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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나우에의 아침.
 바나우에의 아침.
ⓒ 고두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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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날의 여독이 채 풀리기도 전에 나는 잠에서 깼다.

'눌러 내리는 압박에서 벗어나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심신을 충전하라'. 전형적인 문구는 내게 이렇게 충고하지만 때때로 여행은 내게 더 큰 압박을 주곤 한다. 하나라도 더 봐야 하고, 하나라도 더 겪어야 한다는 그런 압박감들 탓이랴.

새벽 6시가 조금 넘은 시간, 밤새 메트로 마닐라(Metro Manila)에서부터 물자를 싣고 달려온 트럭들은 물자를 내려놓기 무섭게 바나우에를 주름잡는 보부상들의 몫으로 돌아가고, 마을 한 켠에 보이는 태권도장 간판은 한국 사람이라는 이유만으로 내 어깨를 한 번 들썩거리게 만들었다.

바나우에가 '라이스 테라스(Rice Terrace)'와 홈스테이로 유명하다면, 사가다(Sagada)는 동굴 탐험과 이방인 입맛에 맛는 음식으로 유명하다. 그래서 바나우에에 발을 들여놓은 이방인은 코딜레라 산맥 점령의 시작점이 불리는 본톡(Bontoc)을 거쳐서 사가다를 들리곤 한다. 바나우에에서 가는 차편은 가격도 천차만별에 출발시간도 다르다. 무엇이 기준일까. 그 날 차 주인과 이방인들이 어떤 말을 주고 받았느냐, 그것이 기준이라고 보면 된다.

오전 9시가 조금 넘어갈 때쯤, 내가 탄 지프니가 출발하려 하고 있었다. 생일을 맞은 손자를 보기 위해 1년 만에 바나우에에 방문한 아주머니는 사이판과 대만에서 자식들이 일을 하고 있다며 처음 보는 외국인에게 이런 저런 말들을 건넸다. 다음 주엔 바기오 사는 손녀를 보러 간다고 말하는 그녀는 함박웃음을 지으며 "사는 게 재미있다"고 말했다.

울퉁불퉁한 길을 세 시간 가량 달렸을까. 본톡 시내 한 가운데에 나는 발을 디딜 수 있었다. 바나우에에서 바로 사가다로 가는 차보다, 본톡에서 차를 갈아타는 것이 100페소(우리돈으로 3천원가량) 정도를 아낄 수 있어서 선택할 길, 덕분에 햇빛에 있는대로 달궈진 채 출발할 생각을 하지 않는 차 속에서 땀을 쪽 뺄 수 있었다.

40여 분쯤 비포장 길을 달린 뒤, 오후 2시가 다 되어서 나는 사가다에 도착할 수 있었다. 버스 정류장과 가장 가까운 게스트 하우스에 짐을 푼 뒤, '바나스'라는 식당에 가서 허기를 달랬다. 사가다의 스파게티 맛은 일년 전 그대로였다.

사가다의 트레킹 코스.
 사가다의 트레킹 코스.
ⓒ 고두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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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3시가 다 되었을까. 오늘 하루도 그냥 보낼 수 없기에 빠르게 발걸음을 가이드 협회(Sagada Genuine Guide's Association Inc)로 향했다. 지난 해 'Normal caving'이라 불리는 초급 코스의 동굴 탐험을 했던 나는 이번엔 'Cave connection'이라 불리는 고급 코스에 도전했다. 누구든 자료 사진을 보면 아찔해지곤 하는데, 자리를 잡고 있는 가이드 한 명이 이런 말을 한다.

"조금 위험할 수 있다. 물론 다칠 수도 있다. 하지만 당신이 여기까지 온 목적이 무엇이냐. 시도하라. 우리들이 최선을 다해서 도와주겠다"

가이드 '존'과의 동행은 그렇게 시작됐다. 기름 램프를 들고 동굴 입구에 도착하자마자 절벽에 빼곡히 들어서있는 관을 보고 존은 말하기 시작했다.

절벽에 매달린 관. 이 독특한 장례풍습은 이고롯인들이 사후세계에 대해 고민했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게 한다.
 절벽에 매달린 관. 이 독특한 장례풍습은 이고롯인들이 사후세계에 대해 고민했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게 한다.
ⓒ 고두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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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가다 사람들의 풍습인데, 사람이 죽으면 시체를 이 곳에 놓는다. 물론 절대 열어보면 안되고! 여하튼 우리는 이렇게 함으로써 죽은 이와 우리가 함께한다고 생각한다."

바나우에는 시체를 미라로 보존하는 풍습이 있고, 이 곳은 절벽에 관을 놓는 풍습이 있다. 이 지방의 터줏대감 이고롯(Igorot)인들이 삶의 전반적인 문제와 사후세계에 대해 고민했다는 점은 예부터 그들의 문화가 탄탄했음을 알려준다.

초급과 고급은 질이 달랐다. 몸이 어떻게 빠져나갈까 싶은 구멍을 미끄러지듯이 빠져나가야 했고, 내려다보면 아찔한 절벽에 아무런 장비 없이 감으로만 지나가야 하기도 했다. 동굴은 맨몸으로 가기엔 상당히 위험한 곳이었다. 가이드 협회 사무실에서 헬멧과 로프 등의 안전장비가 갖춰진 자료사진을 봤는데 어디에도 그런 것은 없었다.

일행 중 한 명이 이 사실에 대해 존에게 이의를 제기하자, 존은 짐짓 못 듣는 척 했다. 동굴 들어오기 전에 요구했다면 충분히 관철될 사항인 듯 싶었다. 존은 맨 손으로 이방인들의 발을 받쳐서 최대한의 위험요소를 제거하려 노력했다. 가이드 협회에서 교육받은 그의 가이드는 훌륭했지만 누군가 그 곳을 찾을 땐 반드시 안전장비를 해야한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동굴 안에 있는 널찍한 호수.
 동굴 안에 있는 널찍한 호수.
ⓒ 고두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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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부터 외국인이 들어오기 시작하고, 1980년대가 되자 마을 주민들을 중심으로 가이드 협회가 구성된 사가다는 많은 배낭 여행객들이 사랑하는 마을입니다. 특히 사가다의 수마깅, 루미앙 동굴은 세계대전 때 사람들이 대피할 정도로 외부인은 잘못 발을 들이면 절대 빠져나갈 수 없는 곳 중 하나입니다."

그의 말에 무조건 동의할 만큼 동굴 규모는 엄청났다. 걸어가는 곳곳에는 갈림길이 보였고, 존조차도 절대 가서는 안되는 길이라고 가리키는 곳도 있었다. 무엇보다 어둠속에서 어떤 곳은 미끄러워서 신발을 벗어야 하고, 어떤 곳은 날카로워서 신발을 신어야 하고, 어떤 곳은 한 발짝만 잘못 디뎌도 낭떠러지다. 몸과 머리로 다 익힌 가이드들이 아니고서야 이 동굴에 어떻게 들어올지.

3시간이 조금 넘게 이어진 동굴 탐험, 목까지 물이 차오르는 곳을 지나, 넓은 호수에서 간단한 물놀이도 하고 나오니 어느 새 밖은 어두워져 있었다. 존에게 엄지손가락을 치켜올린 뒤, 나는 사가다의 명물 '요거트 하우스'로 자리를 옮겼다.

필리핀 현지 음식에 비해선 다소 비싼 가격, 하지만 사가다 지역에서 나는 재료와 이방인의 입에 맞춘 요리법을 가지고 있는 요거트 하우스는 많은 사람들 사이에 명물로 소문이 나있다. 더욱이 이들이 직접 만들어서 판매하는 요거트는 그 짙은 농도와 깊은 맛으로 고생하는 것을 싫어하는 이방인들까지도 불러들일 정도다.

지난 해에 비해 주방에 일하는 사람이 많아졌고, 음식 나오는 속도가 빨라졌지만 그 맛은 여전했다. 조그마한 식당안에는 유럽, 미국, 일본, 대만, 그리고 한국 사람들까지 종업원들이 서빙하기도 힘들 정도였다.

유럽인들이 내게 추천했던, 요거트 하우스의 까르보나.
 유럽인들이 내게 추천했던, 요거트 하우스의 까르보나.
ⓒ 고두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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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르보나가 예술이다."

밋밋한 필리핀 음식에 적잖이 실망했던 옆 테이블의 유럽사람들은 이방인들의 입맛을 잡아낸 요거트 하우스에 감탄하고 있었다.

사가다는 동굴과 음식 말고도 트래킹 코스로도 유명하다. 라이스 테라스를 볼 수도 있고, 이방인을 배려하는 등산로도 갖추고 있다. 또한 몇몇 예술인들과 수공예품 장인들은 마을 근교에서 살아가면서 이방인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곤 한다.

사가다
 사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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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무엇보다 사가다가 배낭여행객의 천국이라 불리는 이유는 호객꾼이 없다는 점이다. 필리핀의 유명하다는 관광지에서는 무조건 가격을 비싸게 부르거나, 길거리에서 잡화를 파는 수많은 호객꾼들을 볼 수 있지만 사가다에는 그런 호객꾼이 없다. 마을은 전체적으로 평온하며, 관광객에게 휘둘리지 않고 살아간다.

내가 들어가도 있는 듯 없는 듯, 이방인들은 그저 조용히 지내다 가는 곳. 그래서 사가다를 배낭여행의 천국이라 부르나 보다. 장시간의 이동, 아찔한 동굴탐험 그리고 어느 때보다 만족스러웠던 저녁식사, 하루가 짧았던 사가다에서의 시간들, 그렇게 하루는 저물고 있었다.

덧붙이는 글 | 1. 이기사는 제 블로그와 SBS U포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2. 위 여행은 9월 초에 다녀온 것 입니다. 지금은 잇단 재해로 이쪽으로 가는 길이 대부분 끊겨 있습니다. 곧 복구되겠지만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태그:#필리핀, #루손 북부, #사가다,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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