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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으로 듣고 감성으로 풀어 낸 이야기

어릴 적 잠자고 일어났더니 평소 자기가 바라던 꿈이 현실이 된 <소공녀>와 같은 일이 내게도 일어난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한 적이 있을 것이다. 동화 속 주인공을 만나 재미있게 놀아보고 싶은 꿈을 꾼 적도 있을 것이고.

동화 주인공을 되살려 동화 인형 박물관을 만드는 것이 꿈인, 영원한 소녀 동화작가 '김향이 인형 전'이 서울 인사동 남이섬 2층 '상 갤러리'에서 29일까지 열린다.

근작 <꿈꾸는 인형의 집>을 펴낸 김향이 작가는 오랫동안 인형을 수집해왔다. 그이는 현재 수집한 인형들을 동화 속 주인공 인형으로 재생시키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외국 경매 시장에 나온 인형을 어렵게 낙찰 받은 것, 선물 받은 것, 벼룩시장을 뒤져 사온 것, 쓰레기통에서 주워 온 인형까지 가지가지 사연을 간직한 인형들은 가장 적절한 동화 속 주인공으로 새롭게 변신해 어린 독자들과 만난다. 인형의 변신과정, 수집과정 역시 작가에게 새로운 창작의 샘으로 작용했다.

인형의 집에서 동화를 읽어주는 할머니로 남고 싶은 것이 작가의 꿈이다.
▲ 김향이 작가 인형의 집에서 동화를 읽어주는 할머니로 남고 싶은 것이 작가의 꿈이다.
ⓒ 이명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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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출간된 <꿈꾸는 인형의 집>은  작가가 인형을 수집하며 겪은 에피소드와 인형에 담긴 사연들을 토대로 이야기를 엮었다. 이야기는 <소공녀> 주인공으로 명성을 떨치던 셜리 템플 인형이 여기저기 부서진 채 벌거숭이로 작가의 집에 배달되던 날로부터 시작된다.

이십대 때 <소공녀> 흑백 영화를 통해서 셜리 템플이라는 미국의 전설적인 아역 배우를 알게 된 후 셜리 템플은 작가의 영원한 소공녀로 자리한다. 미국 온라인 경매 시장에서 셜리 템플을 쏙 빼닮은 인형을 발견한 후 설레는 마음으로 인형과 만날 날을 기다렸다. 그러나 배달된 인형의 모습은 참담하기 이를 데 없었다. 벌거숭이에 가발은 마구 헝클어지고 온몸에 금이 가 있었으며 손가락 발가락마저 부러진 상태였던 것이다.

작가는 인형의 옛 모습을 되찾아주기 위해 인형을 씻고 닦은 후 진흙으로 부러진 손가락과 발가락을 만들어 붙인다. 가발을 맞추고, 페치코트와 연보랏빛 드레스, 연보랏빛 모자까지 만들어 셜리 템플에게 새로운 생명을 주었을 뿐 아니라 인형들이 밤마다 이야기 극장의 주인공이 되어 자신이 여기까지 오게 된 사연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인형 하나하나에 영원한 생명을 불어넣었다.

인형 옷소매에 들어 있던 일원짜리 지폐

김향이 작가의 창작 동화로 인형에 얽힌 이야기가 아름답게 담겨 있다.
▲ 인형의 집 김향이 작가의 창작 동화로 인형에 얽힌 이야기가 아름답게 담겨 있다.
ⓒ 푸른숲 작은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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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인형은 족두리를 쓰고 활옷을 입은 채 관광상품으로 팔려나가던 '이쁜이' 인형 이야기다. 관광 상품으로 각광을 받던 인형 공장이 문을 닫자 인형 손질 마지막 단계로 치마저고리를 입히던 한 여공이 일원짜리 종이돈을 돌돌 말아서 인형 저고리 옷소매에 넣었다.

그 인형은 제대하는 미군 군인을 따라 군인의 늙은 부모에게 선물로 전해졌다. 화려한 활옷을 입은 인형은 한동안 자랑거리가 되어 사람들의 찬사를 받다가 노부부가 양로원으로 들어가면서 먼지가 쌓인 채 잊혀졌다.

이삿짐센터 청년이 창고 속에 처박아둔 것을 국내 수집상을 통해 미국서 입양하게 된 작가는 그 인형이 미국의 '월드 와이드 돌'이라는 인형 회사에서 우리나라에 제작을 맡긴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1960년대 만들어진 그 인형을 선녀와 나무꾼의 선녀로 만들기 위해 옷을 벗기던 작가는 꼬질꼬질한 이쁜이의 한복 저고리를 벗기다가 저고리 소매에서 똘똘 말린 일원짜리 지폐를 발견하게 된다.

작가는 상상력을 발휘하여 일원짜리 지폐를 인형 옷소매에 넣었던 미지의 아가씨 손길과 마음을 실제로 본 것처럼 섬세하고 가슴 찡하게 그려내고 있다.

ⓒ 이명옥

한국 입양아를 닮은 인형 꼬마 존

주인공 인형인 꼬마 존은 한국에서 입양된 아이의 외로움을 덜어주기 위해 양 엄마가 만들어 준 인형이다. 이름은 입양아와 같은 존이다. 입양아 존은 한국에 있는 친엄마를 잊어버릴까봐 일부러 양엄마에게 못되게 군다. 어느날 양엄마는 울보인 입양아 존이 일기장에 써놓은 글을 읽고 존을 돌려보내려고 짐을 싼다. 울보 존이 떠나기 전날 밤 꼬마 인형 존에게 말한다.

"양엄마가 싫은 건 아니야. 양엄마가 진짜로 좋아져서 친엄마를 잊어버릴까봐 겁이 나 일부러 마음에도 없는 말로 양엄마를 아프게 했어. 나한테 잘해주지 말라고. 그래서 부탁인데 엄마 곁에 남아 엄마를 위로해 줘. 넌 날 닮았잖아. 엄마가 나 대신 너라도 보면 덜 슬플 것 같아. 난 친엄마를 찾아갈 거야. 넌 여기 남아서 엄마를… 지켜줘. 부탁이야."

울보 존은 몇 번이나 편지를 쓰다가 구겨 버렸어. 소리 없이 울기만 하더라. 차라리 평소 하던 대로 큰 소리로 울면 내 마음도 덜 아플텐데.

울보 존이 떠나면서 식탁에 양엄마가 좋아하는 데이지 화분을 놓고 갔더래. 그래서 양엄마가 울었어. 자기를 미워한 것은 아닌 것 같다며. 이번엔 양엄마가 울보가 되었어. 양아버지는 양엄마를 달래다 못해 여행을 떠나겠다고 했어. 여행을 떠나기 전에 나를 천사원으로 보냈지. 존을 만나거든 전해주라고. 천사원 원장님이 나를 이곳으로 보낸 거야. 존이 보면 힘들어 할 것 같다고."

미국  온라인 경매 시장에 '안아주고 싶은 한국 인형. 작가 미상'이라는 제목으로 올라온 헝겊 인형은 토종 한국 아이의 얼굴이었다. 작가는 한국 입양아를 위해 만들어진 그 인형을 입양한 뒤 꼬마 존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작가는 온라인 경매 장에 나온 사진만으로도 꼬마 존이 들려주는 이야기, 아니 작가의 감수성이 들려주는 아름답고 슬픈 입양의 역사를 새롭게 읽어낼 수 있었던 것이다.

부끄럼쟁이 릴리에게  무슨 일이?

남부 시장 노예의 형상인 흑인 모녀 인형은 미국 작가 바라라 스머커의 <쥬릴리>(UNDEGROUND TO CANADA)의 주인공이다. 19세기 미국 노예들을 캐나다로 탈출시켜 주던 지하조직 이야기에서 추격자를 따돌리고 자유를 찾는 쥬릴리의 험난한 여정에
검둥이 소녀 인형을 동행시킨다. 쥬릴리에게 엄마 대신 엄마가 만들어 준 인형 릴리를  의지가 되는 친구이자 동지로 등장시킨다.

그렇게 작가는 깨지고 부서진 인형, 어두운 창고에 처박혀 있던 인형들을 수선하고 옷을 만들어 입히는 것에 그치지 않고 가슴으로 느낀 것을 아름다운 감성언어로 풀어낸다.

작가는 어린이들이 언제나 동화 속 주인공 인형들을 만나 대화하며 상상력을 키울 동화인형 박물관 건립을 희망하고 있다. 그이의 꿈이 아름답게 펼쳐질 것을 기대한다.


꿈꾸는 인형의 집

김향이 지음, 한호진 그림, 푸른숲주니어(2010)


태그:#인형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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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잘살면 무슨 재민교’ 비정규직 없고 차별없는 세상을 꿈꾸는 장애인 노동자입니다. <인생학교> 를 통해 전환기 인생에 희망을. 꽃피우고 싶습니다. 옮긴 책<오프의 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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