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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과 충남을 잇는 금강하구둑 일원은 국내 3대 철새도래지로 가창오리를 비롯한 청둥오리, 기러기 등 각종 철새들의 아름다운 군무가 펼쳐지는 자연의 무대이고, 먹이를 제공해주는 금강 담수호 아래 십자 들녘은 철새들의 아늑한 안식처이다.

 

그런데 철새들의 안식처에 달갑잖은 조짐이 일어나고 있다. 먹이를 찾아 모여드는 철새 개체 수가 작년보다 현저하게 줄었기 때문이다. 인근 농민들도 이렇게 간다면, 해질녘에 펼쳐지는 철새들의 장관을 보지 못하게 되는 건 시간문제라고 우려를 표시한다. 

 

철새들이 해마다 줄어드는 이유에 대해 기후변화와 소음공해를 지적하기도 한다. 정확한 지적이다. 4대 강 사업을 위해 수질검사를 한다며 보트 몇 대가 굉음을 내며 며칠 오간 뒤 철새들이 줄어들었다고 하니 말이다. 하지만, 먹이 부족이 정답일 것 같다. 철새들은 생각보다 영리해서 아무리 환경이 좋아도 먹이가 없으면 다른 곳으로 이동한다.  

 

결국, 농민은 농민대로 해마다 철새들에게 피해를 보고, 철새는 철새대로 들녘에서 먹이를 구하기가 어려워지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으니, 해가 갈수록 찾아오는 겨울 철새 개체 수가 당연히 줄어들 수밖에.

 

보리농사 망치는 철새들

 

지역 축산업자들은 지난달부터 농민이 피해보는 철새축제는 반대한다며 나포 철새 탐조대 앞 사거리에서 사일리지 농성을 시작했다. 매년 철새들에게 피해를 보는 농민과 축산업자들은 외면하고, 눈에 보이는 전시행사에만 관심을 두는 당국에 대한 불만이 폭발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농성을 시작한 첫째 이유는 농민과 철새가 공생·공존할 수 있는 대책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고, 둘째는 농민의 식량보다 철새들 먹이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농민경시행정 때문이라는 시각이 주류여서 관련 당국의 반성이 요구되고 있다.

 

 

나포 십자들녘은 가을 추수가 끝나면 보리를 파종하고, 이듬해 2월이면 추위를 이겨낸 보리싹이 푸르게 뒤덮었다. 그런데 철새들의 피해가 커지면서 농민들은 보리농사를 두려워하기 시작했다. 가을에는 수확도 하기 전의 벼가, 봄에는 보리가 피해를 본다. 

 

특히 군산 지역은 해남이나 고창 지역에서 겨울을 난 쇠기러기와 청둥오리들이 북쪽으로 날아가는 중간 정착지라서 심한 곳은 소가 풀을 뜯는 것처럼 보리싹이 뭉툭 잘려나가거나 땅바닥이 드러날 정도라고 한다.

 

해서 가을에 추수를 끝낸 농민들은 보리농사를 포기하거나 어쩌다 파종을 해도 파릇파릇 싹이 돋기 시작하면 철새들의 접근을 저지하기 위해 이곳저곳에 깃발을 세우고 금줄을 치느라 정신없이 바쁘다. 그러나 별 효과가 없다며 불만을 털어놓는다. 

 

철새 탐조대 아래 십자들녘은 철새보호구역으로 지정돼 있다. 해서 내 논이라고 해서 마음대로 못하고, 철새들이 영근 벼나 파종한 보리를 싹쓸이해도 농민들은 어떻게 손을 쓰지 못하고 벙어리 냉가슴 앓듯 속만 끓일 뿐이다.

 

농민에게 현실적인 보상 이루어져야

 

가을 추수가 끝나면 논에 보리를 심어 철새에게 먹이 제공을 하라고 지원금이 나오는데 농민들은 타당성도 없는 생색내기에 불과하다며 현실적인 방안을 요구하고 있다. 열 필지나 스무 필지를 경작하는 농민도 한 필지(1200평)에 해당하는 지원금만 나오기 때문이다. 

 

농지 소유에 차등을 두지 않는 일률적인 보상방식은 철새들에게 먹이가 많은 곳으로 떠나라는 말과 다를 게 없겠는데, 10필지를 소유한 대농가도 한 필지에만 보리를 심을 것이니 들녘이 황량해질 것은 안 봐도 비디오이다. 그래서인지 추수가 끝나면 철새들 먹이창고인 논을 갈아엎는 농민이 늘고 있다.

 

마을에서 60년 넘게 살았다는 황인동(65)씨는 보상방법이 눈가림식이라며 요즘 며칠 비가 내려서 잠잠한데 갈아엎을 논이 늘어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홧김이기도 하겠지만, 논을 갈아엎으면 토질이 좋아져 내년 농사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라고. 그러나 철새들에게는 갈아엎는 만큼 안식처가 줄어들어 공포스러운 얘기일 수밖에 없다. 

 

결과적으로 가을걷이가 끝나면 군산시가 철새들의 먹이창고인 십자들녘 논을 소유한 농민들과 타협해서 이듬해 봄까지 관리하는 방안을 검토해볼 만하다는 생각이다. 해마다 열리는 세계철새축제를 효율적으로 치르기 위해서도 그렇고, 환경보호 차원에서도 실효를 거둘 수 있기 때문이다.   

 

군산시의회 조부철 의원 생각은?

 

나포 십자들녘 일원에서는 해마다 세계철새축제가 열리고 있다. 올해도 원만하게 치른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러나 행사를 앞두고 철새 탐조대가 있는 들녘에 철새가 보이지 않아 행사 관계자들을 애먹였다. 그런데 문제는 그나마 계속 머물러야 할 철새들이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다.

 

해서 군산시의회 나포지역구 출신 조부철(62세) 의원 사무실을 찾아 갈수록 줄어드는 철새들 먹이에 대한 해결방안과 축산업자들의 사일리지 시위, 지역 농민들의 고충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들어보았다.

 

- 철새 개체 수가 눈에 띄게 줄었어요.

"군산시에서는 생태계 보전과 겨울 철새들의 먹이부족 해결을 위해 철새도래지 지역 농민과 '생물 다양성 관리 계약사업' 계약을 체결하고 보리 등을 경작한 뒤 추수하지 않고 철새들에게 먹이를 제공하거나 볏짚을 존치하여 휴식공간으로 제공하고 있는데 안타까운 일입니다."

 

- 농민들은 보리파종 보상금이 타당성이 없다고 불만인데요?

"군산시(국비, 도예산, 시비)에서 해당 농민들에게 일정 금액을 일부 지원하고 있고, 올해 보리파종 보상금도 작년보다 20-30만 원 인상되었지만, 부족한 게 사실이지요. 앞으로 안정적인 생태환경 사업이 더욱 확대되도록 노력하면서 시에 건의도 하겠습니다." 

 

- 축산업자들이 사일리지 시위를 시작했더군요.

"안타까운 일입니다. 나포 십자들녘은 생물 다양성 관리 계약사업이 2002년에 처음 시작됐는데 올해는 총 대상면적 430ha 중 220ha, 230여 농가가 계약하여 철새들에게 먹이제공과 휴식처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세부적인 사업내용은 보리경작은 1농가당 1필지를 원칙으로 87ha 20만6220천 원이며 볏짚존치는 133ha, 3만3305천 원이지요.

 

이렇게 제한된 예산으로는 사업을 100% 실시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일부 미계약 농지에서는 볏짚을 거둬들여 축산농가에 팔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러니 철새 먹이 및 쉼터 제공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요. 그러나 피해농민을 위한 대비책을 꾸준히 연구하겠습니다."

 

- 농민 피해를 최소한으로 줄이면서도 먹이를 제공해서 철새들의 안식처로 만들 방안은 없는지요.

"금강은 전북·충청남북도를 포함하는 광대한 지역 주민에게 용수를 공급하는 중요한 하천이자 철새들의 낙원이지요. 그런데 이곳(나포 철새도래지)에 머물러야 하는 철새가 먹이를 찾아 이곳저곳 헤매는 모습을 보면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철새들 먹이는 금강하굿둑 중앙에 위치한 유인 수로를 활용해서 보충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유인 수로는 민물을 흘려보내 어류를 유인하는 길인데 고기들이 금강호로 올라가 서식하도록 하면 철새들에게 좋은 먹이가 되어 농작물 피해를 최대한 줄일 수 있을 것입니다." 

 

- 세계철새축제를 주관하는 군산시에 당부할 말씀은 없는지요.

"예, 군산시가 서둘러야 할 일이 있습니다. 조금 전 얘기했지만, 물고기가 하구둑 위 담수호와 금강을 오가는 어도를 고치는 일이지요. 물고기는 위로 올라가는 본성이 있잖아요. 그런데 워낙 가팔라서 물고기가 올라가지 못하고 아래에 몰려 있어요. 철새 조망대에서도 볼 수 있도록 CCTV를 설치해놨더군요. 소관청인 농어촌공사와 접촉해서 하루빨리 시행해야 합니다."   

 

- 농민들이 억울하게 피해를 보지 않아야 매년 열리는 세계철새축제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피해는 앞으로도 계속 나타날 것입니다. 그러나 '생물다양성관리계약 지구'로 지정해 농가 피해를 줄이는 방법이 있지요. 생물다양성관리계약은 철새를 위해 재배한 농작물을 수확하지 않거나 보리 등 뿌린 씨앗을 먹이로 제공하는 대신 해당 농가에 일정한 손실액을 보상하는 제도거든요. 이와 같은 사항들을 세밀히 검토해서 생물 다양성 관리계약과 어도를 재정비하는 사업예산이 확대되도록 군산시에 건의도 하고 관심을 두고 지켜보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신문고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철새도래지, #농민피해, #철새먹이, #십자들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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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8월부터 '후광김대중 마을'(다움카페)을 운영해오고 있습니다. 정치와 언론, 예술에 관심이 많으며 올리는 글이 따뜻한 사회가 조성되는 데 미력이나마 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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