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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추분을 보내고 모레가 추석입니다. 인간이 이 땅에서 역사를 만들기 이전부터 달은 둥실 떠올라 밤하늘을 밝혀 주었겠지요. 해와 달, 별과 같은 천문 현상과 봄이 되면 만물이 소생하고 여름이 되면 번성하더니 가을이 되면 열매 맺는 자연의 흐름에 삶을 맡겨온 조상들에게 달은 참 친근한 존재였을 것 같습니다. 만물이 무르익어 풍성한 가을, 떠오른 보름달을 바라보며 품었을 마음, 또 그 기쁨을 나누기 위해 만든 명절, 한가위가 우리에게는 의례적인 가족 행사로 남아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됩니다.

 

추석 맞이로 학교 앞길을 청소하는 아이들 길 주변으로 나무들이 제법 많아 낙엽이 쌓였는데 열심히 비질을 했더니 어느새 말끔해졌다. 그런데 수고가 아깝게 바로 낙엽이 떨어지자 비를 다 정리한 아이들이 앉아서 떨어진 낙엽을 줍고 있다. 아, 우리가 다 쓸었는데...TT;;
추석 맞이로 학교 앞길을 청소하는 아이들길 주변으로 나무들이 제법 많아 낙엽이 쌓였는데 열심히 비질을 했더니 어느새 말끔해졌다. 그런데 수고가 아깝게 바로 낙엽이 떨어지자 비를 다 정리한 아이들이 앉아서 떨어진 낙엽을 줍고 있다. 아, 우리가 다 쓸었는데...TT;; ⓒ 한희정

 

마을학교에서는 익어가는 가을을 보며 우리도 자연에 걸맞게 한 해 공부를 잘 갈무리해가고 있는지 돌아보는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여러 가지 공부가 있겠지만 무엇보다 마음이 부쩍 자란 아이들을 보게 됩니다. 친구와, 동생과, 형님과, 가족과 맺어가는 다양한 관계의 결에서 '나'만 생각하지 않고 '남'을 생각할 줄 아는 그런 마음결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에 걸맞게 교사들은 자라고 있는지 돌아보게 됩니다. 우리 시대 추석의 새로운 의미를 생각하는 마음을 담아서 마을학교 윗집에 사시는 할머니 두 분께 추석 인사를 드리고 왔습니다. 그리고 추석 맞이 학교 앞길 대청소를 했지요.

 

한쪽에선 깨 갈고, 한쪽에선 쌀가루 내리고 볶은 참깨를 콩콩 찧어 보고, 채에 쌀가루도 내려본다.
한쪽에선 깨 갈고, 한쪽에선 쌀가루 내리고볶은 참깨를 콩콩 찧어 보고, 채에 쌀가루도 내려본다. ⓒ 한희정

 

함께 둘러앉아 송편을 빚었습니다. 쌀가루를 고운 채에 내려 뜨거운 소금물로 익반죽을 하고, 참깨를 콩콩 찧어 설탕과 섞어 소를 준비합니다. 채에 내리는 것도, 익반죽을 주물럭거리는 것도, 참깨를 찧어보는 것도 다 신기합니다. 고소한 참깨 냄새가 코를 자극합니다. 분홍색 송편을 만들기 위해서 알비트를 조금 잘라 반죽 물에 넣어 끓였습니다.

 

알비트 우린 물을 넣어 반죽하기 자연 색소를 얻기 위해 알비트 우린 물을 사용했다. 아이들은 흰 반죽과 알비트 반죽을 섞어서 꽃을 만들기도, 앞 뒤 다른 색 송편을 만들기도 했다.
알비트 우린 물을 넣어 반죽하기자연 색소를 얻기 위해 알비트 우린 물을 사용했다. 아이들은 흰 반죽과 알비트 반죽을 섞어서 꽃을 만들기도, 앞 뒤 다른 색 송편을 만들기도 했다. ⓒ 한희정

 

반죽과 송편소를 준비하고 둘씩 셋씩 모여 앉아 송편을 빚습니다. 송편 소로 넣을 설탕 참깨 냄새에 홀린 아이들은 실수한 척 하며 소를 열심히 찍어 먹습니다. 송편을 빚다보니 별별 송편이 다 나옵니다. 뱀 송편, 여우 송편, 코끼리 송편, 왕만두 송편, 스마일 송편, 사각 송편, 삼각 송편, 꽃 송편... 반죽이 떨어지지 않았다면 끝이 없었을 것 같습니다.

 

여우송편 여우 송편을 빚었어요. 코끼리 송편부터 뱀 송편까지 아이들 솜씨가 빛난다.
여우송편여우 송편을 빚었어요. 코끼리 송편부터 뱀 송편까지 아이들 솜씨가 빛난다. ⓒ 한희정

 

쑥떡은 쑥을 넣어서 쑥떡이고, 송편은 솔잎을 넣어서 송편인데 솔잎을 구할 수 없었습니다. 시중에 나와 있는 것은 솔잎 혹파리나 제선충 방제약을 친 것도 많으니 사다가 쓰지 말라는 얘기도 듣고, 학교 뒷산은 국립공원이라 솔잎을 뽑아다 쓸 수도 없습니다. 송편은 송편인데 솔잎 없는 '안송편'이 될 모양입니다. 솔잎 없는 '안송편'이지만, 모양도 제각각이지만 맛은 꿀맛입니다.

 

송편소 먹는 방법 참깨의 고소한 냄새에 홀린 아이들, 어떻게 집어 먹어 보고 싶은데 침 뭍는다는 선생님 친구들의 핀잔에 다양한 편법을 동원해 봅니다.
송편소 먹는 방법참깨의 고소한 냄새에 홀린 아이들, 어떻게 집어 먹어 보고 싶은데 침 뭍는다는 선생님 친구들의 핀잔에 다양한 편법을 동원해 봅니다. ⓒ 한희정

 

송편을 먹기 전에 먼저, 내가 만든 송편을 하나 골라서 마음을 표현하고 싶은 한 친구에게 먹여주기로 했습니다. 그동안 미안했던 친구, 고마웠던 친구, 어울려 놀지 못해 아쉬웠던 친구 등등 이유는 가지각색이었지만 쑥스러워 하면서 송편을 입어 넣어주고 받아먹고 하는 마음만은 하나였던 것 같습니다. 이 아이가 왜 저 아이에게 송편을 주려고 한 것일까 샘들은 그저 짐작하며 웃어줄 뿐이었지요.

 

우리 서로 마음 상했던 거 잘 풀어보자. 자기가 만든 송편을 골라 마음이 가는 친구에게 먹여 줍니다. 주는 친구도, 받는 친구도 쑥스럽지만, 주변 친구들은 웃는 얼굴로 지지해 줍니다.
우리 서로 마음 상했던 거 잘 풀어보자.자기가 만든 송편을 골라 마음이 가는 친구에게 먹여 줍니다. 주는 친구도, 받는 친구도 쑥스럽지만, 주변 친구들은 웃는 얼굴로 지지해 줍니다. ⓒ 한희정

 

깊어가는 가을만큼 우리의 마음도 깊어져서 둥근 보름달처럼 밝고 환한 마음결 잘 만들어가는 우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농사 지어 수확하는 기쁨은 못누리더라도, 마음공부 몸공부 늘어가는 것을 확인하는 절기로, 추석은 이렇게 우리에게 살아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 아름다운마을학교는 북한산 자락 인수동에 자리잡은 대안학교입니다. 2010학년도 2학년, 3학년, 4학년, 5학년, 6학년 편입생을 모집합니다. 매주 수요일 절기 공부를 하며 우주와 생명에 대한 감수성을 일깨우고 있습니다. 이 절기 공부는 교보생명교육문화재단의 환경교육현장지원 프로젝트에 선정되어 지원을 받고 있는 프로그램입니다.


#추석#아름다운마을학교#송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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