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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조의 '오늘 같은 밤'이 색소폰으로 연주되자마자 사람들은 저마다의 생각에서 벗어난 듯이 연주에 맞추어 박수를 쳤다. 색소폰을 불던 그이의 몸짓도 청중들의 박수소리에 신명이 실리는 듯 했다. 그이의 듬직한 체구로 해서 불고 있는 테너 색소폰이 전혀 무거워 보이지 않았다.

서울시 도봉구청에서는 구청을 찾는 주민들을 위해 매주 화요일 '화요정오음악회'가 열린다. 그곳에서 윤연희(41)씨는 한 달에 한 번 색소폰을 연주한다. 주변의 창동교와 우이천에서 열리는 거리 무대에서도 그이가 부는 색소폰 연주를 들을 수 있다.

윤연희씨는 여성들의 불모지라 할 수 있는 색소폰을 연주하는 뮤지션이다.

 지난 9월 1일 도봉구청 '화요정오음악회'에서 테너 색소폰을 연주하고 있는 윤연희씨
 지난 9월 1일 도봉구청 '화요정오음악회'에서 테너 색소폰을 연주하고 있는 윤연희씨
ⓒ 박금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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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거리든 어디든 간에 내가 연주를 할 수 있다는 것은 좋은 일이죠. 악기를 들 수 없는 나이가 되면 연주를 하고 싶어도 못해요."

활달하고 시원시원하게 말하는 목소리도 허스키해서 그이가 불고 있던 테너 색소폰과 잘 어울렸다. "학교 다닐 때는 색소폰이 부전공이었어요." 피아노레슨과 자잘한 색소폰연주회로 음악 활동을 하다가 다시 학교에 편입을 했다. '전공으로 색소폰을 배우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 때가 '20대 후반'이었다. 졸업 후에는 두 세 군데 오케스트라에 들어가 부산, 일본등지를 오가며 색소폰 연주자로 활동했다.

우연한 기회에 라이브카페에서 연주를 시작하게 되었는데, 그곳에서 연주를 하다 보니 여러 분야의 사람들을 만날 기회가 많았다. 그 중의 한 사람이 윤씨를 대중음악세계로 이끈 스승이 되었다. 그 뒤로 또 3년간 대중가요를 '제대로' 연주하기 위해 혹독한 훈련의 시간을 보냈다. 잠자는 시간, 밥 먹는 시간, 집에 오가는 시간도 아꼈다. 연습실에서 모든 것을 해결할 정도로 연습에만 매달렸다. "그만큼 노력을 해서 지금은 최고의 밥벌이 수단이 되었다"고 그이는 거침없이 말했다.

청담동에 있는 라이브카페에 일주일에 2번을 연주하러 가고, 도봉동 쪽으로 이사를 와서는 수락산 입구에 있는 라이브카페에도 나간다. 라이브카페에서는 주로 알토 색소폰을 불지만 도봉구청 '화요정오음악회'에서는 테너 색소폰으로 연주한다. 대부분 대중가요를 준비한다.

"사실 클래식 재즈는 어려워요. 클래식 음악회가 아닌 곳에서 재즈를 연주하는 것은 무리일 수 있어요. 색소폰으로 '사랑의 미로'나 '그 겨울의 찻집' 같은 대중가요를 들을 때면 청중들은 더 많이 연주에 몰입을 하고, 이광조의 '오늘 같은 밤'을 부르면 조용히 앉아서 연주를 듣던 사람들이 박자를 맞추어 박수를 치며 좋아하죠. 그러면 나도 신나고… 대중과 함께 즐거우면 되지 않겠어요?" 

 조용히 연주를 듣던 관중들이 이광조의 '오늘 같은 밤' 이 연주되자 박수를 치며 좋아했다.
 조용히 연주를 듣던 관중들이 이광조의 '오늘 같은 밤' 이 연주되자 박수를 치며 좋아했다.
ⓒ 박금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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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씨는 자신이 다니고 있는 교회에서도 전문지식을 이용해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봉사라고 하기에는 부족하지만, 내가 갖고 있는 재능을 먹고 사는 일에도 투입하고, 나누는 일에도 사용하고 싶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색소폰악보는 일반 악보와 달라요. 그 악보를 바꾸는 작업을 '이조'라고 하는데, 찬양과 병행해서 하지요."

이 지역에 학원을 내려고 지난 가을부터 준비했다. 처음에는 두려웠다. 말리는 사람들도 있었고, '그래도 해보자, 내가 건강하면 되지 무엇이 문제인가' 싶었고… 다행히 실타래처럼 일이 잘 풀어지는 것 같아 지금은 '잘 했다'는 생각이 든단다. 그이는 돈을 들여 '한 장의 종이 광고'를 붙이는 것보다는 자신의 연주로 광고를 대신 한다고 한다.

좋아하는 색소폰을 계속 하려면 "수입도 신경 써야 한다"며 말을 빙빙 돌리지 않고 솔직히 말하면서 '하하' 웃었다.

색소폰이 남성들보다는 여성들에게 호흡이 딸리는 것은 사실이지만, 정말 다루고 싶은 악기라면 극복할 수 있는 일이 아니겠냐며 여성들이 배우겠다면 적극 권장을 하는 편이란다.

"문제는 인내심과 연습에 달렸어요. 색소폰이 좋아서 오래도록 재밌게 연주를 하고 싶으면 기초를 다지는, 지루하고 긴 연습의 시간을 견뎌내야 해요."

그이는 요즘도 자신이 무대에서 연주할 것을 꼬박꼬박 정성들여 연습을 한다고 말했다.

"하루를 안 불면 내가 알고, 이틀을 안 불면 친구가 알고, 삼일을 안 불면 관중이 안다잖아요."

색소폰이 삶의 전부라고 하는 그이, 색소폰을 배우고 연주하는 동안 시간이 없어서 남자를 만날 기회를 만들지 못했다. 그래서 아직 싱글이지만, 색소폰이 "너무 좋아서" 앞으로도 결혼할 계획은 없단다. 색소폰은 그이에게 활력을 주는 비타민처럼 보였다.

여성 뮤지션의 색소폰 음에 맞추어 박수를 치는 관중들도 그 시간만큼은 '오늘 같은 밤'이 주는 즐거움에 어깨를 들썩이는 모습이었다.


태그:#색소폰 연주, #여성색소폰연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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