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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TV홈쇼핑과 거래한 한 중소기업은 높은 수수료 탓에 결국 폐업위기에 처했다(자료사진).
 한 TV홈쇼핑과 거래한 한 중소기업은 높은 수수료 탓에 결국 폐업위기에 처했다(자료사진).
ⓒ 선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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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홈쇼핑 상품기획자(MD)를 저승사자라고 불러요. 중소기업 수십 개 망하게 했다는 훈장을 가지고 다니는 저승사자요."

한 중소기업 대표 김아무개씨의 말이다. 그는 "TV홈쇼핑을 통해 상품을 팔려는 많은 중소기업이 높은 수수료 등의 불합리한 구조로 손해를 보거나 어떤 경우는 망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그 역시 TV홈쇼핑과의 거래에서 큰 손해를 보고, 판로를 수출 쪽으로 틀었다.

김씨는 이어 "중소기업으로서는 TV홈쇼핑만한 유통구조가 없기 때문에,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중소기업의 피해는 계속 이어질 것"이라고 전했다. 또 다른 중소기업 관계자도 "중소기업은 막무가내로 짓밟힐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처럼 중소기업이 대형 TV홈쇼핑과의 관계에서 불합리한 대우를 받는다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이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은 제시되지 않아 중소기업의 피해는 더욱 가중됐다. 그 해결책으로 최근 논의가 활발해진 '중소기업 전용 TV홈쇼핑'이 주목받고 있다. 중소기업의 판로를 개척하면서도 소비자의 편익을 증대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TV홈쇼핑으로 99%의 중소기업은 망하고, 1%만 살아 남는다"

 한 TV홈쇼핑의 추석특집 방송 장면.
 한 TV홈쇼핑의 추석특집 방송 장면.
ⓒ 오마이뉴스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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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우리나라의 중소기업이 TV홈쇼핑 유통 구조에서 어떠한 상황에 처해 있는지 살펴보자. TV홈쇼핑 업계에서 지난 1995년부터 10년간 일한 조아무개씨는 "홈쇼핑을 통해 돈을 버는 중소기업은 1%도 안 되고, 나머지 99%는 대부분 망하거나 큰 손해를 본다"고 강조했다. 그는 한 중소기업의 사례를 들었다.

"제조원가가 1000원인 상품을 만든 중소기업 A사가 있었다. 수수료가 40%대인 것을 감안해 A사는 B홈쇼핑에 이 제품을 1800원에 납품하려 했다. 하지만 A홈쇼핑에서는 시중 가격보다 싸야한다며 1300원에 납품을 하라고 했다. A사는 수수료를 생각하면 오히려 손해를 보게 되지만, 이에 응할 수밖에 없었다. A사의 결말은 뻔했다."

조씨는 "중소기업 입장에서는 TV홈쇼핑만큼 자신을 알릴 수 있는 유통구조가 없기 때문에, TV홈쇼핑을 포기하기 어렵다"며 "중소기업들은 TV홈쇼핑에 뜯기는 줄 알면서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줄을 선다, TV홈쇼핑만 땅 짚고 헤엄치기로 큰 돈을 벌고 있다"고 밝혔다.

"제품 경쟁력이 뛰어난 소수의 우량 중소기업도 TV홈쇼핑을 통해 돈을 벌기는 힘들다"고 조씨는 말했다. 그는 "중소기업은 높은 수수료뿐만 아니라, 사은품·추가 구성품·모델 출연료 등을 모두 부담해야 하는 경우가 많아 돈을 벌기 힘들다"며 "또한 갑자기 방송이 중단될 경우, 많은 재고와 수입해 놓은 원자재를 남긴 채 도산을 피할 수 없다"고 전했다.

수수료와 부대비용의 전가뿐 아니라 '방송시간 정액제' 역시 중소기업에겐 두려움의 대상이다. 이는 매출에 따라 수수료를 지급하는 '판매수수료제'와는 달리, 매출과 상관없이 정해진 금액을 TV홈쇼핑에 지급해야 하는 것이다. 생활용품을 만드는 E사의 김아무개 대표의 말을 들어보자.

"4700만 원을 내고 홈쇼핑 방송 50분을 샀다. 황금 시간대에는 보험·대기업 제품들을 팔다보니, 우리 제품 방송은 오전 6시부터 낮 12시 사이 시간대로 배정됐다. 홈쇼핑 매출이 적은 시간대다.

50분 동안 5000만 원 매출을 올렸다. 4700만 원을 홈쇼핑에 납부하고 원가를 빼니 정확히 3000만 원 손해를 봤다. 그 후, 경쟁력 없는 상품이라고 다시 방송할 기회를 주지도 않았다. 큰 돈을 내고 방송을 했는데, 망할 위기에 처했다. 정액제에서는 결코 돈을 벌 수 없다."

TV홈쇼핑만 고속성장... 수요·공급 불균형으로 공정한 시장원리 적용 안돼

 한 TV홈쇼핑 콜센터 모습(자료사진).
 한 TV홈쇼핑 콜센터 모습(자료사진).
ⓒ 이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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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불합리한 홈쇼핑과 중소기업 간의 관계는 방송 수요에 비해 방송 공급이 크게 부족하기 때문에 발생한다. 최재섭 남서울대 유통학과 교수는 "정상적인 시장이라면 수요와 공급에 의해서 균형가격(수수료)이 나와야 하는데, TV홈쇼핑 시장은 그렇지 못하다"며 "5개의 업체가 과점하고 있어 공정한 시장 논리가 적용되지 못한다"고 전했다.

그 근거로 최 교수는 TV홈쇼핑 업계의 영업이익률이 다른 업종에 비해 상당히 높다는 점을 들었다. 업계 1, 2위인 GS홈쇼핑과 CJ오쇼핑의 2008년 영업이익률은 각각 13.69%, 16.09%에 이른다. 대형마트인 홈플러스의 2007년 영업이익률(4.13%)에 비해 월등히 높다. 또한 TV홈쇼핑 업계는 2003년 이후 2008년까지 연 평균 5.4%의 고속성장을 기록하고 있다.

반면, 제품 판매액 중 중소기업에 돌아가는 몫은 적다. 김익성 중소기업연구원 연구위원의 분석에 따르면, 홈쇼핑 판매수수료(평균 37.2%)와 벤더(중간업자) 수수료(평균 10%) 그리고 추가 부대비용 등을 제외하면 제품판매액 중 9.5%만 중소기업의 수입으로 돌아간다.

현재와 같은 대기업 계열 TV홈쇼핑 업체의 과점은 단순히 중소기업에 대한 피해뿐 아니라, 소비자 편익의 낭비도 초래한다는 지적이 많다. 최재섭 교수는 "수수료를 낮추고 중소기업 제품을 더 소개한다면, 소비자들은 더 질 좋고 싼 제품들을 다양하게 만날 수 있다"고 밝혔다.

현재 기존 TV홈쇼핑 업체에서는 "이미 중소기업 편성비율은 70% 이상"이라며 "제6의 TV홈쇼핑업체가 생기면 과당경쟁만 유발된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에 대해 김익성 연구위원은 "대기업이나 해외유명상품도 중간업자에 의해 납품되면 중소기업제품으로 분류되고, 황금 시간대에는 보험이나 대기업 가전제품이 배치되고 있다"며 "실제 중소기업 편성비율은 50% 미만"이라고 전했다. 또한 그는 "방송통신위원회에 따르면, 2009년 5조2천억 원으로 예상되는 TV홈쇼핑 시장 수요가 2013년 6조6천억 원으로 증가한다"며 "과열경쟁구도가 우려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지적했다.

"중소기업 전용 TV홈쇼핑, 정부가 참여해야"

TV홈쇼핑 채널 승인권을 가지고 있는 방통위는 최근 중소기업 전용 홈쇼핑 설립을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지금부터라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전문가들은 "중소기업 전용 TV홈쇼핑이 대기업에 매각되는 사례를 방지하기 위해 그 채널권이 대기업이 아닌 공공성을 가진 기관에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실제 중소기업 상품의 보호 및 육성이라는 목적으로 2001년 설립된 우리홈쇼핑은 2006년 방통위의 승인 하에 롯데홈쇼핑에 인수되면서 그 목적을 상당부분 상실했다. 이후 롯데홈쇼핑은 자사 제품 방송을 늘리면서 롯데그룹 홍보채널이라는 비판을 듣기도 했다. 농수산홈쇼핑 역시 농수산품 방송 편성비율을 지속적으로 줄이고 있는 실정이다.

이와 함께 중소기업 전용 TV홈쇼핑을 케이블 방송에서 의무 편성해야 한다는 주장도 크다. 현재 5대 홈쇼핑업체들은 다수의 종합유선방송사업자(SO)를 보유하고 있다. CJ오쇼핑의 경우, 13개 SO를 보유하고 있고 강원방송 등 10여개의 SO에 대해 지분 참여를 하고 있다.

최재섭 교수는 "민간 기업이 중소기업 전용 TV홈쇼핑 채널에 참여하면 이익을 원하는 주주를 위해 잘 팔리는 대기업 제품만 취급하고 나중에 대기업에 매각될 수 있다, 중소기업 판로개척 목표를 위해 정부나 공공기관이 나서야 한다"며 "또한 SO가 채널 편성을 거부할 수 없도록, 의무편성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중소기업 전용 TV홈쇼핑#TV홈쇼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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