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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국회 의원회관에서는 음악회 '열려라 참깨'가 열렸다.
 10일 국회 의원회관에서는 음악회 '열려라 참깨'가 열렸다.
ⓒ 박상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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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보다 그리고 마음보다, 몸이 먼저 반응할 때가 있다. 소중한 이의 갑작스런 죽음 소식을 들었을 때, 지나간 한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음악이나 사진을 교통사고처럼 갑작스럽게 마주했을 때, 몸은 머리보다 정직한 어떤 반응을 보인다.

피아노 현의 울림이 전달하는 파동이 마음을 흔들어 댔던 것일까. 아니면 이제는 현실에서 만날 수 없는 김대중, 노무현 두 전직 대통령의 사진이 등장했기 때문일까.

한 예술중학교 학생이 피아노로 베토벤의 <비창>을 연주할 때, 피아노 옆 스크린에서는 두 전직 대통령과 그들의 죽음을 추모했던 시민들의 스틸 사진이 천천히 흘렀다. 내 몸을 음악이 앞에서 당기고 사진이 뒤에서 밀어주는 듯한 느낌. 눈은 속수무책으로 젖었다.

내 몸의 반응만 그러한 게 아니었다. 주변의 이곳저곳에서 훌쩍이는 소리가 났다. 피아노 현의 울림 한 가운데서도 그 소리는 명징했다.

이번엔 아예 작정하고 사람들을 울려 버리려는 것일까. 또 한 학생은 무대에 올라 헨델의 오페라 '리날도'와 영화 '파리넬리' 속에서 울려퍼지던 <울게하소서>를 불렀다. 훌쩍 거리는 소리가 더욱 커진 것으로 미뤄 사람들의 눈이 더 많이 젖은 건 분명했다.

그렇게 언론개혁시민연대와 문화연대가 주최한 음악회 '열려라 참깨'는 몸이 먼저 반응하는 정직한 눈물로 시작됐다. 21일 저녁 7시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열린 이 음악회는 '참여하는 양심과 깨어 있는 시민을 위한 음악회'란 의미를 담은 행사.

이명박 정부 들어 한 번쯤 검찰 조사실에 앉아봤거나, 경찰에 연행됐거나, 그리고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직장에서 쫓겨났거나, 그 모든 과정을 거친 뒤에 감옥까지 다녀온 사람들이 객관이자 주인공인 음악회였다.

시대의 역행과 역류에 울고 싶고, 아니 울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한 곳에 모인 셈이다. 음악회 사회를 맡은 칼라TV 이명선 앵커는 "그동안 울고 싶었지만 울지 못했던 분들, 맘 놓고 울어봤으면 한다"고 아예 판을 깔기도 했다.

이날 음악회는 '언론악법'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29일 판결을 앞두고 그동안 언론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해 싸워온 사람들과 행동하는 문화예술인들이 만나는 자리였다. 이들이라고 언제나 거리에서 붉은 띠 머리에 두르고, '단결' '투쟁'이라 적힌 조끼만 입고 만나라는 법 없이 않나. 때마침 가을이니 클래식 음악을 듣기에도 딱이다.

10일 국회 의원회관에서는 음악회 '열려라 참깨'가 열렸다.
 10일 국회 의원회관에서는 음악회 '열려라 참깨'가 열렸다.
ⓒ 박상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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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싸워온 시절을 떠올리며 서로를 위로하고, 다가오는 헌재의 판결을 앞두고 한번쯤 마음을 다독이는 자리. 이런 자리에 음악이 빠질 수 없고, 은근한 음악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 다리를 놓아주는 훌륭한 매개체다.

앞서 이야기했듯 음악회는 한 예술중학교 학생들이 열었다. 이들은 국내 최초의 10대 클래식 밴드인 '영뮤즈'에서 활동하는 학생들이다.

음악회에서 한 학생은 "김대중 노무현 두 전직 대통령은 정치인이라기 보다는 어렸을 때부터 알고 지낸 친근한 친구같았던 분들이었다"며 "두 분이 서거했을 때 우리는 묵묵하게 공부할 수밖에 없었고, 이제야 아픈 마음을 모아 추목 음악을 준비했다"고 말했다.

학생들은 쇼팽의 <화려한 왈츠>, <혁명> 그리고 쇼스타코비치 재즈NO.2 등을 연주했다. 그리고 어쩔 수 없는 거리의 음악 <아침이슬>을 피아노와 해금으로 협연하기도 했다. 성인 문화예술인으로는 가수 백자, 손병휘가 무대에 올랐고, EBS 노래패 '소리열음'도 한 소리 보탰다.

그리고 최상재 언론노조 위원장과 '고대녀'로 많이 알려진 김지윤 고려대 학생은 무대에서 시 <타는 목마름으로>를 낭송했다. 낭송을 마친 최 위원장의 말이 의미심장했다.

"대학에 다닐 때, 그러니까 김지윤 학생 나이 때 이 시를 열심히 읽었다. 밥 먹을 때나 슬플 때나, 그리고 술 자리에서 이 시를 주문처럼 외웠다. 그렇게 외고 또 외면 지금 내 나이 쯤 되면 이 나라에 진보와 평등, 그리고 자유를 마음 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시대가 올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다시 이 시를 외는 게 안타깝다. 김지윤 학생이 내 나이가 되면 이 시를 외지 않아도 좋은 시대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이어 정연주 전 KBS 사장, 신태섭 전 KBS 이사, 노종면 YTN 노조위원장, 미네르바 박대성, 그리고 한국예술종합학교 비상대책위원회에서 활동하는 학생들이 무대에 올랐다. 이들의 공통점은 정권에 의해 쫓겨나고, 감옥에 가고, 한 번쯤 검찰 조사실에 앉아봤다는 것이다. 이들은 무대에서 <바위처럼>과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을 합창했다.

정연주 전 사장은 "오늘 먼저 떠난 두 전직 대통령이 하늘에서 학생들의 공연을 보고 아름다운 곡을 가슴에 간직했을 것"이라며 "다음 세대에는 자유, 평등, 평화가 강물처럼 흐를 수 있도록 깨어 있는 양심, 행동하는 양심으로 살자"고 말했다.

오는 29일 헌법재판소는 '언론악법'에 대한 판결을 내린다. 이날 음악으로 마음을 다진 사람들의 눈에 감격의 눈물이 흐를지, 아니면 분노의 눈물이 흐를지 그날 판가름 난다.


태그:#음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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