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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맨발로 일하는 그의 발엔 군살이가득하다.
▲ < 농부의 발> 항상 맨발로 일하는 그의 발엔 군살이가득하다.
ⓒ 참거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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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농이라는 말이 많이 나온다. 서울 사는 선배는 귀농하려면 돈이 얼마나 드느냐고 묻는다.  시골살이 6년차에 매일매일 하는 일이 농민들을 만나는 일이다 보니 전문가쯤으로 아는 모양이다.

그리고 많은 질문은 "요즘 뭐 심으면 좋을까요"다. 예전엔 호기 있게 "호박고구마가 인기가 좋아요. 녹미나 자광미를 심어보면 어떨까요? 호두도 좋아요" 이런 식으로 말했다. 하지만 지금은 "글쎄요, 뭐 하나 힘들지 않은 것이 없어요. 저렴하고 품질 좋고 안전하다면 좋겠지요"가 정확한 답이다. 모르겠다. 뭐를 해야 하는가? 그것을 알면  벼농사짓는 부모님께 제일 먼저 권했을 것이다.

참거래판매자 가운데 지리산골 하동에 사는 귀농 10년차 농부가 있다. 여러 번 기사도 썼다. 작년에 수박 때문에 인연을 맺었다. 무농약 수박을 재배했는데 약속한 상인이 못 가져가겠다고 일방적으로 수확 며칠을 남기고 통보를 했었다. 한밤중에 사무실을 찾아왔다. "도와주세요." "네." 답은 그렇게 끝났고 운좋게 그의 수박을 팔아주었다. 그렇게 맺은 인연으로 그가 생산하는 거의 모든 품목의 농산물을 직거래하고 있다.

지난 겨울 딸기가 작아 제값을 받지 못했다.
▲ 딸기 지난 겨울 딸기가 작아 제값을 받지 못했다.
ⓒ 참거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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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그는 유기농딸기 농사를 지었다. 그해 가을농사가 끝날 때쯤 어머니가 아파 3개월 넘게 입원을 했다. 그는  병간호를 하느라 농사에 전념하지 못했다. 어머니는 다행히 좋아지셨지만 때를 놓친 딸기는 크기가 작고 수확이 적었다. 딸기 농사는 그렇게 망쳤다. 올 초 감자 시세가 좋았다. 그도 감자를 심었다. 잘 되었다면 5백 넘게 받았을 터인데 감자도 작았다. 1백만 원이나 겨우 건졌을까.

그리고 그 곳에 수박과 고추를 심었다. 고추는 잘 크고 있었고 수박은 느름했다. 출하 즈음해서 농장에 가보니 수박이 너무 크다. 유기농업을 하는 그는 화학비료 대신 볍씨를 발효해 거름을 주었다고 한다.  

그의 수박은 맛이 좋았지만 너무 커서 팔기가 힘들었다.
▲ 수박 그의 수박은 맛이 좋았지만 너무 커서 팔기가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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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수박을 구입해 준 분들에게 고마움을 표현하기 위해 크게 키우겠다고 약속했어요."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수박을 넓게 심고 볍씨를 발효한 거름을 주어 크게 키웠던 것이다. 하지만 너무 크니 팔기 어려웠다. 그의 수박을 작년에 주문했던 소비자들은 그의 그런 말을 기억하고 있을까?

여름 홍수로 인해 고추농사를 망쳤다.
▲ 홍수 여름 홍수로 인해 고추농사를 망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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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고추는 잘 자랐고 작황도 좋았다. 하지만 그의 시련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여름 홍수가 났다. 하우스 네 동은 순식간에 물에 잠겼고 고추는 모두 죽었다. 전멸이었다. 옆 동의 하우스엔 열무가 있었고, 딸기모종이 있었다. 하나도 건지지 못했다. 

그능 웃고 있었지만 울고 있는 듯 보였다.
▲ 홍수피해 그능 웃고 있었지만 울고 있는 듯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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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11월 지난 목요일 전화가 왔다. "무를 심었는데 이제 팔 때가 된 것 같은데요. 와서 봐주실래요?" 도착하니 그는 잠시 자리를 비우고 그의 부인만 있었다. 무를 뽑아 보았다. 실하고 크다. 큰 무 1개의 무게가 2kg이나 나간다. 미스터 코리아의 종아리마냥 통통했다. 요즘은 길쭉하고 날씬한 무를 선호한다고 한다는데… 수확 예상량은 약 5000개다.

김장무 15kg 10개 내외가 들어간다.
▲ 무 김장무 15kg 10개 내외가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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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 판매처는 있습니까?" "특별한 곳은 없어요. 정 안되면  무말랭이 만들고 무시래기도 만들어 보려구요." 그는 어떻게든 계속 희망에 대해 이야기했다. 하지만 그의 부인은 힘이 없어 보인다. 나 역시 아직도 '희망'을 말하는 그를 바라보지만 그의 속마음까지 그럴까 싶었다. 

내가 지켜본 지금까지의 그는, "이번엔 정말 돈 좀 벌었어요"하는 이야기를 들어보지 못했다. 몇 년간 유기농 실험을 했고 성공했지만 수익은 낮았고 일은 늘었으나 희망은 줄었다.

김장무를 생산했지만 뚜렷한 판로가 없는 상태다.
▲ 김장무 김장무를 생산했지만 뚜렷한 판로가 없는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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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는 어찌 팔아야 할까요?" "글쎄요…." "가격은 어찌 할까요?" "글쎄요." 답을 주지 못했다. 그의 사정을 알고 있으니 선뜻 말을 못하겠다. 그는 "그냥 싸게라도 많이 팔고 싶어요…얼마에 팔면 될까요?" 했다.

그가 구한 종이상자에 무를 넣어 보니 15kg이다.

 "이렇게 팔면 되겠네요." "네 그렇게 합시다." "얼마에 할까요." "배송비가 3500원 정도니까… 1만5천 원... 너무 비싼 것 같고 그럼 1만2800원 정도." "그래요." "싼가요. 비싼가요?" "모르겠네요. 유기농 무라서 가격을 정하기 어렵네요. 소비자들이 평가하겠지요."

그는 싫다는 나에게 무우 15kg이나 안겨주었다. 10개 정도다. 아주 크다. 맛은 알싸하다. 제일 비싼 종자를 심었다는데 제일 비싼 맛인가? 그는 힘주어 이야기하지만 힘없이 서 있던 그의 아내 얼굴이 자꾸 떠오른다.

그의 아내는 서울에서 남편을 만나 시골로 내려왔다.
▲ 가족 그의 아내는 서울에서 남편을 만나 시골로 내려왔다.
ⓒ 참거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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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아내를 처음 봤을 때 어떻게 해서 시골에 내려오게 되었냐고 물었다. "처음 만났을 때 도자기 굽는 가마를 만들어 준다고 했어요." 아내를 향한 그 약속은 아직 지키지 못했고 그녀는 지쳐 있는 듯 보였다. 연속된 실패와 고난 앞에 웃고 있을 사람은 별로 없다.

귀농이란 단어 참 어렵다. 누군들 시골이 싫어서만 떠났겠는가? 먹고 살기 힘들고 자꾸 실패하고 잘 키워도 판로가 없거나 가격이 폭락하니 어찌 살겠는가? 떠난 사람도 나름 이유가 있고 돌아오는 사람에게도 이유가 있을 것이다. 둘 다 공통된 이유는 어느 곳엔가 희망이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농촌으로 귀농해 터를 잡은 새 농부들이 희망을 포기한다면 한국농업에 희망이 있겠는가? 아마 그의 희망은 무도 배추도 아닐 것이다. 이번에 반짝 성공했다고 다음에 또 잘 되겠는가?라는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는 것, 바로 그것이 아닐까?

그래도 그는 이번에 유기농 무를 팔아야 한다. 그래야 그를 따라 힘든 시골생활을 묵묵히 견뎌내는 아내에게 도자기 굽는 가마는 선물할 수 없어도 작은 희망이나마 선물할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다가오는 김장철, 그의 희망이 담긴 무를 구입해주기 부탁드린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참거래농민장터(www.farmmate.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이 농부의 유기농김장무15kg은 12800원에 구입가능합니다.



태그:#참거래, #귀농, #유기농, #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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