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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에게 벼슬자리를 줄 터이니 썩 나오시오."

그러나 왕이 이처럼 불렀어도 나가지 않은 사람이 있었다.

그는 바로 남명 조식(1501-1572)이었다. 남명은 이처럼 왕이 불러도 벼슬길에 나가지 않거나 설혹 나갔어도 열흘을 채우지 않고 스스로 물러났다.

이른바 출세에 목을 매고 살아가는 이가 태반인 요즘의 공직자와 위정자의 입장에선 도무지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그렇게.

이 뿐만 아니었다. 남명은 또한 임금에게 조선사회가 제 자리를 잃고 아수라장이 되었다며 목숨을 걸고 직언하길 마다치 않았다.

그는 경(敬)과 의(義)를 평생 동안 마음에 지니고 살았으며 이를 잊지 않으려고 이같은 문구를 새긴 칼을 항상 지니고 다녔다.

비로소 나타나는 보석이다
▲ ▶선비는 담금질의 과정 뒤에 비로소 나타나는 보석이다
ⓒ 홍경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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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비의 탄생>(김권섭 著 / 다산호당 刊)은 이 외에도 퇴계 이황과 율곡 이이, 송강 정철과 난설헌 허초희, 그리고 교산 허균과 고산 윤선도 외 다산 정약용과 추사 김정희에 이르기까지 조선시대 때 소문난 선비들이었던 이들의 삶의 궤적을 추적한다.

'선비'란 학식이 있고 행동과 예절이 바르며 의리와 원칙을 지키고 관직과 재물을 탐내지 않는 고결한 인품을 지닌 사람을 이르는 말이다.

그런데 과연 선비는 누가 만들어 내는 것일까? 절대로 그렇지 아니하다.

선비란 모름지기 담금질을 하여야만 비로소 명검(名劍)이 되듯 그렇게 끼니를 걱정할 정도로 가난했지만 정신적으론 충만했던 사람들만이어야만 비로소 그 반열에 오를 수 있었다.

더불어 그들은 평생을 청렴하게만 살고자 부단히 노력했던 그야말로 청백리(淸白吏)의 어떤 증표이기도 했다.

여기에 등장하는 9인의 선비들은 하나같이 효(孝)를 숭상하여 부모의 묘를 3년간 떠나지 않고 지키는 효심을 발휘한다. 또한 그들이 선비의 강직한 삶을 견지하게끔 한 동인(動因)과 후원자론 퇴계의 뒤에는 남편 없이 누에를 쳐 뒷바라지한 어머니가 있었다.

남명에겐 그를 진심으로 사랑한 친구 대곡이 있었고 율곡에겐 신사임당 못지않은 외할머니가 있어 외롭지 않았다. 송강은 그의 실수마저도 감싸 안아주는 친구 율곡이 있었으며 난설헌에겐 그녀의 재능을 알아봐 주고 격려해준 오빠가 있었다.

고산이 유배되었을 땐 목숨을 내걸고 변론한 친구 조경이 있어 힘이 되었으며 다산이 철없던 시절엔 형과 형수가 부모를 대신하여 뒷바라지했다.

또한 추사에게는 각별한 애정으로 살갑게 지내던 현모양처라는 후원자가 있었기에 오늘날까지도 그의 명성이 각별한 것이다.

주군(主君)이 아무렇게나 갈지자 모양으로 가는 형국이 분명함에도 말 한 마디 못 하고 그저 맹목적으로 부화뇌동하여 박수만 치고 있는 신하(臣下)들이 너무도 많은 즈음이다.

하여 특히나 남명 조식의 목숨을 담보로 했던 직언의 상소(上疏)는 역시나 진정한 선비는 다르다는 걸 새삼 절감케 해 준다.  

덧붙이는 글 | sbs에도 송고했습니다



선비의 탄생 - 퇴계 이황부터 추사 김정희까지

김권섭 지음, 다산초당(다산북스)(2008)


태그:#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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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서: [초경서반]&[사자성어는 인생 플랫폼]&[사자성어를 알면 성공이 보인다]&[경비원 홍키호테] 저자 / ▣ 대전자원봉사센터 기자단 단장 ▣ 月刊 [청풍] 편집위원 ▣ 대전시청 명예기자 ▣ [중도일보] 칼럼니스트 ▣ 한국해외문화협회 감사 / ▣ 한남대학교 경영대학원 최고경영자과정(CEO) 수강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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