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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월 30일 이명박 대통령의 G20 정상회의 유치 국민보고 특별 기자회견이 열렸다.
9월 30일 이명박 대통령의 G20 정상회의 유치 국민보고 특별 기자회견이 열렸다. ⓒ 청와대

이명박 대통령의 'G20 정상회의 유치 보고' 특별기자회견에서 최대 현안인 세종시에 대한 질문이 제외된 것과 관련 언론들의 '반성문'이 줄을 잇고 있다. 청와대가 '세종시 관련 질문을 빼달라'며 언론에 재갈을 물린 것도 문제지만, 이를 순순히 받아들인 언론의 책임이 더 크다는 것이다.

 

<한겨레>는 2일자 신문 사설 <기자회견 질문까지 '원천봉쇄'하는 청와대>에서 "청와대는 엊그제 이명박 대통령의 기자회견에 앞서 기자들에게 최근 정국의 최대 현안으로 떠오른 세종시 문제에 대해서는 질문을 하지 말 것을 요청했다고 한다"며 "청와대도 잘못이지만 이런 터무니없는 요청을 받아들인 언론의 책임은 더 크다"고 밝혔다.

 

앞서 <조선일보>도 1일자 신문 사설 <변방서 중심국 된 대한민국, 그리고 부끄러운 언론>에서 "세종시 문제를 대통령에게 단 하나도 질문하지 않았다는 것은 부끄러운 언론 직무의 포기였다"며 "조선일보도 그 잘못된 한국 언론 속에 포함된다"고 반성했다.

 

청와대, 세종시 질문에 난색... 기자단, 항의 없이 대체 질문

 

 이명박 대통령의 특별 기자회견 모습
이명박 대통령의 특별 기자회견 모습 ⓒ 청와대

도대체 이명박 대통령의 기자회견을 앞두고 청와대 기자실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청와대 출입 기자들의 말을 종합해보면 이렇다.

 

대통령이 기자회견을 하게 되면, 청와대는 사전에 기자들과 질문 수나 내용 등을 조율하는 것이 관례처럼 이어져왔다. 기자들의 질문에 대한 답변을 미리 준비하기 위해서라는 게 명분이지만, 사실상 생중계로 진행되는 기자회견에서 예측할 수 없는 돌발 질문을 애초에 차단하기 위함이다.

 

'G20 정상회의 유치보고'를 위한 이 대통령의 특별기자회견을 하루 앞둔 지난달 29일에도 청와대 출입기자들은 춘추관(기자실)에 모여 기자회견 질문과 관련해 의견을 나눴다. 앞서 청와대측에서는 G20 정상회의 관련 2개, 서민·경제 관련 2개, 현안 관련 2개 등 총 5개의 질문만을 받겠다고 통보했다.

 

이에 따라 기자들은 질문을 할 언론사와 주제 등을 정했다. 특히 현안과 관련해 기자들은 이구동성으로 가장 뜨거운 이슈인 세종시 문제를 묻자고 했고, 구체적인 질문 내용까지 만들었다. 이후 이동관 청와대 홍보수석이 기자실에 들어왔다. 기자들의 질문 내용을 파악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기자들이 세종시 문제에 대한 이 대통령의 견해를 묻겠다고 하자, 이동관 홍보수석은 "너무나 민감한 사안"이라며 난색을 표했다고 한다. 

 

한 청와대 출입기자는 "(이동관 수석이) '세종시는 검토 중인 사안이고, 대통령에게 어떻게 하겠다는 보고도 안 됐고, 대통령이 어떻게 하겠다는 결심도 안 했는데, 이런 상황에서 질문을 하면 이상한 오해를 낳을 수 있다'며 '질문을 해도 답변하지 않겠다. 질문을 하지 말아 달라'고 하더라"고 말했다.

 

이 출입기자는 특히 "우리도 가장 큰 현안이었는데, 왜 안 밀어붙였겠느냐"며 "그러나 워낙 (이동관 수석이) 단호하게 나오니까, 현안과 관련한 질문 기회가 없어질까 봐, 어쩔 수 없이 다른 질문으로 대체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다른 기자는 "당시 기자실 분위기 자체가 (이동관 수석의 요청을) 그냥 받아들이는 상황이어서 항의할 수 없었다"고 회고했다.

 

결국 이 대통령의 특별기자회견에서 세종시 문제에 대한 얘기는 언급조차 되지 않았다. 이번 기자회견은 지난해 6월 미국산 쇠고기 사태 관련, 대국민 사과 기자회견 이후 1년 3개월 만이었다. 그러나 국민들은 TV모니터를 통해 잘 짜여진 각본대로 질문과 답변을 주고받는 이 대통령과 기자들만을 봤을 뿐, 정말 궁금했던 사안에 대한 이 대통령의 견해를 들을 기회는 이미 원천적으로 차단 당한 상태였다.

 

오히려 일부 언론에서는 "기자회견 형식도 자유롭게 파괴했다", "이 대통령은 사회자 없이 직접 사회를 봤고, 장소도 딱딱한 춘추관 브리핑룸을 벗어나 청와대 본관 충무실로 바꿨다",  "대통령 옆에 수석비서관들 대신 친서민 정책을 담당하는 김승유 미소금융재단 이사장 등이 배석했다", "기자들의 질문을 경청한 뒤에는 기자의 이름을 직접 부르면서 '고맙다'고 사례했다" 등 '용비어천가'를 남발했다.

 

"청와대의 오만방자함은 언론 탓"... <조선일보> 앞장, '언론 반성문' 이어져

 

ⓒ 청와대

세종시 문제가 질문에서 제외된 것은 청와대의 일방통행식 소통과 '언론 재갈물리기' 때문이지만,  기자들 또한 청와대의 압력에 무릎을 꿇고, 직무를 유기했다는 비난을 피해가기 힘들게 됐다. 가장 먼저 '반성문'을 쓴 곳은 보수 성향 매체인 <조선일보>였다.

 

<경향신문> <동아일보> 등이 1일자 신문에서 세종시 문제가 질문에서 제외된 것에 대한 단순 사실 정도를 보도한 반면, <조선일보>는 사설과 칼럼 등을 통해 깊은 유감의 뜻을 표했다. <조선일보>는 또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 사례를 빗대 한국 언론의 현재를 꼬집었다.

 

"과거 클린턴 미국 대통령이 불륜 스캔들에 휘말렸을 때 폴란드 총리가 미국을 방문해 정상회담을 마친 뒤 그 자리에서 공동기자회견을 가졌다. 미국 기자들은 모든 질문을 르윈스키와의 불륜 스캔들에만 집중했다. 그것이 언론의 정도인 것도 아니고 언론이 반드시 그래야만 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자유세계의 언론이란 대통령이 국민에게 하고 싶은 얘기를 전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되고, 국민이 궁금해 하는 것을 대통령에게 대신 물어야 하는 법이다."

 

강인선 정치부 차장 대우도 이날 칼럼에서 "대통령과 참모, 기자들이 이런 식으로 민감한 문제를 피해가는 속 편한 방식을 택한 결과가 빚어낸 불편은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갔다"며 "이 대통령의 특별기자회견은 대통령과 기자는 할 일을 못하고, 참모들은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한 부실한 소통의 장이었다"고 꼬집었다.

 

<조선일보>에 비해 하루 늦었지만, <한겨레>도 '언론 반성문'을 썼다. <한겨레>는 2일자 사설에서 "국민이 궁금히 여기는 것을 물어야 할 소임을 다하지 못한 데 대해서는 어떤 변명도 통할 수 없다"며 "한겨레 역시 이런 잘못에 일조한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고 유감을 표명했다.

 

이 사설은 또 "청와대의 오만방자함은 '언론의 봐주기'가 누적된 결과이기도 하다"며 그동안 청와대의 엠바고나 오프더레코드 요청 등을 순순히 받아줬던 언론의 행태를 반성하기도 했다. 

 

"그동안 청와대는 엠바고나 오프더레코드 요청 등을 남발해 왔다. 심지어 이동관 홍보수석은 대변인 시절 걸핏하면 자신의 발언을 '청와대 관계자'로 해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다른 사람도 아닌 대변인의 말을 익명 처리하는 게 얼마나 우스꽝스러운 일인지 잘 알면서도 언론은 곧잘 그 요청을 받아들였다. 이런 관행이 쌓이다 보니 청와대가 더욱 언론을 쉽게 여기게 된 측면도 있는 것이다."

 

<한겨레>는 이날 "청와대 손사래에…기자들 '침묵의 카르텔'"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서도 세종시 관련 질문이 누락된 과정을 상세히 설명했다. 한겨레는 이 기사에서 "'왜 질문 기회조차 막느냐'며 강력하게 항의한 기자는 없었다. <한겨레>도 마찬가지였다"며 "이 대통령이 세종시에 대한 답변을 아예 안 하거나 원론적 언급을 하고 넘어갈 수는 있을지언정, 최소한 기자들이 국민적 관심 사항에 대해 질문하는 것조차 포기한 것은 비판받아 마땅하다"고 밝혔다.

 

청와대-기자단 '침묵의 카르텔' 깨질 수 있을까?

 

한 청와대 출입기자는 이번 사태와 관련 "우리가 안이하게 대처한 것은 인정한다. 충분히 비난 받을 만하다"며 "반성을 하고 있고, 차제에 대통령 기자회견 시 이런 일이 되풀이 되지 않도록 제도적인 방안을 요청할 것"이라고 말했다. 청와대측과 사전에 조율하는 질문 외에 기자회견 현장에서 조율되지 않은 즉흥 질문을 할 수 있도록 방안을 강구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제도나 시스템이 아니라는 지적이다. 이번 기자회견 당시 5개의 질문이 끝나고 시간이 남아서 즉흥적으로 추가 질문을 받았지만, 그 기자 역시 세종시에 대한 질문을 하지 않았다. 결국 권력을 감시하고 국민의 알 권리를 충족시키겠다는 '기자 정신'의 발현이 가장 중요한 셈이다. 과거 청와대를 출입했던 한 기자는 "58년간 백악관에 상주한 헬렌 토마스 기자가 자신들의 임무를 '워치독'(Watchdog)이라고 표현한 의미를 곱씹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청와대와 기자단 간에 맺어온 '침묵의 카르텔'에 근본적인 변화가 올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이명박 대통령 기자회견#세종시 논란#침묵의 카르텔#청와대 기자실#이동관 홍보수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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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너머의 진실을 보겠습니다. <오마이뉴스> 선임기자(지방자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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