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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의 여성 탤런트가 요실금 팬티 광고에 나와 이 팬티만 착용하면 활동하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다고 '방방' 뛸 만큼, 여성들이 숨기고 싶었던 부끄러운 병 요실금은 이제 일급비밀은 아니다.

기침만 해도 소변을 지리고, 화장실 갈 동안을 참지 못해 속옷에 실례를 해버리는 어이없는 병. 중환자도 아니고 멀쩡한 몸과 맨 정신을 가진 사람 그것도 여성이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속옷을 버리는 치욕은 생명엔 지장이 없는 질병이라 하더라도 여성들에게 감당할 수 없는 고통을 안겨준다.

심한 요실금 증세로 운동을 거부하고 여행을 무서워하는 우리 엄마도 그렇고, 나 자신도 중증은 아니지만, 수술을 고려할 정도로 행동에 제약을 받고 있어 요실금이 얼마나 심각한 병인가를 실감하고 있다.

"시장 갈 때도 기저귀... 우울증까지 생겨"

한 요실금 패드 업체 홈페이지에 있는 요실금 팬티. 홈페이지 캡처 사진.
 한 요실금 패드 업체 홈페이지에 있는 요실금 팬티. 홈페이지 캡처 사진.
내가 이름도 요상한 '요실금'이란 병명을 처음 들었던 때는 1996년도였다. 유방암 수술을 받고 3인실에 입원해 있을 때인데 옆 침대에 대장암 수술을 받은 할머니가 계셨고, 또 한 침대에는 우리 중 제일 나중에 수술을 받아 통증으로 괴로워하던 50대 아주머니가 누워 있었다.

처치 부위로 보건데 산부인과 쪽이 분명했다. 혹시 이 양반도 암수술 환자인가 궁금하기도 해서 어느 날 병명을 물어봤다.

"어디를 수술하셨어요?"  

불쑥 물어보니까 아주머니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남부끄러운 병이라 말 할 수가 없어요."

산부인과 쪽이면 자궁근종이 제일 흔한 수술인데 자궁근종을 부끄럽다고 할 리는 없고 남부끄러운 병이라니 더더욱 궁금해졌다. 마침 병실에 우리 둘 밖에 없는 기회를 타 또다시 병명을 물으니 그때서야 수줍게 대답을 하는 것이었다.

"요실금이에요. 증상이 하도 심해 시장을 갈 때도 아기 기저귀를 차고 갈 정도라 밖의 활동은 꿈도 못 꿨어요. 집에만 있다 보니까 짜증도 심해지고 우울증도 생기고. 남편이 강권을 해 지방 대학병원에서 수술을 받았는데 재발했지 뭐예요. 그래서 서울에서 요실금 수술에 권위가 있다는 이 병원 박사님을 소개받아 올라왔어요."

부모 형제는커녕 자식들에게도 말하기 창피해 교사였던 남편 방학을 틈타 수술했다는 아주머니. 지금이야 요실금에 대한 정보가 공중파 방송과 온갖 대중매체에 난립을 하고 있지만 그때만 하더라도 요실금은 그만큼 남부끄러운 병이었다.

병명도 처음 들었지만 오줌 지리는 증세가 이렇게 힘든 수술을 그것도 두 차례에 걸쳐 받을 만큼 고통스러울까 싶어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러다 다음해에야 요실금 수술이 무진장 성공하기 어렵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나는 유방암 수술 1년 만에 자궁근종과 난소 종양 때문에 또다시 수술을 하게 되었는데 입원 중에 병원 복도에서 작년의 그 보호자, 바로 요실금 아내를 간호하던 선생을 만난 것이었다. 이산가족 만난 것처럼 반가워하며 웬일이냐고 물었더니 그 아주머니가 1년 만에 또다시 재발하여 3번째 수술을 받았다는 것이다.

엄마랑 외식 중 혼비백산 줄행랑친 사연

요실금은 어머니 또래의 할머니들 뿐만 아니라, 이제 오십 중반을 넘어선 나의 문제이기도 하다. (자료사진)
 요실금은 어머니 또래의 할머니들 뿐만 아니라, 이제 오십 중반을 넘어선 나의 문제이기도 하다. (자료사진)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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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실금 수술의 후유증과 완치가 얼마나 어려운가를 그때 알았는데 몇 해 뒤 우리 엄마 때문에 요실금 수술을 심각하게 검토할 일이 생기고 말았다. 엄마가 일흔 서넛쯤 되셨을 때였던 것 같다.

그즈음 엄마가 통 식욕이 없다고 하시기에 동생과 둘이 엄마를 모시고 외식을 하기로 했다. 갈비라면 입맛을 찾으실까 생각해 소문난 '숯불갈비집'으로 엄마를 모셨는데 식사 도중에 엄마가 갑자기 재채기를 하시는 것이었다.

재채기 하신 것이 큰 일도 아니고, 나야 먹던 일에만 전념했고 엄마 옆에 앉은 동생이 휴지를 뽑아 엄마 입가를 닦아드렸는데 갑자기 엄마 얼굴이 벌겋게 상기되면서 수저를 내려놓으시는 것이 아닌가.

"엄마, 왜 그래?"

영문을 모르는 딸들이 어리둥절하니까 엄마가 울 듯한 표정으로 설명도 못하고 안절부절 하기 시작하더니 뭔 소린지 작은 딸의 귀에다 소곤거리셨다. 뒤이어 동생의 표정도 달라졌다.

무슨 일이냐고 내가 물었더니 주변 눈치를 살피던 동생이 남들 안 듣게 한다는 소리가 갑자기 터진 재채기 끝에 엄마가 오줌을 싸셨다는 것이다. 속옷을 조금 버린 정도가 아니라 바지까지 흠뻑 밸 정도로 소변을 흘리신 엄마. 손수건을 꺼내 수습을 하고 그도 모자라 남들 못 보게 앞뒤로 엄마를 호위하고 혼비백산 음식점을 빠져나온 후, 엄마는 남부끄러움 때문에 집에 와서 '펑펑' 우셨다.

아파트 베란다까지 걸레질을 할 정도로 정갈한 우리 엄마. 비록 딸들 앞이었지만 당신의 자존심에 커다란 상처를 입었으리라. 그때부터 엄마의 행동 반경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수술을 받자고 하면 뭔 이만한 일에 몸에 칼을 대냐고 질색을 하시고, 요실금 기저귀를 쓰시라고 하면 불편하고 꺼림칙해서 싫다면서 아예 외출을 자제한다. 불가피하게 외출을 할 때면 화장실을 피하려고 거의 반나절 전부터 물 종류는 입도 안 댈 정도니 엄마와 함께 하는 먼 거리 여행은 꿈도 못 꾼다.

요실금 때문에 외출 자제하는 엄마, 요즘엔 나도...

엄마도 엄마지만 오십 중반을 넘어선 나도 요실금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뜀박질은 엄두도 못 내고 공짜로 가르쳐 주겠다며 강습을 권하던 에어로빅 강사의 호의도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기침 감기가 심하거나 큰 소리로 웃을 때 실수를 하는 일까지 생기고 보니 지금은 엄마처럼 강박증도 생겼다.  

친구들이 지리산 종주를 하자고 권했을 때 요실금 증세 때문에 합류를 못했다. 작은 산이라면 몰라도 큰 산에서 화장실이 급할 때 그 고욕을 어떻게 하나. 더구나 지리산 같은 명산은 등산객도 많아 노상방뇨도 할 수 없고 그렇다고 엄마처럼 물도 입에 안 대고 그 큰 산을 오를 수는 없지 않은가.

십여 년 전, 그 아주머니처럼 재수술에 재수술을 거듭할 정도로 요실금 수술이 어려운 수술도 아니고 지금은 전신마취와 입원이 필요 없을 정도로 요실금 수술이 간단해졌단다. 티오티, 티브이티 수술이 어떻고, 테이프 요법이 어떻고 요실금 수술을 무슨 쌍꺼풀 수술 말하듯이 간단하게 치부하던데 정말 그런지 모르겠다.

수술을 고려하면서도 자꾸 망설임이 앞서는 것은 간단한 그 수술이 사실 만만찮은 후유증과 부작용을 동반한다는 소문 때문이다. 그래도 초고령 장수 세상에 우리 엄마처럼 천형으로 알고 살 수는 없지 않은가. 노후를 대비한 삶의 질을 위해 이젠 결단할 때가 된 것 같다.


태그:#요실금,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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