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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이명박 정부는 '취업후 상환 학자금대출 제도'를 내년부터 전격 도입한다고 발표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자녀 대학등록금 걱정은 안하셔도 됩니다"라는 포스터를 만드는 등 여기저기 홍보를 합니다. "돈이 없어 대학 못가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라는 문구도 사용합니다.

교육분야의 소위 '민생행보'는 이렇게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뒤이어 대통령의 지지율이 오르기 시작합니다. 한창 지지율 50%일 때에는 10%가 이 제도 때문이라며 자평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제도의 세부 내용은 감감무소식입니다. 7월 발표 당시에는 구체적인 실행방안을 9월 말까지 마련하겠다고 했지만, 11월이 되어도 나오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관련 조치는 취해집니다. 내년도 이 제도 운용에 필요한 재원이 10조 원인데, 며칠 전 11월 3일 국무회의에서 국가보증 동의안이 의결되었습니다. 하지만 구체적인 방안은 아직입니다.

기획재정부의 시행방안... 월 125만 원 이상부터 상환 시작

세부 내용이 발표되지 않았지만, 정부내 협의는 어느 정도 완료된 것으로 보입니다. 기획재정부의 <취업후 학자금상환제도 시행방안> 문건 때문입니다. 안민석 의원실에서 입수하여 공개한 것으로, 교과부와 기재부가 최종 협의한 내용이 반영되어 있다고 합니다. 실제로 이 문건에서 국가보증동의안 국무회의 의결을 11월 3일 추진하겠다고 했는데, 현실화된 바 있습니다.

* 기획재정부가 작성한 <취업후 학자금상환제도 시행방안>
 * 기획재정부가 작성한 <취업후 학자금상환제도 시행방안>
ⓒ 송경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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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발표에서 바뀐 부분 위주로 간단히 살펴보겠습니다. 우선 대출자 자격에 '35세 이하'가 추가되었습니다. 이로써 만학도는 MB의 후불제를 이용할 수 없습니다. 내년 1학기 대출금리는 5.5%로 잠정 결정되었습니다. 애초 정부는 '1% 인하 효과'가 기대된다고 하였지만, 올해 2학기 5.8%에서 0.3% 포인트만 낮췄습니다. 2004-2005학년도 호주 2.4%, 영국 2.6%인 점에 비하면 높습니다. 등록금 전액과 생활비 200만 원을 대출받을 수 있는 건 변함없습니다.

상환은 졸업 후 소득이 생겨야 시작됩니다. 그 전에는 이자도 내지 않습니다. 하지만 소득이 얼마일 때 상환하기 시작할까요? 연 1500만 원, 다시 말해 월 125만 원이 넘을 때입니다. 기준이 조금 낮습니다.

원래 교과부는 "최저생계비 및 대졸 초임 등 감안"하여 정하겠다고 했는데, 년 1500만 원은 2009년 4인 가구 최저생계비 1596만 원보다 낮은 수치입니다. 2007년 대졸 초임 2270만 원에는 턱없이 미치지 못합니다. 그러니까 최저생계비와 대졸 초임 사이에서 정하는 것처럼 말해놓고, 가장 아래보다 낮게 설정하였습니다. "돈이 조금이라도 생기면 갚아라"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상환하는 금액은 남은 소득의 20%입니다. 만약 월 150만원이면, 기준소득 125만원을 제하고 남은 25만원의 20%를 냅니다. 즉 상환금은 월 5만원입니다. 월급쟁이라면 국세청이 원천징수해갑니다.

한 가지, 대출금리와 기준소득은 정하기 나름입니다. 정치나 사회쟁점이 될 수 있습니다. 서민 입장에서는 낮은 대출금리와 높은 기준소득이 유리합니다. 물론 반대로 이 제도의 이용자가 아니라 재정운용을 먼저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높은 금리와 낮은 기준소득이라는 그림이 나옵니다.

졸업 후 4년 안에 상환 시작하지 않으면, 후불제에서 제외

일종의 채권추심도 있습니다. 졸업 후 3년까지 한 푼도 안 갚으면, 소득과 재산을 조사받습니다. 이후 1년 동안 역시 한 푼도 안 내면, 보유하고 있는 재산으로 원리금을 전액 상환해야 합니다. 또는 보증인을 세우고 일반대출로 전환해야 합니다. 그러니까 졸업 후 4년 안에 상환을 시작하지 않으면, 보유 재산으로 강제 상환 당하거나 일반대출로 바뀝니다.

* 기재부 문건 4쪽의 '채권 관리' 부분 중 일부
 * 기재부 문건 4쪽의 '채권 관리' 부분 중 일부
ⓒ 송경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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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불제에서 제외되는 겁니다. 만약 가진 것도 없고 취업도 안 되고 그러면, 4년까지 버틸 수 있지만 4년 후부터는 후불제 적용대상에서 빠집니다. 재산이 있으면 강제 징수 당하고, 없으면 일반대출처럼 균등분할 상환을 해야 합니다. 당연히 형편에 따라서는 신용유의자가 될 수 있습니다. 교과부 홍보 포스터에는 "이제 등록금 대출 연체로 신용불량자가 되는 일은 없습니다"라고 써있지만, 이건 사실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 겁니다.

7월 발표에서는 '15년 이상 상환이 전무할 경우'라고 예시를 들었으나, 15년에서 4년으로 줄었습니다. 청년실업이 심각하다고 하지만, "4년 안에 취업하거나 소득을 만들어내라"고 강요하는 격입니다. 아무래도 대졸자의 근로 의욕을 고취시키기 위한 방안이 아닐까 합니다.

소득이 없는 전업주부는 어떻게 될까요? 배우자의 소득과 재산까지 포함하여 지금 얼마를 가지고 있는지 조사받습니다. 다만, 상환 의무는 본인에게만 부과됩니다. "남편이나 아내 돈으로 니가 내라"라는 뜻입니다. 위헌 소지가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앞으로는 등록금 대출을 받았을 경우, 결혼에 대해 신중해야 합니다. 함께 있는 사람을 정말 사랑한다면 말입니다.

대출받은 학생은 못 믿고, 등록금 부과하는 대학은 믿고

앞서 말한 조치는 '채권 관리'라는 이름을 달고 있습니다. 대출받은 학생의 모럴해저드를 고려한 방안입니다.

이 제도는 '역선택'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습니다. 돈 있는 사람들은 바로 등록금을 납부하고, 없는 사람들만 대출받는 겁니다. 이들이 대학졸업 후 소득을 생기면 갚겠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난망합니다.

일부는 대학졸업 후 번듯한 직장에 취업해놓고도 갚지 않을 수 있습니다. 전문직이나 자영업자의 경우에는 소득을 축소 신고할 수도 있습니다. 외국에 간다고 하면서 비행기를 탈 수도 있습니다. 이런 모럴해저드에 대한 대비책으로 채권관리라는 게 등장합니다.

하지만 소득이나 재산 조사하고, 보유재산으로 탕감 당하고, 보증인 세우고, 일반대출로 전환받고 등의 방법만 있는 게 아닙니다. 선납 또는 조기 납부할 경우 인센티브를 줘서 상환을 유도하는 방식도 있습니다. 예컨대, 월 225만 원 소득이면, 상환금이 매달 20만 원입니다. 그런데 다른 돈을 아껴서 월 50만 원이 생겼다고 하면 추가로 갚을 수 있습니다. 이 때 원리금을 감면해주면 '떼먹지 않을 바에는 빨리 갚자'는 빚진 이의 마음과 잘 소통됩니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는 인센티브 방식을 고려하지 않습니다. 대신 강제 징수를 택합니다. 아무래도 대출받는 학생을 믿지 못하나 봅니다.

물론 모럴해저드는 고려해야 합니다. 하지만 고려하더라도 형평성이 있어야 합니다. 이 제도의 모럴해저드는 대출자에게만 있는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대학도 여기에 빠질 수 있습니다. 학생의 부담이 줄어든 틈을 타 등록금을 무분별하게 인상할 수 있는 겁니다. 올해야 경제위기 때문에 사실상 동결이지만, 지난 2005-2008년 4년 동안 국공립대는 연평균 8.5%, 사립대는 5.4%의 인상률을 기록한 바 있습니다.

따라서 여기에 대한 대비책도 필요합니다. 이명박 정부는 ▲등록금과 산정근거의 정보 공시, ▲등록금 인상률 반영하여 차등 지원 등 두 가지 방안을 제시합니다. 이걸로 충분할까요? 전자의 방식이 효과가 있다면, 주유소도 가격 공시하고 있으니 기름값이 만족스러운 수준이어야 합니다. 아니 대학과 주유소는 조금 다릅니다. 이 주유소가 비싸면 안 가면 되지만, 저 대학이 비싸다고 해서 안 가는 경우는 별로 없습니다.

후자의 '등록금 인상률과 재정 차등 지원 연계'는 정부가 대학에 재정지원을 많이 할 경우에는 효과가 있을 겁니다. 하지만 불행히도 우리나라는 재정지원을 적게 하는 것으로 우수한 성적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재단이 풍족한 사립대학에 먹힐지도 미지수입니다.

그러면서 이명박 정부는 향후 대학등록금 인상률을 3%로 가정합니다. 이 제도의 2034년까지 대출규모와 채권발행 규모를 추계하면서 채무불이행률 10%, 물가상승률 3%, 임금인상률 5%와 더불어 등록금 인상률을 3%로 잡았습니다. 정말 현실적입니다. 아무래도 대학은 믿고 있나 봅니다. 하긴 믿으니까 '강제 상환'같은 조치가 대학에는 없겠지요. 예컨대 등록금 상한제 같은 거 말입니다.

서민 입장에서 생각하면

낮은 대출금리가 좋습니다. 상환의 기준소득도 중간층 소득 정도가 좋습니다. 물론 이렇게 되면 재정운용에 어려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원래 이 제도는 재정이 많이 투입됩니다. 영국이나 호주 등 비슷한 제도를 실시하고 있는 국가야, 대학 무상교육을 후불제로 바꾸었으니 추가 재정소요가 적겠지만, 우린 초기에 대학등록금만큼 고스란히 재정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심도깊게 타진했어야 합니다. 어느날 갑자기 선언하듯이 발표할 만한 제도가 아닙니다. 

그래도 이왕 하겠다고 했으니, 대학생과 가정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어야 할 겁니다. 재정운용을 우선적으로 고려하다가 제도이용자에게 혜택이 적게 돌아가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조만간 구체적인 실행방안이 공식적으로 발표될 것으로 보이는데, 모쪼록 좋은 그림을 감상하고 싶습니다. 재원이 부족할 경우, "4대강 예산이나 부자감세를 전면 재검토하여 등록금 후불제 성공시켜라"라는 목소리도 듣고 싶습니다.

지난 추석 명절 때 고속도로 톨게이트에서 교과부의 홍보 포스터를 보았습니다. 모녀가 웃고 있었습니다. '포스터는 포스터일 뿐, 착각하지 말자'라는 지적이 나오지 않기를 희망합니다.

덧붙이는 글 | * 송경원은 진보신당에서 교육 분야를 살피는 사람입니다. 두 딸의 아비이기도 합니다.



태그:#후불제, #취업후상환 학자금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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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교육기관에서 잠깐잠깐 일했습니다. 꼰대 되지 않으려 애쓴다는데, 글쎄요, 정말 어렵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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