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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철배선생님께서 가져오신 이사떡.
 문철배선생님께서 가져오신 이사떡.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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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째 개운한 추위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밖에서 공기를 들이키면 폐까지 깨끗해지는 느낌입니다. 모티프원 청소를 하고 있던 오후시간, 누군가가 문을 두드렸습니다. 오늘 예약한 손님이 오실 시간이었으므로 급히 문을 열었습니다.

하지만 남자 분은 안으로 들어오는 대신 은박지로 싼 물건을 내밀었습니다.

"이안수 선생님이시지요? 저는 어제 헤이리의 작가동으로 이사온 문철배입니다. 저희 가족이 새로 이사 갈 곳을 찾다가 선생님의 글을 통해 헤이리를 알게 되었습니다. 선생님의 따뜻한 글 속의 마을로 이사 오고 싶었고, 어제 비로소 그 꿈을 이루었습니다. 지인들을 위해 이사떡을 했습니다. 선생님은 절 모르시겠지만 이 이사떡을 꼭 전하고 싶었습니다."

저는 뜻밖의 떡을 받고 잠시 당황스러웠습니다. 안으로 잠시 들어오시도록 청했습니다.

"아닙니다. 가족들과 함께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저는 비디오 작업을 하는 사람입니다."

시루떡은 이미 싸늘하게 식어있었습니다. 저는 전자레인지에 떡을 넣었다가 스위치를 누르지 않고 다시 꺼냈습니다. 그 식은 시루떡이 헤이리 내에서도 모티프원과는 가장 먼 거리에 위치한 더스텝의 작가동에서 찬 공기를 마다않고 찾아와준 문 선생님의 발걸음을 생각하니 따뜻하게만 느껴졌습니다. 찬 시루떡을 김이 모락모락 나는 시루떡보다도 더욱 맛있게 먹었습니다.

시루떡을 뚝딱 해치우고 다시 청소를 시작하려할 때 전화벨이 울렸습니다.

"안녕하세요? 이안수 선생님, 저는 일전에 선생님을 찾아뵈었던 사람입니다."

공손함이 가득한 목소리의 그 부인께서는 저를 만났던 상황을 설명하셨습니다. 기억을 못해 제가 당황스러워지는 상황을 피해주고픈 배려의 마음임이 분명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대답해야할 차례가 올 때까지 상대를 기억해내지 못하면 상대보다도 제가 더욱 낯뜨거워지지요. 이미 여러 번 그런 경험을 했던 터였습니다. 하지만 다행히도 이번에는 그 분의 말씀 중에서 '글 쓰는 사람'이라는 내용이 저를 구제해주었습니다.

두 달 전쯤에 한 부인께서 저를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한 1년쯤 헤이리에 계시면서 글을 쓰고 싶다고 했습니다. 첫 번째 수필집을 냈던 출판사에서 두 번째 책을 제의하였고 그 원고 작업을 헤이리에서 하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한 달 전에 헤이리로 이삿짐을 옮기고도 서울에서의 일들을 정리 못해 아직 헤이리에서 며칠 밤을 자보지도 못했습니다. 이제 정리가 끝났고 몸도 마음도 헤이리로 옮길 예정입니다. 내일 오후 3시쯤 선생님을 찾아 뵈도 될까요?"

그분이 저를 찾아왔을 때 헤이리내 한 공간을 추천 드렸는데 마침 서로의 형편이 맞았던 것 같습니다.

"선생님께서 말씀해주신 덕에 헤이리로 갈 수 있었음에 감사드립니다. 또한 선생님과 함께할 이 마을에서의 생활이 많이 기대됩니다."

저야말로 이 새로운 수필가 선생님과 교분을 쌓아갈 기대로 마음 설레어 다시 청소기를 잡기가 어려웠습니다.

지난주에 헤이리에서 한식을 먹을 수 있는 코지하우스에 손님과 함께 늦은 점심을 먹으로 갔습니다. 유해분 선생님이 저를 특별하게 반가운 표정으로 맞았습니다.

"오늘 파주시 공무원이 다녀가셨는데 우리집이 파주시의 '모법업소'로 지정되었데요."
"어떤 점이 모범이랍니까?"
"좋은 재료 쓰고, 맛좋고, 친절하고, 손님들의 불만이 없다는 점이랍니다. 사실은 그 공무원이 이안수 선생님이 모티프원 블로그에 올린 글과 사진을 보았데요. 제가 고추 다듬는 사진도요."

지난 9월 헤이리를 산책하면서 유해분 사모님이 고추를 다듬고 계신 모습을 가을 스케치로 찍어 다른 글과 함께 포스팅했고 아마 업소를 점검하는 당담공무원께서 이 업소의 평을 판단하는 과정에서 이 사진과 글을 보았던 모양입니다.

이 모든 것들은 제가 특별하게 의도하지 않은 것들입니다. 그저 저의 삶의 일부를 꽁꽁 숨기지 않고 내보였을 뿐이고, 필요를 느끼는 사람들의 물음에 그 대답을 성가신 일로 여기지 않았을 뿐입니다. 만약 이런 것들이 나눔이라면 그 나눔은 또 다른 증폭된 즐거움이 되어서 자신에게로 되돌아온다는 것을 확신하게 됩니다.

덧붙이는 글 | 모티프원의 홈페이지 www.motif1.co.kr과
블로그 www.travelog.co.kr에도 함께 포스팅됩니다.



태그:#이사떡, #시루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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