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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통영의 달동네 마을, '동피랑.' '동쪽 벼랑'이라는 뜻의 그곳은 낡고 허름한 집들이 줄지어서 시에서도 재개발예정지로 점찍었다. 그러나 시민단체와 지역 예술인들이 나서 마을 곳곳에 벽화를 그리기 시작하며 어느새 '벽화마을'로 변모했다.

요즘은 벽화마을로 인기를 끌며 한국의 '몽마르뜨 거리'라는 애칭도 갖게 됐다. 벽화마을을 둘러보는 관광객들 발길 속에 동피랑을 헐어 없애는 개발 계획도 철회됐다. 벽화로 한 마을의 운명이 통째로 바뀐 셈이다.

전국적으로 벽화가 '유행'이다. 많은 돈을 들여 무엇을 새로 건설하기 보다 벽화는 적은 돈으로도 지역 역사성을 간직한 채 도시의 무채색 표정을 얼마든지 바꿀 수 있다. 천안도 작년부터 도심 벽화가 눈에 띄게 늘고 있다. 올해는 아예 벽화마을을 만드는 움직임도 가시화되고 있다.

북면 양곡리, 농촌형 벽화마을로 변신 중

북면 양곡리 진입로 옹벽에 벽화를 그리고 있는 모습.
 북면 양곡리 진입로 옹벽에 벽화를 그리고 있는 모습.
ⓒ 윤평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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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면에서도 외곽에 위치한 양곡리. 벼농사를 주업으로 50여 가구, 120여 명의 주민들이 거주하는 전형적인 농촌마을이다. 마을 곳곳이 황금 들녘으로 무르익은 양곡리에 지난 10일 반가운 손님들이 찾아왔다. 천안KYC 벽화동아리 '우리가 그리는 세상' 회원들과 푸른천안21 시민실천단 위원 등 40여 명이 주인공.

이들은 10일과 11일 이틀 동안 마을에 머무르며 양곡리 진입로 도로변 옹벽에 벽화를 그렸다. 처음 보는 벽화제작 모습을 신기하게 지켜보던 마을 아이들 몇몇은 기어이 벽화 그리기에 합류했다. 전체 2백 여m 길이의 옹벽 절반 정도에 벽화가 완성됐다. 벽화에는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노란색 해바라기들이 피어났다.

양곡리에서 태어나 줄곧 거주하고 있는 이붕재(51) 이장은 "시골길이지만 콘크리트 옹벽으로 삭막했던 진입로에 벽화가 그려져 아름다움을 선사하게 됐다"며 기쁜 마음을 표했다.

양곡리 벽화 제작은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는다. 11월에는 다시한번 벽화 동아리 회원들과 자원봉사자들 참여로 옹벽의 나머지 구간을 벽화로 완성한다.

또한 12월초까지 벽화 동아리 운영자인 김하나씨가 틈틈이 양곡리를 방문, 마을 곳곳에 15~20여 개소의 벽화를 제작할 예정. 장독대와 수탉, 고추 말리는 풍경 등 농촌과 어울리는 소재들을 도안으로 마을안 담장과 컨테이너 박스 등에 벽화가 그려진다.

12월쯤 모든 벽화가 완성되면 마을 벽화를 감상하고 농촌문화도 체험하는 문화행사가 도시민들을 초청해 열린다. 벽화 재료 등 벽화 마을 만들기에 소요되는 사업비 1200만 원은 천안KYC가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의 '생활문화공동체만들기 시범사업'에 선정돼 지원받는다.

강윤정 천안KYC 사무국장은 "단순히 벽화만 그려 놓고 떠나는 것이 아니라 벽화를 접점으로 농촌마을에서 도시민 대상의 체험프로그램을 주민들이 운영하는 지속가능한 모델을 구상중"이라고 말했다.

강 국장은 "이를 위해 주민들과 마을만들기 교육 프로그램도 여러 차례 진행하고 있다"며 "벽화 제작도 3년 정도 계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도심에도 싹 트는 원성2동 벽화마을

원성2동 지역아동센터 벽에 상명대 자원봉사 학생들이 벽화를 그리고 있는 모습.
 원성2동 지역아동센터 벽에 상명대 자원봉사 학생들이 벽화를 그리고 있는 모습.
ⓒ 윤평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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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성2동 천안여중 앞에서 충무로 사이의 주택가. 이곳에서도 벽화마을의 기운이 움트고 있다.

지역의 아동복지 시민단체인 '미래를여는아이들'(미래아이)은 원성2동에 단체 사무실이 소재한 것은 물론 작은도서관과 지역아동센터도 운영하고 있다. 저소득층 아이들의 복지여건 개선을 위해 몇해째 원성2동에서 다양한 활동을 벌이고 있는 미래를여는아이들은 주민들과 소통의 기회를 모색하다가 벽화를 떠올리게 됐다.

미래아이 김소현 사무국장은 "지역의 아이들이 행복한 마을을 만들기 위해서는 그곳에 사는 주민들과 여건이 함께 변화해야 한다는 사실을 절감했다"며 "주민들과 쉽게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을 찾다가 벽화를 발견했다"고 말했다.

미래아이는 8월부터 다섯 차례에 거쳐 단체 사무실 건물과 주민 세 분의 집 담장에 벽화를 완성했다. 벽화 제작은 상명대 천안캠퍼스 만화디지털콘텐츠 학부 1학년 학생들과 미래아이 자원봉사자들이 도맡았다.

한여름 뙤약볕 아래 진행된 벽화 만들기에 자원봉사자들과 학생들은 몇 동이의 팥죽땀은 족히 쏟았다.

상명대 만화디지털콘텐츠 학부 1학년 최시내 학생은 "그림을 그리고 있다기보다 그저 노동을 하고 있는 듯 한 기분도 들었다"며 "일단 그림을 완성해 놓고 달라진 벽을 보면 뿌듯하고 보람이 있었다"고 말했다.

특히 시내양은 "주민분들이 벽화를 마음에 안 들어 하면 어떡할까, 걱정도 했지만 지나가면서 격려해 주시고, 칭찬도 해주시는 등 반응이 좋아 더욱 힘이 났다"고 밝혔다.

미래아이는 24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7시까지 미래아이 사무실이 있는 원성2동 작은도서관 일대에서 '꿈을 키우는 벽화마을'을 주제로 제1회 원성동 지역축제를 개최한다.

지역주민 모두를 대상으로 한 축제에서는 골목벽화 만들기 체험, 벽화 주인공과 사진찍기 등 벽화 관련 행사 뿐만이 아니라 아을동화책 만들기, 알뜰장터, 음악회, 도서관 인형전시 등 다양한 문화행사가 펼쳐진다.

김소현 미래아이 사무국장은 "한동안은 벽화의 밑그림을 자원봉사자들이 그리더라도 장기적으로는 주민들로 구성된 벽화동아리가 만들어져 주민분들이 직접 벽화마을을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지역축제도 그런 관심을 촉발시키기 위해 마련했다는 설명. 벽화를 출발점 삼아 아이들이 행복한 마을 만들기의 발길이 이미 원성2동에서 시작됐다.

자연하천과 조화로운 벽화

원성천변의 벽화 모습.
 원성천변의 벽화 모습.
ⓒ 윤평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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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천변 하수구멍이 오리떼로 바뀌었어요."

자연형 하천 조성 사업이 완료되며 많은 시민들이 운동과 산책코스로 즐겨 찾는 원성천. 이곳에도 벽화의 물결이 일렁이고 있다. 원성2동 주민센터는 지난 6월 원성천 하류 부분 콘크리트 옹벽 1백m 구간에 벽화를 완성했다. 상명대 시각디자인학과 김남호 교수가 디자인한 벽화는 가로 10m, 세로 2m 크기의 10개 장면이 담긴 그래픽 벽화로 만들어졌다.

지난 9월부터는 1번 국도와 맞닿은 원성천 중류 부분 일대가 벽화로 탈바꿈하고 있다. KYC 벽화동아리 '우리가 그리는 세상'의 운영진 4명이 제작을 맡아 원성천변 하수구멍과 천변 주택가 담벼락에 정겹고 친근한 색채와 디자인의 벽화를 선 보이고 있다. 10월 현재 22개소를 벽화로 장식했고 11월까지 4~5개소를 추가로 작업할 예정. 벽화 제작의 사업비는 천안시 도시디자인팀에서 지원하고 있다.

주민들의 반응은 상당히 호의적이다. 지난 9월 원성천에서 천성중으로 이어지는 지하도 진입로 옹벽과 인근 건물의 담장에 완성된 벽화는 특히 주민들은 물론 하천에 산책나온 시민들에게서도 큰 인기를 얻으며 명물이 되고 있다. 원성2동 임규순(56.여) 통장은 "화사한 벽화들로 동네 분위기까지 밝아졌다"고 말했다.

천안시 도시디자인팀 관계자는 "내년에도 구간을 달리해 하천변 벽화제작 지원사업을 시행할 계획이며 벽화마을 지원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천안지역 주간신문인 천안신문 546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천안벽화, #벽화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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