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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그의 '장수 비결'에 지대한 관심을 내보였다. 평소 '장수가 반드시 축복은 아니다!'라고 강변하던 사람들도 우리 나이 99세에도 여전히 현직 의사로, 의학자로, '신노인'운동의 제창자로 살아가는 그를 막상 보니 그 비결에 우선 관심이 가는 모양이었다.

노인단체 대표로 보이는 내 옆자리 어르신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래, 역시 소식(小食)을 해야 장수한다니까… 의사니까 자기 관리도 잘 하겠지 뭐…  저 양반은 잘 때는 또 희한하게 엎드려 주무시는구먼… .'

히노하라 박사는 2시간 동안 꼿꼿하게 서서 강의를 했다.
▲ 강연 중인 히노하라 박사 히노하라 박사는 2시간 동안 꼿꼿하게 서서 강의를 했다.
ⓒ 유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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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11월 5일) 오후 3시, 서울 롯데호텔에서 '100세 현역 의사 히노하라 시게아키 박사 장수문화포럼 강연회'(주최 : 가천길재단, 서울대 노화고령사회연구소)가 열렸다.

지난 2007년 10월 1일 한국 방문 강연회에 이어 2년 만에 다시 강연장에서 본 그는 여전히 건강해 보였고 피부가 환했으며 그때와 마찬가지로 2시간 동안 꼿꼿하게 서서 강연을 했고, 중간에 물 한 모금 마시지 않았다. 앉아서 강연을 듣는 내가 더 힘들어하는 것 같아 민망했다. 그래도 나는 그의 건강과 장수 비결보다는 그의 삶의 내용이 궁금했다.

그 일이 있기까지 그는 자기 중심적인 삶을 살았다고 했다. 그 일은 59세 때인 1970년에 일어났다. 일본 적군파가 공중납치한 일본 여객기 '요도호'에 타고 있었던 그는 인질이 되어 평양에 3박 4일 머물다 일본으로 돌아오게 되었는데, 고국 땅에 발을 딛는 순간 앞으로는 새로운 인생을 살겠노라 결심했다고 한다. 그런 결심은 그의 모든 생각과 활동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한 예로, 그는 노화방지(anti-aging) 혹은 장수의 조건으로 당연히 비만예방, 근력 훈련, 면역력 높이기, 야채 메뉴, 균형잡힌 식생활 등을 꼽긴 했지만 이에 덧붙여 희망, 생명의 가치, 생명에 대한 사랑, 자립하고자 하는 노력과 용기있는 행동이 필요하다며 육체(body)와 마음(mind)만이 아닌 영성(spirituality)을 강조했다. 몸의 건강과 마음의 건강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이다.

다른 의학자와의 차이는 바로 여기서부터 시작되는 것 같았다. 거기다가 실제 자신의 몸으로 마음으로 겪고 있는 99년 인생의 경험과 체험이 더해졌으니 건강한 인생에 대한 신념과 다른 사람을 위한 삶의 가치가 얼마나 확고하며 구체적인지 모른다. 이날 강연의 내용 중에 자신의 하루 일과와 올해의 건강검진 결과를 공개했는데, 모두들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었다.

이날 강연회 주최자 중 한 사람인 서울대 노화고령사회연구소 박상철 소장도 "히노하라 박사가 공개한 건강검진 사진을 보면서 정말 놀랐다. 심장, 뇌, 혈관 등이 어찌나 깨끗하고 튼튼한지 젊은이 같다"고 말했다.

사진 왼쪽은 통역을 맡은 '시니어커뮤니케이션' 이완정 대표
▲ 강연 후 기자회견을 하는 히노하라 박사 사진 왼쪽은 통역을 맡은 '시니어커뮤니케이션' 이완정 대표
ⓒ 유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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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지 아쉬웠던 점은, 히노하라 박사 자신은 2013년 서울에서 열리는 세계노년학대회에 초청받았다며 꼭 오겠다고 했지만 나 같은 사람은 쉽게 만나기 어려운 분이기에 주제를 좀 더 좁혀서 깊이있게 다루었더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일본의 저출산 문제와 고령화 문제, '노인'의 정의 변경, '신노인회' 출범과 활동, 노화의 이유, 노화 촉진 요인과 향후 연구 영역, 노화방지의학의 경향, 자신의 일상생활과 건강상태, 현재 진행 중인 노화 연구, 인간의 영성, 건강의 본질, 시 낭독으로 이어지다보니 의학전문가들에게 필요한 내용과 대중적인 내용이 섞여서 그 의미가 좀 희석되는 느낌이었다.

'서로 사랑하자, 창조적으로 살자, 인내하자, 젊은 세대에게 생명의 소중함을 일깨워주자'라는 네 가지 사명을 가지고 2000년에 출범한 일본의 '신노인회' 활동은 지난 2007년도 강연에서 소개한 것과 크게 달라진 것은 없었다. 다만 베이비붐 세대의 노년 세대 진입으로 회원 수가 많이 늘어나고 있다고 했다.

2008년부터 우리나라의 노인종합복지관협회에서도 신노인문화운동인 '시니어 코리아' 운동을 펼치면서 신노인상(자립하는 노인, 공헌하는 노인, 지혜로운 노인, 존경받는 노인) 정립에 나섰는데, 이와 관련해서 히노하라 박사는 "노인의 경험과 지혜로 사회를 새롭게 바꿀 수 있다"며 그러기 위해서는 "노인도 할 수 있다는 신념을 갖고 주위의 힘을 모으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9988, 구십구(99) 세까지 팔팔(88)하게 살자!"가 요즘 우리 어르신들의 가장 강한 소망이며 구호여서, 서울에 권역별로 건립할 예정이라고 엊그제 발표된 대규모 노인 복지타운 이름도 가칭이긴 하지만 '9988 복지센터'다.

9988의 삶을 살고 계신 분을 실제로 눈 앞에 보면서 또 한 번 절실하게 느꼈다. 삶의 내용이 있고 자존감이 있어야 9988도 의미가 있지, 몸만 88하면 무엇하겠는가. 다음에는 우리나라 9988 어르신의 강연회에 참석해 보고 싶다. 우리에게 맞는 노년 역할 모델을 갖고 싶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어르신이든, 일본의 어르신이든 자신의 삶을 끝까지 최선을 다해 정성껏 살아가고 계신 분을 뵙는 일은 우리 아랫 세대들에게 복이다. 히노하라 박사의 말씀 중 아래 소개하는 대목이 내 가슴에 와서 콕 박혔다. 노년과 죽음을 일과 공부 주제로 삼고 있는 내게 꼭 필요한 말이어서일 것이다.

"인간이 잘 살기 위해서는 건강할 때도, 나이 들어서도, 아플 때도, 그리고 죽음이 닥쳐왔을 때도 그 자체에서 삶의 보람을 느껴야 합니다."

2시간의 강연과 이어진 기자회견에 불구하고 전혀 피곤하지 않다며 웃는 히노하라 박사
▲ 히노하라 박사와 함께 2시간의 강연과 이어진 기자회견에 불구하고 전혀 피곤하지 않다며 웃는 히노하라 박사
ⓒ 유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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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히노하라 , #히노하라 시게아키, #노년, #노인, #신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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