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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은 단 위에 맵시 좋게 자리한 종루와 오래된 고목이 길손을 맞이한다.
▲ 성전암 초입 높은 단 위에 맵시 좋게 자리한 종루와 오래된 고목이 길손을 맞이한다.
ⓒ 김종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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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자로 가는 길은 언제나 험하다. 굳이 길을 묻지 않더라도 얼마간의 고생은 각오해야 한다. 오랜만에 암자를 가기로 하였다. 마음이 답답할 때 인적 없는 암자 뜰에서 햇볕만 쬐여도 마음은 고요해진다. 성전암(聖殿庵) 가는 길도 가파르기는 매한가지였다. 찻길이 나있었지만 평지에서 곧장 산을 오르는 길은 차도 가픈 숨을 헐떡거릴 정도였다. 차가 비탈길에 멈추지 않을까 저어되어 암자를 앞두고 걷기 시작하였다.

성전암 요사채의 기와로 쌓은 담장이 정성스럽다.
▲ 기와 담장 성전암 요사채의 기와로 쌓은 담장이 정성스럽다.
ⓒ 김종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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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전암은 함안과 진주의 경계에 있는 해발 770m인 여항산 꼭대기에 있다. 각데미산 혹은 과데미산으로 불리는 여항산은 한강 정구가 풍수지리학적으로 함안의 땅이 나라를 배반할 기운이 있는 남고북저라 하여 배가 다니는 곳을 의미하는 여항(艅航)이라는 이름을 이 산에 붙여주었다. 한국전쟁 당시에는 낙동강 방어선으로 격전을 치른 곳이기도 하다.

경남 진주시 여항산에 있으며 도선국사가 창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 성전암 경남 진주시 여항산에 있으며 도선국사가 창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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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자에 이르니 제일 먼저 오래된 고목 한 그루가 여행자를 맞이한다. 고목 왼편으로 돌로 단을 쌓은 곳에 범종루가 맵시 좋게 자리하고 있다. 여행자의 눈길을 끈 건 요사채를 두른 담장이었다. 그냥 쌓아도 될 법한 담장에 기와조각을 차곡차곡 얹어 꾸민 정성이 새삼 놀랍다.

산신각은 인조대왕 위패를 모시고 있으며 인조대왕각으로도 사용하고 있다.
▲ 산신각 산신각은 인조대왕 위패를 모시고 있으며 인조대왕각으로도 사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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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담과 고목 사이를 오르니 이내 대웅전이다. 암자의 건물들이야 어디 간들 차이가 있겠느냐 만은 뒤를 돌아본 순간 까무러칠 뻔하였다. 암자로 오는 길이 가파르다고는 여겼지만 평지에서 갑자기 산을 올라 그다지 높지 않다고 생각했었는데 눈앞에 이런 장관이 펼쳐질 줄은 몰랐다. 산 능선이 끝없이 펼쳐지면서 굽이치는 것이 아닌가.

해가 지는 풍경에 어디선가 까마귀 한 쌍이 날아들었다.
▲ 일몰 해가 지는 풍경에 어디선가 까마귀 한 쌍이 날아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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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자는 일찍이 숱하게 많은 암자와 산사들을 둘러보았으나 이처럼 장관인 풍경은 처음이었다. 그다지 높지 않은 산의 암자에서 펼쳐지는 능선의 물결이 이토록 아름다울 수 있단 말인가. 골짜기 깊숙이 자리한 암자인데도 능선의 물결은 아주 멀리, 아주 넓게 펼쳐져 있어 한눈에 담기도 어려웠다. 눈을 여러 번 쪼개어 파노라마식으로 몇 번 붙이고 나서야 제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일망무제가 따로 없다.

성전암에는 배롱나무가 많다. 사진은 배롱나무 가지 사이로 지는 해를 담아 보았다.
▲ 일몰 성전암에는 배롱나무가 많다. 사진은 배롱나무 가지 사이로 지는 해를 담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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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전암은 신라 헌강왕 5년인 879년에 도선 국사가 창건한 것으로 전해진다. 주변 산세가 험하고 깊어 예로부터 참선수도자들이 많이 머물렀으며 나한을 모시는 나한도량으로 알려져 있다. 도선은 우리나라를 풍수지리상으로 해석하여 백두산의 정기가 백두대간을 타고 내려오다 한강 이북인 삼각산에 한 지맥이 머물렀고 남강의 물을 끼고 있는 여항산에 와서 다른 한 지맥이 맺혔다고 보았다. 그리하여 도선은 이곳에 암자를 짓고 '성인이 살던 곳'이라는 뜻으로 '성전암'이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좁은 골짜기임에도 암자에 서면 굽이치는 산능선의 장엄함이 연출된다.
▲ 일몰 좁은 골짜기임에도 암자에 서면 굽이치는 산능선의 장엄함이 연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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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절의 내력은 잘 알려져 있지 않으나, 인조가 능양군으로 있을 때 이곳에서 국난 타개를 위해 백일기도를 올린 뒤 왕위에 올랐다 하여 성전암이라고 불리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지금도 절의 아랫마을은 장안리라 불린다. 대웅전 뒤의 산신각은 인조대왕각의 현판을 같이 달아 사용하고 있으며 안에는 인조의 위패를 모시어 오늘날까지도 제향을 올리고 있다.

성전암의 일몰은 암자에서 보는 일몰 중의 으뜸이다.
▲ 일몰 성전암의 일몰은 암자에서 보는 일몰 중의 으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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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웅전에는 인조 때 조성된 목조여래좌상(경상남도유형문화재 제350호)이 있다. 이 여래상은 높이 60㎝, 폭 43㎝의 나무로 만든 조그만 불상으로 아미타여래상이다. 불상의 배 안에서 불상을 만들 때 남긴 기록과 경전 등이 발견되었는데 이 불상은 제작 연대를 정확히 알 수 있다는 점에서 조선 중기의 불상을 연구하는 데 아주 중요한 자료이다.

사찰의 전각들은 거대한 벼랑을 등지고 산의 지형에 따라 상하로 배치되어 있으며 대웅전·나한전·명부전·인조대왕각 겸 산신각·삼성각·범종각·요사채로 구성되어 있다.

성전암에서 보는 풍광은 일망무제가 따로 없다.
▲ 일몰 성전암에서 보는 풍광은 일망무제가 따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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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자는 내친 김에 일몰까지 볼 요량이었다. 아직 해가 질려면 한참을 기다려야 했으나 서쪽의 능선들이 역광으로 인해 능선이 만들어내는 파노라마의 장대함을 선명히 볼 수 없는 안타까움이 있어 암자를 떠날 수가 없었다.

성전암에 서면 장엄한 능선의 물결이 펼쳐진다.
▲ 일몰 성전암에 서면 장엄한 능선의 물결이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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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두어 시각 지났을까. 서서히 해가 지기 시작하더니 굽이치는 산 능선의 윤곽이 선명히 드러나기 시작하였다. 범종루 앞에 있는 의자에 몸을 깊숙이 담은 채 한동안 지는 해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성전암은 경상남도 진주시 이반성면 장안리 여항산에 있는 사찰이다.


태그:#성전암, #도선국사, #여항산, #목조여래좌상, #암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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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의 미식가이자 인문여행자. 여행 에세이 <지리산 암자 기행>, <남도여행법> 등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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