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는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 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존재의 의미에 관해 이처럼 완벽한 표현으로 풀어 낸 시가 또 있을까. '꽃'의 시인 김춘수, 청명한 가을날 그를 찾아 떠나는 여행은 한가롭고 애잔했다. 김춘수 선생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는 장소는 가까이 있었으나 그 곳은 사람들의 관심으로부터 멀어 보였기에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

김춘수 선생의 생가

김춘수 시인
 김춘수 시인
ⓒ 김춘수 유품전시관

관련사진보기

김춘수 선생의 생가를 찾는 것은 쉽지 않다. 약도를 들고 찾음에도 불구하고 골목골목을 한참동안 헤매야 했다. 도로변에 위치를 알려주는 그 어떤 표시도 없었기 때문이다. 따지고 보면 표지판을 설치하기가 뭣한 것도 사실이다.

통영시 동호동 61번지인 김춘수 선생의 생가는 현재 남아있지 않으며, 그 자리에는 관계없는 사람들의 집이 들어서 있다. 단지 생가였던 터에 기념비만 하나 세워졌는데 겨우 찾은 이 기념비는 쓰레기 사이에서 위치만 증명하고 있는 처지였다.

혹시나 김춘수 선생의 고향을 찾은 관광객이 이 모습을 본다면? 생각만 해도 민망하고 고인에게 죄스러워 얼른 치웠다. 그리고 '비석이 조금만 높았어도 이렇게 초라해지지는 않았을 텐데' 혹은 '우리가 조금만 관심을 가졌어도 기념비를 고이 지킬 수 있을 텐데' 등의 아쉬움을 지닌 채 발걸음을 돌렸다(*김춘수 선생의 생가를 방문하고자 하는 시민 및 관광객을 위해 남망산 공원 앞 큰 도로에서 맞은편의 꼬추닭치킨가게 뒤쪽에 기념비가 위치해 있음을 밝힌다).

김춘수 유품전시관

김춘수 선생은?
1922일 11월 25일 통영시 동호동에서 출생했으며, 통영공립보통학교, 경기공립중학교, 일본대 창작과를 다녔다.

평생 전교 3등 이내를 넘어가 본 적이 없는 수재로, 1945년 통영문화협회 창립과 함께 창작활동을 시작했다.

1946년 통영중학교 교사로 부임한 후 마산중, 해인대학, 경북대, 영남대 등에서 교편을 잡았으며, 1981년에는 국회의원에 당선되기도 했다.

1947년 첫 시집 '구름과 장미'를 시작으로 40여년간 25권의 시집을 펴내 한국시인협회상, 경상남도 문화상, 대한민국문학상, 문화훈장 등을 수상, 대한민국 문학사에 큰 족적을 남기고 2004년 11월 29일 별세했다.

'꽃의 시인' 말고도 존재의 본질을 이미지로 형상화하는 시를 주로 써 '인식의 시인'으로 불린다.

통영시 봉평동 해변가, 비교적 눈에 잘 띄는 곳에 시에서 마련한 김춘수 유품전시관이 있다.

이곳은 김춘수 기념관이 건립될 때까지 이용하게 될 임시전시관인 까닭에 생가와 마찬가지로 표지판 같은 홍보시설은 찾아볼 수 없다. 그래서인지 통영시민조차도 김춘수 유품전시관의 존재를 잘 모르는 것 같다.

김춘수 유품전시관은 지난해 4월 개관했으며, 유족이 기증한 선생의 유품 800여 점이 보관되어 있는 소중한 공간이다.

당초에는 건물 4층에 전시관이 마련됐으나 1·2층을 리모델링한 후 지난 7월 확장·이전했다. 1층에는 선생의 저서와 원고, 편지 등이, 2층에는 선생이 사용하던 가구, 옷, 서적 등 모든 생활용품들이 집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 제 자리에 자리 잡고 있다.

'통영문화협회' 창립멤버인 전혁림 화가, 유치환 시인, 윤이상 작곡가, 정윤주 작곡가와 함께 한 사진도 이채롭다. 통영출신으로 모두 국보급 예술인이 된 이들은 일생을 두고 진한 우정과 교감을 나눴다고 한다.

통영시 동호동 61번지
▲ 김춘수 선생 생가 기념비 통영시 동호동 61번지
ⓒ 정선화

관련사진보기


한편, 통영시는 생가의 위치를 감안해 남망산 공원 아래에 부지를 매입하고 기념관 건립, 생가 복원 등을 진행한다는 계획을 세웠지만 거주 주민들과의 보상협의가 사업의 발목을 잡고 있는 상태다.

기약 없이 차일피일 아까운 시간만 흘려보내 고향을 믿고 아버지의 유품을 내어 준 유족에게도 면목이 없는 실정이다. 시가 의지를 갖고 추진한다면, 주민들도 고향을 빛낸 예술인을 위해 한 발짝 양보한다면 충분히 이룰 수 있는 계획일 텐데 또 한 번 아쉬움을 삼켰다.

통영시 봉평동 451번지에 위치해 있다.
▲ 김춘수 유품전시관 통영시 봉평동 451번지에 위치해 있다.
ⓒ 정선화

관련사진보기


김춘수 선생의 생활공간을 그대로 옮겨 놓은 김춘수 유품전시관 2층
▲ 전시관 내부 김춘수 선생의 생활공간을 그대로 옮겨 놓은 김춘수 유품전시관 2층
ⓒ 정선화

관련사진보기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한려투데이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 김춘수, #생가, #유품전시관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