이 과정에서 대변과 소변을 봤습니다. 산파 선생님은 너무나 당연하게도 대변과 소변을 보라고 했습니다. 산파 선생님이 이걸 다 치웠습니다.

새벽 1시 03분, 본격적인 진통이 시작된 지 30분만에 아기가 나왔습니다. 탯줄을 끊지 않은 아이를 산모의 배 위에 올려놓아, 처음엔 저도 산모도 무척 놀라 어쩔 줄 몰랐는데, 산파 선생님은 괜찮으니 등을 어루만져 주랍니다. 등을 어루만지며 부부가 같이 아기에게 노래를 불러주었습니다.

첫 아이 제왕절개 후 가정분만 택한 이유

 갓 태어난 아이가 엄마 배 위에서 엄마의 심장 소리를 들으며 엄마의 체온을 느끼고 있습니다. "엄마 여기 있으니까 괜찮아." 아빠도 아이의 등을 어루만지며 노래를 불러주었습니다.
 갓 태어난 아이가 엄마 배 위에서 엄마의 심장 소리를 들으며 엄마의 체온을 느끼고 있습니다. "엄마 여기 있으니까 괜찮아." 아빠도 아이의 등을 어루만지며 노래를 불러주었습니다.
ⓒ 장용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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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1시 이후

배 위에서 아이가 노는 동안 산파 선생님은 주변 정리를 했습니다. 생후 100분 동안은 씻기지도 말고 벗겨놓는 게 좋다고 합니다. 그 후 산파 선생님이 따뜻한 물에 씻기고 젖을 먹이기 시작했습니다.

태어난 지 1시간 반 정도 경과한 시점이었는데, 그때부터 아기는 젖을 빨았습니다. 배운 적도 없는데 젖을 빠는 것이 신기했습니다. 젖을 빨기 시작하자 울음이 완전히 그치고, 훨씬 차분해졌습니다. 아, 평화란 엄마 젖을 빠는 순간에 있군요.

그동안 제가 밥을 짓고 미역국을 끓였습니다. 새벽 3시쯤 세 명이 같이 밥을 먹었습니다. 저는 다른 방으로 가고, 산파 선생님은 아이와 산모가 있는 방에서 같이 밤을 보내주었습니다. 밤새 아이가 울 때마다 산파 선생님이 토닥거려주었다고 합니다.

제 친구가 "최강의 이상한 커플"이라고 말할 만큼 집에서 아이를 낳는 것은 특이한 일이 되고 말았습니다. 우리 부부도 이에 대해 공부를 많이 하고 고민도 많이 했습니다.

아내는 첫 아이를 제왕절개로 낳았습니다. 이렇게 첫 아이를 제왕절개 했는데, 둘째를 자연분만으로 낳는 것을 브이벡(VBAC, vaginal birth after cesarean section) 시술이라고 부른답니다. 한글로는 '제왕절개후자연분만'이라고 부른다지요. 최근에 이렇게 제왕절개후자연분만을 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할 때는 딱 한 가지 걱정이 있는데, 그게 자궁파열이라는 것으로 그 확률이 0.4%~1%정도 된답니다.

자궁은 두꺼운 근육으로 둘러싸인 주머니처럼 생겼고, 아래쪽으로만 구멍이 나 있어 아기가 이리로 나오는데, 자궁파열이란 아래쪽 구멍이 아닌 다른 부분에서 자궁의 근육조직이 찢어지는 것을 말합니다. 이렇게 자궁파열이 오면 출혈이 심해져 산모가 위험할 수 있다고 합니다.

확률이 1%라는 것은 아주 높은 것이죠. 더욱이 첫 아이를 낳을 때 자궁 내 근종을 제거했다면 그 부분의 자궁근육이 탄력성을 잃고 경직되기 때문에 자궁파열의 가능성은 더 높아진다고 합니다. 그런데 제 아내는 첫 아이 때 커다란 자궁근종을 두 개나 잘라냈습니다. 그래서 이 부분이 많이 신경 쓰였습니다.

하지만 용기를 내기로 했습니다. 조산원에서는 응급사태에 대비해서 5분 거리에 있는 종합병원과 협약을 맺어놓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훨씬 더 마음이 편했습니다. 더욱이 30년 동안 조산원을 운영하면서 응급실로 간 경우는, 그 병원과 협약을 맺기 전, 아기를 받던 첫 해에 딱 두 건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즉, 산파 선생님 자신이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마음이 편했고, 그렇게 편한 마음자세가 저희 부부에게도 전해졌습니다. 그래서 용기를 내기로 했습니다.

아이 낳는데, 왜 환자 취급을 받아야 하나요?

제왕절개후자연분만을 하는 데 있어서, 그것도 집에서 아이를 낳는 데 있어서, 자궁파열 이외에 다른 문제는 아무리 찾아봐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결정했습니다.

집에서 낳는 것과 병원에서 낳는 것을 비교하면, 천지차이입니다. 그런데 이 부분을 쓰다 보면 자꾸 병원을 비난하는 것으로 독자들이 오해할까봐 조금 조심스럽습니다. 저는 병원이나 의사들을 원망하지 않습니다. 저와 철학이 다를 뿐, 병원의사들도 당연히 생명을 존중하고, 생명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믿습니다. 지금부터는 가능한 한 있었던 사실을 중심으로, 제가 가족으로서 느낀 것만 말씀 드리겠습니다.

저는 출산을 가족과 함께 할 수 있어서 집에서 낳는 것이 좋았습니다. 병원에선 신생아가 세균에 감염되는 것을 막기 위해 신생아실에 대한 출입 통제를 엄격히 합니다. 심지어 산모조차 젖을 먹일 때만 아이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집에서 아이를 낳으니 엄마는 물론 아빠도 처음부터 계속 같이 있을 수 있었습니다.

첫째 아이는 병원에서 예방접종 주사를 놓았습니다. 세상에 온 친구에게 처음 주는 선물이 아픈 주사바늘과 화학물질이라는 걸 생각해보면 지금도 첫째 아이에게 미안합니다. 첫째 아이 때 제왕절개를 했기 때문에 아내는 며칠간 몸을 움직이는 것도 무척 힘들어 했고, 병실에서 수유실까지 내려가는 것도 무척 힘들어 했습니다. 그에 비해 둘째는 태어난 지 1시간 만에 젖을 물렸고 잘 빨았습니다. 신기했습니다. 물론 예방접종의 필요성을 완전히 부인하지는 않습니다. 이건 철학의 문제입니다. 저와 제 아내는 아이에게 예방접종보다 촉감으로 느낄 수 있는 사랑을 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첫째 아이 때 병원에서 아내는 환자 취급을 받았습니다. 병원에 갔으니 환자 취급을 받는 게 당연했겠지요. 하지만, 저희 부부는 아이를 낳는 것은 결코 병으로 정의될 수 없는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어떻게 새 생명을 탄생시키는 일이 '치료'를 받아야 할 병이 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도 병원에선 첫째 아이 때 아내를 환자로 취급했고, 그 기억이 별로 유쾌하지 못합니다.

첫째 아이 때 병원에선 감염을 막는다며 가자마자 제모를 실시하고, 관장을 했고, 밥도 못 먹게 했습니다. 그에 비해 둘째 때 집에서 낳으니 제모 같은 건 상상도 안 해봤고, 심지어 출산 중에 대변도 봤습니다. 출산 직전까지 밥을 맛있게 먹었습니다. 물론 세균 감염을 막을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인간의 자연스러운 존엄성을 무시해가면서까지 그럴 필요는 없다고 저는 믿습니다. 이것도 철학의 차이입니다.

가정분만, 결국 선택은 산모 본인이 하는 것입니다

 날이 밝아 가족들이 아이를 환영하러 왔습니다. 첫째 아이가 동생을 좋아합니다. 가정분만은 이렇게 가족과 함께할 수 있어 참 좋습니다.
 날이 밝아 가족들이 아이를 환영하러 왔습니다. 첫째 아이가 동생을 좋아합니다. 가정분만은 이렇게 가족과 함께할 수 있어 참 좋습니다.
ⓒ 장용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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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아이 때 아내는 새 생명을 탄생시키는 엄마로서 존중 받았습니다. 저와 산파 선생님은 계속 아내를 격려했고, 출산 후 세 사람 모두 서로에게, 그리고 새로 태어난 아이에게도 축하와 감사를 드렸습니다. 첫째 아이 때 병원의 의사와 간호사들은 갖가지 이유로 우리를 무시하고 겁을 주었습니다. 결국 태아의 심장박동소리가 불규칙하기 때문에 태아의 심장이 쇼크로 멈출 수 있다면서 겁을 준 다음 제왕절개를 권장했습니다. 저희 부부는 처음부터 자연분만을 원했지만, 그 상황에서, 의학지식이라는 무기를 가진 의사라는 사람이 하는 말에 겁을 먹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첫째 아이 때, 공포 때문에 온몸을 떨며 울면서 수술실로 들어가던 아내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저는 독자 여러분께 꼭 집에서 애를 낳아야 한다고 주장하지 않습니다. 그냥 집에서 낳을 수도 있다는 실례를 말씀 드리고 싶었습니다. 가정분만을 할 경우 응급상황에 대처하기 힘들 수도 있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결국 선택은 산모 본인이 하게 됩니다. 저는 그저 가족과 함께 자신의 보금자리인 가정에서 아이를 낳는 것이 이렇게 기쁘고 복된 일임을 말씀 드리고 싶을 뿐입니다. 마지막으로 아내가 아이를 낳고 한 말을 전합니다.

"본격적인 진통이 시작되기 전 기다리는 시간이 참 즐거웠습니다. 병원에선 영양제 주사를 팔에 꽂은 채로 정말 걱정을 하면서 온밤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집에서 낳아보니 저녁에 가족과 함께 즐겁게 밥을 먹었고, 진통을 기다리는 것도 기쁘고 감사했습니다. 또 한 가지 대변과 소변을 보는 게 결코 수치스러운 일이 아니라는 걸 느껴서 기뻤습니다. 애를 낳다보면 대변과 소변을 누게 되는 게 당연합니다. 그런데 병원에선 첫째 아이를 낳을 때 관장을 했는데 왜 대변이 나오냐며 의사와 간호사가 심하게 모욕을 주었습니다. 소변을 못 보도록 물도 주지 않았습니다. 제가 무슨 잘못이라도 하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이번에 산파 선생님은, 대변과 소변을 누는 게 당연하다며 그걸 손수 치워주셨습니다. 그게 얼마나 고마운지 모릅니다. 애를 낳는 것은 결코 수치스러운 일이 아니라 자랑스러운 일입니다. 그 과정에 대변을 누는 것이 포함된다면, 그것 또한 수치스러운 일이 아니라 자랑스러운 일입니다."

덧붙이는 글 | 인터넷신문 제주의소리에도 실었습니다.



#가정분만#제왕절개후자연분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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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의민주주의 환경연구소장, 행정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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