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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병상생활 이후로 중단된 중요한 일 한 가지가 일주일에 한 번씩 70리 상간인 해미성지에 가서 물을 길어오던 일입니다.

 

나는 해미성지 물을 일러 '사수(四水)'라고 불렀습니다. 네 가지 성격의 물이라는 뜻이지요. 성지에서 나는 물이니 성수요, 살아 있는 물이니 생수인데, 서산시에서 일년에 네 번씩 수질검사를 할 때마다 오염되지 않은 깨끗한 물인 데다가 일상 음용에 적합한 약약수(弱藥水)라는 판정이 나옵니다.

 

그런데 심산유곡도 아닌 곳에서 나는 물이 어째서 약수일까? 옛날 박해시대 생매장 당한 수많은 무명순교자들의 몸에서 육수가 흘러서 약수가 되었다는 것이죠. 우스개 말이면서도 의미심장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아무튼 이렇게 좋은 사수(성수·생수·약수·육수)를 나 혼자 먹으면 죄 짓는 일이 되겠기에 1996년 가을부터 지난해 봄까지 12년 동안 일주일에 한 번 꼴로 내 승합차 가득 물을 길어다가 여러 이웃들에게 나누어드리는 일을 했습니다. 어디 먼길 출타를 할 때도 꼭 해미성지에 들러 물을 길어다가 그곳의 혈육이나 친지들에게 주곤 했지요.

 

그런데 지난해 '태안 기름과의 전쟁'과 관련하여 병상생활을 한 이후로는 건강이 온전치 않은 관계로 아직 그 일을 재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많이 아쉽습니다.

 

해미성지 물을 긷기 전에는, 그러니까 1991년부터 5년 동안은 해미와 덕산 사이 가야산의 한 자락인 태암석산이라는 곳에서 물을 길어왔습니다.

 

그런데 한번은 물을 길을 때 재미있는 일이 있었습니다. 내가 열 개도 넘는 물통을 늘어놓고 물을 긷자니, 물을 길으러 온 한 사람이 조금은 부은 얼굴로 묻는 것이었습니다.

 

"웬 물통이 이렇게 많대요? 음식점 허슈?"

 

"아니요. 이 좋은 물을 나 혼자 마시면 죄가 될 것 같아서 여러 이웃들에게 나누어드리려구요."

 

그러자 그는 좀더 의아한 표정이더니 잠시 후 다시 물었습니다.

 

"워디서 사시는 분인지는 물르지먼, 군의원 출마헐라구 그러슈?"

 

너무도 엉뚱한 질문이어서 얼른 대답을 못하는데, 유치원생인 내 딸아이가 대신 대답해주는 것이었습니다.

 

"우리 아빠, 하느님 점수 딸라구 그래요."

"뭐? 하느님 점수?"

"네, 하느님 점수요."

 

나는 지금도 그때 생각을 하면 웃음도 나오고 다시 긴장도 됩니다. 그때부터 '하느님 점수'라는 말이 새삼스럽게 내 머리에 각인이 되었는데, 알게 모르게 그것을 의식하고 살면서도 별 실적은 없지 싶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천주교 대전교구의 2009년 10월 3일치 <대전주보>에 게재된 글입니다. 재미있는 내용이어서 여기에도 올립니다. 


태그:#하느님의 점수, #해미성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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