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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요즘 문득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군대 시절, 구타 사고가 나자 분대장들을 집합시켜 일렬로 세워 놓고서는 "내가 때리지 말랬지!"라고 말하면서 한 명씩 차례대로 명치에 이단 옆차기를 날리던 그 중대장. 비상식에 비상식으로 대응하는 누리꾼들을 보고 있자니...

 

#2

 

한창 논란이 되고 있는 '루저녀' 사태를 보면서 우리 사회의 한 단면이 까발려지는 것 같아 씁쓸하고 부끄러웠다.

 

인식은 외부 세계에 대한 개인의 판단이다. 물론 개인의 판단이라고 해도 순수하게 개인적인 영역에 속하는 부분은 감정 표현의 영역 정도로만 한정될 것이다. 왜냐하면 개인은 사회에서 보고 듣은 것들을 토대로 하여 자기 나름의 가치 판단 기준을 세우기 때문이다. 따라서 가치 판단과 같은 인식에는 개인을 둘러싸고 있는 사회적인 환경이 반영되기 마련이다. 즉, 사회 전반적인 분위기가 개인의 가치관 형성에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이다.

 

개인의 그릇된 가치관도 어쩌면 그 개인이 살고 있는 사회가 공유하는 가치관들이 개인적 차원에서 내면화된 것이다. 곧 이번 '루저녀'사태(?)도 단순히 철 없는 여성의 무개념 발언을 질타하고 비난하는 차원을 넘어서 우리에게 내면화되어 있는 한국 사회의 그릇된 가치관에 대해 돌아보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이성을 바라보는 기준이 외적인 것에만 치중되어 있는 그릇된 이성관에 대한 반성, 인생에 승자와 패자가 있다고 생각하는 그릇된 인생관에 대한 반성, 그리고 타인에게 상처가 될 수 있는 말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출연자의 무개념이든, 제작진의 무개념이든) 타인에 대한 배려없음 등등을 반성해야 할 것이다.

 

또한 비상식적인 언행에 대응하는 누리꾼들의 지극히 비상식적인 행동도 반성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이러한 반성 없이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는 비난과 조롱은 우리 자신의 얼굴에 침을 뱉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누군가를 감정적이고 비이성적으로 비판하기에 앞서 자신의 허물부터 되돌아보는 이성적 비판이 자리잡을 날은 도대체 언제일까? 

 

#3

 

혹자는 루저녀에 대한 누리꾼들의 지나치다 싶을 정도의 비난이 마녀사냥임을 우려하는 목소리에 대해 '욕 먹을 짓을 해서 욕하는 건데 그것이 어떻게 마녀사냥이냐'라고 열을 올리기까지 한다. 그 사람들 말마따나 '마녀사냥'이란 죄 없는 사람에게 죄를 뒤집어 씌우는 행위이다.  그렇다면 루저녀가 지은 그 '죄'와 거기에 대한 우리의 행동에 대해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물론 그녀가 행한 잘못은 명백하다. 대한민국 '평균남'들과, 키와는 상관없이 멋지게 인생을 살아가는 남성들을 졸지에 앉은 자리에서 '인생의 패자'로 만들어 버렸으니 말이다. 충분히 정신적인 피해와 명예를 훼손했다고 여길 만한 사항이며, 충분히 '죄'라 할 수 있다.

 

실제로 한 시청자는 KBS측에 손해배상을 청구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사람의 행동은 (어떤 판결이 날 지는 모르겠지만) 자신이 입은 피해를 구체화함으로써 법적 절차를 거치게 되는 정당하고 상식적인 행동이다.  

 

또한 사실 그 발언에 대해 분개하고 그것을 욕하는 것도 어쩌면 인지상정이다. 하지만 욕을 한다고 치더라도 욕을 먹어야 할 부분은 그 발언에 대한 부분이어야 한다. 아무리 그 발언이 욕을 먹을 만한 것이었다고 치더라도 그 사람의 신상 정보를 다 파헤쳐 공개하고 그 학생이 재학중인 학교 전체를 싸잡아 욕하는 이런 행태가 과연 루저녀가 행한 '죄'에만 한정되어 행해지는 '단죄'라고 할 수 있는가?

 

죄를 물어야 할 부분을 넘어서서 신상정보와 과거의 경력 등, 지극히 개인적인 영역까지도 침범해 까발리고, 비난하고 조롱하는 행위가 어찌 마녀사냥이 아니란 말인가? 

 

사실 '루저녀'와 같이 나이만 먹었지, 정신적으로는 덜 자란 사람들을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다(물론 루저녀가 철이 없다는 판단을 내린 것은 지극히 내 개인적인 생각이다). 그런 사람들에게 성숙한 사람이 취할 수 있는 태도는 '철 좀 들어라'와 같은 충고의 말을 해 주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지금 누리꾼들이 취하고 있는 행동을 과연 성숙한 사람의 충고라 볼 수 있을까?

 

도대체 이 사회에 '관용'이라는 말은 어디로 사라졌나? 한 치의 잘못조차도 용납하지 않는 이 시대의 살벌함은 도대체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http://cyhome.cyworld.com/?home_id=a0611470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미수다#루저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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