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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의 이슬은 더 맑은 듯하다.
▲ 이슬 강원도의 이슬은 더 맑은 듯하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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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악 단풍이 절정을 이룬다는 가을날 아침, 일이 있어 아침 일찍 강원도 둔내 현천리로 향했다. 영동고속도로 하행선 문막휴게소는 관광버스와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그래도 이렇게 단풍철이나 휴일이면 휴게소가 미어질 정도로 북적거리는 것을 보면 잘사는 나라인가 보다 싶다.

도로가 막힐까 일찍 출발했더니만 아직 이슬이 마르지 않은 시간에 약속장소에 도착했다. 카메라를 챙겨들고 숲길을 따라 산책을 하다보니 정갈하게 정리된 무덤가에 아침햇살을 머금은 이슬이 예쁘다.

햇살이 숲을 파고드는 아침이다.
▲ 숲 햇살이 숲을 파고드는 아침이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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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둑한 숲에 아침햇살이 깃들고, 아침 햇살에 단풍빛은 더욱더 아름답게 빛난다.
빛의 조화, 그들이 있어 만물이 생명을 얻고 자기의 빛깔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생각하니 오늘도 떠오른 해가 유난히도 고맙기만 하다.

잣나무 숲에서는 송진냄새 비슷한 향기가 가득했다.
출퇴근 길, 막히는 도심의 도로에서 맡던 냄새와는 전혀 다르다.

명아주 어디에 이런 빛이 있었을까?
▲ 명아주 명아주 어디에 이런 빛이 있었을까?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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된서리가 며칠 전 내렸다고 했다.
된서리를 맞자마자 이파리가 짓물러버린 것들이 많았노라고 했다. 호박이나 가지, 고추 같은 것은 물론이요, 한련초도 된서리에 한해살이를 마감했다고 아쉬워했다.

"현천리라는 이름은 어떻게 붙여졌는지 아세요?"
"아, '물이 없다는 뜻이에요. 가물현자에 내천자를 쓰지요."
"그려, 20미터 정도 파가지고는 어림도 없어. 한 30미터는 파 내려가야 겨우 물길을 만나서 우물파는데 애 먹었지."

그랬구나.
나는 그냥 '어질현' 정도로 생각했는데 '가물현'이라니 내가 오해를 해도 많이 했구나 싶다. 마을 이름 하나에도 참 많은 의미가 담겨 있다 싶었다.

추수가 끝난 논이 슬퍼보인다.
▲ 숲에서 바라본 논 추수가 끝난 논이 슬퍼보인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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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수를 마친 논, 그런데 풍작이라는 소식에도 추곡수매가가 폭락이라는 소식을 들은 탓인지 을씨년스러워 보인다.

풍년도 들고 제값도 받을 수는 없는 일일까?
지구상에는 먹을 것이 없어 굶어죽는 이들이 수도 없이 많고, 멀리 갈 것도 없이 북한에서도 식량난이 극심하다는데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일까 싶다.

"그래도, 난 그냥 우리 식구 먹을 정도만 벼농사를 지어서 괜찮아."
"다른 것은 어떠셨어요?"
"양배추를 팔았는데 그것도 별 재미를 못봤어."

수확을 기다리고 있는 벼, 고개숙임이 푸대접을 받는 심정을 담은듯하다.
▲ 벼 수확을 기다리고 있는 벼, 고개숙임이 푸대접을 받는 심정을 담은듯하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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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만 그런 것이 아니라, 대부분의 농산품이 홀대받는 현실이다.
로또복권을 긁는 심정으로 씨앗을 뿌려야 한다는 것, 그것이 우리 농민들의 현실인 것이다. 무르익어 고개를 숙인 벼가 오히려 슬퍼 보인다. 제값을 받지 못해 죄송하다며 농부에게 사죄를 하는 듯한 형상이다.

"풍년이면 뭐해, 가격이 바닥을 치는 걸."

그 말 속에서 깊은 체념의 그림자를 보았다.
그저 어쩌지 못해 농사를 짓고, 그 땅을 지키고 있는 그런 체념 같은 것을 보았다.

추수를 마친 논이 황량해 보인다.
▲ 논 추수를 마친 논이 황량해 보인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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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그들은 늘 희망을 바라보고, 행복하게 살고자 힘쓴다.
행복, 희망 이런 단어들이 품고 있는 이중성에 대해 생각해 본다. 그 이중성이 가증스러워보이는 날이기도 하다.

저 논에 흰눈이 내리면 그 아픔을 다 덮어버릴 수 있을 것인지, 겨울이 지나고 다시 논에 심겨진 모가 푸릇푸릇한 물결을 낼 즈음이면 다시 희망을 키워도 되는 것인지, 아니면 그 모든 것이 허상일지.

이 좁은 나라에서 어찌 그리들 도시로 도시로만 몰려들고, 그것을 수수방관하는지 이해가 되질 않는다. 살기 좋은 농촌, 그것은 말로만 되는 것이 아니라 정부의 실질적인 투자와 노력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오로지 정략적으로 이용하는 것 외에는 없으니 농촌 현실이 척박할 수밖에 없고, 큰 용기를 가진 이들만이 귀농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일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오는 길, 자꾸만 논으로 눈이 간다.
추수를 마친 논도, 아직 누런 벼가 남아 있는 논도 너무너무 슬퍼 보이는 가을이다.


태그:#가을, #추곡수매가, #벼, #농사, #현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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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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