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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운찬 총리님, 눈물마저 그렁거리셨습니다. 비리 덮으려고 유가족 이용하는 그런 분은 아닐 거라고 믿고 있습니다. 김준규 검찰총장님처럼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 마음 달라지는' 그런 분 아니라고 믿고 있습니다. 용산에 오십시오."

 

정운찬 신임 총리가 임명된 다음날인 30일 오전 10시, 용산 참사 현장인 남일당 건물 앞에서는 유가족들과 용산범국민대책위의 기자회견이 열렸다. 새 총리에 대한 이들의 요구는 간단했다. 청문회장에서 했던 약속을 지키라는 것이었다.

 

정 총리는 청문회 과정에서 "용산참사 해결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증인으로 나섰던 고 이성수씨 부인 권명숙씨를 만나서는 눈물을 훔치면서 "임명되면 유가족들을 총리실로 부르겠다, 오실 수 있겠냐"고 청하기도 했다.

 

그러나 아직까지 총리실은 유가족이나 범대위에 아무런 연락을 하지 않았다. 내정자일 때는 "검찰 수사기록 3000쪽 공개를 검토할 수 있다"고 말했지만 임명 이후 이를 지키지 않은 김준규 검찰총장의 모습을 되풀이하는 것은 아닐지, 유가족들은 불안한 마음이 크다.

 

그러나 직접 정 총리의 눈물을 지켜봤던 권명숙씨는 아직도 기대를 버리지 않고 있었다. 그는 "워낙 정치에 입문하면 입장을 바꾸니까 의심이 되지만, 그래도 진정한 마음이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냥 조문 오시지 말고 뭔가 해결책을 가지고 나와달라"고 당부했다.

 

눈물, 한숨, 오열... "자기들은 고향 찾고 부모 찾으면서"

 

권씨는 이날 '유가족 입장문'을 낭독하면서 많이 울었다. "추석을 쇠고 나면 입대해야 하는 아이도 있다"는 대목에서 눈물이 오열로 터져 나왔다. 다른 가족이 아닌 권씨 자신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아들 이상흔(21)씨는 오는 10월 13일 입대한다. 원래 2월 10일 입대 예정이었는데 이번 참사로 미뤘다.

 

권씨는 혹시나 추석 전 장례를 치를 수 있다는 기대로 아들의 입대를 일주일 더 미뤘다. 그는 "원래 음식 장만해서 아빠(남편 고 이성수씨)랑 같이 부대 근처에서 먹이고 보내자고 했는데 이제 나 혼자 아들을 보내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음식 제대로 해갈 수 있겠냐"고 아쉬운 마음을 나타냈다.

 

이날 기자회견에서는 다른 유가족들도 많이 울었다. 우느라 입장문도 제대로 읽지 못하고, 다른 활동가들이 안아주고 달래야 할 정도로 울었다. 이미 유가족들이 요구했던 '추석 전 장례'는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다. 차례를 치르지 못하는 가족들은 추석 당일 오전 10시 남일당 현장에 모여 영정 앞에 상식만 올리기로 했다.

 

이들은 "추석 전 장례를 치른다면 살아계신 부모님을 찾아뵐까 했는데 저희가 이러고 있으니 도리어 시댁 식구, 친정 식구 모두 용산에 와서 추석을 쇤다고 한다, 자식 된 도리를 하지 못하는 것 같아 죄송스럽기만 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들에게 아내 노릇, 어미 노릇, 자식 노릇 못하게 해놓고 자기들은 고향 찾고 부모 찾다니, 이러고도 한 나라를 책임지는 위정자냐"고 정부와 이명박 대통령을 비판했다.

 

결국 유가족들의 요구는 정운찬 총리로 집중됐다. 처음으로 정부 차원의 협상테이블로 논의되던 4자협의체도 새 총리 인준으로 미뤄진 상태다. 따라서 이후 유가족과의 협상을 주도해야 할 사람은 정운찬 총리다. 이 때문에 범대위는 지난 3일 정 총리 내정 직후에도 성명을 내고 그를 용산으로 불렀다.

 

이날 범대위는 "정 총리는 국민의 58%가 반대하고 단 1명의 야당의원 찬성도 없이 임명된 반쪽 총리임을 잊어선 안 된다"면서 "총리 역할을 하기 위해서라도 용산참사를 해결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이강실 범대위 공동대표는 "총리실에서는 먼저 참사의 정황을 분석하겠다는 입장인데, 당사자들의 얘기를 듣지 않고 경찰·검찰 말만 들으면 눈과 귀가 어두워질 뿐이다"고 강조했다. 류주형 대변인은 "추석 전까지 나흘이 남았다, 계속 정 총리를 기다리겠지만 우리 인내심에 한계가 있다"고 경고했다.

 

이명박 대통령 '살인 교사죄'로 기소

 

한편, 이날 오전 11시 용산참사 현장에서는 '용산 철거민 국민법정 준비위원회'의 소환장 전달 기자회견이 이어졌다. 지난 14일 국민법정을 선포한 뒤 지금까지 약 8000여 명의 시민들이 기소인으로 동참했다.

 

이날 기소장에서 준비위원회는 김석기 전 서울지방경찰청장 등에 대해 "위법한 공권력 사용으로 강제진압을 한 '공무원의 폭행·가혹행위죄'로, 이명박 대통령에 대해 "하위 공무원들로 하여금 재개발정책의 효율적 집행에만 몰두하게 만든 '살인 및 상해에 대한 교사'"로 범죄혐의를 밝혔다.

 

국민법정은 오는 18일에 열린다. 준비위원회는 박연철 변호사(재판장), 박승환 전북대 교수, 박명애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공동대표 등 각계 인사 9인으로 재판부를 구성했고, 이후 50여 명의 배심원단을 구성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준비위는 오는 10월 5일부터 11일까지 배심원 정원의 5배수인 250명을 선착순으로 신청받은 뒤, 오는 10월 13일 성·장애·연령·직업 등을 고려해 무작위 공개선발을 할 예정이다.


태그:#용산 참사, #정운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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