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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이 하는 말은 모두 다 정치적 언어이고, 교육자가 하는 말은 모두 다 교육적 용어인가?'

 

이 말은 맞는 말인가? 아닌가? 이 두 명제는 참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그러면 '김상곤 경기도교육감은 정치인인가? 교육자인가?' 정치적으로는 주민직선이라는 절차를 거쳤지만 집행하는 일은 교육행정이며 신분상 분명 교육자이다. 그런데도 지금 경기도의회 한나라당의원들은 경기도교육청의 무상급식·혁신학교 문제를 비롯한 주요 교육정책을 두고 교육감의 정치적 행위라고 몰아세운다.

 

그들이 정당을 가진 정치인이기 때문에 그렇게 보는 것 같다. 정치인의 눈으로 보면 정치적인 것이다. 나도 그들과 같은 교육의회에 몸담고 있지만, 나에겐 교육정책으로만 보일 뿐이다. 교육은 이처럼 바라보는 시각에 따라 다르게 비칠 수 있기 때문에 대한민국은 다른 나라와 달리 교육행정을 따로 떼어내 '교육자치'라는 독립된 영역에 두려고 했던 것이다. 또 현재 경기도교육청에서 추진 중인 무상급식과 혁신학교, 평준화정책, 학생인권조례는 지난 4월 교육감선거 당시 유권자들에게 주요공약으로 내세웠기 때문에 당연히 실행해야만할 주민통제원리에 따른 의무사항이기도 하다.

 

지난 5월 경기교육계에 진보교육감이라 일컫는 김상곤 교육감이 등장하면서부터 지금까지 경기교육계는 정말이지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을 만큼 요란하다. 이 현상을 긍정적으로 봤을 땐 김상곤 교육감이 슬로건으로 내건 변화하는 학교, 변화하는 경기교육을 향한 진통이라 할 수도 있지만, 자세히 안을 들여다보면 무늬만 직선교육감이지 무엇하나 제대로 할 수 없는 안타까운 상황이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이런 것들이 현행 교육자치제도의 한계에서 비롯됐다는 점이다.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은 어디로 갔나

 

대체적으로 김상곤 경기도교육감이 전국최초 선거혁명으로 당선된 인물이라는 점에 이의를 달 사람은 없겠지만, 과연 그가 많은 사람들의 기대처럼 '새로운 학교 새로운 경기교육'을 이뤄낼 수 있을까에 대해서는 걱정이 많다.

 

그것은 현행 잘못된 교육자치제도 속에선 주요 교육정책이 교육감의 의지만으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심의의결기구인 경기도교육위원회와 경기도의회라는 두개의 기관을 거치는 동안 예산이 잘리거나 정책이 수정될 수도 있다. 그 단적인 사례가 경기도 무상급식정책이다. 교육감도 광역시․도지사처럼 자신의 정치적 기반이 있어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간단히 말하면 교육감이나 교육행정이 광역단위 시․도의회기관으로부터 정치적 간섭을 받지 않으면 가능하지만 지금 같은 구조에선 어렵다는 말이다.

 

대한민국 헌법 31조 4항은 '교육의 자주성과 정치적 중립성 및 그 독립성'을 인정하고 있고 그에 따라 '교육행정기관은 별도로 지방교육자치'를 하고 있으며 '교원의 정치활동도 금지'하고 있다. 그러나 대한민국에서 교육의 자주성이 침해되고 정치적 중립성이 심하게 훼손된 지는 이미 오래다. 다만 교육계 내부에서조차도 그러한 사실을 실감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적어도 지금 경기도에서는 분명 그러하다.

 

지난 11월 2일에는 경기도청이 도청 내에 '교육국'을 공식 출범시키면서 논란이 일었다. 교육청이 아닌 지방자치단체에 교육국이 설치된 것은 경기도가 처음이다. 현재 경기도는 두 개의 교육위원회와 두 개의 교육국이 존재하는 이상한 곳이다.

 

물론 도청 교육국 업무는 초중등교육의 고유한 업무는 아니지만 명칭의 동일성으로 분명 혼란을 줄 것이고(의회기관인 '도교육위원회'와 '경기도의회'의 교육상임위원회는 이미 언론조차 '도교육위'로 혼란스럽게 표기하고 있는 실정임), 향후에는 어떤 핑계로든 초중등 고유한 업무 중 일부를 직접적으로 관여하려 들 것이다.

 

아무리 강조해도 과하지 않은, 교육정책 독립

 

경기도 교육을 이야기하기 전에 우선 현행지방교육에 관한 법률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1991년부터 시행해온 '지방자치법'과 '지방교육자치에관한법'은 해당 시․도의 교육과 학예에 관한 사무는 교육감에게 위임하도록 되어 있고, 감시기관으로 교육의회인 교육위원회가 교육행정 업무를 심의 의결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입법정신을 훼손한 채 전국 시․도교육청이 시·도교육위원회와 시·도의회로부터 이중감사와 이중심의를 받아 온 지는 오래되었다.

 

다시 말하면 교육이 정치권력이나 행정기관으로부터 지배간섭을 받아 온 지 오래되었다는 뜻이다. 광역단위 시·도청은 시·도의회 회기일수만큼만 업무 부담을 받아왔지만, 시·도교육청은 해당지역 교육위원회 회기일수에다 시·도의회 회기일수만큼의 부담을 더 안아야 했다. 이것만 봐도 우리나라 지방교육이 그동안 얼마나 어려운 처지였는지 짐작이 간다.

 

그런데도 그동안 이러한 문제가 당사자인 교육감들로부터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던 것은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다. 하지만 지방교육자치 실시 초기에는 시·도의회의 관여가 크지 않다가 해마다 조금씩 늘어났을 수도 있다. 그게 아니면 예산심의 최종권한을 지닌 광역의회가 예산심의를 구실로 교육정책 전반에 관해 간섭을 했기 때문에, 예산삭감을 두려워한 '약자' 교육감들이 목소리를 내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올해 경기도 사례에서 나타났듯, 정당 소속 의원들로 구성된 광역의회기관이 얼마든지 교육행정의 발목을 잡을 수 있고 초중등교육이 헌법정신과 달리 정치집단의 판단에 따라 정치로부터 간섭을 받을 수도 있음을 우린 봤다. 광역단체장과 같은 지위에 있는 교육감이지만, 무엇 하나 제대로 할 수 없음을 우린 볼 수 있었다. 교육 정책들을 더욱 독립적으로 가져가기 위해선 시급히 보완돼야할 몇 가지가 있다.

 

아이들 가슴에 상처를 주지 않으려면

 

첫째, 교육을 정치로부터 완전히 따로 떼 주어야 한다. 아니면 적어도 지방교육자치법령을 개정하여 지방의회로부터 간섭을 배제시켜야 한다. 정당소속을 할 수 없는 교육감이 정당의 이해관계 따라 움직이는 의회기관의 간섭을 받는 한 결코 교육은 정치적으로 자유로워질 수 없다.

 

둘째, 민선교육감의 지위에 걸맞게 부교육감 등 정무직을 대폭 늘려야하고 공무원 정원조정 및 기구개편에 대한 권한도 확대해야 한다. 셋째, 직선교육감들도 주민통제원리에 입각하여 주민소환제도를 실시하여 한다.

 

내년도 4대강 사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 들어갈 비용이 8조5천억이라고 하는데 대한민국 전체 초중고 학생에게 들어갈 무상급식비는 3조 가량이면 가능하다.

 

무상급식이란 학생들에게 돈 걱정 없이 밥 먹고 공부하도록 해주는 일인데 교육입국을 표방하는 우리나라 입장에서 보면 4대강사업보다 더 우선되어야 할 정책이다. 어쨌든 이것은 전국적인 상황이고 경기도에선 내년 예산에 총사업비 995억원을 편성하여 초등학교 5~6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무상급식을 실시하려 한다.

 

경기도교육청 내년도 무상급식 사업비 가운데 차상위 계층까지의 저소득층 자녀를 대상으로 하는 계속사업비 355억원을 제외하면 도내 초등학교 5~6학년 45만여명에게 점심을 무상으로 주기 위해 필요한 예산은 640억원인 셈이다. 경기도교육청은 자체 사업비에 31개 시·군의 대응지원을 받아 이 사업을 진행할 예정이며, 수혜대상을 2011년에는 초등 3~4학년, 2012년에는 초등 1~2학년까지 연차적으로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그런데, 지난번 도교육위에서 원안 통과한 이 예산이 이번 주 도의회심의를 통해 어떻게 결론이 날지 모르지만 분위기로 봐선 무상급식은 안 되고 차상위계층을 확대 지원하는 쪽으로 수정될 가능성이 높다. 지난 7월 추경예산심의 때처럼 또다시 그렇게 된다면 참으로 어처구니없고 답답한 노릇이다.

 

왜냐하면, 첫째 그것은 경기도의회가 무상급식 예산 삭감의 명분이자 억지논리인 차별적 복지나 선별 복지를 내세우며 부모의 소득수준에 따라 학교와 교실에서 아이들을 다시 줄 세우려고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교육현장에 시장논리가 도입되고 나서 학교를 서열화하고 아이들조차 상품인양 성적으로 줄 세운데 이어 이제는 부를 기준으로 공개적으로 줄을 세운다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아이들의 가슴에 이보다 더한 상처가 어디 있겠는가?

 

경기교육, 더 이상 정치논리에 휩싸이지 않길

 

현재 새학기가 돌아올 때마다 기초생활수급자, 차상위계층, 한부모가정 학부모나 아이들이 급식비를 지원받기 위해 각종 신청서를 작성하며 느낄 기분을 알고 있다면, 그렇지 않아도 가난 때문에 교실 내에서 기죽어 사는 아이들 모습을 알고 있다면, 몇몇 아이들에게 상처 주는 선별적 지원이 아닌 전체 지원으로 가야 한다. 

 

이번에 경기도교육감이 무상급식을 추진하는 것은 내용적으로나 방법적으로 올바른 교육적 가치를 담고 있다. 우리는 이 문제를 단순히 기초생활수급가정이나 저소득층 가정만의 선별적 시혜차원이 아닌 전체 아이들을 대상으로 교육복지차원에서 바라봐야 한다.

 

둘째, 유권자이자 교육가족에 대한 공약이기 때문이다. 물론 의회기관의 권한과 기능이 예산을 삭감할 수도 있긴 하다. 그러나 단체장의 핵심공약에 대해선 존중해주는 것이 상례다. 국회가 대통령에 대해서 그렇고, 도의회가 도지사에 대해 그러하며, 기초의회가 시장군수에게 조차 그러하다. 그래서 지난 11월초 경기도교육위원회도 교육감의 핵심공약인 무상급식과 혁신학교 예산을 대체로 원안통과해준 것이다.

 

참고로 경기도 전임교육감시절 공약이행 관련 예산을 살펴보면 취임 첫해부터 원어민초빙을 통한 영어교육활성화 등 3년간 공약 이행사업 예산편성으로만 1조7500억원 이상을 편성·집행했다. 이에 비해 현 김상곤 교육감은 내년 6월까지 1년2개월의 임기 내 추진하고자 편성한 주요공약 예산으로는 무상급식 640억, 학생인권조례 3500만원 등 추진하고 있는 정책들의 예산을 합쳐봐야 고작 1800억 원에 불과하다. 더군다나 무상급식예산은 학생, 학부모, 교사 등 교육가족 대다수가 초등학생만이 아니라 장차 유치원을 비롯해 중고등학교까지 지원되길 희망하는 사업이다.

 

유치원부터 대학까지 수업료와 급식비, 체험학습비, 보충수업비, 각종 학원비, 교통비, 부교재비 등 공교육과 사교육에 필요한 비용을 합치면 그야말로 어마어마 하다. 이를 떠안아야할 지금을 살고 있는 학부모들의 고통은 매우 크다. 의무교육기관에서 무상급식만이라도 조속히 실현되어 학부모의 부담을 일부라도 줄여주어야 한다.

 

경기교육이 더 이상 정치논리에 휩싸여 교육적 가치실현이 왜곡되질 않길 희망한다. 정치인들이 자기 속마음을 숨기고 오히려 교육자를 정치활동 한다고 우기는 일이 더 이상 없길 기대 한다. 정치인들의 속마음을 국민들은 다 알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이재삼 기자는 현 경기도교육위원입니다.


#경기도교육청#김상곤#무상급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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