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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병원의 행정직원으로 근무하던 김기은(가명·27)씨는 한달 전 직장을 그만뒀다. 20개월된 아기가 있는 기혼여성으로 쉽지 않은 취업이었지만 3개월의 수습기간이 끝나는 시점에 아이 양육문제로 사표를 제출했다.

"주 6일 근무에 퇴근 시간은 정해져 있지만 환자가 있으면 더 근무해야 했죠. 직장에서 집까지 시내버스를 타고 올 때 도심을 통과해야 하는 탓에 차량 정체로 늦는 경우가 종종 있었습니다. 그때마다 남편이 어린이집으로 아기를 데리러 갔는데, 남편도 일이 있을 때는 곤란했죠. 아이 양육문제로 부부 싸움이 잦아지다가 결국 직장을 포기했죠."

직장을 그만뒀지만 기은씨가 언제까지 아이만 돌볼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차상위계층으로 저소득 가정에 속하는 기은씨네 가구가 제조업에 종사하는 남편의 수입에만 의존해 생활하기는 어려운 형편. 그러나 자신이 일할 수 있는 곳이 있을지, 기은씨는 걱정이 앞선다.

"요새 마트 같은 경우도 늦게까지 하다 보니 교대 아니면 쓰지를 않아요. 일할 데가 없어요. 내년에 보육교사 자격증 공부할까 해요. 생활정보지 이런 데 보면 보육교사 많이 뽑더라구요. 그런데 그것도 등록비다 뭐다 돈이 문제죠."

임시직에서 돌봄서비스로 새 도전

경제 위기로 인한 기업의 구조조정 여파는 성별로 볼 때 남성보다 여성에게 더 먼저, 더 많이 나타나는 경향이 있다. 여성 취업 50%를 상회하는 이 시대에도 여전히 여성은 '가장 늦게 고용되고 가장 먼저 해고되는' 계층이다.

경기 불황으로 실직 여성이 증가하지만 그와 동시에 경제 위기로 취약해진 가계경제 상황으로 구직 여성 역시 증가하며 여성은 임시직, 비정규직 등에 들어가고 나오기를 반복하며 이전 보다 더 심화된 고용 불안에 시달리게 된다.

결혼 전 대기업에서 일했던 정미수(가명·45)씨. 세 아이를 키우며 결혼 전과 같은 안정된 일터를 찾았지만 얼마 안가 이룰 수 없는 '꿈'임을 절감했다. 경력 단절로 우유배달이나 건물 청소 등 주로 임시직에 종사했다.

초등학생 둘과 유치원 한 명 등 세 아이의 사교육비로 한달에 지출하는 돈만 90만 원. 영세한 규모지만 남편이 사업을 시작하며 대출한 2억 원의 이자와 원금까지 매달 갚아야 하기 때문에 임시직이지만 일을 중단할 수는 없었다.

언제까지 임시직만 전전할 수 없다는 판단에 작년 6월부터 노인요양보호사 자격증 취득을 준비했다. 장애인 활동보조인 교육도 이수하며 9월에는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두 분을 돌봤습니다. 오전에는 요양보호사, 오후에는 장애인 활동보조인으로 활동했죠. 요양보호서비스를 받는 분은 뇌경색으로 마비가 된 분, 활동보조인 서비스는 장애인 대학생이 받았습니다."

아이들한테 늘 미안한 워킹맘

정미수씨가 요양보호사로 활동하며 받는 임금은 시간당 5200원. 활동보조인은 6200원을 받는다. 4대 보험료를 제외하고 한달 평균 미수씨가 받는 월급은 65만 원에서 70만 원 정도. 하루 7~8시간의 노동으로 적절한 임금일까?

"아이들이 등교하기 전 집에서 나갑니다. 요양보호서비스를 받는 분 집까지 30분 가량 걸어가거든요. 오전에 요양보호서비스가 끝난 뒤 걸어서 다시 집에 와 점심을 먹고 활동보조인 활동을 하러 또 30분 가량 걸어갑니다. 돌봄서비스는 서비스가 제공될 때에만 시간당 임금이 책정되지 이동에 소요되는 시간은 따로 지원되는 경비가 전혀 없습니다."

아이들과 가정을 위해 하는 일이지만 가장 미안한 것도 아이들이다. 특히 막내가 가장 마음에 걸린다고 미수씨는 말했다.

"다른 아이들은 엄마와 함께 유치원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데 저는 혼자 서 있으니 기분이 좋을 리 없죠. 유치원에 갔다 와서도 엄마는 집에 없고 아이가 준비물을 챙겨 학원에 가곤 하죠. 그래도 아이가 엄마를 많이 이해해주는 편이라 그나마 안심입니다."

식당 주방일이나 청소 등 기존의 임시직에서 일하던 때와 달리 요양보호사와 활동보조인 근무는 보람도 선사했다. 돈을 벌기 위해 시작한 일이지만 돌봄서비스를 받는 어려운 여건의 분들을 보면서 자신의 처지를 돌아보고 위안을 갖게 됐다는 설명이다. 활동보조인으로 장애인들과 접하며 장애인에 대한 관심과 이해의 폭도 넓어졌다.

최근에는 우울한 소식도 전해졌다. 요양보호 서비스를 받는 분이 병원에 입원하며 서비스가 중단됐다. 퇴원시까지 한동안은 활동보조인으로만 활동하게 돼 수입은 절반으로 감소케 됐다.

정미수씨는 "일을 하고 싶어 하지만 마땅한 정보를 제공해주는 곳이나 일감이 많지 않아 힘들게 지내는 중년 여성이 여럿 있다"고 말했다.

여성에게 맞는 일자리 창출해야
일과 가정 양립할 수 있는 사회 조성 필요
충남여성포럼 개최 모습.
 충남여성포럼 개최 모습.
ⓒ 윤평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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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일 천안시청 중회의실에서는 제31회 충남여성포럼이 개최됐다. '경제위기에 가족해체 예방을 위한 전략방안'을 주제로 열린 이날 포럼에서는 여성에게 맞는 일자리 창출과 사회 여건 조성의 필요성이 주요하게 대두됐다.

포럼의 발제자인 변미희 백석대 교수는 "경제적으로 어려우므로 여성들은 끊임없이 일자리를 구하지만, 기혼이라는 점과 자녀가 있다는 점 때문에 막상 고용시장에 진입은 거의 불가능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변 교수는 자녀가 있는 저소득층 가정의 여성이 자녀를 보육시설이나 학교에 보내는 낮 동안만, 즉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 사이에 할 수 있는 사회적 일자리 창출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토론자인 김봉순 공주영상대 교수는 "지역아동센터를 활성화한다면, 많은 취업여성과 취업을 희망하는 여성들이 자녀양육과 교육문제의 고민에서 벗어나 경제위기에서 오는 가족문제를 해결할 수 있으며 위기에 직면한 중산층의 빈곤화를 예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천안지역 주간신문인 천안신문 550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빈곤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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