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하숙생

내가 살아가면서 가장 괴로운 때는 모임에서 노래를 지명 받았을 때다. 나는 음치로 여태 노래 한 곡 매끈하게 뽑지 못한다. 사회자가 굳이 한 곡 부르기를 강요당할 때는 하는 수 없이 흥얼거리는 노래가 가수 최희준이 불렀던 '하숙생'이다. 이 노래는 대체로 높은 음정이 없고 가사도 마음에 든다.

인생은 나그네 길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
구름이 흘러가듯 떠돌다 가는 길에
정일랑 두지 말자 미련일랑 두지 말자
인생은 나그네길 구름이 흘러가듯
정처 없이 흘러서 간다

아내는 매주 하루씩 횡성여성농업인센터에서 봉사활동을 한다. 벌써 7년째 농촌여성들에게 천연염색이나 바느질을 가르쳐 주고 있다. 아내가 퇴근할 때면 이따금 여러 가지 먹을거리와 이런저런 세상이야기도 차에 실어 온다.

얼마 전 아내가 예사 때보다 늦게 퇴근하였는데, 귀갓길에 원주 우산동에 시공 중인 한 아파트 단지를 둘러왔다고 했다. 아내의 말로는 최근 몇 년 새 지방도시에 아파트 미분양사태가 속출하자 정부와 건설업자들이 특별 분양대책을 내 놓은 바, 분양가의 20퍼센트를 웃도는 '내 집 마련지원금'에다가 취득세와 등록세 50퍼센트 감면, 중도금 은행대출 전액 무이자, 양도소득세 5년간 면제, 가전제품 무상제공 등, 매우 파격의 조건인 데다가 아파트 단지 바로 앞이 산으로 몹시 조용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다음날 별일이 없느냐고 묻고는 함께 현장을 둘러보자고 했다.

우리 부부가 살고 있는 안흥산골 집
 우리 부부가 살고 있는 안흥산골 집
ⓒ 박도

관련사진보기


나는 아내의 말에 큰 충격을 받았다. 평생 아파트의 '아'자도 모른 채 청약통장이니, 아파트 분양이니, 그런 말이 뭔지도 모르고 오로지 단독주택에서 살아온 우리 부부에게도 마침내 아파트생활이 눈앞에 다가오게 될 것 같은 예감 때문이었다. 마침내 '올 것이 왔다'라는 끔찍한 생각이 퍼뜩 머릿속에 스쳤다.

'내 늘그막에 무슨 복이 많아 아름다운 강원도 두메산골에 둥지를 틀고는 분수에 만족하며 살고 있는데, 느닷없이 아파트로 가자니… 카사(내 집고양이)도 이미 자유생활에 젖었는데 그 놈은 어찌할 것인가…'

아내의 말

사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안흥 집은 우리 부부 소유가 아니다. 땅은 이 마을 토박이의 것이고, 집은 전주인에게 되파는 조건으로 10년간 아주 싼 값에 사서 지내고 있었다. 처음 이 마을에 내려올 때는 과연 잘 적응할지 몰라 그대로 살아왔지만 살고 보니까 살기 좋은 고장으로 내 이름으로 된 땅도 조금 가질까 생각도 했으나 아내가 극구 반대했다. 아내의 반대에는 드러내고 말하지 않았지만 깊은 뜻이 담겨 있었다.

농사도 제대로 짓지도 못한 사람이 땅을 가지게 되면 농사보다 땅값에 관심을 기울이는 투기꾼이 되고, 그러면 글을 쓴다는 이가 가진 자의 처지에서 세상이나 사물을 보게 되리라는 염려한 때문이었을 것이다. 사실 도시의 가진 사람들이 온갖 편법, 불법을 동원하고, 거기다가 교묘하게 위장 전입을 하여 온 국토를 투기장으로 만들지 않았는가. 

이튿날 아내와 함께 원주 시내에 있는 모델하우스와 아파트 건설 현장을 둘러보았다. 아내가 마음 속에 점찍은 아파트는 단지 내 가장 작은 평수인데다가 정남향이고, 바로 앞이 산으로 매우 고심하고서 고른 듯했다. 하지만 나는 선뜻 거기로 가고픈 마음이 일지 않았다. 우리 부부가 이 마을에서 아직 서너 해는 더 살 수 있기 때문이었다. 아내가 굳이 앞당겨 거처를 옮기려는 까닭을 들어보니 크게 세 가지였다.

첫째로 내 건강을 고려했다. 지난해 연말 딸의 주선으로 우리 부부가 생후 처음 한 보험회사에 '100세 건강보험'을 드는데, 건강검진 결과 아내는 별말 없이 계약이 체결되었으나 나는 두 차례나 퇴자를 맞았다. 거기다가 최근 이런저런 잔병으로 병원에 자주 드나들었다. 더욱이 올 여름 안중근 의사 유적지를 답사하고자 출국 준비 중 별안간 가슴통증으로 끝내 무산되자, 아내는 적이 충격을 받은 모양이었다. 그래서 그동안 나 몰래 큰 병원이 가까운 곳을 거처로 물색한 결과 마침 그 아파트와 멀지 않은 곳에 원주기독병원이 있었다.

둘째는 우리가 살고 있는 안흥 집은 봄에서 가을까지는 살기가 좋아도 겨울나기가 여간 힘들지 않았다. 강추위와 겨울가뭄 때문이다. 본채에는 심야보일러 난방을 하였지만 난방호스가 실내에 골고루 다 깔리지 않아 몹시 추웠다. 거기다가 해마다 반복되는 겨울가뭄은 여간 고역이 아니었다. 산골에서 물을 사먹거나 화장실 사용도 마음대로 못하고, 빨랫감은 모아 차에 실고 서울에 가서 빨아왔다. 군으로, 면사무소로 가서 알아봐도 지대가 높은 데다 주민이 적어 당분간 상수도 계획이 없다고 했다.

셋째는 서울에 사는 아이들이 산골 동네로 오기도 불편하거니와 그들이 와서는 편히 쉴 수 있는 공간도 없다는 점이다. 그밖에도 지금은 아파트 미분양이 속출하는 특별 분양기간으로 값도 쌀 뿐더러, 우리의 살림 형편에도 맞고, 이만한 아파트를 서울에 장만하려면 최소한 서너 배는 더 줘야 한다면서 나를 간곡히 설득했다.

안흥으로 내려온 첫 해 내 집 안채의 처마 고드름
 안흥으로 내려온 첫 해 내 집 안채의 처마 고드름
ⓒ 박도

관련사진보기


간 큰 남자

나는 아내의 얘기를 한 귀로 흘리며 머릿속으로는 카사와 함께 이 마을에 살아갈 궁리만 했다. 다행히 전주인은 아직 전 가족이 이사 올 형편이 아니라, 우선 친정어머니가 거처하기로 했다는데 본채만 써도 충분하다고 했다. 그렇다면 아래채 내 글방은 그대로 쓸 수가 있을 듯했다. 내가 그런 뜻을 말하자 전 주인이 쉽게 승낙해 주었다. 그런데 가장 큰 문제는 아래채에 있는 부엌시설과 화장실이었다. 곰곰 생각해 보니 아래채 내 글방 한편에 수도를 끌어들여 싱크대를 놓고, 화장실은 그동안 폐쇄해둔 재래식 화장실을 살려 쓰면 될 듯하였다.

내 서재인     '박도글방'
 내 서재인 '박도글방'
ⓒ 박도

관련사진보기


"당신은 아파트로 가 사시오. 나는 당분간 카사와 안흥 집에서 그대로 눌러 더 살겠소."

아내는 내 말을 듣고는 세상물정을 모르는'간 큰 남자'라고 했다. 이즈음 이사 갈 때 남편들이 별거 당하지 않으려고 이삿짐 트럭 운전사 옆 자리에 먼저 앉거나, 강아지를 끌어안고 아내 눈치 보는 세상이라는데, 고양이와 같이 산골마을에 따로 살겠다니 보통 '간 큰 남자'가 아니라고 볼멘소리를 했다.

내가 안흥으로 내려온 뒤 지방 대학에서 학장을 역임한 한 친구가 물었다.

"너 무슨 재주로 부인을 꼬여서 시골로 내려갔니? 내가 아는 한 지방 대학총장은 대학에서 관사까지 다 마련해 줬는데도 부인이 끝내 내려오지 않아 홀아비생활을 하고 있는데."
"사실 우리 집사람이 그곳에다 먼저 둥지를 틀었어."
"그러면 그렇지. 아무튼 자네 부인 대단하다. 여성들은 대부분 도시 지향적이고, 시골로 가지 않으려고 해. 오죽하면 농촌총각들이 장가를 못 가서 외국인 신부를 맞이하겠나."

그 친구의 말이 빈 말이 아니라 사실이 그랬다. 다른 친지들도 비슷한 말을 했다. 사실 나는 시대에 여간 뒤떨어진 사람이 아니다. 특히 사는 집을 여기저기 옮겨 다니면서 재산을 눈덩이처럼 굴리는 사람이, 그런 세상이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런 사람이 부자가 되고, 금배지를 단 의원이 되고, 나라의 지도자가 되는 세상은 내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공수래 공수거

서울 구기동 산동네 살 때도 아내가 그 집을 팔고 그 무렵 한창 개발 중안 잠실아파트로 가자고 했다. 나는 우리가 사는 동네가 경치도 좋고, 공기도 맑아 언젠가는 빛을 볼 날이 올 거라고, 아내의 제의를 한마디로 잘랐다. 그 집을 30년 넘게 살고는 안흥으로 내려오는 바람에 할 수 없이 팔려고 내놓았는데, 자동차가 닿지 않는 집이라고 일 년이 넘게 끌다가 겨우 전세 값 정도 받고 팔았다. 끝내 그 산동네에서 빛도 못보고 떠나왔지만, 한편으로 생각하면 30년 넘게 잘 살고는 집을 살 때보다는 값을 더 받았다고 위안을 삼았다.

수세미가 자란 안흥 흙집 마당
 수세미가 자란 안흥 흙집 마당
ⓒ 박도

관련사진보기


어느 하루 잠시 쉬는 시간 내가 자주 가는 한 카페에 들르자 최희준의 '하숙생'이 흘러나왔다.

인생은 벌거숭이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가
강물이 흘러가듯 여울져 가는 길에
정일랑 두지 말자 미련일랑 두지 말자
인생은 벌거숭이 강물이 흘러가듯
소리 없이 흘러서 간다

인생이란 불가에서 말한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요, 시선 이백(李白)이 말한 "천지라는 것은 만물의 여관이요, 세월은 영원한 나그네(天地者萬物之逆旅, 光陰者百代之過客)"가 아닌가. '인생은 벌거숭이 강물이 흘러가듯 소리 없이 흘러서 간다'라는 노랫말의 한 구절처럼,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며칠 전 아내가 물었다.

"당신 이사 갈 거예요. 여기서 혼자 살 거예요."
"카사는?"
"내가 데리고 갈 거예요."
"그럼 나도 갈까?"
"마음대로 하세요."

아내의 매력은 젊으나 늙거나 앙탈 부리는 데 있다고 한다. 피차 환갑이 넘은 나이에 생후 처음 아파트 분양에, 그것도 나를 위해 병원 가까운 곳으로 거처를 옮기려는데, 남편이 세상물정을 모르는 벽창호 짓을 하니까 단단히 화가 난 모양이었다. 지구촌 곳곳에 홈리스(노숙자)들이 득시글거리는 세상에, 늙고 무능한 남편을 굳이 함께 살아주겠다고 새 둥지를 틀어준 아내가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태그:#집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교사 은퇴 후 강원 산골에서 지내고 있다. 저서; 소설<허형식 장군><전쟁과 사랑> <용서>. 산문 <항일유적답사기><영웅 안중근>, <대한민국 대통령> 사진집<지울 수 없는 이미지><한국전쟁 Ⅱ><일제강점기><개화기와 대한제국><미군정3년사>, 어린이도서 <대한민국의 시작은 임시정부입니다><김구, 독립운동의 끝은 통일><청년 안중근> 등.

이 기자의 최신기사"아무에게도 악을 갚지 말라"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