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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러우는 나무 기둥에 못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지어졌다. 겉으로 보면 3층이지만 실제로는 2층 건축물이다.
 종러우는 나무 기둥에 못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지어졌다. 겉으로 보면 3층이지만 실제로는 2층 건축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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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러우 옆에 조성된 광장. 멀리 보이는 건축물은 구러우다.
 종러우 옆에 조성된 광장. 멀리 보이는 건축물은 구러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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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안(西安)은 옛 이름은 장안(長安)이다. 베이징, 난징(南京), 뤄양(洛陽), 카이펑(開封), 항저우(抗州) 등과 더불어 중국 6대 고도(古都)로 손꼽힌다.

시안은 중국에서 가장 농경이 시작된 황허(黃河) 중류에 위치해 신석기 유적이 많다. 시안 동쪽에 있는 반포(半坡)유적이 그 대표적이다. 반포유적은 신석기시대의 대규모 취락 유적으로, 앙소(仰韶)문화의 진귀한 유물이 보존되어 있다.

중국 역사상 시안을 도읍지로 정한 왕조가 가장 많고 기간도 가장 길다. 주요한 왕조만도 기원전 1134~771년의 서주(西周)부터 기원전 350~207년의 진(秦), 기원전 206년~기원후 8년의 서한(西漢), 581~618년의 수(隋), 618~907년의 당(唐)까지 무려 1100여년 13개의 왕조의 수도였다.

장안이라는 명칭도 서한 때부터 처음 불려 근세기까지 지속됐다. 이 때문에 시안은 그리스 아테네, 이탈리아의 로마, 터키의 이스탄불과 함께 세계 4대의 고도(古都)로도 불린다.

오랫동안 중국의 수도였던 만큼 서안은 찬란하고 유구한 중국 고대문명의 보고이자 천연의 역사박물관이다. 중국에서는 '중국의 과거를 보려면 시안에 가라' '시안에 가면 5000년 중국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다'는 격언이 있을 정도다.

역사 고도답게 시안 중심가에는 역사 유적이 널려 있다. 시안 시내는 성벽 안 중심을 관통하는 4개의 도로(四大街)가 동서남북으로 곧게 뻗어 있다. 그 십자거리의 교차점에 종러우(鐘樓)가 있다. 종러우는 1384년 명태조 17년에 세워 1582년 지금의 자리로 옮겨왔다. 전체 높이 38m, 너비 35.5m이고, 건축면적은 1377.4㎥에 달한다.

종러우는 전형적인 명대 목조 건축물로, 나무 기둥에 못을 전혀 사용하지 않았다. 겉으로 보면 3층이지만 실제로는 2층이다. 종루 사면에는 높이가 6m인 네 문이 있는데 옛날에는 마차와 행인이 다녔다. 지금은 문을 막고 십자대로로 해서 자동차가 다닌다.

중국 내 많은 도시에 종러우가 있지만, 시안 종러우는 가장 크고 보존상태가 완벽하다. 건축 규모와 예술적 가치도 뛰어나 중국에서 으뜸으로 꼽힌다.

한 가게에서 판매되는 각양각색의 붓과 종이.
 한 가게에서 판매되는 각양각색의 붓과 종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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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위안먼의 노점에서 서예를 쓰고 그림을 그리는 상인들. 수위안먼의 상인은 장사꾼이자 예술가다.
 수위안먼의 노점에서 서예를 쓰고 그림을 그리는 상인들. 수위안먼의 상인은 장사꾼이자 예술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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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러우 위에 오르면 동서남북으로 곧게 네 도로를 볼 수 있다. 둥다제(東大街)는 유명한 백화점과 상점이 몰린 번화가로 높은 건물이 즐비해 있다. 난다제(南大街)로 눈을 돌리면 시안성벽인 명고성과 남문인 밍더먼(明德門)이 보인다. 베이다제(北大街)는 특별히 앞을 가리는 건축물이 없어 뻥 뚫린 듯한 느낌을 준다.

시다제(西大街) 변에는 시민들을 위한 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종러우 공원은 번화가 한복판에 꾸며진 녹지공간으로, 시안을 찾은 여행객에서도 편안한 쉼터다. 하늘색 유리 조형물 주변에서 뿜어 나오는 분수와 바둑판처럼 꾸며진 잔디밭은 이국적인 분위기마저 연출한다.

종러우에서 바라보는 도심 풍경은 과거와 현대가 공존하고 있는 고도 시안을 요약한다. 넓고 곧게 뻗은 길을 바라보면서 시안을 수도로 중국 대륙을 통치했던 당나라 황제의 위엄을 느껴볼 수 있다.

종러우에서 난다제를 따라 걸어 내려오면 시안성벽 앞에 수위안먼(書院門) 거리가 있다. 거리에는 종이, 붓, 벼루 등 문방사우와 서예, 그림 작품을 파는 상점들이 줄지어 모여 있다.

여러 가지 색깔과 질감의 종이를 가게 안쪽에 가득 쌓아 놓은 상점, 손가락보다 더 가는 붓부터 어른 머리보다 큰 붓까지 파는 상점 등 어느 가게 하나 흥미롭지 않은 것이 없다. 노점에서는 서예와 그림을 직접 쓰거나 그려 파는 상인이 많다. 흥정만 잘 하면 갓 완성된 작품을 좋은 가격에 살 수 있다.

수위안먼 거리의 건축물은 모두 중국 전통양식으로 지어져 과거 한 저잣거리를 걷는 기분이 들 정도다. 나무로 만든 책갈피, 대나무 피리, 도장 등 중국 냄새가 물신 나는 기념품을 싼 값에 살 수 있다. 도장은 서체를 고르면 이름을 바로 새길 수 있다. 돌의 품질이 좋고 글자를 파는 가격도 저렴하다.

다옌타 남쪽 광장에 있는 현장상. 쯔언쓰는 당나라 황실이 창건한 사찰이다.
 다옌타 남쪽 광장에 있는 현장상. 쯔언쓰는 당나라 황실이 창건한 사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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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옌타는 현장이 인도에서 가져온 불경과 경전 번역본을 보관하기 위해 쌓은 탑이다.
 다옌타는 현장이 인도에서 가져온 불경과 경전 번역본을 보관하기 위해 쌓은 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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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안성벽을 벗어나 도시 남단에는 다옌타(大雁塔)가 있다. 다옌타는 사찰 쯔언쓰(慈恩寺) 내의 석탑이다.

쯔언쓰는 648년 당나라 고종이 일찍 사망한 어머니 문덕황후의 명복을 빌고 은혜에 보답한다(慈母恩德)는 뜻에서 창건한 사찰이다. 고종은 절이 문을 연 뒤 황궁에서 날마다 아침저녁으로 두 번씩 즈언쓰를 향하여 예배를 드렸다고 한다.

쯔언쓰는 규모가 커서 절내 승방(僧房)이 1897칸이 있고 전체 면적 지금의 34.5배에 달했다. 건축물은 매우 화려하여 전당, 탑원(塔院), 회랑 등은 고급목재를 사용하고 비취색이 도는 금빛으로 채색했다고 한다. 당대 말기 전란에 의해 사찰은 불타 없어지고 지금은 다옌타만 남게 됐다.

후대에 여러 번 사찰이 중건됐지만, 당대의 규모에는 비할 바가 못 됐다. 지금 남아있는 사찰 건축은 초기 쯔언쓰의 서원(西院)에 해당한다. 대웅보전(大雄寶殿) 뒤의 큰 탑이 바로 시안의 심벌로도 사용되는 다옌타다.

다옌타는 당대 저명한 승려인 현장(玄奘)이 652년에 건립했다. 처음에는 5층으로 연와(煉瓦), 석회, 흙 등을 재료로 만들었다. 701년 7층으로 탑층을 높이고 당 대종 때 10층으로 높였다. 그 뒤 전란으로 일부가 파괴되어 지금은 7층만 남아 있다.

다옌타란 명칭의 유래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 중 기러기 설화가 가장 신빙성 있게 전해진다. 인도를 향해 가던 현장은 어느 날 사막 한가운데서 길을 잃어 버렸다. 그 때 어디에선가 기러기 한 마리가 날아와서 길을 알려주었다. 현장은 부처님이 기러기로 변신해 자신을 도와주었다고 생각하여 인도에서 돌아와 탑을 짓고 이름을 '옌타', 즉 기러기탑이라고 지었다.

타옌타는 높이 65m, 둘레 25m에 달하고 탑 안 계단은 284개이다. 명나라 때 탑 외면을 보호하기 위해서 청기와로 둘레를 덧붙였다. 본래 다옌타는 현장이 인도에서 가져온 불경과 경전 번역본을 보관하기 위해 쌓은 탑이다. 현재 모든 유물은 산시(陝西)성역사박물관으로 이관했다.

샤오옌타는 사찰 첸푸쓰 경내에 있다.
 샤오옌타는 사찰 첸푸쓰 경내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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첸푸쓰 내에 있는 명청시대 전마장. 왕릉과 귀족릉 앞에 있던 수호 비석이다.
 첸푸쓰 내에 있는 명청시대 전마장. 왕릉과 귀족릉 앞에 있던 수호 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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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옌타보다는 작은 샤오옌타도 있다. 샤오옌타는 첸푸쓰(薦福寺) 경내에 자리 잡고 있다.

684년에 창건한 첸푸쓰는 장안의 유명한 사찰 중 하나로, 본래 개화방(開化坊) 남쪽에 있었다. 이곳은 양성공주와 훗날 중종이 되는 이현의 왕부이었다. 중종이 즉위한 뒤 죽은 고종을 100일간 추모하기 위해 자기가 있던 저택을 사찰로 바꿨다.

이 때문에 처음에는 슈안푸쓰(獻福寺)라 불렀는데, 698년 첸푸쓰(薦福寺)라 고쳤다. 왕부를 고쳐 절을 만들어서 탑을 세울만한 자리가 없었다. 20년 뒤 길 하나 사이를 둔 안인방(安仁坊)에 샤오옌타를 세웠다.

당대 말기 황소의 난 등 혼란기에 첸푸쓰는 완전히 소실하고 샤오옌타만 남게 됐다. 그 후 샤오옌타을 중심으로 하여 첸푸쓰를 다시 중건하게 됐다. 샤오옌타는 본래 높이 45m에 15층이었지만, 수차례에 걸친 지진으로 위쪽 두 층이 파괴되어 현재는 높이 38m에 13층만 남아있다.

샤오옌타를 건설한 이는 고승 의정(義淨)이라고 알려지고 있다. 의정은 인도에서 가져온 불경과 경전 번역본을 보관하기 위해 탑을 세웠다.

탑을 세운 이유는 비슷하지만, 외형은 전혀 다르다. 다옌타는 거대하고 직선적이어서 남성적이지만, 샤오옌타는 조금 무너진 모서리가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어 여성적이다.

샤오옌타는 사각형 평면에 탑 아래층은 가장 높고 올라갈수록 층 높이가 낮아진다. 아래층의 남북에는 권문(券門)이 있고 그 위에는 권창(券窓)이 있다.

샤오옌타에는 기단석(基壇石)에 얽힌 흥미로운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1487년 진도 6의 강진이 일어나 기단석이 반으로 갈라졌다. 1521년 또 일어난 지진으로 갈라졌던 기단석이 달라붙었다. 놀란 주민들은 이를 신이 기적을 일으켜 합쳐주었다고 '신합'(神合)이라 불렀다.

하지만 원인은 간단했다. 고대 장인들은 건축물을 지을 때 기단에 반구형 돌을 썼다. 이 때문에 외부에서 돌에 힘이 가해졌을 때 안에서 내부응력이 생겨나서 갈라진 돌이 다시 붙은 것이다.

베이위안먼의 한 상점에서 꽃신을 고르는 회족 할머니들.
 베이위안먼의 한 상점에서 꽃신을 고르는 회족 할머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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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전다쓰 내 있는 석패방. 문혁 때 훼손되어 콘크리트로 곳곳에 덧칠을 했다.
 칭전다쓰 내 있는 석패방. 문혁 때 훼손되어 콘크리트로 곳곳에 덧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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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을이 시안 도심을 물들이면 다시 종러우 광장으로 돌아온다. 구러우(鼓樓) 정문 베이위안먼(北院門)을 지나면 회민(回民) 거리가 있다. 이곳은 시안의 대표적인 회족 거주지다. 회족의 상징인 하얀 모자 도바를 쓴 사람들이 거리 양편의 상점 안에 늘어서 여러 가지 음식과 기념품을 판다.

회족은 중국의 소수민족 중 하나로, 이슬람교를 신봉한다. 실크로드를 통해 장안으로 들어 온 서역인의 후예다. 당나라 때부터 베이위안먼 일대에 거주하여 이미 1300년 가까운 역사를 지니고 있다. 이들은 독자적인 공동체를 유지하면서 독실한 무슬림으로 살아가고 있다.

오늘날 시안에는 약 30여만 명의 회족이 있다. 회족은 장사에 능하고 음식을 다채롭고 맛있게 만든다. 오랜 세월의 여파로 회족의 겉 생김새는 한족과 별 차이가 없다. 하지만 이슬람교의 전통에 따라 돼지고기를 전혀 먹지 않고 하루에 한두 번 이슬람 사원에 가서 예배를 드린다.

베이위안먼 서북쪽에 위치한 칭전다쓰(淸眞大寺)는 회족이라면 누구나 찾는 사원이다. 칭전다쓰는 742년 당나라 현종 때 창건되어 1200여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다. 회족이 시안에 정착할 때 처음 건축한 사찰인 것이다. 오늘날 시안에서 규모가 가장 크고 중국 4대 이슬람 사원 중 하나다.

번잡한 골목길을 지나 칭전다쓰에 들어서면 빛바랜 석패방이 찾는 이를 맞는다. 석패방은 문화대혁명 시기 홍위병이 훼손하여 콘크리트로 곳곳에 덧칠을 했다. 나무가 푸르게 우거진 봉황정(鳳凰亭)을 지나면 눈앞에 예배대전이 들어온다. 대전은 이슬람과 중국 문화가 결합한 고건축 양식이다.

예배대전 안에는 지붕에 경문 600여폭이 조각되어 있고, 사면 벽에는 아라비아문자로 새겨진 코란 30여폭이 있다. 이 코란은 다른 이슬람 사원에서는 보기 힘든 대형 조각예술품으로 큰 예술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베이위안먼에서는 각양각색의 중국 전통상품을 저렴한 가격을 살 수 있다.
 베이위안먼에서는 각양각색의 중국 전통상품을 저렴한 가격을 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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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안의 대표적인 회족 음식 양러우파오모.
 시안의 대표적인 회족 음식 양러우파오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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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Tip 1

종러우의 개방시간은 매일 여름철에는 8:00~22:00, 겨울철에는 8:00~17:30이다. 입장료는 27위안(한화 약 4600원)으로, 종러우 안에 종을 칠 경우 5위안(약 850원)을 더 내야 한다.

종러우로 가는 교통편은 아주 편리해, 웬만한 시안 시내 버스는 종러우를 다 거쳐 지나간다. 단체 관람을 위한 예약 전화번호는 (029)8728-8397, 8727-4580이다.

다옌타는 성밖 남쪽 옌타루(雁塔路) 변에 있다. 다옌타의 개방시간은 8:00~17:00이고, 입장료는 25위안(약 4250원)이다. 탑을 오를 경우 따로 등탑비 20위안(약 3400원)을 내야 한다. 도심에서 다옌타로 가는 버스는 10여개 노선이 있다. 종러우에서 다옌타까지 택시로 갈 경우 12위안(약 2050원) 안팎이 든다.

샤오옌타는 성밖 난요이시루(南友誼西路) 동쪽 끝에 있다. 2008년 샤오옌타 옆에 시안박물관이 개관하여 볼거리가 더욱 풍성해졌다. 샤오옌타의 개방시간은 8:00~17:00이고, 입장료는 시안박물관까지 포함해서 50위안(약 8500원)이다.

도심에서 샤오옌타로 가는 버스는 10여개 노선이 있고, 다옌타에서 택시로 갈 경우 8위안(약 1360원) 안팎이 든다. 단체 관람을 위한 예약 전화번호는 (029)8781-1081이다.

# 여행Tip 2

종러우에서 수위안먼까지는 걸어서 10분 거리, 베이위안먼은 5분 거리다. 베이위안먼은 야시장으로도 유명하다. 밤이면 회족 주민들이 갖가지 먹을 음식을 인도에 내놓고 장사를 한다.

파는 음식 중 양고기 국물에 동그란 모양의 밀가루 경단을 짤게 쪼개서 넣어 먹는 양러우파오모(羊肉泡饃)와 소고기와 양고기를 말린 라즈뉴양러우(腊汁牛羊肉)는 시안을 대표하는 회족 음식이다. 양러우파오모는 시안식 고추장 양념장을 넣고 마늘쪽을 곁들여 먹으면 양고기 특유의 느끼함이 가시고 독특하고 진한 맛이 난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SBS U포터, 다음 뷰에도 실렸습니다.



태그:#중국, #섬서, #시안, #서안, #대안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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