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문재인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15일 저녁 서울 여의도 CCMM빌딩에서 열린 '노무현 시민학교'에서 노무현의 법치주의에 관해 강의하고 있다.
 문재인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15일 저녁 서울 여의도 CCMM빌딩에서 열린 '노무현 시민학교'에서 노무현의 법치주의에 관해 강의하고 있다.
ⓒ 남소연

관련사진보기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뒤 말을 아껴온 문재인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이명박 정부에 대한 쓴소리를 쏟아냈다. 15일 저녁 여의도 국민일보사빌딩(CCMM)에서 열린 '노무현 시민주권학교' 강연에서다.

문 전 실장은 이날 강연에서 이명박 정부가 내세운 '법치주의'를 "왜곡된 사이비 법치주의"로 비판했다. 또 "이명박 정부 들어 어렵게 발전시켜온 민주주의가 후퇴, 퇴행하는 것이 아쉽다"고 말했다. "진정한 법치주의가 더 이상 후퇴하지 않도록 국민들이 감시하고, 민주주의를 회복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도 했다.

노 전 대통령의 '동지'인 문 전 실장은 노 대통령에 대한 검찰 수사와 서거 정국 이후에도 현 정권에 대한 직접 비판을 삼가 왔다. 10월 재보선을 앞둔 민주당의 '러브콜'도 거절했다.

따라서 그가 공개된 장소에서 강연자로 나와 현 정권에 쓴소리를 던진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법치주의, 국민이 법 지켜야 하는게 아니라 국가권력이 지켜야"

'노무현의 법치주의'를 주제로 1시간30분 가량 이어진 강연에서 그는 이명박 정부가 내세운 '법치주의' 슬로건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참여정부의 성과와 노 전 대통령이 지향한 '제3단계 민주주의'를 설명하는데도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노무현 정권의 과오에 대해서도 솔직히 얘기했다.

그는 강연 첫 머리에서 "요즘 법치주의에 대해 왜곡해서 이상한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며 "이 정부가 얘기하는 법질서 확립은 진정한 법치주의 아니다"라고 포문을 열었다. 그는 "법치주의는 국가 권력을 제한하고 통제하는 것"이라며 "국민이 법을 지켜야 하는게 아니라 국가권력이 법을 지켜야 하는게 진정한 법치주의"라고 말했다. 국민에게 준법을 강요하는 이명박 정부가 스스로 법을 지키지 않고 있다는 비판이다.

문 전 실장은 14일부터 시작된 고위공직자 인사청문회를 예로 들었다. 그는 "고위공직에 있으면서 위법, 권한 남용, 특권 추구 등을 하지 않을 품성과 자세가 갖춰진 사람인지 살펴보는게 인사검증"이라며 "따라서 위장전입, 세금탈루 등은 묵과할 수 없는 결격 사유가 된다"고 말했다. 이명박 2개 내각 장관 후보자 대부분이 위장전입으로 곤욕을 치르는데 대한 따끔한 지적이다.

"참여정부 때 인사검증 기준이 가장 높았다"고 말한 그는 "반칙으로 특권, 특혜를 누린 사람들이 고위공직자가 되는 일은 있을 수 없다"고 거듭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법치주의가 시민의 자유를 보장하는 '형식적-시민적 법치주의'로부터 사회경제적 약자를 배려하는 '실질적-사회적 법치주의'로 발전해 왔다"고 말한 뒤 "노 대통령이 퇴임 후 연구하고 싶었던 것이 바로 실질적-사회적 법치주의였다"고 덧붙였다. "참여정부는 광범위한 법치개혁을 해 왔다"는 설명도 빼놓지 않았다.

15일 저녁 서울 여의도 CCMM빌딩에서 열린 '노무현 시민학교'에서 참석자들이 문재인 전 청와대 비서실장의 강의를 듣고 있다.
 15일 저녁 서울 여의도 CCMM빌딩에서 열린 '노무현 시민학교'에서 참석자들이 문재인 전 청와대 비서실장의 강의를 듣고 있다.
ⓒ 남소연

관련사진보기


이명박 정부의 법치주의 허상을 보여주는 예로 문 전 실장은 '용산참사'를 들었다. 그는 "당시 용산은 위험한 사태였기 때문에 설령 해결할 필요가 있다고 하더라도 경찰을 투입하면서도 사람들의 생명과 인권을 존중하고 배려하면서 진압 작전을 해야 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참여정부가 법치주의 확립과 함께 제왕적 대통령제 폐지와 책임총리제 도입, 당정분리 등 권위주의 타파에 노력해 왔다고 밝혔다. 검찰의 정치적 독립, 중립을 보장하는 등 권력기관 개혁, 사법개혁에도 힘을 쏟았다고 말했다.

"정운찬, 어정쩡한 총리 되면 벼슬 탐한 변절자 오류 밖에 안돼"

하지만 이런 성과가 이명박 정부 들어 "퇴행하고 있다"는 우려도 나타냈다. 책임총리제를 설명하면서, 그는 최근 총리 지명으로 논란의 중심이 된 정운찬 후보자에게도 충고를 던졌다.

그는 "인사검증은 별도로 하고, 정운찬 후보자가 총리가 되려면 (헌법상 보장된) 총리 권한을 요구하고, 권한을 보장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정 후보자가 총리로 들어가서 총리 권한을 실제로 행사해야 보람이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 후보자가 이명박 대통령과 타협할 가능성도 있다고 봤다. 그는 "만약 정 후보자가 아무 보장없이 과거의 '어정쩡한 총리'에 그친다면 그야말로 벼슬을 탐한 지식인의 변절과 같은 오류밖에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날 참여정부의 몇 가지 비화도 소개했다. 참여정부 초대 민정수석이 된 그는 정권과 검찰의 유착을 끊는 것으로 첫 업무를 시작했다고 한다. 그는 "당시 검찰에서는 청와대 민정수석실용으로 차량을 몇대나 지원해주고 있었다"면서 "민정수석 취임 후 다 돌려보냈다"고 말했다.

참여정부 초기 '나이스' 시스템 구축, 이라크 파병 등에 반대한 국가인권위와 벌였던 갈등에 대해서도 섭섭함을 나타내기도 했다. "그 당시 매우 곤혹스러웠다"고 말한 그는 "참여정부에겐 아픈 일이었지만, 국가인권위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이었다"는 노 전 대통령의 말을 인용하며 그것 역시 참여정부의 성과로 설명했다.

노 전 대통령 퇴임 후 큰 논란이 됐던 대통령 기록물 반출에 대해 그는 "양이 너무 방대해서 퇴임 후 재분류할 필요가 있어서 가지고 간 것"이라고 밝혔다. '국가기록물 반출은 위반'이라는 현 정부의 주장에 대해서는 "동의할 수 없다"고 기존 입장을 고수했다.

"노 서거 때 눈앞 캄캄... 나까지 분노할 수 없었다"

문재인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15일 저녁 서울 여의도 CCMM빌딩에서 열린 '노무현 시민학교'에서 노무현의 법치주의에 관해 강의하고 있다.
 문재인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15일 저녁 서울 여의도 CCMM빌딩에서 열린 '노무현 시민학교'에서 노무현의 법치주의에 관해 강의하고 있다.
ⓒ 남소연

관련사진보기


그는 참여정부의 과오에 대해 "역시 민심과 함께 갔어야 됐다"고 말했다. 그는 "개혁이 조금 더디더라도 국민 동의를 얻어서 나가야 했다"면서 "우리가 너무 많은 일을 하려고 욕심부리지 말고 민심을 얻어 정권재창출에 성공한 뒤 다음 정부가 이어가는게 좋았을 거라고 생각한다"고 솔직히 털어놨다.

참여정부가 "개혁에 너무 욕심을 부린" 이유에 대해서는 "우리가 도덕적으로 우월하다, 옳은 일이기 때문에 밀고 나간다는 관성에 빠졌는지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노 전 대통령 서거 자신이 느낀 감정도 숨김없이 밝혔다. 그는 "솔직히 노 전 대통령이 돌아가시고 난 뒤 (청와대) 비서실장을 했다는 것이 원망스러웠다"며 "눈앞이 캄캄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장례 일정 등으로 슬퍼할 겨를도 없었다고 한다. 그는 "나까지 분노할 수는 없었다"며 "장의절차도 그렇고, 분노만 갖고 할 수 없는 것 아니냐"고 덧붙였다.    


태그:#문재인, #노무현 시민학교, #이명박, #법치주의, #정운찬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26,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2001년 오마이뉴스 입사 후 사회부, 정치부, 경제부, 편집부를 거쳐 정치팀장, 사회 2팀장으로 일했다. 지난 2006년 군 의료체계 문제점을 고발한 고 노충국 병장 사망 사건 연속 보도로 언론인권재단이 주는 언론인권상 본상, 인터넷기자협회 올해의 보도 대상 등을 받았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