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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20일)는 서울 가는 아내를 배웅하러 기차역에 다녀왔다. 역에 도착하니까 마침 3분 후에 출발하는 차가 있어 잘 다녀오라고 전하고 역 광장을 걸어 나오는데 역사 건물 우측 벽 꼭대기에 걸린 '군산 내흥동 유적 전시관'이라고 쓴 간판 글씨가 눈길을 끌었다.

  군산역 전경과 유적 전시실을 알리는 간판, 많은 돈을 들여 시설을 해놓고도 안내책자 하나 없다니 군산시청을 탓해야 할지, 문화재관리청을 탓해야할지 헷갈렸다.
 군산역 전경과 유적 전시실을 알리는 간판, 많은 돈을 들여 시설을 해놓고도 안내책자 하나 없다니 군산시청을 탓해야 할지, 문화재관리청을 탓해야할지 헷갈렸다.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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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을 추는 듯한 글씨와 그림이 세련되게 보여 호기심이 더욱 동했는데 전시관을 들러보려고 계단을 걸어 올라가니까 문이 잠겨 있었다. 마음이 상했지만, 1층으로 내려와 역무원에게 문을 열어 달라고 부탁해서 들어갈 수 있었다.

여직원이 문을 열어주기에, 다양한 계층이 이용하는 유물전시관을 잠가 놓으면 어떻게 하느냐고 했더니 "손님이 많을 때는 계속 열어놓는데, 요즘은 명절 뒤라서 관람객이 뜸해 닫아놓고 있다"면서 "많은 사람이 활용하면 좋은데 건물이 아깝다"며 아쉬워했다.

전시관에 대해 설명을 좀 해달라니까, 역사를 지으면서 발굴한 유물을 전시하는 것으로 아는데 따로 교육을 받은 것이 없어 말씀드리지 못하겠다면서 궁금한 점은 역장에게 물어보면 친절하게 설명해줄 거라며 가기 전에 만나보라며 밖으로 나갔다.

고향으로 이사한 지 1년 남짓 되고, 밤에만 몇 차례 다녀가 유적 전시관이 있는지조차도 몰랐는데, 어쨌든 전시관 관람은 행운이었다. 석기시대에서 조선시대에 이르는 유구와 유물을 통해 부모님 묘가 있는 주변 마을의 시대별 문화를 접하면서 생활상을 유추하고 상상해볼 기회였기 때문이었다.

선사시대 군산 지역 사람들의 생활

 전시실 벽에 그려놓은 선사시대 사람들의 생활 모습, 학창시절, 교과서에서 보던 그림과 비슷해 잠시 추억에 빠지기도 했다.
 전시실 벽에 그려놓은 선사시대 사람들의 생활 모습, 학창시절, 교과서에서 보던 그림과 비슷해 잠시 추억에 빠지기도 했다.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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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에게 손이 가장 먼저 움켜쥐고 새로운 창조물로 빚어낸 자연의 대상은 돌이었다고 하는데, 다른 돌에 부딪쳐서 깨거나 날카롭게 다듬어 생활에 필요한 도구를 만들어냈다. 그 도구를 가지고 선사시대 사람들이 행한 최초의 노동은 사냥과 채집이었다.

사냥과 채집에 그날그날 삶을 유지하던 사람들은 여유가 생기자 새로운 삶의 방식인 농사짓기가 시작되었다. 청동기 같은 금속 도구의 사용과 함께 시작한 농사짓기는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많은 먹을거리를 확보해주어 생활에 리듬과 여유를 가져다주었다.

자료에 의하면 오성산 자락이 감싸는 군산 내흥동 일원에는 기원전 3000~2000년 정도의 조개 더미가 흩어져 있었고, 이곳 외에도 산북동, 신관동 등 인근 마을과 선유도, 무녀도, 군장 국가공단을 만드는 오식도와 띠섬 등에서도 조개 더미가 발견됐다고 한다.
 
내흥동 인근에 자리한 옛 사옥개 포구(채만식 문학관 부근)에서는 신석기시대 인들의 생활흔적인 조개무덤이 발견되고 있고, 사옥개마을 안쪽에는 신석기 거석문화의 일종인 입석이 자리하고 있어 오래 전부터 이곳에 사람이 거주해왔음을 알 수 있었을 것으로 진단한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현상을 신석기 이후 군산 지역은 농경사회였던 당시 사람들의 주된 생활 터전이었던 것으로 관측한다. 청동기 시대에 이르러 인간은 삶을 구릉지대로 옮기는데 군산-장항 철도연결공사를 하다 석기시대 유적이 발굴되어 전시되고 있는 것이다.

유적 전시관 관람

'내흥동 유적 전시관'에는 발굴 과정 및 토광묘, 수혈 유구가 전시돼 있으며, 구석기, 신석기, 청동기, 원삼국시대의 생활 모습, 화석으로 보는 선사시대, 내흥동의 토층 전사 등 유물을 통해 내흥동 부근의 선사시대를 들여다볼 수 있었다.

 여덟 줄기 햇살 무늬가 둘러싼 ‘햇살 무늬 청동방울’
 여덟 줄기 햇살 무늬가 둘러싼 ‘햇살 무늬 청동방울’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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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실에는 군산역 신축 공사 중에 발견된 유물 외에 전북 익산, 경주 외동읍 죽동리, 경북 영천, 전남 화순 도곡면 대곡리, 대전 등 전국 각지에서 출토된 유물 및 사진을 진열해놓고 있었는데, 토광묘는 경주, 평안도, 황해도 등 대표적인 묘를 자세히 기술해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수렵의식과 관련된 것으로 보이는 동물무늬 청동 의기는 자주 보던 유물이었고, 긴 장대에 꽂아서 쓰고 아래쪽 고리에 수실 따위를 끼웠을 것으로 추측되는 장대 끝 방울은 교과서에서 보던 유물이었는데, 여덟 줄기 햇살 무늬가 둘러싼 '햇살 무늬 청동방울'은 처음 보는 유물이어서인지 눈길을 끌었다.

특히 햇살 무늬 청동방울에는 줄기 끝에 방울이 하나씩 여덟 개 달렸는데, 고대인들은 8을 특별한 의미가 있는 숫자로 여겼고, 하늘을 나는 새는 인간에게 풍요를 주고 영혼을 저승에 데려다 주는 것으로 믿었다고 한다.

여기에서 고대인들이 벽이나 바위에 그려놓았던 그림을 감상하면서 설명문을 통해 당시 사람들의 생활상과 미의 의식을 엿보고, 심성을 추측해 보겠다.

# 원형에 가까운 수혈유구(竪穴遺構)

 원형에 가까운 수혈 유구.
 원형에 가까운 수혈 유구.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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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발 고도 5.2m 쐐기구조 토양층을 굴광하여 조성하였다고 한다. '수혈 유구'란 위에서 보면 원형 구덩이 모양이지만 단면을 절개하면 아래로 내려갈수록 바닥이 입구보다 넓어지는 삼각 플라스크 형태의 유적으로 그 기능을 파악하기 어려워 학계에서도 '구덩이'이라는 불확실한 용어를 쓰고 있다.

시기적으로는 대부분 서기 300년 전후에 집중적으로 조성됐으며 예외 없이 내흥동처럼 지형이 얕은 구릉이 있는 산지 기슭에서 발견됐으며 옛 백제 영역에서만 유독 두드러지게 확인되는 특징을 지닌다.

내부에서는 가공한 지름 약 3cm~8cm 크기의 목재들이 확인되었으나 잔존상태가 좋지 않아 확인할 수 없다. 유물은 시루와 장란형 토기가 가공 목재의 하단과 상단부에 출토되었으며, 최상부 퇴적토에서 회청색 경질 1점이 수습되었다.

# 한 쌍의 멧돼지

 한 쌍의 멧돼지 그림. 선사시대 생활을 알리는 글이나 그림을 보면 멧돼지 사냥 장면이 자주 등장하는데 현대인들이 사육하는 돼지와 관련이 있을 것으로 추측된다.
 한 쌍의 멧돼지 그림. 선사시대 생활을 알리는 글이나 그림을 보면 멧돼지 사냥 장면이 자주 등장하는데 현대인들이 사육하는 돼지와 관련이 있을 것으로 추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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멧돼지 두 마리가 아래 위로 그려진 이 그림은 속보기 수법이라는 주장과 그렇지 않다는 주장이 맞선다. 또 이 그림을 암수가 교미하는 장면으로 보는 견해도 있고, 멧돼지의 배가 부른데다 성기도 보이지 않아 그에 반대하는 견해도 있는데 학자들은 그 어느 쪽이든 풍요와 다산을 기원하는 의미가 담긴 그림임엔 틀림없는 것으로 믿는다고.

# 거북

 거북 그림. 이와같은 그림을 그린 의도가 기록을 위한 것인지, 의사전달을 하기 위함인지 무척 궁금했다.
 거북 그림. 이와같은 그림을 그린 의도가 기록을 위한 것인지, 의사전달을 하기 위함인지 무척 궁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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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거북 세 마리가 춤추는 남자를 따라 움직이는 모습은 상징적이다. '구지가'나 수로부인 전설 같은 고대 민간 설화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거북은 아주 옛날부터 풍요와 다산의 상징으로 해안지방에 널리 알려졌다. 거북의 머리는 그 신축성과 함께 남자의 성기를 상징하고, 움츠린 모습과 몸통은 여자의 성기와 자궁을 상징하여 신비로운 생산력을 나타내주는 영물로 여겨졌다.

# 멧돼지와 성기 내민 사냥꾼

 멧돼지와 성기 내민 사냥꾼 그림.
 멧돼지와 성기 내민 사냥꾼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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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상대방에게 달려들듯 웅크린 멧돼지 자세가 위협적이다. 그 앞에 선 남자 역시 남성의 상징을 곧추세우고 한 손에 몽둥이 같은 무기를 든 자세가 결코 만만치 않다. 멧돼지 사냥의 교본으로 그려진 것이 아닐까 하는 추측도 있다. 멧돼지의 웅크린 모습에서 이미 잡은 멧돼지를 길들이는 장면으로 해석하는 견해도 있다.

#팔과 다리를 벌리고 있는 여자

 팔과 다리를 벌리고 있는 여자 그림.
 팔과 다리를 벌리고 있는 여자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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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그림은 신, 여자무당 등 다양한 해석이 있지만, 춤추는 샤먼의 아내로 가정하면 재미있는 해석이 가능하다. 알래스카 티커라미우트족은 고래사냥에 앞서 갖는 의례에서 족장 부인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러한 현상은 여러 곳에서 목격된다. 따라서 우리는 팔과 다리를 벌린 이 여자가 샤먼의 부인으로 풍어제에서 어떤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고 추측할 수 있다.

'남대문 화재사건' 떠올라

전시관을 둘러보고 내려와 김태호 코레일 군산 역장을 만났다. 반갑게 맞이하는 김 역장에게 명함을 내밀면서 전시관 운영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했더니, "철도 시설공단에서 공사(工事) 해서 넘겨주는 걸 받기만 했지, 전문지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교육을 받지도 못했는데 어떻게 관람객을 만족하게 할 수 있겠어요?"라고 반문하며 난처해 했다.

흥미 있게 둘러보고도 뒷맛은 땡감을 씹은 것처럼 떨떠름했다. 안내하는 사람은커녕 홍보 책자나 소개하는 팸플릿 하나 없어 무척 불편하고 안타까웠는데, 개방만 해놓고 버려두는 바람에 화재가 나니까 서로 책임 떠넘기기에만 급급했던 '남대문 화재사건'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군산역은 군산의 역사와 문화재 등을 둘러보는 시티투어 출발장소이다. 그러한 곳에 소중한 유적 전시실을 마련해 놓고 테마관광코스에도 빠져 있고, 군산을 홍보하는 관광책자에도 빠져 있다니, 관계 당국의 관심과 각성을 바란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신문고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군산 내흥동#유적 전시관#선사시대#군산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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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8월부터 '후광김대중 마을'(다움카페)을 운영해오고 있습니다. 정치와 언론, 예술에 관심이 많으며 올리는 글이 따뜻한 사회가 조성되는 데 미력이나마 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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