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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남이시네요> 포스터.
 <미남이시네요> 포스터.
ⓒ 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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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영이 가까워진 드라마의 엔딩 뒤에는 후속 드라마의 예고편이 뒤따라 나오기 마련이다. 변하지 않는 불문율. 대개 드라마가 끝나기 2~3주 전부터 흘러나오는 후속작의 예고편에는 시청자의 관심을 끌어 붙잡아두려는 의도가 있지만, 때론 호기심보단 짜증을 유발할 때도 있다. 예고편이 흘러나오는 때는 대개 드라마의 막바지. 숨 가쁘게 흘러가는 사건들이, 인물 간의 팽팽한 갈등들이 절정을 향해 치닫는 순간이 바로 그 즈음이기 때문이다.

자연히 시청자들도 리모컨을 쥔 손에 힘이 꽉 들어갈 수밖에 없는 순간. 1시간 5분 남짓한 드라마는 끝이 나고 다음회의 전개를 궁금해 하며 여운에 잠겨있어야 할 그 때, 후속작의 예고편은 몰입을 방해하는 불청객이 된다. 2년 전 <하얀거탑>을 볼 때 그랬다. 김명민이 암에 걸려 생사를 넘나들며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시청하며 슬픔에 젖어있는 그 순간, 바로 이어지는 <케세라세라>의 경쾌한 예고편은 날 짜증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지난 7일 새로 시작한 SBS 수목드라마 <미남이시네요>는 그 때의 아픈 기억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지성과 전광렬의 부자관계가 밝혀지고, 충격을 받은 이완은 아버지 전광렬을 배신한다. 극 전체의 긴장감이 절정에 이른 <태양을 삼켜라>가 끝난 뒤에 흘러나오는 <미남이시네요>의 그 상큼, 발랄, 유치한 예고편이란…. 정말 할 말을 잃게 만들었다. "대체 저 오글거리는 물건은 또 뭐야?"라는 반응이 절로 튀어 나왔다.

그렇게 안 좋은 첫인상으로 대면한 <미남이시네요>를 볼 생각이 들었던 건 전적으로 작가 때문이었다. <쾌걸춘향> <마이걸> <환상의 커플> <쾌도홍길동>의 작가 홍미란, 홍정은… 일명 '홍자매'의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개성 넘치는 캐릭터에 맛깔스런 대사를 버무려 상큼 발랄한, 상상력 넘치는 트렌디 드라마를 잘 뽑아내는 홍자매의 작품이라면, 수목 저녁 갈 곳 잃고 헤매는 리모컨을 믿고 맡겨도 후회하지 않으리란 생각에서였다.

'유쾌·발랄' 홍자매, 리모컨 훔칠 수 있을까

남장여자 아이돌을 그리는 <미남이시네요>는 전형적인 판타지 멜로드라마다. 수녀가 되기로 한 고미녀(박신혜 분)는 어느 날 자신의 쌍둥이 오빠 고미남이 쌍꺼풀 수술 부작용으로 그토록 원하던 가수 데뷔가 무산될 위기에 처하자, 자의반 타의반 오빠 고미남이 되기로 한다. 오빠가 회복할 때까지 약 한 달 동안 오빠 대신 고미남이 되어 아시아 최고의 아이돌 그룹인 에이엔젤(A.N.Jell)의 새 멤버가 되기로 한 것이다.

여자가 남자가 되는 걸로도 모자라 남자행세를 하고 가수까지 하는, 도저히 가능할 것 같지 않은 이 약간은 황당무계한 이야기는 홍자매 특유의 상상력과 결합하여 현실세계에 안착한다. 그러나 완전히 땅에 닿은 것은 아니고, 아주 조금 허공에 붕 떠 있는 상태로, 드라마는 '한 번쯤 우리 오빠들에게도 이런 일이?'의 심정으로 아이돌 팬픽을 쓰고 읽고 열광하는 아이돌 팬덤을 브라운관 앞으로 끌어 모은다.

아이돌 팬카페 등에 올라오는 팬픽 중에는 남성 멤버들끼리의 사랑을 다룬 소위 BL(Boys Love)물이 높은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미남이시네요>는 그런 팬픽에 열광하며 그것을 소비하는 계층의 구미에 딱 들어맞는 드라마다. 남장여자 고미남과 황태경(장근석 분), 에이엔젤의 두 멤버가 사랑을 싹틔우며 달달한 러브스토리를 펼쳐나가는 것은 그야말로 팬픽에서나 가능했던 일, 이제 그것이 상상에서 끝나지 않고 실제 영상으로 눈앞에 펼쳐진 것이다.

중요한 건 고미남과 황태경, 그리고 강신우(정용화 분)가 가세한 삼각 러브라인은 동성애 코드일 뿐, 진짜 동성애는 아니라는 것이다. 고미남은 남자 연기를 할 뿐, 어차피 진짜 남자는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드라마는 동성애를 다룬 팬픽을 부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는 사람들도 포용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결국 <미남이시네요>는 BL물을 소비하는 계층과 그렇지 않은 계층까지 모두 대리만족시킬 수 있는 드라마다.

무거운 주제 '휙~' 던져버린 <미남이시네요>

<미남이시네요>에서 남장여자인 미녀 역할을 맡은 박신혜.
 <미남이시네요>에서 남장여자인 미녀 역할을 맡은 박신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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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의 남장여자가 등장하는 드라마들은 대개 남장여자를 사랑하게 되는 극중 인물의 갈등과 거기서 생기는 긴장감을 중요하게 다뤘다. <커피프린스 1호점>에서 남자 주인공 최한결(공유)이 고은찬(윤은혜)이 여자임을 알게 되는 순간, <바람의 화원>에서 정향(문채원)과 김홍도(박신양)가 신윤복(문근영)이 여자임을 알게 되는 순간, 갈등과 긴장감은 절정에 달했다. 그런데 <미남이시네요>는 갈등도 긴장감도 없다. 이미 2회에서 황태경과 강신우는 고미남이 여자인 것을 알아버렸다.

황태경이 앞으로도 계속 고미남을 남자로 알고 지낸다면 그는 어느 순간부터 고민하게 될 것이다. 나는 왜 남자를 사랑하게 되었을까, 하고 말이다. 그리고 갈등할 것이다. 최한결이 그랬고, 김홍도가 그랬듯이. 여기서 홍자매가 <미남이시네요>를 어떻게 쓸 것인지에 대한 예측이 가능하다. 되도록 밝게, 되도록 가볍게, 되도록 유쾌하게. 진지하고 어려운 것은 싹 다 걸러내고 그야말로 순도 100%의 상큼한 드라마로 만들겠다는 의도가 보인다.

'동성애'라는 사회의 암묵적인 금기와 파격에 맞닥뜨린 인물의 내적 갈등과 그것을 짓누르려드는 사회적 통념에 근거한 외적 압박 등을 통해 인간 본연의 의미를 성찰하고 어쩌고 하는, 그런 무거운 주제의식일랑 저 멀리 던져 버린다. <미남이시네요>는 그런 걸 그리는 드라마가 아니라고, 홍자매는 드라마 초반에 선을 그은 게 아닐까? 고미남이 여자라는 사실을 일찌감치 드러내 애초부터 고민할 여지 따윈 남겨두지 않았으니 말이다.

아이돌과 연예계를 그리는 드라마지만 이 부분에 대해서도 진지하거나 깊은 고민, 문제의식 같은 것은 찾아보기 어렵다. 현실세계에선 아이돌 가수의 불공정 계약 문제로 가수와 기획사 간에 법정다툼까지 벌어지고 있지만, 드라마 속 계약은 여동생인 고미녀가 오빠 고미남의 행세를 하며 사인하는 걸로 가볍게 마무리된다. <온에어>는 적당히, <그들이 사는 세상>은 지나치게 진지모드로 일관했다면, <미남이시네요>는 100%의 판타지다.

<온에어>의 진상우(이형철)나 <그들이 사는 세상>의 윤영(배종옥) 같은, 냉철하고 카리스마 넘치는 연예기획사 사장님도 <미남이시네요>에서는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매사에 긍정적이고 고미남이 여자라는 사실도 모를 정도로 둔하며 "No problem!", "Take it easy~" 같은 쉬운 영어를 아무데서나 남발하는 안사장(정찬 분)이 존재할 뿐이다. 거기에 매니저 마훈이(김인권 분)와 코디네이터 왕코디(최수은 분)까지, AN기획사에는 밝고 유쾌한 캐릭터 일색이다.

주연 연기는 합격점... 고정 시청자 확보가 문제

주연배우들의 연기는 대부분 합격점을 주고 싶다. 박신혜의 남장 연기가 도저히 남자 같지 않다는 비판도 있지만, 고미남은 지금까지 쭉 수녀원에서 수녀가 되기 위한 삶을 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타의에 의해 남자가 된 캐릭터다. 어려서부터 가족의 생계를 책임진 채 남자 행세를 해야 했던 고은찬이나 화원이 되어 가문의 명성을 드높여야 했던 신윤복과는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는 입장인 것이다.

장근석의 연기는 <베토벤 바이러스>의 강마에를 떠올리게 한다. 오만하고 독선적이며 매사에 시니컬한, 천재적인 실력을 가진 음악인이라는 점에서 강마에와 황태경은 확실히 닮은 구석이 있다. 어쩌면 장근석은 황태경이란 캐릭터를 잡아가는 힌트를 강마에에게서 찾았는지도 모른다. 낮게 깔리는 목소리나 또박또박, 강하게 끊어지는 대사하며, 여러 부분에서 강마에와 황태경은 참 많이 닮았다.

드라마 <미남이시네요>
 드라마 <미남이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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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작 <태양을 삼켜라>가 20%에 가까운 시청률로 동시간대 1위로 종영하고 바통을 넘겨줬지만 <미남이시네요>는 그 이점을 잘 살리지 못하고 방송 첫 주 9~10%의 시청률로 동시간대 2위에 머물러야 했다. 그러나 앞으로가 더 큰 문제다. KBS에선 200억원의 제작비를 자랑하는 초거대 블록버스터 미니시리즈 <아이리스>가 준비 중이고, MBC에선 이준기, 김민정 주연의 <히어로>(가제)가 준비 중이다.

경쟁작들과의 치열한 시청률 싸움에서 살아남으려면, <미남이시네요>는 일단 고정 시청자 층을 구축해 놓는 것이 시급하다. 다행히 시청률에서 더블 스코어 차이를 보이고 있는 MBC <맨땅에 헤딩>이 종영까지 약 3주 정도 남아 있으므로 그 기간 동안 <아이리스>와 부딪치면서 조금씩 고정 시청자의 폭을 늘리는 것이 중요하다. 당연한 말이지만, 그러려면 극 초반의 이야기 전개와 분위기가 중요하다.

한쪽은 이병헌, 김태희를 앞세운 블록버스터, 다른 한쪽은 이준기 주연의 기자들의 세계를 다룬 화제성 높은 드라마. 어찌 보면 대진운이 좋지 못하다고 느껴질 법하다. 그러나 홍자매의 드라마는 대개 그래왔다. <쾌도홍길동>은 <뉴하트>와 <온에어>의 틈바구니에서, <환상의 커플>은 <대조영>의 시청률에 눌렸었다. 그러나 두 작품 모두 탄탄한 마니아층을 만들어 경쟁작 못지 않은 인기를 구가했다.

<미남이시네요>가 치열한 가을 수목드라마의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인가. 제작진과 홍자매, 출연배우들의 어깨가 무겁다.


태그:#미남이시네요, #장근석, #박신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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