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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지난 9월 초 <기관총에 맞아죽을 위험>이라는 내 글을 읽으신 R 후배님께 글을 드립니다.

 

 전화를 받고 많은 것을 생각했습니다. 우선 미안함을 표합니다. 당신은 내게 섭섭함을 표했습니다.

 

 "제 발언이 과격하고 잘못되었다는 것을 잘 압니다. 형님이 즉시 그 자리에서 제 잘못을 지적하고 충고해주셨다면 더 좋았을 텐데, 그때는 아무 말씀도 안 하시고 넘어가신 분이 한참 지난 시점에서 그때 일을 가지고 글을 쓰신 것을 보고 많이 당황하고 섭섭했습니다."

 

 이렇게 자신의 심경을 솔직하게 토로했습니다.

 

 전화 통화에서도 표했지만 옳은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때 내가 가만히 있었던 것은 잘못입니다. 하지만 내가 뭐라 얘기를 하기는 어려운 분위기였습니다. 자칫 충돌이 생길 수도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고, 많은 이들이 당신 말에 재미있어 하는 기색이어서 위축감 같은 것도 갖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아무튼 내가 그 후에라도 당신께 불쾌하고 슬펐던 마음을 직접 전달했더라면 좋았을 텐데, 그것조차 하지 않은 것도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그 날 모임에 참석했던 사람들 외로는 누구도 그 글의 내막을 알지 못하도록 쓴 글이긴 합니다만 당사자로서는 많이 불쾌하고 섭섭했으리라는 것을 충분히 짐작합니다. 그럼에도 당신은 매우 온유한 태도를 보였습니다. 선배에 대한 예의를 조금도 잊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지역사회에서 당신이 잘 견지하는 평소의 모습이기도 하지만, 처음엔 많이 격앙되었을 수도 있는 사안인데도 그처럼 냉정함을 잃지 않은 당신의 도량에 경의를 표합니다.

 

 인터넷 상에서 그 글을 읽은 분들 중에는 지역사회에서 긴밀하게 유대하며 살아온 선배(필자)와 후배(소재 제공자)간의 '우정'에 주목하는 분도 있었습니다. '누울 자리를 보고 다리를 뻗은' 게 아니겠느냐는 뜻이었습니다. 남들은 보지 못하는 부분을 살피는 그 분의 예리함에 깊이 감사했습니다.         

 

 나는 당신이 매사에 솔직하고 정직한 사람임을, 또 매우 경우 바른 사람임을 잘 압니다. 개신교 신자이면서 대형 교회들의 세습 문제와 일부 부유한 목회자들의 '호화로운' 생활에 대해 개탄하는 말도 들은 기억이 있습니다. 아무튼 거짓말을 할 줄 모르는 당신의 정직한 품성을 잘 알기에 내가 그런 글도 쓸 수 있었던 것입니다.

 

 당신은 전화 통화에서 평생 동안 유지하고 있는 우국충정의 자세도 토로해 주셨습니다. 오로지 우국충정에서 그 날의 그런 우발적인 발언도 나왔다고 나는 이해합니다. 나는 당신의 순수하면서도 우직한 우국충정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것을 전제하면서 이왕 오늘 이 글을 쓰게 된 계제에 내 쪽의 우국충정에 대해서도 몇 말씀 적고자 합니다.

 

 나는 평생을 살아오면서 '애국심'이라는 것을 잊어본 적이 없습니다. '민주주의'를 사랑한다는 것은 곧 애국심에서 기인한다고 생각합니다. 내게 있어서 애국심과 민주주의는 동의어입니다. 그리하여 민주국가라면 마땅히 추구하고 내포하고 유지해 나가야 할 제반 가치들(자유·정의·진실·공리공생·소통·평등·평화 등등)에 대해 뜨거운 고뇌를 갖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내가 그런 명제들을 놓고 고민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나 자신이 '진보'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나 자신이 '진보'라고 자신 있게 말한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나는 '보수'와 '진보'의 의미를 대략적으로는 파악하고 있지만, 그 두 가지 가치관의 대립성이나 상충성에 대해서는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나는 문인 명색으로 살아오면서 열심히 가치 지향적인 글들을 꽤 많이 써왔지만, 내가 진보이기 때문에 그런 글들을 쓴 것은 아니고, 또한 진보를 위해서 글을 쓴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나는 진보적인 성향과 함께 보수적인 기질도 많은 사람입니다. 그 두 가지 성격을 적절히 조화시키며 사는 것이 창조성과 역동성을 배가시켜 준다는 생각도 하면서, 스스로 균형과 중심을 유지하려고 애쓰는 사람이기도 합니다.

 

 그런 균형적 사고 안에서 가장 중요시하는 것은 하느님 신앙과 양심입니다. 그것으로부터 발현하는 정의감과 진실 추구입니다. 그것들을 위해서 글을 쓰고 작은 행동들을 합니다.

 

 일년 넘게 매월 고정 칼럼을 써오던 어느 종교잡지에서 내 글이 너무 '현실 비판적이고 진보적이다'라는 이유로 최근 퇴출을 당하기도 했습니다만, 내 발언과 주장들은 내가 진보적인 사람이어서가 결코 아닙니다. 하느님 신앙을 빙자하며 현실 권력과 결탁한 바리사이들에 의해 처형당한 예수 그리스도님의 수난과 죽음의 성격을 깊이 헤아리며 살고자 하는 정신, 그리고 세상을 예수님의 눈으로 보고 예수님의 마음으로 판단하고자 하는 '살아 있는 가슴'에서 나오는 언어들이라고 확신합니다.

 

 독재를 미화하고, 기득권 유지에만 혈안이 되고, 민족반역세력을 옹호하고, 민족의 자존심을 안중에 두지 않고, 평화통일 노력을 비난하며 분단 상황을 영구 고착화하려는 것이 보수의 진정한 가치는 아닐 것입니다. 그것이 보수가 지향하는 가치라면, 진보 쪽으로 가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님을 십자가에 못박아 처형한 세상, 기득권 층이 대중을 농락하는 것은 오늘의 현실이기도 하기에, 나는 진보를 위해서이기보다는 '진리'에 기초하는 '정의구현'을 위해 미력하나마 힘껏 글을 쓰고 작은 행동이라도 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에는 '좌파와 우파'라는 용어의 범람 현상에 대한 내 생각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충남 태안의 <태안신문> 8일치 '태안칼럼' 난에 게재된 글입니다. 


#보수와 진보#그리스도 신앙#이념과 양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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