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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호 전 국정홍보처장이 24일 저녁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대회의실에서 열린 '노무현 대통령이 읽은 책들' 강독회에서 폴 크루그먼의 '미래를 말하다'를 주제로 강의하고 있다.
 김창호 전 국정홍보처장이 24일 저녁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대회의실에서 열린 '노무현 대통령이 읽은 책들' 강독회에서 폴 크루그먼의 '미래를 말하다'를 주제로 강의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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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 정치의 지도자들을 다시 부엉이 바위 위에 서게 하지 않을 수 있을까?"

이런 물음을 받는다면, 당신은 어떤 대답을 할 수 있을까? 쉽게 대답을 내놓기 어렵다면, 질문을 바꿔보자. 앞으로 진보 정치는 집권을 한 후 계속되는 정치적 위기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까?

김창호 전 국정홍보처장의 물음이다. 참여정부의 정책에 대해 쉴 새 없이 비판했던 보수언론과 최전선에서 맞서왔던 그는 새로운 진보 프레임·담론의 필요성을 절감해왔다. 그가 던진 질문을 뒤집어보면, 진보가 집권을 한다고 해도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면 또다른 좌절이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김 전 처장과 함께 노무현 전 대통령은 서거 전까지 폴 크루그먼의 <미래를 말하다>를 읽으며 진보의 미래에 대한 책을 준비하고 있었다. 노 전 대통령이 하고자 했던 말은 무엇이었을까? 크루그먼을 읽으면 노 전 대통령의 문제의식에 접근할 수 있다는 게 김 전 처장의 말이다.

24일 저녁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대회의실에서 열린 세 번째 '노무현 대통령이 읽은 책들' 강독회는 김 전 처장이 정권이 바뀐 후에 갖는 첫 공식 발언 자리였다. 강독회에 참석한 '오마이뉴스 10만인클럽' 회원 100여 명은 열띤 분위기 속에서 큰 관심을 나타냈다.

보수 시대의 진보 정부, 그 가능성과 한계는?

"과연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는 진보 정권이었나?"

이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책 집필을 위한 토론 중 가장 많이 던진 질문 중에 하나다. 참여정부는 줄곧 진보진영으로부터 혹독한 비판을 받았다. 최장집 고려대 교수는 참여정부를 향해 "신자유주의의 레일을 깔았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참여정부 때 복지 예산이 많이 늘긴 했지만 양극화는 더욱 심해졌다. 이는 보수언론이 참여정부를 비판하는 중요한 의제가 됐다. 실제로 노 전 대통령은 참여정부에서 복지 예산을 많이 확충했음에도 양극화·청년실업·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것을 못내 아쉬워했다.

'참여정부는 진보정권이었느냐?'는 물음은 '왜 심화되는 양극화를 막지 못했는가?'로 연결된다. 이에 대해 김 전 처장은 "노 전 대통령은 <미래를 말하다>에 나오는 '진보의 시대', '보수의 시대'라는 개념을 통해 이러한 문제의식에 접근했다"고 말했다.

김 전 처장은 "진보의 시대에는 보수주의자 닉슨 대통령도 복지제도와 의료보험을 도입하려 했다"며 "반대로 보수의 시대에 클린턴 대통령은 금융자본, 벤치기업들과 결합해서 신자유주의 정책을 도입했다"고 밝혔다.

그는 "신자유주의 시대에서는 세계적으로 성장하는 데 고용이 늘어나지 않는다"며 "이런 상태에서 양극화·청년실업·비정규직은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이러한 시대에 진보 정부라고해서 과연 무엇을 할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김 전 처장은 이어 "이명박 정부가 4대강 살리기에 쏟아붓는 것처럼, 우리도 양극화·청년실업·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위해 20조 원씩 예산을 더 배정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도 있다"면서 "하지만 합리적인 판단이 필요했다"고 말했다.

"평등은 생산의 기본 요소, 평등 확대는 정치에서 비롯"

김창호 전 국정홍보처장이 24일 저녁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대회의실에서 열린 '노무현 대통령이 읽은 책들' 강독회에서 폴 크루그먼의 '미래를 말하다'를 주제로 강의하고 있다.
 김창호 전 국정홍보처장이 24일 저녁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대회의실에서 열린 '노무현 대통령이 읽은 책들' 강독회에서 폴 크루그먼의 '미래를 말하다'를 주제로 강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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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고민은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미국을 통해 우리의 현실을 직시하고 고민에 대한 해답을 얻어낼 수 있다. 노 전 대통령도 이러한 방법을 취했다. 책에서 크루그먼은 '불평등'이라는 키워드를 통해 미국 현대사를 진보의 시대와 보수의 시대로 나눈다.

첫 번째 보수의 시대는 도금 시대로 불리는 1870년대부터 1930년대 뉴딜 정책 이전까지다. 이 시기에는 겉으로는 화려한 성장이 이뤄졌지만, 금권정치가 횡행했고 경제적 불평등이 극단으로 나타난 시기였다.

1920년대 대공황 이후 루즈벨트 대통령이 당선되면서 미국에서 진보의 시대가 막을 연다. 상속세와 재산세가 비약적으로 올랐고, 강력한 반독점 정책이 취해졌다. 김 전 처장은 "진보의 시대에서는 소득 양극화가 최소화됐고, 미국 공동체성이 회복됐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1980년대 이후 다시 보수의 시대로 돌아서자, 소득 불평등은 현격하게 커졌다. 김 전 처장은 "레이건 시대 성장률은 미국 역사상 가장 낮았다"며 "크루그먼의 생각은 평등에 가까울수록 그 사회는 건강해지고 생산력은 높아진다는 것이었다"고 전했다.

그는 이어 "크루그먼의 이러한 문제의식에 노 전 대통령이 큰 영향을 받았다"며 "노 전 대통령은 '진보의 시대를 예비하고 보수주의 시대의 문제점을 비판하고 미래 담론을 준비할 필요가 있다, 선투자 후복지 성장 중심의 50년간 이어온 틀을 기본적으로 바꾸고 싶다'고 했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 노 전 대통령이 주목했던 것은 토니 블레어 전 영국 총리의 '제3의 길'. 김 전 처장은 "노 전 대통령의 생각은 직접 못 들어봤다"면서도 "노 전 대통령은 일부 공공부문에 시장주의를 도입하고 권력을 분산화시켰던 '제3의 길'을 전략적 양보를 통해서 진보정치의 헤게모니를 이어나가기 위한 주체적 선택이라고 평가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 전 처장은 "무엇보다 평등과 불평등을 구분하는 것은 정치라는 크루그먼의 주장에 노 전 대통령은 공감했다"며 "노 전 대통령은 어떻게 하면 선택가능하고 제도적인 진보로, 평등을 강화하면서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들 수 있을까 고민했다"고 밝혔다.

정답은 칼 폴라니의 사회공동체 개념

다시 처음 제기됐던 질문으로 돌아가자. 부자감세 서민증세로 불평등이 가속화되는 상황에서 진보는 제대로 집권할 수 있는가? 김 전 처장은 칼 폴라니가 내놓은 사회공동체 개념을 끌어들이며 "진보정치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공동체 운동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그는 "노무현·김대중 전 대통령처럼 우연히 집권해서 대통령이 된들 가능한 정책이 많지 않다, 중앙 권력은 선거나 촛불 시위가 아니면 그들을 지지하는 시민들을 만날 수 없고 기득권층에 둘러싸여 있다"며 "권력을 진보적으로 재구성하기 위해서는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노동조합·지식인·농민·진보적 학생들이 진보적 정치세력을 만들 수 있나? 이제는 생활세계의 시민공동체 운동에서부터 진보적인 동력을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시민들은 지역에서 생태 공동체나 독서모임을 꾸리지만, 시청과 구청에서 무엇이 이뤄지는 관심을 갖지 않는다. 권력에 대한 감시부터 해야 한다.

그래서 내년 지방선거가 중요하다. 진보적 가치를 가진 사람들이 연대해야 한다. 노 전 대통령은 부엉이 바위에서 몸을 던지고 기득권을 버리면서 '내가 실패했지만, 진보가 실패한 게 아니다'라고 했다. 감동 있는 연대를 위해서 누군가 희생해야 한다. 우리는 기득권을 버리고 있나?"

김창호 전 국정홍보처장이 24일 저녁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대회의실에서 열린 '노무현 대통령이 읽은 책들' 강독회에서 폴 크루그먼의 '미래를 말하다'를 주제로 강의하고 있다.
 김창호 전 국정홍보처장이 24일 저녁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대회의실에서 열린 '노무현 대통령이 읽은 책들' 강독회에서 폴 크루그먼의 '미래를 말하다'를 주제로 강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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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노무현 강독회, #노무현, #김창호, #미래를 말하다, #크루그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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