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얘들아 이번주 토요일에 남한산성 보러 가지 않을래?"
"에이 날씨도 추운데 거긴 왜 가요?"
"뮤지컬, 남한산성 말이야."

10월14일부터11월4일 까지 성남 아트센터 오페라 하우스에서 <남한산성>을 공연하고 있다.
▲ 뮤지컬<남한산성> 10월14일부터11월4일 까지 성남 아트센터 오페라 하우스에서 <남한산성>을 공연하고 있다.
ⓒ 김인철

관련사진보기

종례시간,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공부방 아이들의 눈빛은 두 갈래로 갈렸다. 황금같은 토요일 오후를 선생님과 보내야 할지도 모른다는 불안함과 종종 관람하는 영화가 아닌, 거금 7만원짜리 뮤지컬을 보러 간다는 기대에 찬 시선이었다. 가능하면 아이들을 다 데리고 가고 싶었지만 후원받은 티켓이 한정 되어 있어서 보고 싶은 아이들만 함께 가기로 했다. 게다가 다음주 일요일엔 임진각에서 열리는 마라톤 대회에 참가할 예정이다.

"토요일 오후 2시30분까지 아트센터로 오면 돼 그리고 가능하면 가장 예쁘게 차려 입고 오세요."
"그건 왜요?"
"공연을 볼 때는 그게 예의니까."
"나 구두 없는데..."
"치마 좀 빌려줘."

공연을 보러 갈 여학생들은 구두를 빌린다느니 입을 치마가 없다느니 푸념을 늘어놓고 있는데 남학생들은 뮤지컬 끝나고 뭐 먹을 거냐고 묻는다.

소설 남한산성과, 뮤지컬 남한산성

뮤지컬은 김훈의 <남한산성>을 원작으로 한 작품이다. 원작을 읽어 본 사람이라면 자연스럽게 비교가 될 것이다. 우선 뮤지컬 <남한산성>은 원작에서는 단지 주변부에 머물렀던 오달재라는 인물과 그의 연인 매향, 남씨를 상당히 중요한 인물로 등장시킨다. 조국으로부터 받은 상처를 복수로 치유하려는 정명수, 극한의 역경을 웃음과 해악으로 이끄는 훈남, 순금 부부 등 다양한 캐릭터를 등장시킨다.

아이들과 함께 공연을 보는 탓에 160분(쉬는 시간 15분 포함)이라는 긴 시간 동안 지루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아이들은 예상 외로 공연에 집중했다. 인간에게 가장 혹독한 환경을 시각적으로 표현해내고 싶었다는 회전식 무대는 무대가 바뀔 때마다 산성의 안과 밖을 대조적으로 표현하고 있어서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혼신을 다하는 연기자들의 호연 또한 인상적이었지만 반면에 그렇지 못한 부분도 있었다.

정명수 역의 예성은 노력은 많이 한 것 같으나 기존의 아이돌 이미지 때문에 극에 온전히 몰입할 수가 없었다. 시종일관 무겁고 우울한 분위기를 상쇄 시키려는 훈남, 순금 부부의 풍자극은 해학적이거나 크게 웃기지 않았다. 주화파인 최명길과 주전파인 김상헌, 오달재의 내면을 고조되는 테마음악과 더불어 섬세하고 긴장되게 표현했지만 설전을 주고 받는 원작의 치열함에 비해 혼자 내뱉는 듯한 독백은 다소 밋밋했다.

남한산성으로 눈구경 간다던 임금

임금이 남한산성으로 눈구경 간다. 평소 같으면 임금이 들로 꽃놀이를 가건 산으로 사냥을 가건 상관이 없겠지만 전시에, 그것도 온 나라가 풍전등화의 위기에 놓여 있는데 임금은 산성으로 눈구경을 간다. 이것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가? 국민 여러분 불안해 하지 마십시오. 지금 용맹한 대한민국 국군은 북한의 도발을 철저히 막아내며 승승장구 하고 있습니다, 라는 방송을 하며 사람들을 안심시켜 놓고 한강을 폭파해 버린 이승만과 그 주변의 위정자들과 무엇이 다를까?

남한산성에 임금이 있다

남한 산성에 임금이 있다. 남한 산성에 임금이 있다. 막이 바뀔 때마다 같은 나래이션이 반복 된다. 암전된 무대 어딘가에서 묵직하게 퍼지는 이 짧은 한마디는 장중하고도 암울한 의미를 담고 있다. 그것은 산성 바깥에서 청나라 병사들에게 유린당하는 민초들을 향하는 소리였고 산성 안쪽에서 화친을 하자는 주화파와 죽을 때까지 맞서 싸우자는 척화파간의 끝없는 혀와 혀의 난전 속에서 궁극의 결정을 해야 하는 임금을 향한 소리이다.

당면한 일을 당면할 뿐이다

'당면한 일을 당면할 뿐'이라고 자조하는 최명길의 고뇌 또한 관객에게 쉽게 답하기 어려운 질문을 던진다. 살아서 죽을 것인가 죽어서 살 것인가? 이 질문은 그와 대척점에 있는 김상헌과 오달재에게도 마찬가지다. 또한 최명길이 말하듯이 당면한 일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조선의 임금과 신하와 백성들은 남한산성에 갇혀 있고 산성 바깥에는 청나라 황제 홍타이지가 당장 항복을 하지 않으면 홍이포를 쏴서 성벽을 단번에 부숴버리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당면한 일을 당면한다는 것, 그것은 최명길에게는 오직 청과의 화친만이 위기에 봉착한 나라를 구하는 것이다. 같은 이유로 김상헌과 오달재에겐 죽는 한이 있더라도 끝까지 청과 싸우는 것이 최선이듯이. 

최명길과 이완용의 공통점, 그리고 차이

원작에서는 주전파, 주화파 같은 어느 한 편의 손을 들어주기보다는 당시 그 풍전등화 같은 상황에서 항복이든 맞서 싸우든 결단을 내려야 하는 왕과 위정자들의 고뇌와, 그리고 그들의 결정에 좌지우지 되는 민초들의 고단한 삶을 그려 내고 있다.  뮤지컬도 크게 다르지 않다. 왕은 나라의 자존심과 백성의 삶 사이에서 고뇌를 한다. 삶이란 그런 것이다. 질서란 그런 것이다. 위정자란 그런 것이다. 그들의 행동 하나 말 한마디에 수백 수천 명의 목숨이 달려 있다는 사실. 그래서 위정자의 언행은 처음부터 끝까지 신중해야 한다. 홀로 고뇌하는 최명길의 모습을 보면서 구한말 그와 같은 위치에 있었던 소위 을사오적이라 불리는 위정자들의 얼굴이 겹쳐졌다. 청나라와의 화친을 주장하고 일본과의 합방에 앞장을 섰다는 의미에서 이들의 존재는 어느 정도 일맥상통한다. 하지만 전자는 자신을 버리고 나라를 살리기 위해서 그랬고 후자는 자신을 살리고 나라를 죽이기 위해서 내린 결단이었다.

죽어서 살 것인가, 살아서 죽을 것인가?

결국 화친을 주장했던 최명길은 살아서 죽었으며 청나라 장수가 그의 기개를 높이 샀듯이 오달재는 죽어서 사는 길을 택했다. 임금 또한 청나라 장수 앞에서 바닥에 이마를 아홉 번이나 찍는 <삼전도의 치욕>을 당하며 왕이 당면한 일을 당면했다. 만약 인조가 화친을 하지 않고 끝까지 성문을 열지 않았다면 오늘 우리의 역사는 또 어떻게 변했을까? 하지만 우리는 함부로 그들을 평가해서는 안 된다. 돌을 던져서도 안 된다.

어떤 결정을 할 것이냐? 만약 네가 왕이었다면...

역사에 가정을 두는 것만큰 무의미한 일은 없다지만. 그래도 나는 남한 산성이라는 역사적 비극을 아이들은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궁금했다. 뮤지컬을 보고 난 후, 저녁을 먹으면서 아이들에게 물었다.

"너희들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네가 왕이었다면, 김상헌이었다면, 최명길이었다면..."

하지만 아이들은 그런 무겁고 진중한 나의 물음에 슈퍼주니어의 예성과 배우 이필모로 이야기 꽃을 피웠다. 현란한 무대장치와 아름다운 선율이 흐르는 테마 음악을 이야기 했다. 그리고 무슨 내용인지 모르겠다는 말도 했다.

"정명수(예성)의 대사 중 '조선놈들은 다 밟아 주겠다'를 들었을때 정말 화가 났었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화가 났다. 그리고 인조가 홍타이지에게 절을 할 때는 아무 느낌이 없었는데 인형이 부러질 때까지 절을 할 때 속으로 '그만'이라고 말하고 싶었다."

인조가 칸에게 아홉 번이나 절을 하는 <삼전도의 치욕>의 순간을 인형을 등장시켜 마무리를 한 것은 나도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쿵! 하는 소리가 날 때마다 소름이 돋았다.

"남한 산성이라는 뮤지컬을 봤다. 솔직히 나한테는 어려운 내용이었다. 이해가 잘 되지 않았다. 그래서 열심 봤지만 역시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리고 뮤지컬이 아니라 연극이었으면 더 좋았을 것 같다."

역사에 마침표를 찍는 한 그것은 죽어 버린 역사다. 우리는 역사라는 단어 앞에 항상 물음표를 두고 역사에 질문을 던져야 한다. 아이들이 이 뮤지컬을 보고서 물음표를 하나 두었다면 나에게도 소중했을 주말 하루를 아이들과 함께 보낸 보람이 있지 않을까?

덧붙이는 글 | (사)푸른학교는 서로 돕고 함께 나누는 방과후 무료 공부방입니다.



태그:#남한 산성, #공부방, #성남 아트센터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마이 뉴스 시민기자입니다. 진보적 문학단체 리얼리스트100회원이며 제14회 전태일 문학상(소설) 수상했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