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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저녁 7시 여의도 한 호프집에서 열린 '개원 21주년 기념 노동연구원의 밤'. 연구원이 아닌 연구위원협의회가 주최했다.
 25일 저녁 7시 여의도 한 호프집에서 열린 '개원 21주년 기념 노동연구원의 밤'. 연구원이 아닌 연구위원협의회가 주최했다.
ⓒ 권박효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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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년간 노사정 사이에서 나름대로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연구로 신뢰와 명예를 쌓았습니다. 최근 상황이 어렵습니다. 몸담은 사람으로서 심려끼쳐 드려서 죄송합니다." (황덕순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노조위원장)

"지난 10년, 5년간 너무 좋았습니다. (이원덕) 원장님이 첫 사회정책수석으로 가시는 등 연구원 출신 인사들이 청와대 정책라인에서 전문적 활동을 했습니다. 지금 과정이 지난 5년 자만한 것에 대한 벌이라고 생각하시고 되돌아보십시오." (최영기 전 한국노동연구원장)

노사갈등으로 파업 중인 한국노동연구원의 개원 21주년을 기념하는 행사가 열렸다. 노동연구원 연구위원협의회가 25일 저녁 7시 여의도 인근 한 호프집에서 '노동연구원의 밤'을 개최한 것이다.

이 자리에는 전임 노동연구원장 3명이 참석했고, 법학·경제학·사회학·사회복지학 등 각 분야의 노동 연구에서 내로라하는 학자들과 다른 국책연구기관 연구자까지 100여 명의 노동연구 베테랑들이 모였다.

"지난 5년간 자만하지 않았는지 되돌아보세요"

노동연구원은 1988년 개원한 뒤 매년 9월 중순께 개원 기념행사를 열어왔다. 그동안은 주로 호텔 등에서 낮에는 노동 현안에 대한 토론회를 하고 저녁에는 리셉션을 했다. 그러나 올해는 사정이 다르다.

지난해 8월 박기성 원장 취임 이후 단체협약과 연구 중립성을 놓고 노사갈등이 이어졌다. 결국 연구원노조는 지난 14일부터 파업을 시작했고, 올해 연구원 차원의 개원 기념행사는 열리지 않았다. 대신 연구위원들이 나서 친목과 격려의 자리를 만들었다.

공식 토론회는 없었지만, 테이블마다 토론은 활발했다. 이날 토론된 최고의 노동 현안은 한국노동연구원의 노사갈등이었다.

마이크를 잡고 인사하는 자리에서도 현 사태에 대한 의견이 이어졌다. 3명의 전임 연구원장들도 후배들에게 격려와 충고를 아끼지 않았다.

최영기 전 원장은 "개원 초에는 노동연구의 인프라를 깔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고 그에 부합하는 성과도 냈다고 생각한다, 노동연구원이 노동정책 연구의 주인으로 자라났다"면서 "그러나 지난 5년간 자만하지 않았는지 되돌아봐야 한다"고 충고했다. 이원덕 전 원장은 "지금 상황은 성년이 되는 과정에서 겪는 고통이다"고 격려했다.

김대모 전 원장은 양보를 강조했다. 김 전 원장은 "연구의 자율성은 당연히 보장돼야 하지만 국책연구기관은 정책의 큰 방향이 정해지면 그에 맞게 연구해야 한다"면서 "어느 정도 연구를 제약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결국 원장이 (통제하는 사람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국책연구기관마다 "우리도 사정이 어렵다"

이날 모인 노동연구원 연구위원들과 연구원들은 "이 모든 사태가 빨리 마무리돼 다시 제대로 연구하고 싶다"고 안타까운 심정을 드러냈다. 다른 국책연구기관 관계자들은 "우리도 지금 사정이 많이 힘들다"고 연구에 압박을 느끼는 각자의 상황을 호소했다.

연구위원들은 "연구원 구성원의 이념 스펙트럼이 상당히 다양한데도 지금 연구원은 정부 정책과 조금만 달라도 '좌파'로 간주된다"고 말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연구자들의 정체성이 달라져야 하겠냐"고 강조하기도 했다.

한 연구위원은 "어려운 1980년대도 거쳤지만 이렇게 정상적 연구가 어려운 적은 없었다"면서 "박기성 원장은 '다르다'와 '틀리다'를 구분하지 못한다"고 소통 부재를 안타까워했다.

파업 중인 연구원노조 조합원들은 더 절박하다. 이들은 '전국공공연구노조 노동연구원 지부'라는 글씨가 박힌 투쟁조끼를 입고 모임에 참석했다.

노사분쟁 전문가인 이상호 연구원노조지부장은 "그동안 노동자들의 투쟁과 파업에 대해 여러 연구를 하고 보고서도 썼지만 이렇게 (파업이) 힘든 줄 몰랐다"고 말했다. 그는 "이제 (파업 때문에) 월급이 나오지 않을 텐데, 조합원 중에는 다음달 결혼하는 사람도 있고 전세값을 마련하지 못해 힘든 사람도 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이 지부장은 "우리는 파업이 목적이 아니다, 사태가 원만히 해결되기를 바란다"고 강조하고 참석자들에게 "그런데 왜 길에서 파업을 하게 됐을지 다시 한번 더 생각해달라"고 당부했다.

현재 연구원 노사분쟁의 최대 쟁점은 단체협약. 연구원 사측은 지난 2월 평가위원회·인사위원회·고용안정위원회 등에 노조 참여를 보장하는 내용의 기존 단체협약을 해지하겠다고 통보했다.

이를 놓고 연구원 측은 "기존 단협 내용은 사측의 인사권과 경영권을 침해한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노조는 "연구자 통제가 강화되면 연구중립성이 훼손된다"고 반발하고 있다.

실제로 지난해 8월 취임한 박기성 원장은 연구위원들이 특정 시민단체 토론회에 참석하지 못하도록 막거나 언론 기고에 대해서도 통제해 연구자들과 마찰을 빚었다. 박사급 연구위원들도 이 같은 독단적 조직 운영에 반발해 지난 7월 노조를 출범시켰다. 

현재 노동연구원은 잇따른 갈등으로 정상적인 연구활동이 힘든 상황이다. 지난 2006년과 2007년 국무총리실 산하 23개 국책연구기관 중 종합평가에서 각각 1위와 2위를 기록했던 연구원은 새 원장이 들어온 2008년 들어 20위권으로 순위가 떨어지는 수모를 겪었다.


태그:#노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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