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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목원에서 숲해설가로 일하는 나는 아이들과 만날 기회가 많다. 그들은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마음을 열며 어른과 달리 가름막 없이 먼저 다가와 자신을 보여준다. 날 보여줄테니 당신도 가슴을 열어봐 라고 말하는 눈빛이다.

 

숲길을 아이들과 함께 걷는 일은 즐겁다. 활기가 넘치는 그들과 함께 있는 것은 언제나 생기를 준다. 내 나이를 잊고 그들의 생각과 행동을 함께 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이런 기회를 통해서 내가 얻는 것은 세상의 맑고 밝고 투명함이다. 세속의 때를 벗고 그들과 어울리는 것만이 그 시간을 함께 하는 나의 최대목표다.

 

다양한 미래를 상상하는 아이들


내가 이야기 하는 것 보다 그들의 이야기를 많이 듣는 것이 내 '해설'방식이다. 혹자는 이게 무슨 해설이냐고 항의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만족스럽다. 지루한 '강의'를 듣는 것 보다 훨씬 자유롭기 때문이다. 말없이 걷다보면 스스럼없이 아이들이 다가와 질문하기 시작한다. 나이가 어떻게 되느냐. 결혼은 했냐. 여기서 얼마나 일했냐. 얼마나 더 걸어야 하냐. 산속에 멧돼지를 본적 있느냐 등 가끔은 날 당혹스럽게 하는 질문도 있다. 그런 질문을 당하기전에 내가 선수를 친다.

 

"너희는 나중에 뭐가 되고 싶어. 꿈이 뭐야?"

 

이 질문은 아이들에게 내가 자주 하는 질문의 하나다. 과거의 난 이런 질문에 제대로 대답해 본적이 없다. 너무 조숙했거나 부모님의 기대를 저버리기 싫었거나 경쟁에 치여 여유가 없었을 것이다. 꿈을 꿀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큰 혜택인가. 미래의 내 모습, 내가 마음먹은 대로 상상하는 대로 되어 있는 나. 푸른 자신만의 꿈을 향해 뛰는 모습을 상상하는 나는 그들보다 더 행복해진다.

 

"병든 사람들을, 병을 고치는 의사가 될래요."

"어려운 서민(요즘 유행어인가)들을 변호하는 변호사가 될 거예요."

"이재동(스타크래프트 게이머)같은 프로게이머가 되고 싶어요."

"탐험가요. 다윈 같은 학자가 돼서."

 

이야기를 듣고 나서, 그럼 지금 너는 꿈을 위해 무엇을 하고 있니 라고 묻는다. 몇은 장황하게 자신이 하고 있는 일들을 설명한다. 책을 보고 카페에 가입했거나 부모님과 함께 캠프에 참여하고 있다거나 하는 이야기를 한다. 하지만 대부분은 대답을 못하고 머뭇거린다. 자신의 꿈을 위해 달리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첫째는 부모. 내가 생각하는 미래의 직업은 부모가 생각하기엔 너무 비현실적이기만 하기 때문이다. 부모는 자식을 이해하기보다는 비현실적인 자식의 꿈을 지우고 현실적이고도 '고귀한(?) 직업을 꿈으로 쓰라고 요구한다. 자식이 항복할 때까지. 나이와 관계없이 현실적인 아이들은 아예 부모가 좋아할 만한 직업군을 골라서 타협을 하기 시작한다. 혹은 부모와 동화되어 버리기도 한다.

 

둘째는 '공부' 능력. 많은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일을 하는 직업은 대부분 고학력을 요구한다. 특히 의사, 변호사, 판사, 검사, 한의사 등의 직업들은 대한민국 1%의 '학력'을 요구하는 직업이다.

 

셋째는 '학교'다. 그들이 꿈을 꾸게 만들어야 할 장소는 경합의 장이 되어버렸다. '전국단위의 일제고사'가 대변하는 서열화의 장에서 기껏 종이위에 적힌 '삼십만 이천팔백이십사'이라는 숫자는 현재 내가 가진 '지위'이자 '위치'다. 이 정도로는 그 무엇도 어떤 것도 제대로 할 수 없다고 어른들이 조언한다. 현실의 분위기는 맘껏 뛰놀고 행복해야 할 어린나이의 가슴에 큰 상처를 남기고 미래에 대한 상상조차 불가능하게 만들고 만다. 레벨(석차) 1000단위 안에 들어가야 가능한 꿈들은 점차 리스트에서 지워져 버린다.

 

냉혹한 현실이 버린 그들


같은 처지의 또래들과 담배, 술 등 일찍 '어른 되기' 하는 일은 할 것 없고 미래 없는 청소년들의 유일한 위안이다. 폭력으로 주변에 항변하고, 오토바이 위에서 '자유'를 만끽하는 일 따위가 전부이다.

 

꿈에 대한 대답의 '순진성'은 나이에 따라서 차이를 보이는데 고등학생들은 그런 걸 왜 묻냐는 표정으로 귀찮아한다. 중학생도 별반 다르지 않다. 그들은 꿈을 꾸기보다는 영단어장과 참고서, 학원과제들을 하느라 정신없거나 아예 꿈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지우고 그저 학교나 무사히 다니는 것이 인생목표이다.

 

이후의 일은 그때가 되어서 생각하자. 지금 뭐 하러 머리 아프고 귀찮게……. 초등학생은 좀 다르다. 영악하게도 자신의 꿈과 부모님의 꿈을 따로 저장한다. 나는 게이머 부모님은 의사. 나는 방송작가 부모님은 공무원. 나는 곤충학자 부모님은 한의사. 부모와 나 사이에 놓인 두 직업의 엄청난 간격은 중학교를 가고 고등학생이 되면 자연히 좁혀진다.

 

요즘 대학생 새내기들에게 졸업 후 무엇을 하고 싶으냐고 물으면 천연덕스럽게 공무원, 은행원등의 안정적 직업군을 나열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 되었다. 넘보지 못할 '사'자가 들어가는 전문직이 못 오를 나무라면 불안정한 고용만은 면해 보겠다는 심산이다. 하지만 그런 그들의 꿈도 졸업 즈음이 되면 산산이 부서진다.

 

같은 꿈을 꾸는 '그들'


이미 그런 곳들은 치열한 경쟁을 통해서만 '취득'이 가능한 직업이 되었다. 이를 깨닫고 수십 장의 이력서 밑에 그들의 쌓아왔던 '스펙(취업을 위해 준비하는 점수와 자격증들) 7종 세트'의 허망함을 온몸으로 습득하게 되는 것이 요즈음의 대학 졸업생들이다.

 

꿈을 꾸지 못하는 어린이들이 그저 직업을 얻기 위한 과정에 갇혀 사는 청소년기를 지나 자아를 실현하기는커녕 먹고살기 위한 자리조차 얻기 힘든 성인기에 이르고 나면 자존감뿐 아니라 사회에 대한 기대나 희망도 모두 바닥나버린다. 시급 이천 원의 알바로 여행경비나 등록금을 마련해가는 학생들을 보면 과연 이런 곳에서 꿈이라는 단어가 가당키나 한가하는 생각뿐이다.

 

그래도 오늘 나는 아이들에게 꿈을 묻는다. 꿈꾸는 너희들이 있어야 그나마 미래를 밝게 색칠할 기회가 생기는 것이라고 꿈 없는 아이들이 사는 세상은 미래도 온통 어두움에 갇혀버릴 거라는 생각 때문이다. 실현가능한 꿈을 위해 한걸음씩 나아가는 일부는 혜택 받은 자들이다. 돈 많고 배경 좋은 부모 밑에서 자라기 때문이다.

 

지금 명문대는 옛날과 같이 사투리 쓰고 시골 논 팔고 소 팔아서 상경한 이들이 별로 없다. 그들 중 대다수는 서울 강남에 거주지를 두고 있고 외고 등의 특목고를 거쳐서 입학한다. 이미 부모의 지위에 따라 대물림 되는 사회에서 사전에 나오는 혹은 드라마나 영화에 나오는 멋지고 용감하고 정의로운 직업이 실현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그들은 그들 안에서 꿈꾸고 그 꿈은 가지지 못한 자들의 꿈과는 너무나도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누가 지금 대한민국에서 꿈을 꾸는가. 감히 당신은, 당신의 자식들은 고귀하고 순결한 꿈을 가슴에 품을 수 있는가. 꿈 깨시라. 지금 세상에서는 여름날 낮에 막걸리 한잔하고 나무 그늘에 누워 좋아하는 이와 '운우지정'을 나누는 '일장춘몽'이나 꾸면 다행이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진안신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어린이, #꿈, #미래, #좋은직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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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데로 생각하지 않고, 생각하는데로 살기 위해 산골마을에 정착중입니다.이제 슬슬 삶의 즐거움을 느끼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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