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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과학기술부(이하 교과부, 장관 안병만)가 10일 "시국 선언에 참여한 교사들을 징계하라"는 직무명령을 따르지 않았다는 이유로 김상곤 경기도교육감을 검찰에 고발했다.

교과부 장관이 현직 교육감을 수사 기관에 고발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더군다나 그 대상이 최초 주민 직선으로 뽑힌 지방교육의 수장이라는 점에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사건은 전교조를 비롯한 1만 7천명의 교사가 ▲자율형사립고 반대 ▲대운하 반대 ▲미국산 쇠고기 재협상 촉구 ▲민주주의 후퇴 반대 등의 내용을 담은 시국선언을 발표한 것에 대해 교과부가 "국가공무원법 위반"이라며 전교조 간부를 검찰에 고발하고 중징계 한 것에서 비롯됐다.

하지만 김상곤 교육감은 시국선언 징계를 법원 판결 이후로 유보했다. 이에 교과부는 김상곤 교육감에게 전교조 교사들을 징계할 것을 요구하는 직무 이행 명령을 내렸고, 경기도교육청은 직무 이행 명령 취소 청구 소송과 가처분 신청을 대법원에 제기하여 사법부의 판단을 요구했는데 아직 아무런 결정이 나오지 않았다.

[교과부의 억지①] 징계 관련 날짜 규정은 '강행규정'아닌 '훈시규정'

 김상곤 경기도교육감.
 김상곤 경기도교육감.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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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부가 법적 근거로 들고 있는 것은 '교육공무원징계령'의 징계의결 요구 조항이다. 즉, 교과부는 "교육기관의 장은 수사기관의 통보 등이 있을 때는 1개월 이내에 징계의결을 요구해야 한다"는 조항을 근거로 김상곤 교육감에게 직무이행명령을 내리고 이에 따르지 않았다는 이유로 형법 제122조를 근거로 형사고발 한 것이다.

법률적 상식이 없는 상태에서 문구를 있는 그대로만 해석하면 언뜻 교과부의 조치가 맞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법률의 기한 규정에는 훈시규정과 강행규정이 있다. 이는 고등학생만 돼도 알 수 있는 법률 상식이다. 그런데 이 징계의결 요구 기한은 강행규정이 아니라 훈시규정이다. 그래서 이 법령에서 규정하고 있는 1개월이라는 징계 의결 요구 기간을 넘겼다는 것만으로 위법이거나 직무유기가 되지 않는다.

다시 말해, 통보를 받은 이후 1개월이 지났다고 해서 징계 사유가 소멸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2개월 만에 징계의결을 요구하였다고 무효가 되지 않는다. 징계 의결요구기간인 1개월이 지났다는 것만으로 직무유기 의무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도 이와 똑같은 이치다.

이는 바로 다음 조항인 제7조의 징계의결 기한에 대한 대법원 판례를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교육공무원징계령 제7조는 징계의결의 기한을 60일로 정하고, 부득이한 사유가 있을 때에는 징계위원회의 의결로 30일 범위 내에서 연장할 수 있도록 한 규정에 대해서 수차례의 판례를 통하여 이를 '훈시규정'이라고 밝히고 있다.

"징계의결 기한을 규정한 같은 교원공무원징계령 제7조는 … 행정작용이 계속적으로 원활히 행해지도록 하는 등으로 행정법관계의 장기간에 걸친 불안정 상태를 방지하려는 것을 주안으로 하는 훈시적 규정이고 징계의결기한이 지나서 징계의결을 하였다 하여 관계자의 책임문제는 별문제로 하고 징계의결이 위법한 것은 아니다." - 대법원 92누16096 판결해임처분취소 1993.2.23. 선고

징계에 관한 다른 날짜 규정 역시 거의 훈시 규정임이 명백하다. 이 60일이라는 징계 기한이 훈시규정인 것과 마찬가지로 징계의결 요구 기한 30일 역시 훈시 규정임이 명백하다. 만약 이것이 훈시 규정이 아니라 강행 규정이라면 대한민국의 징계권자나 판사, 헌법재판관 등이 거의 모두 직무유기로 형사처벌 또는 징계를 받아야 할 상황이다.

거의 모든 교육감과 자치단체장들은 공무원이 형사사건으로 기소된 경우 징계의결을 법원 판결 이후로 미룬다. 주경복 교수 선거 운동 사건 역시 기소된 이후 60일이 아니라 1년이 다 되었는데도 서울시교육청은 징계를 법원 판결 이후로 미루고 있다. 이것은 현재 진행형이다. 이 기간은 60일이 아니라 통상 몇 년이 걸리기도 한다. 그러나 이것 때문에 교육감이나 자치단체장들이 직무유기로 고발당한 경우는 한 사례도 없었다.

우리 헌법의 최후 보루라고 하는 헌법재판소는 '헌법재판소법 제38조'에 의해 심판 청구가 있을 경우에 180일 이내에 선고하도록 하고 있지만 180일을 넘긴 사례는 허다하다. 2005년 12월 개정된 사립학교법의 경우 2007년 7월까지 선고하지 않아 180일의 3배인 540일을 넘겼지만 직무유기는커녕 징계도 받지 않았다. 일반 법원의 판사들 역시 재판 기일을 넘겨서 재판한 경우는 허다하고, 교원소청심사위원회 역시 재심 결정 기한 60일을 넘긴 경우는 너무 많아서 셀 수도 없고 오히려 60일 이내에 결정한 것을 찾기가 힘들다.

이런 수없이 많은 전례와 사례들을 종합해 보면, 법원이 최종 판단을 할 때까지 징계 의결 요구를 유보한다는 김상곤 교육감의 결정은 이상할 것이 전혀 없다. 이 징계의결기한이 훈시규정이라는 점을 모를 리 없는 교과부가 그냥 억지를 부리는 것으로밖에 볼 수 없다. 이를 모른다면 교과부가 무식한 것이고, 안다면 국민을 우롱하고 있는 것이다.

[교과부의 억지②] '상당한'과 '정당한'이란 형용사 의미도 모르나?

 지난 7월19일 오후 서울역광장에서 열린 '민주회복민생살리기 제2차범국민대회'에서 전교조 조합원들이 시국선언 탄압을 규탄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지난 7월19일 오후 서울역광장에서 열린 '민주회복민생살리기 제2차범국민대회'에서 전교조 조합원들이 시국선언 탄압을 규탄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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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공무원징계령의 징계의결 기한과 징계의결요 구기한이 훈시규정인지 여부는 차치하더라도 김상곤 교육감의 징계 유보 결정을 위법으로 보기는 곤란하다.

교과부가 근거로 드는 교육공무원 징계령 제6조 "상당한 이유가 없는 한 1개월 이내에 징계의결을 요구한다"에는 "상당한"이라는 형용사가 조건으로 붙어 있다. 즉, 상당한 이유가 있다면 1개월을 넘길 수도 있고, 나아가 징계의결 요구를 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의미다.

이 "상당한" 이유에 해당하는 가장 대표적인 것이 법원의 판결임은 부정할 수 없다. 이것이 우리 헌법 제27조의 "④형사피고인은 유죄의 판결이 확정될 때까지는 무죄로 추정된다"는 무죄추정의 원칙이다. 교과부가 고발의 직접 근거조항으로 들고 있는 형법 제122조의 직무유기도 마찬가지다. 이 조항은 '공무원이 "정당한 이유 없이" 그 직무수행을 거부하거나 그 직무를 유기한 때에는 1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3년 이하의 자격정지에 처한다'라고 하여 역시 "정당한 이유 없이"라는 단서 조항을 두고 있다. 정당한 이유가 있으면 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교육공무원징계령 제6조의 "상당한 이유"와 형법 제122조의 "정당한 이유"는 누가 판단하는가? 당연히 법원이 하는 것이다. 그래서 김상곤 교육감은 지방교육자치법에 따라서 대법원에 직무이행명령의 취소를 구하는 소송을 제기한 상태이며, 징계 대상자라고 하는 시국선언 교사들 역시 법원 판결을 기다라고 있는 상황이다.

따라서 법원의 결정만 나오면 그에 따라서 언제라도 징계를 할 수도 있고, 법원에서 무죄라고 하면 징계를 하지 않으면 된다. 행정기관이 사법기관이 할 판단을 미리 할 수도 없고, 이를 뛰어 넘을 수도 없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이치다. 행정부는 사법부 위에 있지 않다는 것은 민주주의 사회의 기본 상식이다.

지금 교과부는 "상당한 사유"이나 "정당한 이유"라는 조건에 붙은 형용사의 의미를 애써 무시하면서 "무조건"을 외치고 있다. 정말 이를 모른다면 이 역시 무식한 것이고, 알면서도 무시하고 있다고 하면 이 역시 국민을 두 번 우롱하는 것이다.

[교과부의 억지③] 정권 이익에 반하면 성실의무 위반?

교과부는 김상곤 교육감을 직무유기로 고발하면서 보도자료를 통해 "국가공무원법 제56조(성실의무) '모든 공무원은 법령을 준수하며 성실히 직무를 수행하여야 한다'를 위반하였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 또한 교과부의 무지의 소치로 보인다. 행정자치부가 만든 '국가공무원복무제도 해설' 133페이지를 보면 "성실의무는 윤리성을 본질로 하는 까닭에 민주국가에 있어 국가의 신분적 예속을 의미하는 무정량의 충성 의무가 아니고, 원칙적으로 부여된 일정한 직무와 관련하여 국민전체의 이익을 도모하는 의무라 하겠음"이라고 밝히고 있다. 즉, 공무원의 성실 의무는 국가나 상급자의 명령에 무조건 복종하는 신분적 예속 관계에서 발생한 것이 아닌 국민 전체의 이익을 도모하는 의무라고 명백히 밝히고 있는 것이다.

정권의 이익이 아니라 국민 전체의 이익이라 밝히고 있고, 국가의 신분적 예속에 의한 무정량의 무조건적 충성의무가 아님을 명백히 밝히고 있다. 그런데 정부는 국민 직선으로 뽑힌 교육감에게 대통령이 임명한 교과부 장관이 신분적 예속 관계에서나 가능할 법한 무정량의 충성을 요구하고 있다.

교과부가 정부의 소관부처인 행자부가 스스로 만든 이 해설서를 모른다고, 본 적이 없다고 우긴다면 국가는 심각한 자기부정을 하고 있는 것이고, 동시에 국민을 세 번 우롱하는 것이다.

[교과부의 억지④] 안병만 교과부 장관의 '직권남용'

 안병만 교육과학기술부 장관.
 안병만 교육과학기술부 장관.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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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형법이 규정하고 있는 공무원의 직무와 관련된 범죄 중 제122조 직무유기 외에 제123조의 직권남용죄라는 것이 있다.

※참고 : 형법 제123조(직권남용) 공무원이 직권을 남용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의무없는 일을 하게 하거나 사람의 권리행사를 방해한 때에는 5년 이하의 징역, 10년 이하의 자격정지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개정 1995.12.29>

교과부가 주장하는 것과 다르게 김상곤 교육감의 징계 유보 결정이 직무유기가 아니라면 교과부 장관은 자기 자신이 직권남용이라는 범죄를 저지르는 또 다른 모순에 빠진다.

"직무유기죄는 공무원이 법령·내규 등에 의한 추상적 충근의무를 태만히 하는 일체의 경우에 성립하는 것이 아니라, 직장의 무단이탈이나 직무의 의식적인 포기 등과 같이 국가의 기능을 저해하고 국민에게 피해를 야기시킬 구체적 위험성이 있고 불법과 책임 비난의 정도가 높은 법익침해의 경우에 한하여 성립하는 것이므로(대법원 2005. 5. 12. 선고 2003도4331 판결 등 참조), 어떠한 형태로든 직무집행의 의사로 자신의 직무를 수행한 경우에는 그 직무집행의 내용이 위법한 것으로 평가된다는 점만으로 직무유기죄의 성립을 인정할 것은 아니다." - 대법원 2003.10.24. 선고 2003도3718 판결, 2004.10.28. 선고 2004도5259 판결

이에 비추어 보면 김 교육감이 법원 판결 이후로 징계를 유보한 것은 직장의 무단이탈과도 상관없고, 직무의 의식적인 포기도 아니다. 국민에게 피해를 야기시킬 구체적 위험성도 없고, 불법과 책임 비난의 정도도 거의 없거나 매우 낮다. 이는 지난 6월 한국사회여론연구소가 전국 1000명을 상대로 전화설문조사(95% 신뢰수준 ±3.1%P) 결과 시국선언 교사 징계 "반대"(50.2%)가 "찬성"(35.2%)보다 훨씬 높게 나오는 등 국민의 여론 조사 결과만 봐도 알 수 있다. 또한 징계 거부가 아니라 유보라는 점에서 어떠한 형태로든 직무집행의 의사가 있다는 점이 명백하므로 직무유기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려워 보인다.

이런 대법원의 직무유기에 대한 판례를 모른다고 하면 이 또한 교과부의 무지이거나 국민을 네 번 우롱하는 것이다. 이번 사건과 관련 교과부와 검찰, 법원의 현명한 판단을 기대한다.


#김상곤#안병만#시국선언#직무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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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교육에 관심이 많고 한국 사회와 민족 문제 등에 대해서도 함께 고민해 보고자 합니다. 글을 읽는 것도 좋아하지만 가끔씩은 세상 사는 이야기, 아이들 이야기를 세상과 나누고 싶어 글도 써 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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