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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인 사찰, 패킷감청, 조직사건 조작, 관계기관대책회의….'

 

위에 나열한 단어들은 국정원·국군기무사·경찰 보안수사대 등과 밀접하다. 흔히 이들 조직을 통칭해 '공안기구'라 부른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의 공안기구는 '공공의 안녕을 지킨다'는 '공안(公安)'의 본래 의미에 충실하지 않다.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뒤 진보정당의 간부와 당원, 노조간부, 약사, 어린이그램책 작가, 예술단체를 사찰하고, 통일운동단체의 활동가들을 패킷감청하는 등 헌법이 보장한 자유권을 침해하는 공안기구의 활동이 속속 드러났기 때문이다.

 

7일 오전 국회도서관 소회의실에서 열린 '공안기구 피해자증언대회'(이정희 민주노동당 의원-민주주의 수호 공안탄압 저지 시민사회단체 네트워크 공동주최) 참가자들은 "지금 대한민국은 감시공화국이 되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개인과외자료도 '촛불'과 관련되면 이적표현물?  

 

첫 번째 증언자로 나선 홍안나 전 범민련 경기인천연합 사무국장은 "국정원은 6․15 공동선언과 10․4 선언지지 활동을 모두 북의 대남적화노선에 따른 것으로 간주하고 수사했다"며 "6․15 공동선언 자체를 부정하고 6․15 공동위를 불법화하기 위한 시도"라고 지적했다.

 

홍 전 사무국장은 국정원이 범민련과 관련된 수사를 진행하면서 이메일, 핸드폰 통화기록, 문자메시지를 통해 일상적 감시와 미행을 해왔다고 주장했다.

 

홍 전 사무국장은 "이메일에 대한 압수기록을 열람한 결과 사건과 관계없는, 매우 사적인 내용의 이메일까지 모두 감시당하고 있었다"며 "(심지어) 상시적 도감청도 부인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어차피 도감청을 통해 다 알고 있을텐데 다시 핸드폰 문자내용을 복제하는 이유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국정원측은 "통화내용은 감청이 가능하지만 문자내용은 도감청이 불가능해 복제할 수밖에 없다"고 답했다고 한다.

 

홍 전 사무국장은 "핸드폰 위치추적을 통해 일상적으로 소재를 파악하고 있었다"며 "핸드폰 도감청과 위치추적, 통화기록을 통한 주변관계 감시, 이메일 감시, 계좌내역 추적, 미행 등을 통해 본인뿐만 아니라 가족과 주변 지인들의 사생활까지도 심각하게 침해당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심지어 국정원은 개인과외자료로 스크랩한 광우병 촛불집회 신문기사까지도 압수하고 반환하지 않고 있다고 한다. 국정원에서 내놓은 이유는 "과외지도 내용이 불순하며 이적표현물로 판명될 소지가 있다"는 것이었다. 

 

홍 전 사무국장은 "국정원은 촛불집회를 비롯해 집회나 시위에 참가한 것을 '국가전복행위'로 규정하고 있다"며 "이는 헌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집회시위의 자유를 인정하지 않는 행위"라고 지적했다.

 

"7월 사찰은 기무사의 서남부팀이 적발된 것"

 

이어 기무사로부터 사찰을 당한 최석희 민주노동당 비상경제상황실장이 증언자로 나섰다. 그는 현재 '기무사 민간인불법사찰피해자 대책위' 대표를 맡고 있다.

 

최 실장은 "기무사가 권력의 시녀가 되어 헌법 8조에 의해 보호받아야 할 합법정당에 정치사찰을 감행했다"며 "기무사의 정치사찰은 국가기관이 나서서 헌법을 유린한 중대한 범죄행위"라고 주장했다.

 

이어 최 실장은 "기무사의 사찰은 개인의 우발적인 행동이 아니라 조직적인 사찰"이라며 기무사 소속 신아무개 대위의 '사찰수첩'을 새롭게 분석한 결과를 내놓았다.

 

"1월 사찰이 재일교포에 초점을 맞춘 기획수사라면, 5월경부터는 주요도시에 기무사의 조직적인 민간인 사찰 시스템을 갖추는 것에 역점을 둔 것으로 보인다. 7-8월 민주노동당 당원들에 대한 사찰 동영상에 서울지역 서남부지역(금천구와 관악구) 지도가 잠깐 나오는데 지도에는 지역을 1·2·3·4로 나누고 숫자 옆에는 지역담당자로 보이는 사람들의 이름과 지역의 주요사찰대상(금속노조 서울남부지회, 서울남부노동상담센터)이 적시돼 있다."

 

최 실장은 "7월 기무사 민간인 사찰은 기무사의 서남부(서울 금천, 관약지역)팀이 적발된 것"이라며 "지도가 벽면에 게시된 곳에서 전화벨이 울리는 것으로 볼 때 기무사의 서남부지역 거점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이이 최 실장은 "기무사 민간인 사찰 서남부팀은 1·2·3·4 구역에 2인 1조로 최소 8~10명으로 구성돼 있다"며 "기무사측으로부터도 '8명의 군인이 했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말했다.

 

"1주일에 한번씩 정기적으로 기무사에서 회의를 하고 사찰대상의 일정을 중심으로 주간일정표를 작성해 숙지하도록 했다. 또 경찰의 도움을 받아서 사찰대상자 주변에 CCTV까지 설치해서 24시간 일상적으로 감시하는 체계를 구축한 것으로 보인다."

 

최 실장을 비롯한 기무사 민간인 사찰피해자들은 지난 9월 11일 기무사에 사찰내용과 관련된 정보공개를 청구했다. 이에 기무사는 한차례 정보공개 기일을 연장했으며, 2차 기일인 6일까지도 답변서를 보내지 않고 있다.

 

"휴대폰과 인터넷 사용하지 말고 원시시대로 돌아가자"

 

또한 지난 8월에는 국정원이 지난해 6월부터 두 달 동안 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자와 그 가족의 인터넷 사용내용까지 감시한 사실이 폭로됐다. 인터넷 회선을 통째로 감청하는 최신기법인 '패킷감청'이 그것이다.

 

당시 패킷감청 의혹을 폭로한 곽동기 남북공동선언실천연대 정책위원은 이날 증언자대회에서 "웹서핑 등 내가 컴퓨터에서 사용한 것을 국정원이 다 살려서 들여다봤다"며 "나뿐만 아니라 인터넷 회선을 함께 사용하는 간부들도 패킷감청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국정원은 집에서 사용하는 개인 컴퓨터까지 24시간 감청했다. 수사와 상관없는 사적인 내용까지 다 가져갔다. 국정원의 감시가 있다는 걸 의식하고 살아야 한다는 것이 매우 고통스럽다. 특히 감청자료를 전부 법원에 제출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언제든지 자료를 다시 꺼내 내 약점을 공격할 수 있다."

 

곽 위원은 "휴대폰과 인터넷까지 감청하고 있어서 주변 사람들에게 '우리 휴대폰이나 인터넷을 쓰지 말고 원시시대로 돌아가 활동하자'고 얘기하기도 했다"며 "휴대폰이나 인터넷을 사용하지 않고는 살 수 없는 21세기에도 항상 감시받고 살아야 하는 상황이 활동가들에게 큰 고통"이라고 말했다.

 

또한 어제(6일) 경찰청 보안국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사회주의노동자네트워크(사노넷) 사무실과 회원의 집을 압수수색했다. 컴퓨터 7대의 하드디스크, 책, 서류 등 총 100여점을 압수한 것으로 전해졌다.

 

<사회주의 노동자신문>의 편집책임자인 건호영씨는 "홍제동 대공분실에서 나왔다고 했다"며 "10여명이 압수영장을 제시하며 압수수색을 했다"고 전했다.

 

건씨는 "사노넷은 정치조직도 아니고 잡지 등 매체를 통해 사회주의 사상을 보급하는 곳"이라며 "지난해 촛불집회 이후 경찰청 보안국 관계자들이 사회과학서점에 진열된 우리 서적을 수거․구입해갔다"고 주장했다.

 

사노넷은 조직이 생긴 지 6년 만에 첫 압수수색을 당하게 됐다. 사노넷은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사회주의 사상조직을 대상으로 압수수색이 벌어졌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건씨는 "사노넷 압수수색은 이명박 정부 아래에서 사회주의를 내건 어떤 활동도 할 수 없다는 신호"라고 말했다.

 

또한 사회주의노동자연합(사노련) 활동가인 남궁원씨는 "사노련 회의, 수련회, 출범식 등에 참가한 인원수까지 정확하게 파악할 정도로 '사상검증'을 준비하기 위한 사찰을 체계적으로 진행했다"며 "주로 이메일과 공개적으로 발행해온 이론지, 신문, 책자 등의 내용을 작위적으로 분석했다"고 말했다.

 

남궁씨는 "촛불집회, 공공부문 노동자대회 등에 참가한 사노련 회원 및 지지자들에 대한 사진 채증, 핸드폰 통화내역, 핸드폰 위치추적, 이메일 사찰, 공개 월례토론회 참가자 사진채증, 사노련 회의자료 분석 등이 진행됐다"고 주장했다.

 

검찰은 지난해 8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오세철 연세대 명예교수 등 사노련 간부와 회원들을 연행했다. 하지만 법원이 잇달아 구속영장청구를 기각하자, 지난 8월 오 교수 등을 비롯해 사노련 관련자 8명을 국가변란을 목적으로 선전·선동활동을 했다는 혐의로 기소했다. 평택 쌍용차 공장투쟁에 연대한 것을 두고 '국가변란을 위한 선전․선동활동'으로 낙인찍은 것.

 

"수천페이지 수사보고서가 제 허리까지 닿아"

 

마지막 증언자는 대학교 총학생회장이었다. 지난 7월 강제연행돼 홍제동 대공분실에서 조사를 받았던 하인준 건국대 총학생회장은 "수사가 시작되고 저는 엄청난 사실을 알았다"며 이렇게 말했다.

 

"제가 집회현장에 있었던 사진을 모두 채증하여 확대시켜 문서화되어 있었고, 제 휴대폰 발신기지국을 추적해 몇시 몇분 어디서 누구에게 발신했는지 하나하나 보고서로 되어 있었다. 그리고 제가 인터넷에 게재한 모든 글, 이메일을 다 뒤져서 정리해놓았다. 저에 관한 수사보고서가 제 허리까지 올 만큼 수천페이지였다."

 

하 총학생회장은 "저를 수사하기 위해 보안수사관 5-7명이 배치되어 서너달 간 집중 수사하고 한달간은 미행을 했었다"며 "저라는 사람을 수사하기 위해 한달에 몇백만원씩 월급을 받는 형사를 수명씩 배치할 정도로 대한민국 경찰이 할 일이 없는가?"라고 꼬집었다.

 

"모든 집회에 대한 기물파손을 저에게 뒤집어 씌우려 하고, 사회분란을 조장했다는 명목이 너무나 어이없었다. 심지어 제가 총학생회장이 되기 위해 광우병 집회를 조직하고 단체를 결성하지 않았느냐 하는 어처구니없는 수사까지 진행했다. 정말 막나가는 이명박 정부였다."

 

하 총학생회장은 "학교의 친구들과 부모님이 국회의원과 검찰청에도 연락을 했다고 한다"며 "하지만 들려온 답변은 이 사건은 청와대 치안부 관할이기 때문에 그 누구도 간섭할 수 없었다고 한다"고 전했다.

 

이날 증언자대회 참석자들은 '대한국민 국회에 요구한다'는 제목의 공동성명서에서 ▲공안기구 불법행위 국정감사 실시 ▲책임자 문책과 법적 제재 실행 ▲공안기구 불법행위 재발 방지책 마련 등을 요구했다.


태그:#공안기구 피해자 증언대회, #이정희, #민주주의 수호 공안탄압 저지 시민사회네트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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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전남 강진 출생. 조대부고-고려대 국문과. 월간 <사회평론 길>과 <말>거쳐 현재 <오마이뉴스> 기자. 한국인터넷기자상과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회) 수상. 저서 : <검사와 스폰서><시민을 고소하는 나라><한 조각의 진실><표창원, 보수의 품격><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국세청은 정의로운가><나의 MB 재산 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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