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인생이 지루한가요?
따분함이 느껴지는 시간이 많아지나요?
그리고 내가 왜 사는가, 싶습니까?

그렇다면 강력한 처방이 있습니다.

병원으로 발걸음할 필요 없습니다.
물론 약값도 들지 않지요.

이분의 드레를 머금은 유쾌함을 배우면 됩니다.
바로 헤이리의 박돈서 교수님입니다.

박교수님은 늘 모자를 즐겨 쓰시며 대외적인 자리에서는 마을 안에서도 늘 정장으로 격식을 갖추는 것을 게을리 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사소한 자리라도 대표 발언을 하실 때는 미리 원고를 준비하십니다. 중언부언하는 지루함을 덜기 위함입니다.
 박교수님은 늘 모자를 즐겨 쓰시며 대외적인 자리에서는 마을 안에서도 늘 정장으로 격식을 갖추는 것을 게을리 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사소한 자리라도 대표 발언을 하실 때는 미리 원고를 준비하십니다. 중언부언하는 지루함을 덜기 위함입니다.
ⓒ 이안수

관련사진보기


평생, 건축가이며 대학의 교수였고, 부총장이었으며, 학장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보직을 다 던져버렸을 때 간혹 강단에 서서 전문성과 경륜을 전하는 명예교수이기도 했습니다. 이제는 이마저도 손을 놓았지요.

그렇지만 박 교수님은 현재, 그 어느 때보다 즐겁고 바쁜 삶을 살고 계십니다.

형평을 잃는 법이 없으므로 대립된 의견의 어느 편에서도 배척되지 않습니다.
자신의 이익을 털끝만큼도 도모치 않으므로 누구에게도 오해를 받지 않습니다.
가진 것을 나누므로 누구로부터도 환영받습니다.

마음등불의 주인이신 소설가 윤후명 선생님과 한길사 김언호 사장님과 함께. 윤후명 선생님은 멋진 마음등불 공간을 개방적으로 운영하셔서 많은 작가들의 등불이 되고 있으며, 김언호 사장님은 긴 시간동안 인내와 뚝심으로 헤이리를 앞장서서 일구어 오신 분입니다. 박 교수님은 마을이 흔들림 없이 초심을 갈 수 있도록 중심을 잡아주시지요.
 마음등불의 주인이신 소설가 윤후명 선생님과 한길사 김언호 사장님과 함께. 윤후명 선생님은 멋진 마음등불 공간을 개방적으로 운영하셔서 많은 작가들의 등불이 되고 있으며, 김언호 사장님은 긴 시간동안 인내와 뚝심으로 헤이리를 앞장서서 일구어 오신 분입니다. 박 교수님은 마을이 흔들림 없이 초심을 갈 수 있도록 중심을 잡아주시지요.
ⓒ 이안수

관련사진보기


아직 까탈이 남아 있는 30대의 미시족들부터 점잔 빼는 것을 애지중지하시는 동년배의 70대 어른들까지 누구나 박 교수님 앞에서는 3분 안에 허물어집니다. 그리고 '까탈'도 '점잔'도 녹아내리고 종국에는 무방비의 마음이 됩니다.

이 모든 것의 비법은 유머입니다. 박 교수님은 한두 시간쯤은 가볍게 자리를 들었다 놓았다할 만한 적절한 유머를 구사하십니다. TPO(Time, Place, Occasion)에 딱 들어맞는 유머로 말입니다. 간혹 박 교수님께서 말이라도 놓치시면 옆에 계신 사모님께서 부창부수의 백업장치를 가동하십니다.

박교수님은 헤이리의 남녀노소 누구나 열광하는 광범위한 열혈 팬을 확보하고 계십니다.
늘 폭소주머니를 달고 다니시기 때문이지요.
 박교수님은 헤이리의 남녀노소 누구나 열광하는 광범위한 열혈 팬을 확보하고 계십니다. 늘 폭소주머니를 달고 다니시기 때문이지요.
ⓒ 이안수

관련사진보기


어느 집단이나 멀쩡한 기와를 헐고 새로 흙손질한 벽에 금을 긋는(毁瓦劃墁 훼와획만) 훼방꾼은 있기 마련입니다. 이런 무따래기들에게는 엄중한 꾸짖음은 미봉책입니다. 오히려 존중과 부드러움으로 다가가야 합니다. 손가락질만 받던 사람들에게 이런 애정은 큰 효험을 발휘합니다. 토담에 낙서를 하던 꼬챙이를 스스로 던져버리게 하는 것도 바로 박 교수님의 부드러운 접근입니다.

헤이리의 두 아이콘 박돈서 교수님과 안상규 화백님.
 헤이리의 두 아이콘 박돈서 교수님과 안상규 화백님.
ⓒ 이안수

관련사진보기


햇살 좋은 오전에 물고기나무에서 성낙중 작가를 비롯한 몇몇 이웃들과 차를 나누었습니다. 이런저런 맛난 얘기로 두 번째 우려낸 차까지 바닥을 드러낼 때쯤 청향재의 송효섭 교수님께서 박 교수님께 물었습니다.

"혹, 노숙자 유머 아십니까?"

이제는 헤이리의 주민들은 새로운 유머를 듣게 되면 박 교수님께 일차적으로 검정을 받는 방식으로 보고를 드립니다.

"유머의 첫 번째 예의는 알아도 모른 척하는 거예요. 얘기해 보세요."

헤이리에는 또 다른 유머의 지존을 노리는 '포스트 박돈서' 시대에 대한 은근한 물밑 후계자 쟁선(爭先) 노력도 있습니다. 현재까지 건축가 최삼영 소장님이 두각을 보였지만 의외로 송 교수님이 복병입니다.

"각 세대별 노숙자들이 지하도에 모여 마누라에게 쫓겨나 노숙을 하게 된 사연을 고백했습니다.
20대 노숙자 왈 '유머감각 없다고 쫓겨나게 되었습니다'
30대 노숙자 왈 '저녁으로 라면 끓여 달랬다가 집 나오게 되었습니다'
40대 노숙자 왈 '아침밥 차려 달랬더니 집밖으로 내쳤습니다'
50대 노숙자 왈 '외출하는 마누라에게 어디 가냐고 물어봤다가 이 꼴이 되었습니다'
60대 노숙자 왈 '마누라 외출하는데 함께 신발끈을 매고 따라 나섰다가 다시는 못 들어가게 되었지요'
70대 노숙자 왈 '저는 그냥 나가라던데요'"

송 교수님의 노숙자 유머가 끝나자 함께 파안하신 박 교수님은 노숙자와 다름없는 처지의 남자 유머를 선보였습니다.

"한 남자가 집이 이사 갈 때마다 버려지곤 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이사 간 집으로 찾아가곤 했지요. 또다시 이사하는 날이 되었습니다. 이번에도 버려질 것이 두려워 미리 장롱 속에 숨었습니다. 그런데 한나절이 지나도 장롱이 미동도 않는 것입니다. 문을 열고 나와 보니 식구들은 모두 떠나고 없었습니다. 그 남자가 숨은 곳은 붙박이 장롱이었던 거예요."

저는 이 유쾌한 수다가 더없이 즐거웠습니다. 그리고 이런 즐거움이 마을 모두의 것이 되었으면 싶었습니다. 그래서 제의했습니다.

"올 연말 헤이리 주민송년파티에 이 유머 몇 편을 각색해서 무대에 올려요. 음악회뿐만 아니라 프로그램을 다양화하면 좋을 듯싶습니다. 주민들이 주인공이 된 이런 가벼운 연극이야말로 즐거움이지 않겠습니까. 제가 감독을 하겠습니다. 박 교수님께서 각색을 하시지요?"

"아니, 국문과 교수가 해야지. 각색은 송 교수가 해야 해. 난 배우 할래."

"저는 조감독을 하겠습니다. 아무래도 박 교수님이 더 감각이 있지 않겠습니까?"

송 교수님이 다시 박 교수님께 미루었습니다.

"그럼, 70대의 박 교수님께서 20대를 연기하는 겁니다. 목에 '나는 20대'라는 팻말을 걸면 되지요."

"그럼 이안수 선생님이 70대를 연기하세요."

크레타의 김기호 선생님이 제게도 역할을 지정했습니다.

아무튼 올 연말, 이 연극이 무대에 오를지는 두고 볼 일입니다.

일어설 시간에 박교수님이 지갑을 열었습니다.

"며칠 전에 한 건축공모전의 심의를 갔었습니다. 금일봉을 주더라고요. 이제는 이런 일도 드물지만 수입이 생겼으니 내가 낼랍니다."

마침내 박교수님의 붓을 잡게한 김기호 작가님과 함께 추임새를 넣었던 송효섭 교수님.
 마침내 박교수님의 붓을 잡게한 김기호 작가님과 함께 추임새를 넣었던 송효섭 교수님.
ⓒ 이안수

관련사진보기


헤이리의 시각예술집단 '신신낭만'에서 '예, 모여라. 사람을 만나다'라는 직업작가와 취미작가를 아우르는 연합전을 기획했습니다. 김기호 작가가 박 교수님께 전시회 참여를 여러 차례 권했습니다. 그때마다 손사래를 쳤습니다.

"이 나이에 어떻게 평생 잡아보지 않은 붓을 잡겠소……."

김기호 선생님이 해리 리버맨(Harry Lieberman)의 얘기를 들려드렸습니다.

"29세에 폴란드에서 미국으로 이민 간 해리는 맨해튼의 로우이스트사이드에서 과자도매상을 하여 큰돈을 벌었습니다. 영어 한마디 못한 상태에서 단지 6달러로 대서양을 건넜던 해리는 평온한 노후를 위해 77세에 장사를 놓고 은퇴하였습니다. 노인클럽에서 장기를 두며 소일하고 있었지요. 하루는 장기의 상대가 나타나지 않아 무료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때 그 클럽의 봉사원이 그에게 화실에 가서 그림이나 그려볼  것을 권했습니다. 그때 해리는 손사래를 치며 말했습니다.

'이 나이에 어떻게 평생 잡아보지 않은 붓을 잡겠소…….'

팔순에 가까운 나이에 그림을 시작하신 그분이 22번째 개인전을 열었을 때는 101살이었습니다. 기성화가들은 그 노인의 천재성에 놀라워했으며, 평론가들은 노인의 그림에 '미국의 샤갈'이라고 성찬을 바치고, 미술관들은 다투어 해리의 그림을 컬랙션했습니다."

김기호 화백의 설득 후, 박 교수님은 이인 화가의 화실에서 며칠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전시 개막을 이틀 앞두고 저와 마주쳤습니다. 박 교수님은 득의에 찬 미소를 띠며 마침내 두 점을 완성했다고 했습니다.

"내가 오랫동안 구상한 작품이 있었는데 이번에 그 작품을 못해 아쉬워요."
"어떤 구상이었기에요?"
"신사는 금발을 좋아해, 였지."

박 교수님의 두 작품에 대한 비밀을 귀띔하고 계십니다.
 박 교수님의 두 작품에 대한 비밀을 귀띔하고 계십니다.
ⓒ 이안수

관련사진보기


전시 개막식날 성장을 하시고 전시장에 일찍 모습을 보이셨습니다. 전시장에 박 교수님의 첫 작품인 구상과 비구상의 두 점을 나란히 걸었습니다. 박 교수님께 작품 설명을 부탁드렸습니다.

"보다시피 하나는 내 '자화상'이에요. 고뇌하는 지식인 같지 않나요? 사실은 지난번 '정한숙기념홀'의 시낭송회에서 시인이 낭송하는 시가 도대체 이해가 되지 않아 고민하고 있는 모습이에요. 그리고 하나는 '충만'이라는 작품이지."

"충만이라……. 참 어렵습니다."

"꼭 비밀을 지켜야 돼요. 내 이 선생에게만 얘기해드리는 거니까. 남자의 그것은 해면체로 이루져 있잖아요. 흥분이 되면 정맥혈관에 피가 몰려서 발기를 하게 되는 거지. 옛날에 내가 그 세포를 현미경으로 본 적이 있어요. 바로 그것을 그린 거예요. 사실 제목을 '발기'로 하고 싶었는데 너무 노골적이잖아."

박 교수님의 첫 작품인 자화상과 충만
 박 교수님의 첫 작품인 자화상과 충만
ⓒ 이안수

관련사진보기


함께 전희천 선생님의 차고 전시회로 발길을 옮겼습니다.

지금은 모두 은퇴하신 전 선생님의 동양방송 입사 동기들이 축하차 들리셨습니다. 전 선생님의 한 친구가 축사를 했습니다.

"이제 우리는 치매를 걱정해야 할 나이에 전희천 동기는 이렇게 그림을 그리는 새로운 삶을 시작하니 동기지만 존경할 만 합니다."

박 교수님이 그 말을 받았습니다.

"모두가 치매를 걱정하는데 치매와 건망증의 차이를 아시나요? 목욕탕에서 자신의 물건을 내려다보고 이 물건을 언제 사용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면 건망증이고, 이 물건이 어디에 쓰는 물건인지 그 용도조차 도대체 모르겠다면 치매입니다."

자신의 그것을 내려다 보시며 건망증과 치매의 차이을 말씀하시는 박교수님.
 자신의 그것을 내려다 보시며 건망증과 치매의 차이을 말씀하시는 박교수님.
ⓒ 이안수

관련사진보기


'사람을 만나다'전의 개막식에 임박해 다시 마음등불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심상구 사모님과 아들인 박찬욱 감독 내외, 그리고 사부인까지 함께 전시장에 들렀습니다.

박 교수님은 본인의 작품 앞에서 부인과 아들내외 그리고 안사돈 앞에서 근엄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물론 '충만'에 대해서는 달리 설명하셨지요. 사모님은 '한국의 샤갈'이라고 평하시며 흐뭇한 표정으로 남편을 바라보았습니다.

.

( 1 / 3 )

ⓒ 이안수
김기호 화백과 송효섭 교수님이 함께 모인 자리에서 박 교수님은 어렵게 말을 꺼냈습니다.
"내가 말이야. 팔순에 지금부터 그린 그림들을 모아 회고전을 하고 싶은데 가능할까?"

우리 모두는 한 입으로 대답했습니다.

"물론입니다."

박돈서 교수님은 1933년생입니다.

행복하고 싶은가? 그럼 이분의 유쾌함을 배워라.
 행복하고 싶은가? 그럼 이분의 유쾌함을 배워라.
ⓒ 이안수

관련사진보기


*부탁이 있습니다. 부디 헤이리에서 박 교수님을 뵈면 '충만'에 대한 비밀을 제가 누설했다고는 말아주십시오.

덧붙이는 글 | 모티프원의 홈페이지 www.motif1.co.kr 과
모티프원의 블로그 www.travelog.co.kr 에도 포스팅됩니다.



태그:#박돈서, #박찬욱, #헤이리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삶의 다양한 풍경에 관심있는 여행자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