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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산에 대한 새로운 지식

지난 22일 드디어 아내가 몸을 풀었다. 예정일을 넘길 것 같다는 모두의 예상을 깨고 3일이나 일찍 나온 우리 까꿍이. 여느 남편과 아빠처럼 산모와 아이 모두 건강하다는 말에 감사하고 또 감사했지만, 감회가 조금 다른 건 사실이었다. 아내가 산부인과가 아닌 조산원,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집에서 몸 풀기를 고집했기 때문에 걱정을 많이 했던 까닭이었다.

아내가 병원에서 아이를 낳지 않겠다고 처음 선언한 것은 결혼 전 명동성당에서 혼인강좌를 듣고 난 이후였다. 우리는 그곳에서 임신과 출산에 대한 교육을 들었는데 그 내용은 꽤나 충격적이었다. 아이를 낳기 위해서는 산부인과에 가야 한다는 우리의 당연한 생각이 한낱 편견일 수도 있다는 사실.

강사는 왜 옛날 조상들이 종종 밭을 매다가 아이를 낳았겠냐고 되물었다. 결국 그 자세가 애를 낳는데 있어서 가장 편안한 자세라는 것이다. 아이를 낳으려면 항문과 성기 사이 회음부의 회음근 탄력이 중요한데, 밭 매려 주저앉는 자세야 말로 그 회음근을 최대한으로 늘릴 수 있는 자세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현재 산부인과에서는 어떻게 애를 받고 있는가. 의사들은 자신들이 보기 편하게 만들기 위해 산모를 앉히기보다 침대에 눕혀서 애를 받는다. 당연히 그 자세에서는 성기와 항문이 붙을 수밖에 없고, 회음근이 늘어지지 않는 이상 회음부 절개는 부득불 할 수밖에 없다. 결국 산모와 아이보다는 의사의 필요에 의해 회음부 절개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 뿐인가. 산모 몸 밖으로 나온 아이는 엄마와의 교감이 가장 필요한 그 시간에 곧바로 엄마와 분리된 채 너무 환한 형광등 밑에서 세척된다. 물론 소중한 생명을 다루기에 책임감이 없진 않을 테지만, 끊임없이 밀려드는 출산모와 아이 속에서 병원 시스템은 각각의 생명에 지극한 정성을 쏟기 힘들다. 푸코의 말대로 근대의 학교나 군대처럼 병원 역시 생명을 공장처럼 생산해 내는 것이다.

어쨌든 아내는 이와 같은 일련의 과정을 듣고 난 뒤 산부인과를 가지 않겠다고 말버릇처럼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산모를 환자 취급하는 병원에는 가지 않겠다는 그녀. 그러나 난 자신 있게 아내의 의견을 지지하지 못했다. 아니, 그러기에는 겁이 났다. 그러다가 만약에 무슨 일이 생기면? 게다가 아내는 30대이지 않은가. 아내의 읊조림이 새댁의 치기이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임신하면 설마 병원가지 않겠어?

산부인과 vs 조산원

초음파 검사
▲ 엄마 뱃 속의 까꿍이 초음파 검사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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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작가 아니랄까봐 아내는 예민했다. 신혼여행을 다녀와서 1주일도 되지 않아 허니문 베이비 사실을 알게 된 우리. 아내는 그 이후부터 집에서 출산 하겠다고 끊임없이 지나가듯 이야기했지만, 난 아내가 그러나마나 끝까지 병원을 고집했고 출산의 최악의 경우만을 상기시켰다. 나이도 적지 않은데 그래도 긴급 상황을 생각해야지 않겠냐.

그러나 아내는 완강했다. 인터넷 까페 등을 통해 스스로 나름 까다로운 절차를 걸쳐 유능한 산부인과와 의사를 선택했건만, 아내는 병원에서 최소한의 진료와 검사만을 행했다. 병원에서는 기형아 검사, 양수검사, 입체 초음파 등을 권유했으나 아내는 요지부동이었다. 이야기인즉, 만약 검사에서 기형아가 나온다 한들 낙태시키겠냐는 것이었다. 기형아 검사의 적중률이 50%라는데 그 절반의 확률 때문에 피어나지 못한 생명을 지울 수 없다는 아내.

맞는 말이었다. 불확실한 결론에 마음만 어지러울 것 같으면 검사를 안 하느니만 못했다. 언제부터 우리가 병원에서 그와 같은 검사들을 모두 행했던가. 어쩌면 이는 의료기관이 관료화되고 대형화되면서 겪는 부작용일지도 모른다. 필요가 필요를 낳는 불필요한 행위들. 우리는 그 고리 속에서 마냥 겁에 질려, 마냥 과학을 맹신하며 기꺼이 자신의 살을 깎아먹고 있는 중이다.

배가 그럴듯하게 불러오자 아내는 주말에 나의 손을 붙잡고 부천의 어느 조산원으로 향했다. 마냥 안 된다고 하지 말고 직접 보고 판단하라는 것이었다. 분명 조산원의 분위기는 산부인과와 판이했다. 병원에서는 아무리 친절하려고 노력하더라도 의사와 환자 관계의 흔적이 지워지지 않는데 반해, 조산원에서는 산모가 하나의 주체였으며 조산사는 말 그대로 산파, 조언자에 불과했다. 병원보다는 편안하고 안정된 분위기.

그럼에도 난 여전히 조산원이 못 미더웠다. 병원에 대한 미련도 미련이었지만, 그 조산원 자체가 근대 병원과 무조건 반대로 가려고, 자연주의를 너무 고집하는 듯 보였기 때문이었다. 명상이 중요하다고, 모든 것이 마음가짐에 따라 움직이며, 따라서 무조건 순리를 따르라는 그들의 이야기는 너무 뜬 구름 잡는 듯 했다. 조산원도 이 정도인데 집에서 조산사만 불러서 아이를 낳겠다고? 오 마이~

그러나 문제는 곧이어 발생했다. 32주차에 병원에서 건넨 무미건조한 한 마디. 까꿍이가 역아라는 것이다!

역아 돌리기

혼자 산부인과에 가서 초음파 검사를 하던 아내는 회사에 있던 내게 갑작스레 전화를 걸어 울먹거렸다. 놀란 마음에 무슨 일이냐고 묻자 의사가 말하길 뱃속 까꿍이가 역아니까 시간을 두고 좀 더 지켜본 뒤, 안 돌아가면 수술을 하자고 했다는 것이다.

역아란 말 그대로 아이가 거꾸로 섰다는 것을 의미한다. 태아가 정상적인 자연분만으로 나오기 위해서는 머리가 땅을 보고 다리가 하늘을 향해야 하는데, 태아가 성인과 마찬가지로서 있는 자세. 문제는 이 역아 자세에서는 자연분만을 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제왕절개를 하지 않으면 산모나 태아 모두 위험할 수 있다는 모든 이들의 충고.

이후 아내는 태아를 돌리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녀는 산고의 고통을 발판삼아 진정한 엄마로 거듭나고자 했으며, 자연분만을 통해 아이에게 최고의 면역력과 자생력을 심어주고자 했다. 체조와 집안 허드렛일 등 역아 돌리기에 좋다는 모든 걸 수행하는 아내. 그녀의 노력은 진짜 안쓰러웠다.

그러나 1주일 뒤 산부인과 초음파를 통해서 본 까꿍이는 여전히 역아 그대로였다. 엄마들이 돌아다니지 않고 자리에 앉아서 하는 직업이 많아 역아가 증가하는 추세라더니, 아내가 뮤지컬을 쓴다고 컴퓨터 앞에 앉아 밤까지 새니 어찌 까꿍이가 쉽게 돌아갈 수 있겠는가. 정녕 이대로 제왕절개를 해야 되는 것인가.

새로운 식구를 맞기 위한 준비
▲ 세 식구 새로운 식구를 맞기 위한 준비
ⓒ 정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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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던 우리. 그런 우리에게 친구 부인이 또 하나의 소중한 정보를 제공해 주었다. 조산원 중에 역아 돌리기로 유명한 조산원이 있다는 것이었다. 비록 자신은 시기를 놓쳐 역아를 돌리지 못했지만, 전국에서 많은 산모들이 역아를 돌리기 위해 그 조산사를 찾아 안산에까지 올라온다는 이야기였다.

기존 부천의 조산원에서 역아 돌리기를 실패했던 터라 조급해진 아내는 당장에 안산의 조산사를 찾아 갔다. 제발 그 조산사가 아이를 돌려 자연분만 하기를 바라며, 그리고 혹여 역아를 돌리더라도 태아나 산모 모두에게 이상 없기를 바라며.

일하던 중 아내에게 전화가 왔다. 조산사가 단 5분 만에 아이를 돌렸다는 것이다. 그 후 초음파로 검사한 결과 태반이나 태아 모두 건강하다는 기쁜 소식. 아내의 말로는 조산사가 손으로 배를 만져보더니 아이의 엉덩이와 머리를 구분해 내고 몇 번 돌렸더니 다리를 쭉 피고 있던 까꿍이가 다리를 오므리고 돌더라는 것이다. 33주차임에도 불구하고 다행히 양수 량이 모자라지 않았고, 시와 운 때가 맞은 결과였다.

수화기에서 들려오는 희열에 찬 아내의 목소리. 제왕절개는 어지간히 하고 싶지 않았나 보다. 산부인과에서는 조산원 등을 통해 역아를 돌리지 말라고 했거늘, 이야기를 들어본 바, 예전에 아이를 낳기 위해 병원에 가지 않는 시절에는 꽤 많은 조산사가 역아를 돌리기도 했다고 했다.

아내가 역아를 돌렸다고 인터넷 까페에다 글을 올리니 그 반응은 실로 뜨거웠다. 많은 산모들이 부러움의 댓글을 날렸고 그 조산원을 찾아가겠다며 난리였다. 그만큼 많은 산모들이 자연분만을 원하지만, 역아가 생각보다 많다는 이야기리라. 우리나라의 제왕절개율이 세계 1위라던데, 병원에서 돈을 벌기 위해 웬만하면 수술로 유도하는 부분도 있겠지만, 역아 자체도 가장 많을 수 있겠거니.

어쨌든 어렵게 자리를 제대로 잡은 까꿍이. 역아를 돌리고 나니 아내는 자세도 훨씬 편안하고 속도 훨씬 덜 거북스럽다고 한다. 조산원에서 별 탈 없이 태아를 돌리고 나니 흔들리게 된 나. 집에서는 몰라도 조산원에서 애를 낳는다면 괜찮지 않을까?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유포터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산부인과, #조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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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물류와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일을 했었고, 2022년 강동구의회 의원이 되었습니다. 일상의 정치, 정치의 일상화를 꿈꾸는 17년차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서, 더 나은 사회를 위하여 제가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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