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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초등학교 2학년 담임이라 2007년 개정교육과정으로 수업을 하고 있다. 7차를 수시개정한 것이라 하지만, 교과내용이나 교육방식으로 들어가면 전면개편 수준이다.

2000년에 7차 교육과정이 시행될 때에는 연수나 현장정착이 잘 되는지 점검하는 장학이나 공문도 많았는데, 이번에는 교육당국이나 언론의 관심이 전혀 없다. 올초부터 미래형교육과정 개정(10일, 교과부에서 '2009 개정교육과정'으로 발표) 논의가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아직 고시도 안 했는데 학교자율화조치에 따라 수업시수 20%를 증감하고, 고등학교는 핵심내용을 내년부터 당장 시행하라는 공문이 내려와 교사들을 곤혹스럽게 하고 있다. 게다가 교과교실제, 사교육비 경감 방안, 입학사정관제까지 미래형교육과정이라고 소개되면서 교육과정인지 정책인지 조차 혼란스럽다.

지난 7월 24일 미래형교육과정(2009년 개정교육과정) 토론회 모습입니다. 갑자기 바뀌는 교육과정에 당혹스럽고, 현장을 너무 모르는 교육과정에 할 말을 잃었습니다. 게다가 토론자도 내용을 잘 모르고 연구자들이 질문에 답변도 제대로 하지 못해 황당한 토론회로 기억됩니다.
 지난 7월 24일 미래형교육과정(2009년 개정교육과정) 토론회 모습입니다. 갑자기 바뀌는 교육과정에 당혹스럽고, 현장을 너무 모르는 교육과정에 할 말을 잃었습니다. 게다가 토론자도 내용을 잘 모르고 연구자들이 질문에 답변도 제대로 하지 못해 황당한 토론회로 기억됩니다.
ⓒ 신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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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형교육과정 핵심은 고교자율화

미래형교육과정은 미래사회에 필요한 글로벌 창의인재를 기르기 위해 교육과정을 역량 중심으로 개편하고, 학교장에게 학교교육내용 20% 편성권을 주어 다양성을 추구하며, 자율성을 준 만큼 6, 9학년 일제고사를 통해 질관리를 하겠다고 한다. 이를 위해 국민공통기본교육기간을 9년으로 줄이고, 학년군제와 교과군제를 도입하며, 학교에서 자율적으로 학기별 이수과목수를 6~8개로 조정한다. 즉 미래형교육과정은 '학교교육과정의 자율화, 다양화, 특성화'이며 특히 고등학교 자율화가 핵심이다.

그 동안 4번의 토론회가 있었는데, 편제표로 정리해 보면 <표1>과 같다.

연구진에서 발표한 내용을 토대로 필자가 만들어본 미래형교육과정 편제예시안입니다. 국가교육과정인데 편제표 무엇 하나 명확한 내용이나 기준이 없어 이해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런 혼란은 학교현장수업에도 영향을 줄 것입니다.
 연구진에서 발표한 내용을 토대로 필자가 만들어본 미래형교육과정 편제예시안입니다. 국가교육과정인데 편제표 무엇 하나 명확한 내용이나 기준이 없어 이해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런 혼란은 학교현장수업에도 영향을 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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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와 중고등학교가 2-3년씩 학년군으로 편성되고, 초등학교는 연임제, 중학교는 집중이수제, 고등학교는 무학년제와 학점제를 통한 조기졸업이 가능하다. 교과교실제가 도입되고, 고등학교는 선택교과 체제에다가 국제기준에 맞춰 대학에서도 학점이 인정되는 AP코스가 새로 생긴다. 교과군제도로 초등은 통합교과, 중등은 도덕, 기술가정, 음악, 미술 교과에 변화가 생긴다. 평가방식까지 주지과목은 점수제나 절대평가, 나머지 교과는 P/F제나 3단계 평가로 바뀌고, 수능도 2번에 걸쳐 볼 예정이다. 수능과목 축소 방안도 이야기된다.

선진국 옷만 빌려온 미래형 교육과정

내용만 보면 역량중심, 학년군제, 절대평가제 등은 외국에서 도입된 제도이고 교육개혁진영에서 주장한 것을 수용한 듯하다. 하지만 미래형교육과정은 우리 교육의 고질적 문제가 대학서열화에 따른 입시교육에 있다는 것을 외면하고 있다. 고등학교가 명문대 입학을 목표로 삼는 것뿐만 아니라 초중학교 입시교육도 심각하다.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첫째, 교육과정자율화는 입시교육과정으로 운영될 것이다. 수학, 과학, 영어를 강조하고,  '영어로 학문적, 전문적 의사소통이 가능하게 한다'니 뻔한 상황이다. 고등학교는 지금도 국영수 시간이 20시간을 넘기고 있다. 나머지 교과들은 입시교과에 자리를 내주거나 학생자습시간으로 변할 것이다. 전인교육이나 인성교육은 문구로만 남고, 문화예술이나 신체조작 학습도 축소되면 학생들은 기형적인 교육을 받게 되는 꼴이다.

둘째, 학습부담 감축은 4차 개정기부터 빠지지 않는 핵심과제이다. 7차교육과정은 교육내용 30% 감축과 교과통폐합까지 했지만 실패했다. 교육내용을 제대로 연구하지 않은 탓이다.

교과교육과정 개편은 오랜 연구를 통해 학생 발달단계와 교과내용 구성과 제시방식을 고려하여 제대로 진행해야 한다. 그런데 연구진은 교과교육과정 개편이나 교과서 개발도 안 한다니 이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기는 어렵게 생겼다. 역량을 길러야 한다면서 아마 교과교육과정 내용 앞에 "역량"이라는 낱말만 끼워넣기 할 것이다.

게다가 주지교과 때문에 다른 교과 시간이 줄어들면 교육내용을 제대로 이해하기 어려워 학습부담은 질적으로 커지게 된다. 일제고사로 수업방식은 시험풀이교육으로 변질될 가능성도 많다. 올해부터 이미 여러 지역에서 초등학생 방학 보충이 생겨나고, 학교자율화와 맞물려 방과후수업도 교과수업으로 바뀌어가면서, 초등 교사마저 예체능수업에 부담을 느낄 지경이다. 다양성, 창의성을 이야기하는 교육과정에 일제고사를 넣는 것은 학문적으로도 맞지 않다.

창의성을 강조한 미래형교육과정은 교육과정에 일제고사를 집어넣었습니다. 학교자율화 2년째, 학교장이 일제고사 대비 방학보충을 안한다니 교육청이 압력을 넣었다고 합니다. 과연 학교교육과정자율화를 공교육 이념-전인교육 소신대로 추진할 수 있는 학교장이  대한민국에 얼마나 있을까요?
 창의성을 강조한 미래형교육과정은 교육과정에 일제고사를 집어넣었습니다. 학교자율화 2년째, 학교장이 일제고사 대비 방학보충을 안한다니 교육청이 압력을 넣었다고 합니다. 과연 학교교육과정자율화를 공교육 이념-전인교육 소신대로 추진할 수 있는 학교장이 대한민국에 얼마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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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학생부담과 수업효율성만 따져 집중이수제(4시간 이상)를 한다면 국영수 외의 교과는 모두 집중이수제 대상이다. 교과는 학문적 타당성과 함께 학생들의 발달과정에서 어떤 내용이 필요한가를 고려하여 해당학년(군)에서 제시되어야 한다. 이런 노력없이 전인교육을 추구하는 공교육에서 한 학기는 고기만 먹이고 다음 학기는 빵만 먹이는 식으로 하라는 것인가? 게다가 거주 이전의 자유가 있는 나라에서 전학생의 피해는 어떻게 할 것인가? 지식은 단기간에 쌓을 수 있지만 감성과 가치관에 관련된 것은 오랜시간 축적되고 녹아들어야 가능하다는 것은 생각도 안 하는가?   

학습부담이 가장 크고 사교육비가 많이 나가는 교과는 입시교과, 그 중에서도 수학과 영어이다. 주당 시수가 많지만 양이 많고 내용이 어려워서 진도 나가기 급급하고 학생들의 이해는 사교육이나 각자 능력에 맡겨버린다. 군소교과들의 학습부담은 계속 국영수에 시간을 내준 결과이다. 문화와 창의성을 중시하는 미래 사회를 생각하자면 12년 국영수교육을 강제하기보다 나머지 교과들을 제대로 배울 시기를 제시하거나 지나치게 부족한 시간을 늘리는 방안도 제시하는 것이 오히려 학습부담도 줄이고 학습효율도 높이는 방안이 될 것이다.

학교 현장 어떻게 달라질까?

5․ 31교육개혁안이후 학교현장은 선택과 다양성을 추구해왔지만, 경쟁과 입시교육만 강화되고 대학에서는 선택교육과정으로 기초교육이 부실하다고 비판하고 있다. 사교육비도 늘어나고 학교에서 학부모가 부담하는 경비도 점점 늘어간다. 사회양극화에 따른 교육양극화 심화는 사회적 화두이다. 초등학생마저 너무 오래 공부한다며 자살하고 있다. 미래형교육과정은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미래형교육과정에 의하면 홍익인간 이념조차 버리고 학교는 소수에게나 유리한 글로벌 창의인재를 기르는데 매진해야 한다. 헌법에 보장된 균등하게 교육받을 권리가 사라진 것이다. 고교다양화 300프로젝트와 고교자율화로 부모의 경제력에 따라 고등학교 서열이 정해진다. 수요자의 선택이 보장되니 책임도 학생들이 져야하므로 국가의 의무교육 책임은 가려진다. 학교선택뿐 아니라 교과목과 교사 선택도 가능하며 수업시수 증감권으로 0교시, 야자보충도 양성화시켜 학교는 거대학원처럼 변할 수 있다. 고등학교가 서열화되면 초등학교와 중학교의 입시부담도 그만큼 커진다. 학습노동시간과 학습부담을 감축시킨다더니 오히려 유치원단계부터 경쟁이 치열해져 아이들의 삶은 파탄날 지경이다. 이렇게 자란 아이들이 살아갈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교사들의 변화도 크다. 교사 전문성의 핵심이라고 할 교육과정 편성과 평가권은 상급학교 진학과 일제고사 점수로 판정날 것이다. 자율성을 이야기하면서 정작 교과서는 정권의 개입으로 과거로 후퇴하고 있다. 중고등학교는 집중이수제와 교과선택 때문에 교사수급에도 변화가 온다. 현직교사는 부전공연수를 하고 사대생은 복수전공을 해야 한다. 대학의 학문전공체제가 변하지 않는 상태에서 이런 제도는 오히려 부실 논란을 가져온다. 교육의 질은 교사의 질을 넘지 못한다는데, 이런 부실교육으로 교사는 자신감을 잃고 학생들은 재미를 잃을 수 있다. 초등학교 수업시수를 무리하게 늘리면서 비정규직 교과전담교사를 대폭 확충하는 방안이 추진되고 있다. 초등교육의 성격과 교과체제, 양성체제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와 함께 정책이 제시되어야 하는데, 무조건적인 전담확대는 땜질정책이다.

교육의 다양성은 교과교육만이 아니라 학교규모와 학급규모 적정화와도 연관된다. 20명 이내의 학생들이 교사의 배려를 받으면서 공부하고 학교안의 인간적인 소통이 가능할 때 다양한 실험이 의미가 있다. 우리 나라 아이들은 초등학교 1학년부터 다인수학급에서 구조적인 무관심을 체험하고 배려받지 못한채 입시교육에만 휘둘린다. 초등학교는 대부분 천명이 넘고 2000명이 넘는 곳도 있는데, 편안하게 쉴 휴게실 하나 없는 공간에 6교시까지 가둬두는 건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제 아이가 다니는 학교 학생은 2천명이 넘고 병설유치원까지 있습니다. 아이는 학생수 많은 게 자랑인줄 압니다. 3개 학년만 모여도 1000명이 넘으니  운동장에서 하루 종일 1-2경기 하고 먼지 먹고 앉아있어야 합니다. 다인수학급에서 가뭄에 콩나듯이 담임의 관심을 받을 수 밖에 없는 대한민국 초등학교 현실의 압축판인듯 합니다.
▲ 초등학교 운동회 제 아이가 다니는 학교 학생은 2천명이 넘고 병설유치원까지 있습니다. 아이는 학생수 많은 게 자랑인줄 압니다. 3개 학년만 모여도 1000명이 넘으니 운동장에서 하루 종일 1-2경기 하고 먼지 먹고 앉아있어야 합니다. 다인수학급에서 가뭄에 콩나듯이 담임의 관심을 받을 수 밖에 없는 대한민국 초등학교 현실의 압축판인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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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습노동시간 감축도 중요하다. 학생들의 건강과 온전한 발달을 위해 적정한 학습과 놀이시간을 법으로 보장해야 한다. 아이들은 놀면서 큰다고 하지 않는가? 학생들이 놀지 못해 생기는 병리현상과 발달 장애는 앞으로 개인이나 사회에 큰 재앙이 될 것이다.

학교의 자율성과 다양성도 국가교육과정이 체계적으로 마련되어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학생들의 발달과 교육에 빈틈이 없도록 설계될 때 진정한 의미가 있다. 그래서 국민세금으로 공교육 체제를 만들고 지원하는 것 아닌가? 아울러 학생회와 교사회, 학부모회 법제화까지 같이 마련되어야 진정한 학교자율화가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미래형교육과정, 제대로 설계하자

그 동안 교육과정 연구가 3-5년의 연구와 시범적용을 한 것에 비해 미래형교육과정은 6개월만에 기본 틀을 완성하고 소수의 비밀연구로 정당성을 의심받고 있다. 물론 연구진은 옛날부터 해오던 사람들이다. 이들은 교육과정 개정을 할 때마다 현장 실행도 하기 전에 실태조사하고 온갖 이론을 다 갖다 붙이며 현장에는 혼란만을 가중시켜왔다. 지금도 교육과정 선진화만 외칠 뿐 기본적인 교육이념이나 교육철학이 허술하고, 그간의 문제점은 교과교육학 교수들과 현장교사에게 떠넘기고 있다.

교육과정과 평가방법의 일관성도 부족하다. "12월 고시"외에는 시행 시기도 날마다 바뀐다. 만약 미래형교육과정이 정당하다면 학문공동체부터 치열하고 토론하고 합의하여 현장의 혼란을 줄여야 할 것이다. 당장은 교과부 장관과 차관부터 토론하고 합의해서 정책을 만들라. 그래야 현장을 설득할 수 있을 것이다. 또 교육과정은 개편 과정 자체가 사회에는 제반 여건을 마련하고, 교사들에게는 교육과정 전문성을 기르는 과정이므로 제대로 된 연구가 필요하다.

연구진이 핀란드교육을 배워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배우려면 제대로 배우자. 교육개혁에 대한 사회적 합의와 30여 년의 장기 계획, 유초등 교육 3년을 가장 중요하게 보는 점, 유럽에서 공부를 가장 적게 하고 교과지식을 통해 역량을 키우는 교육, 20명도 안 되는 학급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교사는 2명, 모든 학생들의 균등한 교육을 위해 학습의 전제조건(가정, 사회, 개인 배경변인)부터 국가가 책임지고 배려하는 교육을 말이다. 

ⓒ 신은희

진정으로 미래를 위한 교육과정을 이야기하고 싶다면 현장의 문제를 심층적이고 과학적으로 진단하고 현장교사, 학생, 학부모, 전문가들과 함께 제대로 논의해 나가야 한다. 그리고 소수의 인재가 아니라 모든 아이들의 건강한 미래를 설계하는 교육과정이어야 한다.

덧붙이는 글 | 전교조 교육희망에도 비슷한 내용이 실렸습니다.

9월 11일 교과부 차관이 미래형교육과정을 2009년개정교육과정으로 이름을 붙여 교육계 반대에도 불구하고 원안대로 추진한다고 발표하였습니다. 며칠 전에는 교과부장관이 현장 의견을 반영하겠다고 발표하였습니다. 정책 실시하기 전에 연구부터 제대로 해서 현장에서 엇박자가 나지 않고 학생 피해가 나지 않도록 신중한 접근을 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태그:#미래형교육과정, #2009개정교육과정, #핀란드교육과정, #고교자율화, #학습부담감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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