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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일간지에서 '한국 성평등 수준 바닥권'이라는 뉴스를 보았다. 이 신문 기사에 의하면 성평등 수준을 가늠할 수 있는 기준은 바로 여성이 고위직, 전문직을 얼마나 차지하고 있는가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물론 성평등 수준을 가늠하기 위하여 이러한 변수가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여성이 고위직, 전문직을 차지하고 있더라도 여전히 바뀌지 않을 것 같은 풍습이 한국 사회에 여전히 존재한다.

남자가 애보러 간다면 "아내나 장모님은 뭐하고?"

한국 사회에서는 여자가 '박사', '교수'의 위치에 있다고 해도 성차별을 경험하기란 마찬가지다. 사진은 문소리가 여교수로 열연한 영화 속 한 장면.
 한국 사회에서는 여자가 '박사', '교수'의 위치에 있다고 해도 성차별을 경험하기란 마찬가지다. 사진은 문소리가 여교수로 열연한 영화 속 한 장면.
ⓒ MK 픽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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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2003년 박사학위를 받고 현재 한 국립대학에서 교수직을 맡고 있다. 한국 사회에서는 여자가 '박사', '교수'의 위치에 있다고 해도 성차별을 경험하기란 마찬가지다. '무직 박사'였을 때는 물론, 교수가 된 현재까지의 경험을 비추어 볼 때 한국의 성평등 수준을 잘 전해주는 사례들이 있어 여기 한 번 적어보련다.

첫째, 몇 년 전 시간 강사였을 때다. 강의를 마치고 점심을 먹으러 식당에 후배들과 같이 왔다. 갑자기 현직 교수인 선배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어디에 있냐고 해서 학교에 있다고 하자, 다짜고짜 하는 이야기가 "애는 누가 보고 거기 있냐?" 하는 것이 아닌가.

물론 내가 아기 엄마니까 당연한 질문이라고 생각할 테지만, 이런 똑같은 질문을 남자 박사이자 시간 강사인 사람한테 하는 경우는 과연 몇 퍼센트나 될까? 오히려 남자가 '애를 봐야하기 때문에 일찍 집에 가야합니다' 한다면 그 남자 박사는 분명히 바보 취급받을 것이다. 그리고 분명히 이런 소리도 들을 것이다.

"아내나 장모님은 뭐하시는데?"

'그래도' 엄마면 일도 육아도 퍼펙트하게?

왜 여성은 박사, 교수가 되어도 여전이 '엄마로서의 의무'를 다하지 않으면 죄책감을 느껴야 하고, 남성은 가끔 시간 날 때 육아를 해도 '괜찮은 아빠'로 간주되는가? 사진은 아빠 육아를 하고 있는 가정의 모습.
 왜 여성은 박사, 교수가 되어도 여전이 '엄마로서의 의무'를 다하지 않으면 죄책감을 느껴야 하고, 남성은 가끔 시간 날 때 육아를 해도 '괜찮은 아빠'로 간주되는가? 사진은 아빠 육아를 하고 있는 가정의 모습.
ⓒ 최재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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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사례. 몇 년 전 모 연구소에 취직을 하기 위해 일종의 형식적 인터뷰를 했다. 면접하신 교수님께서 내 연구에 대하여 이것저것 질문을 한 후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하였다.

"그런데 가족은 어떻게 됩니까?"
"네, 애가 둘 있습니다."
"그럼 가정이 중요할 텐데, 일은 어떻게 하실 건지?"

정말 황당한 질문이 아닐 수 없다. 이 세상에 가정이 중요하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교수는 동일한 질문을 과연 남자 구직자에게도 했을까.

세 번째 사례. 이제 무직 박사가 아닌 교수직에 종사하고 있을 때다. 하루는 여러 동료 교수들과 점심을 같이 하는 자리에서 누군가 일주일에 한 번밖에 애를 보지 못한다는 이야기를 했다. 곁에 있던 한 외국인 교수도 "나도 평일에는 바쁘니까 주말에만 애와 시간을 보내는데" 했다.

이때 곁에 있던 한국인 남자 교수가 "그래도 엄만데…" 하는 게 아닌가. 나는 질세라 "일하는 엄마 아빠들은 다들 그렇게들 시간을 보내죠"하고 거들었다. 엄마나 아빠나 상관없이 밖에서 일하는 사람이면 다 그런 게 아니냐는 뜻이다.

필자가 딴 세상에서 살다 온 것인까? 한국 사회에서 내가 돌연변이인가? 나는 위의 일들을 겪으면서 자꾸 의문만 생긴다. 왜 여성은 박사, 교수가 되어도 여전이 '엄마로서의 의무'를 다하지 않으면 죄책감을 느껴야 하고, 남성은 가끔 시간 날 때 육아를 해도 '괜찮은 아빠'로 간주되는가?

그러면 여성에게 하루 시간 48시간을 주거나, '엄마로서의 의무'에 대해서 직장에서의 업적과 마찬가지로 취급해 주어야 평등한 것 아닐까? 물론 이는 '아빠로서의 의무'를 다하는 남자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저출산 문제, 성평등 문화 정착으로 해결하자

핀란드, 노르웨이와 같은 나라가 성평등 수준에서 우위를 차지하는 이유는 여성이 고위직을 차지하기 때문만이 아니라, 여성과 남성 모두 육아 의무를 공유하며 그 사회가 출산 휴가 및 승진의 기회 등을 동일하게 제공하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핀란드, 노르웨이와 같은 나라가 성평등 수준에서 우위를 차지하는 이유는 여성이 고위직을 차지하기 때문만이 아니라, 여성과 남성 모두 육아 의무를 공유하며 그 사회가 출산 휴가 및 승진의 기회 등을 동일하게 제공하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 신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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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서두에서 언급했던 '성평등' 문제로 돌아가자. 결론적으로 성평등이라는 것은 여성이 어떠한 자리를 차지하는가에 대한 문제로 환원될 것이 아니다. 먹고 살기 위해서든, 자아 성취를 위해서든 밖에서 일하는 여성을 남성과 마찬가지로 존중해 줘야 하는가에 대한 문제이다.

'육아는 엄마 아빠 모두 하는 것이다'라는 이야기가 소위 성평등 수준에서 우위를 차지하는 핀란드, 노르웨이 등의 나라에서는 아주 당연한 것이, 한국 사회에선 이론과 사례를 논해가며 설득을 해야 하는 일이 되어버린다.

더군다나 소위 교수직에 종사하는 남성들이 동료에게 '엄마로서의 의무'를 강요하는 게 한국의 현실이다. 결국 핀란드, 노르웨이와 같은 나라가 성평등 수준에서 우위를 차지하는 이유는 여성이 고위직을 차지하기 때문만이 아니라, 여성과 남성 모두 육아 의무를 공유하며 그 사회가 출산 휴가 및 승진의 기회 등을 동일하게 제공하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어제 저출산 문제에 대응하기 위하여 정부에서 '이중국적 허용으로 한국인 늘리기', '취학 연령을 1년 낮추어 보육 문제 해결' 등의 제안을 하였다. 여전히 저출산을 성평등의 문제와 병행되는 문제로 보지 않고 뜬구름 잡고 있다.

저출산 문제를 논하기 전에 한국사회의 남성과 여성 모두 '저는 가족과 일 모두 중요해요'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고 그런 사람이 행복한 사람으로 보이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태그:#저출산, #성평등, #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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