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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는 백로가 나오면 온천지이다

호텔에서 바라 본 다마나 시의 모습
 호텔에서 바라 본 다마나 시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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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를 정말 바쁘게 보내고 호텔에 도착하니 4시50분이다. 우리가 묵을 호텔은 다마나 시 교외에 있는 백로장(白鷺莊)이다. 이곳의 남관에 우리 숙소가 있고, 별관에서 심포지엄을 하기로 되어 있다. 방에 들어가 보니 전통적인 다다미방이다. 창문을 통해 남쪽을 보니 다마나 시가 한 눈에 들어온다. 왼쪽으로는 새로 건설되는 신간센이 지나간다. 2010년 10월에나 개통한다고 하니 아직 1년이나 남은 셈이다.

이곳도 이름에 백로가 붙은 것을 보면 온천지임에 틀림이 없다. 온천 전설을 보면 다리를 다친 백로가 며칠 동안 온천지를 찾아와서는 낫고 날아갔다는 식이다. 이곳 다마나 온천은 수온이 38.2℃로 온도가 그렇게 높지는 않다. 실제로 목욕을 해 보니 아주 적당한 온도다. 그리고 욕탕의 구조가 우리와 상당히 유사하다. 이것은 아마 우리가 일본식을 배운 것 같다. 온천 이용은 일본의 역사가 더 깊기 때문이다.

오후 6시에 호텔 1층에서 만나 만찬장소로 옮겨갈 예정이라고 하니 1시간 정도 방에서 짐을 정리할 여유가 있다. 우선 편안한 옷으로 갈아입고 가방에 있던 옷을 옷장에 건다. 혹시 인터넷 전용선이 있나 확인을 해 본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없다. 국내와 실시간 소통은 불가능하게 되었다. 손발을 씻고 잠시 드러누워 휴식을 취한다.     

말고기를 먹을 줄 알았는데 쇠고기만: 만찬 이야기

만찬 인사말을 하는 예성문화연구회 어경선 회장
 만찬 인사말을 하는 예성문화연구회 어경선 회장
ⓒ 이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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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시에 우리는 호텔에서 조금 떨어진 만찬장으로 간다. 한 10분쯤 떨어진 일본식 음식점이다. 일본측 참가자 18명과 우리측 참가자 6명이 참여하는 공식적인 만찬이다. 이날 음식은 소위 가이세키라는 것이다. 음식을 앞에 놓고 잠깐 양 단체의 회장이 인사말을 한다. 이번 학술교류의 첫 번째 공식 행사로 약간의 형식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번 학술대회의 공식적인 참석자들(일본 측 18명, 한국 측 6명)이 자신을 소개한다. 음식을 앞에 놓고 장황하게 설명하는 것은 예가 아니어서 직책과 이름 정도를 말한다. 이날 준비된 음식은 소고기와 생선이 주를 이룬다. 언제나 보아도 정갈한 일본식이다. 일본 사람들은 음식을 시각으로 먹는다고 하지 않던가.

지난 해 한국에서의 심포지엄에 참석했던 소노다 후미아키(園田文彰) 구마모토현 민영TV 부장이 구마모토에 오면 말고기를 먹여준다고 했는데 이번 만찬에는 말고기가 없다. 소노다 상은 특집프로그램이 있어 이번 심포지엄에 참석을 하지 못한다고 알려왔다. 우리말도 잘하고 사교성도 좋은 소노다 부장을 만나지 못하는 것이 유감이다. 말고기를 먹어보지 못하는 것도 역시 아쉽다.

저녁에 먹은 술들
 저녁에 먹은 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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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의 만찬은 오래 가지 않았다. 우리가 오늘 9시 반 비행기를 타기 위해 아침 5시 반부터 준비를 했고, 오후 내내 박물관과 고분을 답사하느라 피곤하기 때문이다. 우리 예성문화연구회 회원들을 위한 배려였다. 그런데 여행을 다녀 보면 꼭 2차라는 것이 있게 마련이다. 일본측에서 사케(酒)를 마련할 테니 호텔 객실에서 만나자고 제안을 한다.

이렇게 해서 12시가 넘도록 사케를 주고받으며 어울렸다. 또 나는 술을 사양하지 못하는 체질이라 술을 비교적 많이 마신 편이다. 술이라는 것이 지방마다 명주가 있고, 그것을 권하는데 어찌 맛을 보지 않을 수 있겠는가 말이다. 한 잔이 두 잔 되고 두 잔이 세 잔 되다 보니 꽤나 취하고 말았다. 또 내 방으로 돌아와서도 사진 정리하랴, 글 쓰랴 하다 보니 두시가 거의 다 되었다. 내일은 아침 9시에 호텔을 출발, 덴보칸과 박물관을 볼 예정이다.  

덴보칸과 아트폴리스

덴보칸
 덴보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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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일어나 보니 비가 내린다. 어제 지나치게 덥더니 대지를 식히기 위해 그러는 모양이다. 우산을 준비하고 1층으로 내려간다. 그런데 비의 양이 대단하다. 나의 작은 우산으로 감당이 안 될 것 같다. 다행히 호텔에서 우산을 준비해 놓았다. 나는 그 중 하나를 들고 차에 오른다. 오늘의 답사지는 덴보칸과 다마나 시립 역사박물관이다.

덴보칸의 한자는 천망관(天望館)이다. 하늘을 바라보는 집 정도로 해석할 수 있겠다. 그럼 천문관 또는 천문대와는 어떻게 다른가? 일반적으로 천문대는 과학기기를 갖추고 해와, 달, 별 등 행성을 관측하는 집이다. 그런데 천망관 즉 덴보칸에 들어가 보니 과학기기는 없다. 콘크리트 구조물에 유리창이 있고, 원형과 직선의 장식이 있다.

덴보칸이 어떤 용도로 쓰였는지 일본 사람들에게 물어보아도 명쾌한 대답을 듣기가 어렵다. 제대로 통역을 할 수 있는 나카가와 아키오(中川明夫) 선생이 없으니 의사소통이 쉽지가 않다. 또 비까지 와서 서로 오래 이야기할 상황도 아니다. 이곳은 다마나 시에서 비교적 높은 곳에 위치 시내 조망이 좋은 곳이나 오늘은 비가 와서 전망이 시원치 않다.

덴보칸
 덴보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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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덴보칸은 구마모토 아트폴리스(KAP)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만들어졌다. 아트폴리스란 구마모토현의 공공건축물을 신축할 때 예술성을 부여하자는 정책이다. 1983년 구마모토 현의 지사가 된 호소가와 모리히로(細川護熙)가 1988년부터 추진한 사업이다. "남는 것은 문화 밖에 없다"는 슬로건 하에 공공과 민간의 건축에 유명한 건축가를 연결해주고 그들이 개성과 창조성을 발휘해 건물을 짓도록 지원해주는 것이다.

이 사업을 통해 지금까지 74개의 프로젝트가 시행되었다고 한다. 이번 여행에서 우리는 그 중 세 개의 건축물을 볼 수 있었다. 그 첫째가 덴보칸이다. 덴보칸은 교토 조형예술대학 교수이자 건축가인 다카사키 마사하루(高崎正治)에 의해 1992년에 만들어졌다. 그는 이 건물을 세운 의도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이 건물은 사람과 지구 그리고 우주가 융화하는 모습을 보여 준다. 사람들 간의 커뮤니케이션을 생각해서 지상층(地の座)을 만들었고, 주변 자연과의 어울림을 생각해서 2층의 구름층(雲の座)를 만들었으며, 하늘을 관측하기 위해 정상부에 별자리(星の座)를 만들었다. 가운데 타원형으로 만든 구(球)는 연꽃 모양이다. 그것은 소우주를 상징한다. 그리고 하늘로 뻗은 세 개의 수직 막대는 화살을 표현하고 있다. 세 개의 화살은 환경생명체로서 이 지역의 발전을 상징한다."

한 마디로 대단한 수사다. 요즘 디자인과 건축이 새롭게 조명되는 시대여서 그런지 건축가들의 과장이 좀 심한 편이다. 비가 오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오늘 데보칸은  후줄그레해 보인다. 추적추적 비를 맞고 서 있는 폼이 조금은 추해 보인다. 요즘 쓰는 말로 추미학의 전형을 보는 것 같다.  

역사박물관이라, 무엇이 있을까?

다마나 시립박물관의 귀면와
 다마나 시립박물관의 귀면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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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보칸을 보고 찾아간 곳은 다마나 시립 역사박물관이다. 이 건물 역시 아트폴리스 건축이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니 역시 직원들이 나와 우리를 맞이한다. 이 박물관은 시립이라 그런지 그렇게 대단한 유물이 있지는 않다. 그러나 기와, 토기, 불상, 생활용품 등 고대의 문화유산과 제2차 세계대전 전후 사용했던 근ㆍ현대 문화유산이 비교적 균형 있게 갖춰져 있어 볼만했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이 귀면와다. 귀면와란 도깨비 또는 귀신 형상을 조각한 기와를 말한다. 이것은 입원사지(立願寺址)에서 발굴한 유물로 이곳 역사박물관의 상징이다. 그 옆에는 여러 가지 기와들이 있는데 기와전문가인 장준식 교수가 그 중 평와(平瓦)와 인면와(人面瓦)에 관심을 기울인다. 평와를 우리나라에서는 쪽통 기와라 부른다고 한단다.

인면와 또는 쪽통기와
 인면와 또는 쪽통기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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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통 기와는 초기기와로 그 제작연대가 상당히 올라간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직원들에게 쪽통기와의 가치를 다시 한 번 인식시킨다. 인면와는 기와에 사람 얼굴 문양을 새겨넣은 것으로 아주 특이하다. 이들 옆으로 입원사지에서 발굴된 기와들이 죽 전시되어 있고, 그 옆으로는 입원사의 옛 모습을 작게 재현해 놓았다.

또 한 가지 장 교수가 지적한 것은 기린 모양의 잡상이다. 안내판을 보니 기린 모양의 향로(香爐)라고 적혀 있다. 향로에는 불구멍이 있어야 하는데 그것이 없기 때문에 향로일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우리를 안내하는 직원에게 건물의 지붕 끝에 설치한 잡상이라고 알려 준다.

향로로 잘못 알려진 잡상
 향로로 잘못 알려진 잡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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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외 우리는 배 모형도 보고, 총통으로 알려진 과거의 대포도 보고, 전쟁에 나가는 사람들에게 만들어준 천인침(千人針)도 보았다. 마침 옆에 있던 김현길 교수가 천인침은 일제시대 전쟁터로 나가는 군인의 무운장구를 비는 것이었다고 설명해 준다. 천명의 여성이 하얀 천에 빨간 실로 천개의 땀을 떠서 전장에 나가는 사람에게 주었다는 것이다.

천인침
 천인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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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옆에 방공두건(防空頭巾)도 있다. 이것도 역시 전시에 사용했던 것으로 파편이 머리에 튀어 죽거나 부상당하는 것을 방지했다고 한다. 2차대전 당시 우리나라 사람들도 이것을 하도록 강요받았고, 오히려 그 방공두건이 그때는 사용되지 않다가 6ㆍ25전쟁 때 사용되었다고 한다. 6ㆍ25 당시 방공용도 되고 겨울용 모자도 되었다는 것이다.

사실 이런 것들은 우리나라의 경우 아직 박물관에 들어올 수 없는 유물들이다. 우리는 아직 근ㆍ현대 문화유산에 대한 관심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러한 유물을 보면서 우리도 근ㆍ현대 문화유산을 보존하려는 노력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나 빠른 사회변화 속에서 우리는 과거의 소중한 자산을 너무나 빨리 잊거나 잃어버리고 있기 때문이다.      


태그:#다마나, #덴보칸, #아트폴리스, #역사박물관 , #만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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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분야는 문화입니다. 유럽의 문화와 예술, 국내외 여행기, 우리의 전통문화 등 기사를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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