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무분별한 개발이 지구의 위기를 낳고, 탄소의 배출이 산소 비율을 줄여서 대기권을 오염시키고, 지구 온난화가 오늘날의 기후변화를 일으켜 더 이상 지구는 '살 만한 곳'이 안 될지 모른다는 내용은 이미 대중적으로 널리 인식하고 있다. 이에 '지속가능'이란 단어가 오늘의 화두다.

지속가능한 개발, 지속가능한 건축, 지속가능한 농업, 지속가능한 연애 등 가져다가 붙이기만 하면 뭔가 있어보이게 하는 이 단어의 정체는 신자유주의로 양극화가 심해지고 부의 편중현상이 심해지면서 자원을 소모해서 권력을 유지하는 일부 가진 자들에게 은근한 시비의 의미도 가진다. 동시에 가지지 못한 자들이 그들의 환경을 원망하지 않고 자신이 이루고자 하는 개혁과 발전을 이루어보고자 하는 소망을 담는 단어이기도 하다.

그들의 지속가능이란

'지속가능한 딴따라질'은 무엇인가. 딴따라질은 음악, 공연을 뜻하는 말일 게고 고래로 음악이 없었던 적이 있던가. 생활과 음악의 융화가 오늘날 음악을 존재하게 했던 것 아닌가. 굳이 지속가능함을 제목으로 들이밀었던 이유는 무얼까. 험난한 음반시장에서 살아남기를 뜻하는 것은 아닐까. 그들의 면면을 시시덕거리며 적어 놓은 책을 통해서 그들의 생각과 과거, 가까운 미래를 가늠할 수 있다.

아직은 장기하가 음반기획사의 얼굴이다
▲ 책표지 아직은 장기하가 음반기획사의 얼굴이다
ⓒ 푸른숲

관련사진보기

싸구려 커피를 마신다
미지근해 적잖이 속이 쓰려온다
눅눅한 비닐장판에
발바닥이 쩍 달라붙었다 떨어진다
이제는 아무렇지 않어
바퀴벌레 한 마리쯤 슥 지나가도
무거운 매일 아침엔
다만 그저 약간의 기침이
멈출 생각을 않는다
축축한 이불을 갠다
삐걱대는 문을 열고 밖에 나가 본다
아직 덜 갠 하늘이
너무 가까워 숨 쉬기가 쉽질 않다
수만번 본 것만 같다
어지러워 쓰러질 정도로

'장기하와 얼굴들'이 부른 <싸구려커피>의 가사다. 얼핏 보더라도 요즘 '대세'인 유행가들의 흐름과는 많이 벗어나있는 것이 사실이다. 삼류인생의 단면을 묘사하듯 펼쳐놓은 가사, 멜로디를 들어보면 이런 느낌은 더하다. 빠른 비트와 귀를 자극하는 음향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댄스풍의 요즘 가요계를 지구라고 하면, 느리고 차분하며 단순한 음향으로 가슴을 울리는 장기하 음악의 사운드는 마치 외계에서 들려오는 듯하다.

특이한 옷매무새와 코믹한 코러스. 그리고 처음 보는 듯한 군무로 이루어진 노래 중반부에 댄스는 주류음악에 젖은 우리로서는 경악을 금치 못하는 퍼포먼스임에 틀림없다. 그들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고 있을까. 인디음악계의 열악함이야 음악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이들이면 늘 들어왔던 이야기고 이런 환경 속에서 속칭 '떠서' 공중파방송과 라디오에 얼굴을 넓혀가는 그들이야 말로 개천에서 용이 난 것이다.

대안으로 즐기는 딴따라질

'지속가능한 딴따라질'은 오늘의 스타, 장기하를 포함한 '동아리', 붕가붕가 레코드의 비전이자 모토이다. 굶어죽지 않을 만큼의 음악과 그 작업을 하는 모임. 대부분이 돈은 다른 곳에서 벌어서 취미처럼, 아니 본업보다 더 열성으로 작업하는 이들이 소속된 곳이 '붕가붕가레코드'다.

음반을 내려면 돈이 드는 게 상식이다. 유명 음반기획사야 억을 들여도 팔리는 음반을 내기가 힘든 것이 당연한 일이고 항상 투자금 회수를 깊이 생각하는 그들이 위험 부담이 많은 신인들에게 선뜻 투자할리도 만무하다. 그렇다면 이 땅의 수많은 헝그리 음악가들은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

붕가붕가레코드는 대안을 제시한다. 그들의 시스템, '수공업 소형 음반'을 소개한 내용 중 한 꼭지. 갑자기 떠버린 장기하의 음반을 구매하려고 벌 떼처럼(그들 입장에서는) 몰려들던 때에 장기하와 얼굴들은 공연 준비보다 음반을 복제하느라 더 고생했다고 한다.

한꺼번에 7장씩 찍어내는(뉴스에나 등장하던 불법복제의 현장을 떠올리면 된다) 기계를 구입하여 일일이 '레코딩'을 손수 작업하는 모습을 상상해보라. 일일이 찍어 내고 주문한 종이 케이스에 넣고 스티커를 붙여서 핸디형 비닐포장기로 포장해 놓고 핸드 드라이어로 열을 쐬어 케이스에 밀착시키는 작업까지 그야말로 '수공업'을 통한 음반이 그들이다.

회사 이름에서 드러나듯이 뭔가 실소를 유발하게 하고 진중하지 못하다는 느낌의 회사는 구성원들 또한 완전히 회사 소속이 아니라 대부분이 본업을 따로 가지고 주말에 모여서 회의하고 운영하는 시스템의 독특한 구조이다. 이런 구조 속에서 장기하와 얼굴들이 나왔으니 그야말로 "운이 좋았다"라고 할 수 있겠지만 그들의 말과는 별개로 '안하는 것보다는 하는 것이 낫다'라는 신조로 끊임없이 음반발매와 공연을 시도(?)해 왔던 그들의 즐거운 노력의 결실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 같다.

지금은 장기하와 얼굴들에 많이 기대고 있지만 적잖은 기대주들을 키우고 있고 레이블의 성격을 확실하게 반영하는 밴드들의 포진은 붕가붕가레코드의 지속가능한 딴따라질을 가능하게 해주는 힘이 될 거다.

음악도 '재미'가 있어야 한다

대표 곰사장을 비롯해서 디자이너 김기조와 엔지니어 나잠수, 매니저 강명진, 커뮤니케이터 양준혁으로 구성된 붕가붕가레코드는 아직 '미완성 합체 중'이다. 그들을 꿈을 꾸고 그 꿈을 향해 용기 내어 발을 딛는 것에 주저하지 않았다.

진창에 빠지기도 하고 절벽에 막혀 주저하기도 했지만 장기하와 얼굴들이 표상이 되었다면 그 뒤에 배경인 레이블은, 그가 가진 밴드들에 호기심을 가지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치즈 스테레오와 술탄 오브 더 디스코, 불나방스타 쏘세지 클럽, 생각의 여름, 아침, 아마도 이자람밴드 등이 수공업 소형 음반을 보유하고 있고 반응이 좋으면 공장제 음반으로 시장에 풀리게 될 날을 고대하고 있다.

누가 해주지 않으면 우리가 한다. 재미가 있어야 한다. 들어오면 오는 대로 나가면 나가는 대로 그냥 자연스러운 흐름을 보이는 한 레코드사의 이야기가 그들의 음악만큼 재미있고 솜씨 있게 버무려져 있다. 시종일관 '재미'를 놓치지 않는 것도 책의 특성이고 보면 전체적으로 붕가붕가 레코드라는 것은 '붕가붕가'가 뜻하는 쾌락이거나 고통(유머사전에서 붕가붕가의 의미 참조)의 의미를 함축한다.

대단한 사명감이나 용기가 있는 이들도 아니고 그저 평범하고 소심한 음악을 좋아하는 인간 군상들의 모임. 서울대학교 노래패 '메아리'를 주축으로 운영하던 동아리가 이제 좀 '제대로 된 박자'의 음악을 하면서 현실음반시장에서 살아남으려는 몸부림을 하고 있는 중이라는 내용으로 정리하면 될까. 비주류로서 인생을 사는 나로서는 대형기획사와 레이블 틈에서 그들의 도전에 응원하고 싶은 마음이다.

빌어서 먹더라도 음악을 놓치 않겠다? 그들이 살아가는 방식을 보여주는 이미지
 빌어서 먹더라도 음악을 놓치 않겠다? 그들이 살아가는 방식을 보여주는 이미지
ⓒ 붕가붕가 레코드

관련사진보기

덧붙이는 글 | 붕가붕가레코드의 지속가능한 딴따라질/ 붕가붕가레코드/ 푸른숲/ 13200원



붕가붕가레코드의 지속가능한 딴따라질

붕가붕가레코드 지음, 푸른숲(2009)


태그:#장기하와얼굴들, #붕가붕가레코드, #지속가능한딴따라질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사는데로 생각하지 않고, 생각하는데로 살기 위해 산골마을에 정착중입니다.이제 슬슬 삶의 즐거움을 느끼는 중입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