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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누나 이쪽으로 와 봐. 여기 진짜 많아."

 

남동생은 마치 어린시절로 돌아간 듯 신이 난 목소리였다. 남동생은 언니네 집에만 오면 평소와는 다른 모습이 나오곤 한다. 삽질을 한다거나 장갑을 끼고 무슨 일을 하는 동생의 모습은 무척 낯설다.

 

난 동생이 오라는 곳으로 갔다. 가는 곳마다 밤이 밟힌다. 떨어진 밤송이 알밤들이 수두룩했다. 수두룩히 떨어져 있는 밤을 보기만 해도 좋았다. 알밤을 만들기 위해 껍질을 벗기려다 밤송이 가시에 찔리기도 하지만 재미있다. 올케는 곧 돌아올 시아버지(나에게는 친정아버지) 기일에 올려 놓는다면서 열심히 줍는다.

 

언니가 충주로 이사해서 맞이하는 첫 가을은 우리에게 무척 풍요로웠다. 지난 일요일(11일) 가을이 다가기 전에 얼른 가을을 보러 오라는 언니의 말에 동생부부와 조카, 나는 충주에 갔다. 남편은 일이 있어 가지 못했다. 달리는 차창 밖이 가을이 왔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맛깔스럽고 푸짐한 반찬으로 점심을 맛있게 먹고 앞마당에서 고구마를 캤다. 고구마를 캔 후 언니네 앞마당에 있는 밤나무에서 떨어진 밤을 주었지만 양이 적어 내친김에 동네 뒷산으로 향했다. 동네 뒷산이라 높지는 않았지만 나무가 많아 마치 깊은 숲으로  들어가는 것 같았다.

 

한창 사진을 찍고 있는데 뒤에서 '후다닥' 소리가 들려온다. 마치 큰 개처럼 건너편으로 사라지는 모습이다.

 

"어머  언니 저거 개는 아닌 것 같은데 사슴인가 봐."

"응 그거 고라니란다. 형부는 두 번이나 봤다는데 나는 아직 한번도 못봤다." 

 

녀석이 어찌나 빠른지 그 근처까지 갔지만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그날 고라니를 본 사람은 나 혼자뿐이었다.

 

나무가 많고 인적이 드문 곳이라 동물들도 꽤 여러 종류가 있는 듯했다. 제법 큰 청솔모가 나무 사이를 넘나들면서 놀고 있는 모습. 까마귀소리가 들려오기도 한다.

 

"언니 여기가 공기가 좋긴 좋은가 보다."

"좋지. 밤에 달빛 아래에서 책을 읽을 정도로 밝고, 별이 쏟아지는 것같이 하늘이 가깝게 보이니깐. 그런데 요즘은 멧돼지가 나타날까 봐 걱정도 된다."

 

듣고 보니 나도 은근히 걱정이 되었다. 집들이 그다지 많이 있는 곳이 아니라. 언니는 어쩌다 복잡한 곳에 가면  머리가 아프고 어지럽다고 한다. 어느새 시골사람이 다 되어있었다. 청솔모란 녀석도 너무 빨라 사진을 찍을 수가 없었다.

 

언니도 그곳에 이사와서 그 산을 오기는 처음이라고 했다. 숲이 우거지고 갑자기 짐승들도 출현하는 곳이라 혼자 오기는 쉽지 않은 장소란 생각이 들었다. 산을 내려오는 길에 작은 교회를 들렀다. 오래된 종이 있다면서 언니가 가자고 하기에. 정말 요즘은 보기 힘든 녹슨 작은 종이었다. 항아리에 의지해서 높이 솟은 굴뚝도 오랜만에 보는 정겨운 시골풍경이다.

 

하루 종일 햇볕이 드는 언니네 앞마당에서는 가을이 익어가고 있었다. 언니는 올해 완전 태양초를 35근 정도 말렸다고 한다. 늘 텃밭에서 채소를 가꾸는 언니는 태양초를 그렇게 많이 말리기는 처음이라고 했다. 그래서인가. 언니네 김치가 정말 맛있다.
 
더 놀다 오고 싶었지만 길이 막힐세라 서둘러 언니 집을 나서야 했다. 우리가 가려고 준비를 하자 언니가 직접 심은 참깨로 짠 참기름, 참깨, 도토리묵, 복숭아 등 바리 바리 싸준다. "언니야 꼭 친정에 왔다 가는 것 같다"라고 말하니깐 언니도 "그럼 여기가 친정이지" 하면서 웃는다. 엄마생각이 나는 시간이기도 했다.
 
자주 와보고 싶지만 사는 것이 바빠  그러지 못하고 있다. 언니는 차창 안을 들여다보면서 "다음에 와서는 자고 가라." 한다. 언니가 많이 서운하고 쓸쓸한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공기는 좋지만 도시처럼 시끌벅적하는 분위기는 없고 지나칠 정도로 조용한 곳이라 그럴 것이다. 다음에 다른 사람 다 빼고 올케와 나, 둘이 함께 와서 자고 갈 계획을 세우고 언니집을 떠났다.
 


태그:#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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