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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행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100년 역사를 지닌 기업은 동화약품공업과 두산 2곳뿐이다. 그에 반해 도쿄상공리서치 조사에서 창업 100년이 넘은 일본 기업은 2만1066사에 이르렀다. 1000년을 넘긴 기업도 8개사나 됐다. 전통에 대한 일본사람들 고집은 유명하다.

"일본의 경우에는 한 가족이 십수 대에 걸쳐 음식점이나 토산품 가게를 운영하기도 하는데 그들의 자부심은 대단하다. 또 언젠가는 명문대 출신의 젊은이가 출세가 보장된 다른 길을 버리고 가업인 우동집을 이어받아 커다란 화제가 된 경우도 있다." - <대한민국은 혁신 중>(전기정 저)

책 <일본의 작은 마을>
 책 <일본의 작은 마을>
ⓒ 살림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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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특징은 작은 것에 대한 애착이다. 우리나라 기초자치단체 평균 인구는 약 20만 명. 우리나라 기초자치단체에 해당하는 이웃 일본 시정촌 평균 인구는 7만 3천명 정도로 우리나라의 30% 정도다.

이러한 특징과 어울리는 일본 도시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

<일본의 작은 마을>(글·사진 서순정, 살림Life)은 일본의 두 가지 특성을 잘 엿볼 수 있는 책이다. 도쿄나 오사카, 나고야처럼 크고 화려한 대도시 대신 작고 오래된, 그러면서도 특징 있는 마을에 글쓴이는 주목한다. 그런 눈으로 일본 전역을 돌면서 찾아낸 마을이 31곳이니 얼마나 발품을 팔았는지 가늠하기 힘들다.

아무래도 글쓴이 취향을 살펴보는 게 글을 읽는 데 도움이 되겠다.

"나는 눈에 띄는 요란함보다는 아무것도 없는 것을 더 좋아한다. 이러한 취향은 일본의 작은 마을에 딱 어울리는 조합이다. 아무것도 없어서 더 근사한 일본의 작은 마을과 그 단출함을 좋아하는 나, 그리고 비움(空)의 미를 추구하는 와비(侘)의 정신은 서로 통한다. 작은 마을의 구석구석을 느리게 돌아다니는 것은 한 잔의 차를 천천히 마시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 '머리말' 중에서

물 위에 떠있는 마을, 고양이 섬, 400년 마을 그리고...

대략 목차를 훑어보자. '하늘로 올라가는 다리' '물 위에 떠 있는 집들을 따라 산책하는 바닷가 작은 마을' '세상과 단절된 갓쇼즈쿠리 촌락' '소박한 어촌 풍경을 간직한 고양이의 섬' '열아홉 개의 언덕을 가진 마을' '고래와 바다거북, 그리고 다이버의 천국'….

떠오르는 느낌은 느림 작음 소박함 아름다움이다. 그리고 비효율이다.

오기마치 마을에선 지금도 짚으로 지붕을 덮는다. 매년 봄이면 크게 보수를 하고, 40-50년마다 한 번씩 새것으로 바꾼다. 시멘트로 튼튼하게 집을 지어놓으면 걱정할 것이 없으련만 왜 이들은 매년 지붕을 고치는 수고를 할까.

키노사키는 또 어떤가. 이 마을에선 밤만 되면 강둑을 따라 등불이 켜진다. 등불은 촛불이다. 사람들이 일일이 돌아다니며 불을 붙여야 한다. 전선을 연결해 전등을 설치하면 스위치 한 번으로 해결될 일이다.

심지어 쓰마고 마을에는 다음과 같은 구호가 있다.

'우라나이, 카사나이, 코와사나이'(팔지 않고, 빌려주지 않으며, 부수지 않는다). 덕분에 에도 시대 이후 400년 동안 마을 모습이 거의 변치 않았다. 팔지 않으니 집값이 뛸 리 없고, 부수지 않으니 마을 모습이 바뀔 리 없다. 어떻게 이 마을 사람들은 이런 구호를 합의하게 됐을까.

일본엔 작고 오래된 마을이 많다. 그런 마을은 천천히 걸어서 돌아다녀야 제 맛을 느낄 수 있다.
 일본엔 작고 오래된 마을이 많다. 그런 마을은 천천히 걸어서 돌아다녀야 제 맛을 느낄 수 있다.
ⓒ 살림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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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마을에는 전봇대도 전선도 없다. 집은 나무로 지었고, 여전히 돌아가는 물레방아가 있다.

미야지마 마을 앞바다엔 오도리이가 박혀 있다. 이쓰쿠시마진자(嚴島神社) 입구다. 12세기 헤이안시대(1168년)에 만들어졌으니 역사가 900년이 가깝다. 

이네는 물 위에 떠있는 마을이다. 이네만 5km에 걸쳐 230여 채 집들이 늘어서 있다. 1층은 선착장, 2층은 주거공간이다. 이미 일본도 자동차 시대가 된 지 오래다. 세계에서 가장 자동차가 흔한 나라 가운데 하나지만, 현재는 전통을 밀어내지 않고, 전통은 박물관에 갇히지 않는다.

쓰마고 마을처럼 오래된 집들만 모인 집들이 있는가 하면 나오시마는 수십 년에서 200년이 넘은 집들이 한데 어울린 동네다.

어우러짐은 이들 동네의 특징이다.

아이노쿠라에서는 온 마을 사람들이 참가하는 마을축제를 본다. 출연진은 모두 마을 주민. 막 걸음마를 시작한 꼬맹이부터 꼬부랑 할머니까지 참가한 팀도 있다.

과거와 현재가 이어지기 위해선 과거에 대한 재해석이 필요하다.

이누지마는 폐허를 예술로 승화시킨 섬이다. 섬에선 질 좋은 화강암이 많이 나 일본 곳곳 성을 쌓는데 쓰였다. 1909년엔 구리 정련소가 만들어져 섬을 활기에 넘치게 했다. 얼마 뒤 정련소는 작동을 멈췄고 섬은 활기를 잃었다.

지금 섬은 건축과 예술, 환경이 어우러진 섬으로 다시 주목받는다. 100년 된 구리 정련소는 근대화 산업 유산으로 지정돼 전시공간으로 활용된다. 전시공간은 친환경을 고려해 설계됐다. 폐수는 식물작용을 통해 정화되고, 태양에너지와 지열, 기후를 이용한 자체 냉난방 조절 시스템으로 움직인다.

가치란 의미를 어떻게 두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하코다테는 열 아홉 개 언덕이 있는 마을이다. 언덕 이름을 보면 작은 것 하나하나에도 신경을 쓰고자 한 마을사람들 마음을 읽을 수 있다. '치토세자카'(1000세 언덕), '사이와이자카'(행복한 언덕), '토키와자카'(영원한 언덕), '모토이자카'(기초가 되는 언덕), '차차노보리'(할아버지 언덕), '니쥬켄자카'(36m에 이르는 언덕) 등 언덕 이름만으로도 마을이 궁금해진다.

책은 각 마을에 들어가는 교통편, 숙박정보, 특별히 눈여겨 볼 것들을 꼼꼼히 정리했다.

책 덕분에 일본 마을에 대해 흥미가 생겼다. 단 기대만큼 아쉬움이 뒤따른다. 이런 마을을 주민들이 어떻게 가꾸게 된 것인지, 이런 마을에 사는 사람들 품성은 어떤지, 마을 주민들 일상은 어떠한지 등에 대한 궁금증이 생기는데, 책은 이런 궁금증에 대해 해답을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글쓴이는 여행을 할 때면 다시 찾고 싶은 구실을 꼭 남기는 버릇이 있다고 적었다. 그 궁금증은 글쓴이가 혹시 쓰게 될 지도 모르는 후속편이나 이 책을 읽고 그들 마을을 찾을 누군가의 손에 맡겨야 할 것 같다.


일본의 작은 마을 - 앙증맞고 소소한 공간, 여유롭고 평화로운 풍경

서순정 지음, 살림Life(2009)


태그:#일본, #작은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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