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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천시민들의 즐거운 쉼터 노산공원에 국민보도연맹사건이란 가슴 아픈 역사가 숨어 있음을 국가가 공식 확인했다
 사천시민들의 즐거운 쉼터 노산공원에 국민보도연맹사건이란 가슴 아픈 역사가 숨어 있음을 국가가 공식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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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는 국가가 '전시'라는 틈을 타 범죄사실이 확인되지 않은 민간인을 법적 절차 없이 살해한 사건. 역사는 이를 국민보도연맹사건이라 부른다.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줄여 진실화해위)는 최근 경남 사천에서도 이 보도연맹사건으로 22명의 민간인이 희생되었음을 공식 확인했다. 나아가 조사과정에서 참고인 진술과 일부 기록에 비춰 볼 때 희생자 수는 100여 명 안팎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희생자들 대부분은 경찰의 권유로 보도연맹에 가입했으며, 가입 여부를 알지 못하는 희생자도 절반 정도에 이르렀다. 진실화해위는 "가해 주체는 사천지역 경찰"이라고 확인했다. 또 희생자 유족이나 참고인 진술에 따르면 우익 청년단원들도 일부 개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천에서 민간인 학살 사건이 일어난 시기는 한국전쟁 발발 직후인 1950년 7월 중순부터 하순까지이며, 학살이 일어난 장소는 용현면 석계리 야산과 삼천포 노산공원 그리고 고성군 하일면 질매섬(=장구섬) 등이다.

이 시기에 희생자들은 경찰의 예비검속으로 삼천포경찰서와 사천지서 등에 나뉘어 구금돼 있었다. 그리고 7월 25일, 삼천포경찰서에 구금됐던 김아무개 손아무개 등은 경찰에 의해 고성군 하일면 질매섬으로 끌려가 섬 중간지역에서 총살당했다. 이곳 희생자는 적어도 수 십 명 이상으로 보인다.

고성군 하일면 질매섬. 일명 장구섬으로도 불리는 이 섬의 가운데쯤에서 민간인 수 십 명이 경찰에 의해 학살되었음이 최근 알려졌다.
 고성군 하일면 질매섬. 일명 장구섬으로도 불리는 이 섬의 가운데쯤에서 민간인 수 십 명이 경찰에 의해 학살되었음이 최근 알려졌다.
ⓒ 하병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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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날, 경찰은 사천지서에 있던 보도연맹원들을 삼천포경찰서로 이송하던 도중 그들을 태웠던 트럭이 고장을 일으키자 모두 내리게 한 뒤 용현면 석계리 야산(일명 별벽) 근처에서 총으로 쏴 숨지게 했다. 여러 진술에 따르면 이곳에서 숨진 민간인도 수십 명은 족히 될 것으로 짐작된다.

삼천포경찰서에 구금됐던 민간인 가운데 일부는 노산공원에서 총살당했다. 또 유가족 진술에 따르면 용현면 덕곡리 야산에서도 학살이 진행된 것으로 보인다.

진실화해위 관계자는 이번 사천지역 국민보도연맹사건 조사를 위해 지난 2005년 12월 1일부터 2006년 12월 30일까지 피해 접수를 받아 올해 4월부터 집중 조사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내년 3월이면 진실화해위의 활동기간이 끝나 "추가조사나 유해 발굴 조사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진실화해위의 진실규명에 따라 그동안 말로만 전해졌던 '경찰에 의한 사천지역 민간인 학살'이 사실로 드러났다. 그러나 이것으로 유가족들이 59년 동안 가슴 속에 삭혀야 했던 억울함을 모두 털어내기에는 역부족으로 보인다.

자신의 남편과 두 시동생을 한꺼번에 잃은 신우순 할머니가 1950년 당시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자신의 남편과 두 시동생을 한꺼번에 잃은 신우순 할머니가 1950년 당시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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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남편과 두 시동생을 한꺼번에 잃은 신우순(용현, 88살) 할머니는 "죄 없는 사람을 하루아침에 데려가 죽이는 법이 어딨나. 이제와 나라에서 조사를 한다니 반갑기는 하지만 죽은 사람만 억울하지, 이 무슨 소용이고"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실제로 진실화해위의 진실규명결정서가 희생자 유가족들에게 전달된 지 한 달이 가까워지고 있지만 관련 사건은 지역사회에 전혀 알려지지 않고 있다. 자칫 '빨갱이 가족'으로 오해 받지나 않을까 가슴 졸였던 지난 시간의 굴레에서 유가족들은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인근 진주나 의령, 함안과는 달리 '유족회' 구성 움직임도 전혀 없는 상태다. 이와 관련해서는 지자체나 시민사회단체가 관심과 지원이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진실화해위는 진실규명결정서 끝부분에서 "국가가 이 사건의 희생자와 유가족들에게 진심으로 사과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밝히면서 다음 사항을 권고했다.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유가족들이 희생자의 위령제 봉행, 위령비 건립 등 추모사업을 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 희생현장 주변에는 안내판 등을 설치하여 이 사건의 진실을 국민들이 쉽게 알 수 있도록 하며, 희생지는 주민화해와 역사교육의 장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적극 모색할 필요가 있다."

옛 국도3호선이자 지금의 시도1호선이 지나는 사천시 용현면 석계리 야산 일명 별벽이. 보도연맹원들을 이송하던 트럭이 고장을 일으키자 경찰은 이곳에서 범죄가 밝혀지지 않은 민간인들을 모두 사살했다.
 옛 국도3호선이자 지금의 시도1호선이 지나는 사천시 용현면 석계리 야산 일명 별벽이. 보도연맹원들을 이송하던 트럭이 고장을 일으키자 경찰은 이곳에서 범죄가 밝혀지지 않은 민간인들을 모두 사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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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뉴스사천(www.news4000.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뉴스사천, #학살, #국민보도연맹, #사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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