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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 용기 있는 학자가 존재

.. 해방 전에 이처럼 용기 있는 학자가 존재했다는 사실을 나는 8ㆍ15 해방 한참 후에야 알게 되었다는 것이 참으로 부끄러울 뿐이었다 ..  《이진희/이규수 옮김-해협, 한 재일 사학자의 반평생》(삼인,2003) 75쪽

'용기(勇氣) 있는'은 '씩씩한'이나 '힘있는'이나 '꺾이지 않는'이나 '굽히지 않는'으로 다듬습니다. '해방 전(前)에'는 '해방이 되기 앞서'나 '일제 식민지 때에'로 손봅니다. '후(後)'는 '뒤'로 고치고, "되었다는 것이"는 "되었음이"로 고쳐씁니다.

 ┌ 용기 있는 학자가 존재했다는 사실을
 │
 │→ 용기 있는 학자가 있었음을
 │→ 당차고 씩씩한 학자가 있었음을
 │→ 꼿꼿한 학자가 계셨음을
 │→ 굽히지 않고 거침없는 학자가 계셨음을
 │→ 훌륭한 학자가 계셨음을
 └ …

국어사전마다 조금씩 다른데, 어느 국어사전은 '용감하다'를 "씩씩한 기운이 있다"로 풀이하고, '씩씩하다'는 '용감하다'로 풀이합니다. 또다른 어느 국어사전은 '용감하다'를 "용기가 있으며 씩씩하고 기운차다"로 풀이하고, '씩씩하다'를 "굳세고 위엄스럽다"로 풀이합니다. 그런데, '용기'를 "씩씩하고 굳센 기운"으로 풀이하고 있으니, 한자말 '용감'과 '용기', 토박이말 '씩씩하다'와 '기운차다'는 서로서로 뒤죽박죽이 됩니다. 얼키고 설키며 말뜻이 알쏭달쏭하게 됩니다.

 ┌ 힘있는 / 힘찬 / 기운찬 / 힘센 / 기운센
 ├ 씩씩한 / 당찬 / 다부진
 ├ 꼿꼿한 / 꺾이지 않는 / 굽히지 않는 / 굽힘없는
 └ 대단한 / 훌륭한 / 놀라운

우리한테는 힘이 있거나 기운이 있는 모습을 가리키는 여러 가지 토박이말이 있습니다. 말 그대로 '힘있다-기운차다'부터 '씩씩하다-다부지다'를 거쳐 '꼿꼿하다-굽힘없다-거침없다'와 '훌륭하다-대단하다'까지 골고루 있습니다.

우리 스스로 우리 말을 알뜰살뜰 살려쓸 수 있어야 우리 생각과 마음과 뜻을 올바르고 알맞게 드러냅니다. 우리 스스로 우리 말을 엉터리로 쓰거나 어줍잖게 쓰거나 엉성하게 쓴다면, 우리 생각이며 마음이며 뜻이며 제대로 드러내지 못합니다.

낱말 하나부터 추스를 노릇입니다. 말투 하나부터 다잡을 노릇입니다. 낱말 하나가 모여 글월을 이루고, 말투 하나가 모여 이야기가 태어납니다. 낱말 하나를 대수로이 여기는 사람은 어수룩한 글에서 헤매고, 말투 하나 하찮게 다루는 사람은 엉망진창 이야기에서 맴돕니다.

ㄴ. 큰 모순이 존재

.. 칠레의 지배 체제를 위해 봉사하고 있던 '공식적인' 대학 문화운동과 대다수 칠레 민중이 살고 있는 삶의 현실 사이에 얼마나 큰 모순이 존재하고 있는지를 몰랐을 정도로 정말 어리석은 인간은 아니었다 ..  《조안 하라/차미례 옮김-빅토르 하라》(삼천리,2008) 45쪽

"칠레의 지배(支配) 체제(體制)를 위(爲)해"는 "칠레를 다스리는 틀을 지켜 주려고"나 "칠레를 다스리는 틀이 지켜지도록"으로 손보고, '봉사(奉仕)하고'는 '애쓰고'나 '힘쓰고'나 '몸바치고'로 손봅니다. '공식적(公式的)인'은 '공식'이나 '수많은'으로 다듬습니다. '대다수(大多數)'는 '거의 모든'으로 손질하고, "민중들이 살고 있는 삶의 현실(現實)"은 "민중들이 살아가는 모습"이나 "민중들 삶"이나 "사람들 삶"으로 손질해 줍니다. '모순(矛盾)'은 '엇갈림'이나 '두동짐'이나 '동떨어짐'으로 고쳐쓰고, "몰랐을 정도(程度)로"는 "몰랐을 만큼"으로 고쳐쓰며, '정(正)말'은 '참말'이나 '참으로'로 고쳐쓴 다음, '인간(人間)'은 '사람'으로 고쳐 줍니다.

 ┌ 큰 모순이 존재하고 있는지를
 │
 │→ 큰 모순이 있는지를
 │→ 큰 모순이 가로놓여 있는지를
 │→ 큰 모순이 엇갈려 있는지를
 │→ 큰 모순이 얼룩져 있는지를
 │→ 큰 모순이 깃들어 있는지를
 └ …

문화운동이든 사회운동이든 환경운동이든, 또는 문화이든 정치이든 경제이든, 이런 일을 하는 사람 따로, 이런 일에 영향을 받는 사람들 따로일 때에는 참다이 나아가기 어렵습니다. 아름다움을 나눌 수도 없습니다. 기쁨이나 즐거움을 두루 맛볼 수 없으며, 보람이나 열매를 찾아보기 힘들어요.

언제나 함께 나아가야 합니다. 늘 오순도순 어울려야 합니다. 한결같이 어깨동무를 하면서 높고낮음이 없는 자리에서 서로서로 힘쓰고 마음쓰고 애쓸 수 있어야 합니다.

 ┌ 문화운동과 민중들 삶이 크게 갈라져 있는지를
 ├ 문화운동과 민중들 삶이 크게 벌어져 있는지를
 ├ 문화운동과 민중들 삶이 크게 나뉘어 있는지를
 ├ 문화운동과 민중들 삶이 크게 동떨어져 있는지를
 └ …

많이 배운 이와 적게 배운 이를 갈라 놓는 말은, 가방끈에 따라 일삯을 가르고 사람값을 가릅니다. 많이 배운 만큼 고개숙일 줄 알면서 더 너른 뜻을 더 손쉬운 말그릇에 담아낸다면, 사람들이 서로 벌어지고 나뉘지 않게 다스리거나 추스르게 됩니다. 서로 이웃이 되고 서로 믿음을 나누며 서로 사랑을 함께합니다. 많이 배운 티를 내며 글을 쓰고 말을 하며 책을 엮고 신문을 짜면, 여느 사람들 삶과 자꾸자꾸 동떨어지게 됩니다. 말하는 뜻이 좋고 말하는 목소리에 힘이 있달지라도, 여느 사람들 삶을 북돋우거나 지키거나 가꾸는 쪽으로 이어지지 못합니다. 여느 사람들 삶은 그런 '배운 티 나고 잘난 척하는 말'로 이루어져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을 가까이 모시며 섬기는 사람일수록 한결 밝고 따스하기 마련입니다. 부처님을 가슴에 붙안는 사람일수록 더욱 아름답고 빛나기 마련입니다. 슬기로움을 머리뿐 아니라 온몸에 녹여낸 사람일수록 참으로 싱싱하고 튼튼하기 마련입니다. 익은 벼가 고개를 숙인다는 말은, 하나라도 더 알기 때문에 너그러울 뿐 아니라 생각과 말 모두 좀더 낮은자리에 두면서 펼쳐 보일 수 있다는 뜻입니다. 훨씬 널리 살가운 뜻을 보여준다는 이야기입니다.

배운 사람일수록 쉽게 말해야 합니다. 아는 사람일수록 수월하게 글써야 합니다. 못 배운 사람이거나 거짓 배운 사람이니 어렵게 말합니다. 잘못 알거나 엉터리로 아는 사람이니 까다롭게 글씁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hbooks.cyworld.com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한자말#한자#우리말#한글#국어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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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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