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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광산구 평동공단에 있는 (주)연일산업 제1공장 전경
▲ (주)연일산업 전경 광주 광산구 평동공단에 있는 (주)연일산업 제1공장 전경
ⓒ 연일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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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IMF 아픔을 넘어

지난 97년 외환위기 당시에 여러 회사가 부도가 났고, 부도난 회사가 발행한 어음이 휴지 조각이 되면서 또다른 회사를 부도의 수렁에 빠지게 만들었다. 신문에서는 매일 부도 소식과 함께 갑자기 찾아온 시련을 견디지 못한 회사 대표와 가장들이, 혹은 가족 전체의 안타까운 선택을 전하며 사회 전체를 우울하게 만들었다.

연일산업의 배문자 대표에게도 IMF의 시련은 매서웠다. 본인은 대기업에 근무를 하고 있었지만 남편이 운영하던 회사는 아시아자동차의 하청업체로 제1벤더의 부도에 따라 연쇄 도산을 할 수밖에 없었다.

자살까지 생각한 남편을 이끌고 임시 거처를 만들 수 있었던 곳은 장성에 있는 시댁뿐이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치매를 앓고 있던 시아버지를 모신다는 것은 그 동안에 받았던 고통과 세상의 시름을 잠시라도 잊을 수 있어 오히려 마음을 되잡는데 큰 도움이 됐다.

시아버지에 대한 정성스런 간병 때문이었을까. 전 회사에 같이 근무했던 분으로부터 월 1억 원 정도의 매출을 기대할 수 있는 아이템이 있는데 창업을 해보라는 권유가 들어 왔다. 이를 준비하는 과정에서도 지인들이 '배문자라면 실패해도 아깝지 않다'라며 한푼 두푼 정성을 모아줘 2001년에 연일산업의 문을 열 수 있게 됐다.

IMF라는 파도를 넘고 세운 연일산업은 8년차인 2009년 한 해 동안 제1공장에서 27억과 제2공장에서 40억 등 67억의 매출을 올려 창업 당시보다 500%의 매출성장을 기록하고 있다.

배문자 대표는 "2010년에는 제1공장에서 30억, 제2공장에서 100억 원을 목표로 하고 있다. 자동차 부품을 생산하는 1공장은 더 이상의 성장은 힘들지만 기존의 거래처가 튼실하기 때문에 30억을 목표로 삼았다"고 말했다.

또 "제2공장은 현재 성장의 원동력이자 다변화의 중심"이라며 "동남아권 등의 해외 진출의 길이 곧 열리기 때문에 이를 적극 활용하기 위한 목표치"라고 설명했다.

2006년에 설립한 제2공장은 아시아자동차만 믿고 가다가 경기악화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던 지난 IMF의 경험 때문에 다양한 제품 생산으로 위험을 대비하고자 만든 전략적 공장이라고 할 수 있다.

다양한 이종 생산으로 위기를 넘기다

(주) 연일산업의 배문자 대표
▲ 배문자 대표 (주) 연일산업의 배문자 대표
ⓒ 차광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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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일산업(대표 배문자)은 자동차 부품, 엘이디(LED), 가로등, 공장 설비, 배수갑문 등 전혀 연관성이 없을 것 같은 다양한 제품들을 생산하고 있다. 이런 이종(異種) 제품들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은 그만큼 자기 분야인 금형 및 구조물 생산에 있어서의 기술을 완벽히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배문자 대표는 구조물 생산에 있어서의 축적된 기술에 대한 자긍심이 대단하여, '비행기 빼곤 모든 것을 만들 수 있다'라고 자신 있게 말하면서 내뿜는 눈빛은 지금 당장이라도 시범을 보일 기세였다.

지금껏 의뢰가 들어온 제품들도 도면만 있으면 못 만들어 낸 적이 없으며, 오히려 가장 못 만드는 것이 제품 홍보물, 일명 카탈로그 제작이다. 이미 제작된 홍보물이 있지만 뒤이어 납품된 새 제품들을 실어야 하기 때문에 항상 '짜깁기' 수준의 홍보물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연일산업은 지난 IMF 당시 아시아자동차에만 거래를 하다 보니 연쇄부도를 맞을 수밖에 없었던 그 때를 생각하여 다양한 제품을 여러 곳에 납품하면서 위험을 대비하는 형태의 경영을 하고 있다.

2001년 창업 당시 시작했던 트럭에 들어가는 제품부터 시작해 자동차용 특장 부품 500여 종의 생산 기술력에 비하면 다른 다양한 구조물 생산은 오히려 편했다. 또 자동차 제품 생산 기술의 완성도는 여타의 제품의 품질을 높여 주었기 때문에 지역에서의 선호도 또한 높일 수 있었다.

2008년에 있었던 환율 대란도 경기둔화보다 한발 빨리 선택한 다변화과정으로 경영의 위기나 현상 유지가 아닌 매출  증대의 계기가 돼 오히려 그 동안 성장 과정에서 가진 부채를 탕감하는 절호의 기회가 됐다.

배 대표는 "남들은 빚을 내는데 우리는 남아 있던 부채를 갚았고, 새로운 공장 설립을 위해 3000평방미터의 부지를 경매 받았다. 이런 현상은 독감이 유행하면 예방 주사를 맞는 등 이를 이겨 내려고 병원도 가고 약을 먹지만 원래 건강한 체질은 독감 자체가 걸리지 않는 것처럼 우리는 평소에 다져진 다양한 분야로의 진출이란 체질 때문에 경기둔화의 시기에도 건강하게 버틸 수 있었다고 본다"고 말했다.

2010년에 연일산업은 이종생산의 기술을 가지고 해외 진출을 노리고 있다. 우리나라의 농지는 모두 정리가 돼 있고 배수갑문도 신설보다는 AS위주로 의뢰가 들어오지만 동남아 지역은 우리의 기술이 들어가면 시장이 무궁무진할 것으로 판단하기 때문이다. 먼저 베트남과 캄보디아에서의 수주를 받아냈고 진출 품목도 1차로는 배수갑문이지만 점차 LED와 가로등 쪽까지 넓힐 계획이다.

성장에 도움준 분들께 감사, 이제 베풀 때

배문자 대표는 창업 때도 그랬고 지금까지 연일산업이 성장 발전했던 모든 것들을 주변의 도움이라 말한다. 창업에 대해 도와주고 선뜻 돈을 빌려주신 분들에 대한 고마움을 잊지 못한다.

"남편의 신용회복을 위해 다닐 때를 생각해보면 지금도 가슴이 뛴다. 남편에게 신용카드 발급이 되었을 땐 하염없는 눈물도 흘렸다. 몰락 이후 다시 설 수 있었던 것은 정말 누군가가 나를 돕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앞으로도 생각으로 자만하지 않고 긴장을 늦추지 않고 살아 갈 것이다."

배 대표는 그의 사업적인 성공에 대한 보답으로 광주지역 여성경영자 후배들에게 도움을 주고 있다. 그녀는 앞으로 사업은 열심히 하는 것만으로는 생존할 수 없으며, 개인적인 자질과 생존능력, 경험적인 인프라를 갖춰야 하기 때문에 후배 여성기업인들과 소통을 하여 '멘토'가 되길 자청하고 있다.

또한 회사 내에서도 다품종 소량생산의 생산 현장을 직영에서 책임제 운영의 '소사장제'로 전환시켜 불량률을 줄이고 그에 따른 이득을 담당 직원들이 나눠 가질 수 있는 공동운영체제로 전환시켰다.

이는 회사의 오너로써 혼자 많은 이익을 챙겨가서는 안되고, 직원들 또한 자기 능력으로 새 사업장을 꾸릴 수 있도록 사전에 훈련을 시킴으로써 자신이 창업 당시 가졌던 홀로서기의 외로움을 보답하는 그만의 방식인 것이다.


태그:#연일산업, #배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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