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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1975년말 제대후 76년부터 서울생활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한해도 빠짐없이 추석과 설날에 전라남도 순천의 고향집을 찾았다. 그러니 명절에 찾는 귀성길만 이번이 67번째쯤 되는 셈이다.

그 동안 명절에 고향가는 길은 그야말로 전쟁이나 다름이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자가용이 보편화 되지 않았던 70년대 시절에는 용산역에서 완행열차에 몸을 실으면 선반 위에 올라가서 자는 사람도 있었고, 의자와 의자 사이에 들어가 신문지 깔고 누운 사람도 있었다. 그야말로 열차와 고속버스를 통한 귀향길의 별별 풍경들이 신문지상을 장식하는 일이 많았다.

그러다 80년대 들어서서는 자가용을 이용한 귀성이 보편화 되면서 고속도로가 주차장이 되는 풍경이 주요 뉴스거리가 되었다. 실제 나도 89년 설엔가는 설 전날 폭설이 내려 고향 순천가는데 총 24시간이 걸린 기록이 있다. 그래서 명절 지나고 직장에 출근하면 첫인사가 "차 막혀서. 고향길 고생 많이 했지요?"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최근 약 4~5년 전부터는 경기 충청지역을 중심으로 여러 개의 고속도로가 개통되면서 그렇게 극심한 정체는 일어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런데 금년은 추석연휴가 앞뒤로 주말이 끼지 않고 토요일이 추석인 관계로 쉬는 날을 이틀이나 까먹을 뿐 아니라 연휴가 3일밖에 되지 않아 체증이 극심할 것이라는 예측 보도가 집중되어 34년만에 고향 가는 길을 접어야 하는가 등등 고민을 많이 했다. KTX나 고속버스표 구하기도 쉽지 않다 하고, 승용차는 나이가 10년이 넘고 25만km를 넘게 주행한 낡은 차라 장거리에 올려놓기는 겁도 나고 했다.

그러던 차에 형수씨가 근무하는 서울특별시에서 후생복지차원에서 복지포인트를 활용한 귀성버스를 운행하는데 어머님 모시고 조카들 둘을 데리고 가려고 신청을 했는데 신세대인 조카 두 명이 아버지 고향을 이번에는 안가겠다고 하여 두 자리가 빈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 부부는 그 편을 이용할 수가 있었다.

서울특별시의 귀성버스 잠실에서 순천까지 34년 만의 가장 편한 귀성길이 되게해 준 서울시의 귀성버스.
서울특별시의 귀성버스잠실에서 순천까지 34년 만의 가장 편한 귀성길이 되게해 준 서울시의 귀성버스. ⓒ 양동정

10월 1일 목요일 오후 여섯시에 잠실종합운동장 광장에 도착하니 수십대의 귀성버스들이 주차를 하고 귀성객들을 기다리고 있다. 여러 은행에서 운행하는 귀성버스도 많지만 서울시에서 운행하는 귀성버스는 총 48대에 약 1400명이 이용하는데 노선이 우리 고향 순천을 비롯해 총 27개 노선이다. 경유지까지 포함하면 전국 어디든지 갈 수가 있는 것을 보고 이것이 창의 시정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6시에 잠실을 출발한 관광버스는 올림픽대로를 따라 경부고속 도로에 올려놓으니 전용차선을 이용해 기흥까지는 쉼없이 내달린다. 기흥부터는 지체와 서행을 반복하지만 일반차로와는 비교도 안되게 빠르다. 천안 논산간 민자고속도로를 들어설 줄 알았더니, 노련한 버스 기사님은 천안 논산, 전주 구간이 많이 막히니 대진 고속도로를 이용하겠단다. 대전을 지나 대진고속도로에 올라서니 전혀 막힘이 없다. 장수 나들목에서 국도로 내려와 지리산 자락인 남원, 구례를 지나 목적지 순천종합 터미널에 도착하니 밤 12시 30분이다. 6시간 반이 걸린 셈으로 평상시 주말보다 빨랐던 것 같다.

아버님 돌아가시고 어머님이 서울에 주로 기거하셔서 약 6개월여 동안 비어 있는 비내리는 고향집이지만, 대문 열고 전깃불을 켜니 이리도 마음 푸근함을 느낄 수가 있는가?

마당에 풀도 뽑고 집안정리에 하루가 지나고, 다시 귀경길 걱정이 시작된다. 내려올 때는 우리가 출발하는 시간인 1일 오후 6시경이 가장 정체가 심할 것이라는 예측 보도가 나가고 오히려 많은 사람들이 이 시간을 피하는 바람에 수월하게 왔는데, 올라가는 시간도 역시 가장 정체가 심할 것이라고 예측한 시간과 일치한다. 하지만 약속된 시간이니 어쩔 수 없는일.

고향집에 며칠 머물다 오시겠다는 어머님은 남겨두고 세 식구가 10월 4일 일요일 아침9시에 약속장소인 순천종합터미널 부근에 도착하니 귀향 때의 그 버스가 기다리고 있다. 역시 노련한 경원 월드 관광버스의 그 기사분이 내려갈 때의 그 코스를 잡아 출발을 하신다.

남원을 들어설 때까지는 차창 밖의 모습을 보며 짙어가는 가을 만끽하다 잠시 잠이 들었는데 휴게소라는 방송이 나와 내려보니 벌써 경부고속도로 신탄진 휴게소다. 시간이 11시 50분 정도다. 20분간의 시간을 주어 이제부터 막힐 것에 대비하여 자장면도 하나 먹고 화장실도 다녀오고 하였다.

하지만 나의 우려는 여지없이 빗나가고 말았다. 천안 논산고속도로와 합류하는 지점에서 잠시 주춤 거리더니 전용차로를 이용한 우리의 귀경버스는 잘도 달린다. 경기도 기흥쯤에 도착하니 일반차로의 정체는 꽤나 심하다. 하지만 버스 전용차로를 이용한 우리의 버스는 잘도 달려 서울 톨게이트에 통과 시간이 13시 30분,  정확히 4시간 반이 걸린 셈으로 평일 승용차를 이용한 시간이나 마찬가지다. 여기서 출발지인 잠실운동장까지 30분, 거여동 집까지 고향집을 출발한 지 6시간만에 들어온 셈이다. 그리고 네 명의 귀성 비용은 택시비 1만오천. 국수 세 그릇에 1만원. 총 2만5천원밖에 쓰지 않았으니 이런 횡재가 어디 있는가?

아마도 이번 귀성길 체증이 덜 했던 것은 새로운 고속도로 개통 이유도 있겠지만. 신종인풀루와 짧은 연휴로 인해 정체가 심할 것이라는 보도를 많이 하는 바람에 귀성을 포기한 사람이 많았던 것 같고, 오히려 정체가 심할 것이라고 예측한 시간대에 출발 한 것이 오히려 남들이 기피한 시간대가 아니었는가 싶다. 그래서 앞으로 귀성은 언론에서 가장 체증이 심할 것이라고 예측한 시간을 이용하는 방법도 좋을 것 같다.

이 안에 모든 것이 서울시 직원 귀성을 돕기위한 모든 프로그램이 여기에..
이 안에 모든 것이서울시 직원 귀성을 돕기위한 모든 프로그램이 여기에.. ⓒ 양동정

이번 추석이 아마도 귀성 34년 만에 가장 편한 귀성길이 된것 같다. 이 자리를 빌어서 서울시의 귀성버스 운행에 관한 세심한 배려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전국 어디든지 이용할 수있는 노선 편성이라든지, 차량별 담당직원을 지정하여 이용객한테 친절하게 배려한 부분 등에 대해서 수십년 서울시 행정의 노하우와 창의시정를 보는 듯했다. 정말 편안하고 저렴한  귀향과 귀성길이 된 2009년 추석으로 기억될 것 같다.


#창의시정#하이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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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가는 인터넷신문 오마이뉴스의 역할에 공감하는 바 있어 오랜 공직 생활 동안의 경험으로 고착화 된 생각에서 탈피한 시민의 시각으로 살아가는 이야기를 진솔하게 그려 보고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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