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추분을 보내고 모레가 추석입니다. 인간이 이 땅에서 역사를 만들기 이전부터 달은 둥실 떠올라 밤하늘을 밝혀 주었겠지요. 해와 달, 별과 같은 천문 현상과 봄이 되면 만물이 소생하고 여름이 되면 번성하더니 가을이 되면 열매 맺는 자연의 흐름에 삶을 맡겨온 조상들에게 달은 참 친근한 존재였을 것 같습니다. 만물이 무르익어 풍성한 가을, 떠오른 보름달을 바라보며 품었을 마음, 또 그 기쁨을 나누기 위해 만든 명절, 한가위가 우리에게는 의례적인 가족 행사로 남아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됩니다.
마을학교에서는 익어가는 가을을 보며 우리도 자연에 걸맞게 한 해 공부를 잘 갈무리해가고 있는지 돌아보는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여러 가지 공부가 있겠지만 무엇보다 마음이 부쩍 자란 아이들을 보게 됩니다. 친구와, 동생과, 형님과, 가족과 맺어가는 다양한 관계의 결에서 '나'만 생각하지 않고 '남'을 생각할 줄 아는 그런 마음결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에 걸맞게 교사들은 자라고 있는지 돌아보게 됩니다. 우리 시대 추석의 새로운 의미를 생각하는 마음을 담아서 마을학교 윗집에 사시는 할머니 두 분께 추석 인사를 드리고 왔습니다. 그리고 추석 맞이 학교 앞길 대청소를 했지요.
함께 둘러앉아 송편을 빚었습니다. 쌀가루를 고운 채에 내려 뜨거운 소금물로 익반죽을 하고, 참깨를 콩콩 찧어 설탕과 섞어 소를 준비합니다. 채에 내리는 것도, 익반죽을 주물럭거리는 것도, 참깨를 찧어보는 것도 다 신기합니다. 고소한 참깨 냄새가 코를 자극합니다. 분홍색 송편을 만들기 위해서 알비트를 조금 잘라 반죽 물에 넣어 끓였습니다.
반죽과 송편소를 준비하고 둘씩 셋씩 모여 앉아 송편을 빚습니다. 송편 소로 넣을 설탕 참깨 냄새에 홀린 아이들은 실수한 척 하며 소를 열심히 찍어 먹습니다. 송편을 빚다보니 별별 송편이 다 나옵니다. 뱀 송편, 여우 송편, 코끼리 송편, 왕만두 송편, 스마일 송편, 사각 송편, 삼각 송편, 꽃 송편... 반죽이 떨어지지 않았다면 끝이 없었을 것 같습니다.
쑥떡은 쑥을 넣어서 쑥떡이고, 송편은 솔잎을 넣어서 송편인데 솔잎을 구할 수 없었습니다. 시중에 나와 있는 것은 솔잎 혹파리나 제선충 방제약을 친 것도 많으니 사다가 쓰지 말라는 얘기도 듣고, 학교 뒷산은 국립공원이라 솔잎을 뽑아다 쓸 수도 없습니다. 송편은 송편인데 솔잎 없는 '안송편'이 될 모양입니다. 솔잎 없는 '안송편'이지만, 모양도 제각각이지만 맛은 꿀맛입니다.
송편을 먹기 전에 먼저, 내가 만든 송편을 하나 골라서 마음을 표현하고 싶은 한 친구에게 먹여주기로 했습니다. 그동안 미안했던 친구, 고마웠던 친구, 어울려 놀지 못해 아쉬웠던 친구 등등 이유는 가지각색이었지만 쑥스러워 하면서 송편을 입어 넣어주고 받아먹고 하는 마음만은 하나였던 것 같습니다. 이 아이가 왜 저 아이에게 송편을 주려고 한 것일까 샘들은 그저 짐작하며 웃어줄 뿐이었지요.
깊어가는 가을만큼 우리의 마음도 깊어져서 둥근 보름달처럼 밝고 환한 마음결 잘 만들어가는 우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농사 지어 수확하는 기쁨은 못누리더라도, 마음공부 몸공부 늘어가는 것을 확인하는 절기로, 추석은 이렇게 우리에게 살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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